<32화>
나비
골드우드.
소환 마탑의 탑주 자리부터 주요 보직을 모조리 차지하고 있는 실세 중의 실세 가문.
수없이 많은 개인과 집단이 골드우드의 아성에 도전했으나 그들 전원 금빛 벼락을 넘어서지 못했다.
숙련도가 극에 달할 시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벼락 세례는 모든 마법사에게 두려움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 불합리한 마법을 가능케 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뫠오옹.
대련장을 비추는 오래된 수정구를 앞에 두고 그루밍을 하는 샛노란 털뭉치. 세로로 길게 찢어진 그것의 눈은 조금의 감정도 담지 않은 채 구슬 속 올해의 시험 대상을 주시했다.
가장 화려한 벼락 창을 초격으로 사용하는 어린 골드우드를 본 털뭉치는 탄식이 담긴 숨을 뱉었다.
뫠잉.
귀가 떨리는 듯한 찢어지는 소리를 낸 그것이 한 말은 이렇다.
-멍청한 애송이.
상대를 현혹하기 위해 가볍게 사용해야 할 마법에 마나를 저렇게 소모해?
지드문트 골드우드.
늙은 것들이 백 년 만에 나타난 가문의 기재라며 떠들기에 가계약을 해줬더니 고작 저런 수준.
뫠옹….
털뭉치는 저런 실망스런 모습을 볼 때마다 최초로 자신과 계약한 그 녀석과 비교하게 된다.
정면승부를 벌이고도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재대결까지 요청한 건방진 인간.
추억을 잠겨 미소를 짓는 때에 수정구의 화면이 바뀌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금백의 실이여, 내 손에 깃들어 천공의 창이 되어라.”
-이 주문은….
털뭉치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채가 맺힌 눈으로 수정구를 앞발로 끌어와 자세히 들여다본다.
“흥, 그분과 계약도 못 한 네놈의 주문 따위. 실드로 막아주마.”
-저 애송이는 끝까지 어리석구나.
혀를 찬 그것은 기대를 품고 짙은 금발 머리칼을 가진 사내아이를 바라봤다.
-저 마나.
샐쭉이 호를 그리는 그것의 입가.
“청백의 이연격.”
요즘 마법사답지 않은 담백한 발동어. 상대가 실드 주문을 사용하겠다고 선포했음에도 끝까지 적의 입과 손을 예의주시하는 신중함.
마도 연구를 중시하는 이 시대에 보기 힘든 실전형 마법사.
-불과 몇 세기 전만 하더라도 바로 저 자세가 기초였거늘.
전투에 임하는 태도부터 명백했기에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 털뭉치는 소년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봤고 얼핏, 골드우드 가문과는 완전히 색이 다른 마나가 섞여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건? 큭!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흘러나온 마나를 분석한 그것은 몇 중첩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마나 트랩에 습격당해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재빨리 분석 마법을 회수하자 트랩은 한 번만 더 접근하면 완전히 소각시켜버리겠다는 의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강해.
호승심.
초대 골드우드와의 결전 이래 처음 느껴보는 감정.
그것은 문득 어린 것들이 떠들던 말을 떠올렸다.
‘야, 한 곳에만 고여 있으면 썩어. 다른 곳에서 적당히 뉴비 행세도 하고 그래야 재밌지.’
마치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지 않은가.
“끄아악!”
결과는 예상대로 어설프게 마법을 운용하던 지그문트라는 아이가 패배했다.
-우습구나. 그나저나 안토니오라고 했었던가.
경기 시작 전에 저 소년을 욕하던 것들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관람하던 늙은이들이 말문을 열었다.
“무음영창을 섞은 이중영창이었지?”
“확실하네. 창 뒤에 숨은 마법이 있었어.”
“저 나이에….”
“마탑이 아니라 히어로 아카데미로 갔다지? 내 손자도 보내볼까.”
“어허, 신중히 결정하게.”
“큼, 생각만 한 걸세 생각만.”
-저만하면 자격은 충분하구나.
사실 다른 세상에서 소환된 이 털뭉치는 안토니오라는 소년이 가문 내에 누구도 외우지 않는 오래된 주문을 소리 내어 말한 순간부터 마음을 정했다.
그것이 전이 마법으로 경기장 중앙에 나타나자 그 자리에서 가장 윗 배분인 장로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한다.
-아이야. 네가 방금 읊은 주문은 초대 가주와 내가 함께 만든 첫 번째 스펠이란다.
“허억.”
상대가 실드를 과신한 나머지 자신의 마법에 맞아 기절했음에도 끝까지 경계를 놓지 않던 안토니오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고양이를 닮은 거대 괴수에 놀라 뒤로 물러섰으나 금세 정신을 가다듬고 마법봉을 움켜쥐었다.
털뭉치는 자신을 눈앞에 뒀음에도 전의가 꺾이지 않는 소년의 모습과 처음 만난 초대 골드우드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맹랑한 것. 후후.
올해로 골드우드 가문에 머문 지 천 년. 자신이 죽고 몇 년만 가문을 돌봐달라던 녀석과의 약속은 진작에 지켰다.
앞발을 안토니오의 머리 위에 놓고 짧게 주문을 외우자 계약이 맺어졌고 이로써 안토니오는 정식으로 ‘고귀한 골드우드 매직’이라 일컬어지는 가문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것의 마나 일부와 안토니오의 마나가 융합되었는데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던 안토니오가 자신의 마나 일부를 뜯어내면서까지 계약을 거절했다.
뫠옹?
-무슨?
혼자 있을 때 외에는 절대 육성을 내지 않던 그것이 놀라 쳐다보자 안토니오는 대전 중에도 볼 수 없던 흥분한 기색으로 외쳤다.
“나와 스승님이 함께 쌓은 마나에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집 나간 혈족이 돌아와 대련을 신청한다는 소문을 듣고 모인 가문의 인사들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수호수의 등장에 감탄하던 것도 잠시 귀를 의심케 하는 안토니오의 폭언에 전원 경악한다.
수호수는 가주조차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모두가 얼어붙은 그때.
껄껄껄―
적막 속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호쾌한 웃음. 골드우드쪽 사람은 아니다.
-건방진….
앞발로 안토니오의 얼굴을 내리찍은 그것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가문의 어른들이 잡아먹을 듯이 안토니오에게 왜 그랬냐고 추궁하자.
“아, 그 괴물 고양이가 우리 스승님보다 마법 잘 가르치느냐고요.”
단호하게 부정하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 * *
“그걸 다 보셨다고요?”
안토니오가 복귀한 다음 날. 매저드는 자신의 마법으로 골드우드 가문을 염탐했음을 고백했다.
“미안하네.”
내 귀에는 전혀 미안한 어투가 아닌데, 안토니오는 어쩔 줄을 모르며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제 못난 모습에 실망하지 않으셨을지 걱정될 뿐입니다.”
“아닐세. 그간 익힌 바를 가문에 똑똑히 알리고 왔잖은가.”
“네!”
“웬 고양이의 선물도 내치고 말일세.”
“아, 그 이상한 소환수 말입니까. 정말 별로였습니다.”
옆구리가 터진 음식쓰레기 봉투를 보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 그의 옷깃에 달린 작은 금색 털 하나가 바르르 떨렸다.
매저드도 이를 알아차렸는지 묘한 웃음을 입가에 매달고는 집게손가락으로 그걸 집어 허공에 던진다.
“이계의 손님은 언제든 환영이니 부끄러워 말고 나오시게나.”
털에 작은 스파크가 일더니 이내 화면 속에서 봤던 거대한 고양이로 변했다.
-역시 늙은 인간은 눈치가 빨라.
입과 성대를 울리지 않고 강의실 내부 공기가 떨리며 자아내는 소리. 이게 저 생명체가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인 듯하다.
“본인은 마도학에 정진 중인 매저드라 하오.”
-혼몽의 마굴 생존자. 골드우드의 수호수. 나르 비앙트라다. 마법사는 너희가 전부인가?
“지금은 그렇소이다.”
매저드와 몇 가지 문답을 주고받은 나르 비앙트라는 여느 고양이와 다름없는 몸집으로 변해 강의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탐색을 시작했다.
그러다 햇빛이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볼일 보거라.
사실상 골드우드 가문 힘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생물이 저러고 있는데 신경이 안 쓰이겠냐고. 안토니오 동공 떨리는 거 봐라.
매저드 교수는 나와 안토니오 그리고 나르 비앙트라를 번갈아 보더니 최종적으로 내게 시선이 머물렀다.
“싫습니다.”
“아직 아무 말 안 했네.”
“저거 제게 맡기려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내가 그걸 모를까. 탁하면 척이지.
싱긋 웃는 매저드.
“이 스승이 부탁해도?”
“아시잖습니까. 저 털 날리는 거 안 좋아합니다.”
킬링랫을 학살하게 된 계기도 내 침대에 쥐 털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매저드는 예상했다는 듯이 품에서 금박이 둘린 고급스러운 카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히어로 협회에서 보낸 초대장일세.”
받아서 안을 확인하니 온갖 미사여구와 복잡한 내용이 쓰여 있었으나 핵심은 학생들과 한 번 방문해달라는 이야기였다.
협회에 초청된 교수는 애제자 두 명을 데리고 갈 수 있다고 한다.
“이걸 왜 제게?”
“프로스트 교수는 그레이스 멜론과 스위프트를 데려간다더구먼.”
퀸이 간다는 말에 좀 혹하는 건 사실이다.
나중에 톱이 되는 히어로의 성장 배경을 알고 싶은 건 빌런의 본능 아니겠나.
마지못한 척 초대장을 받으려고 하니 매저드가 홱 손을 뺀다.
“손님을 자네가 맡게.”
빌어먹을.
퀸이 말하기 껄끄러워하던 아카데미 생활 일부를 염탐하고 저 귀찮은 생물을 떠맡느냐. 아니면 조용하고 깨끗한 컨테이너 하우스 라이프를 즐기느냐.
결국.
“나비야, 가자.”
나르 비앙트라는 너무 길어서 줄였다.
뫠, 뫳!?
길게 뻗어 나온 눈꺼풀이 인상적인 노란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 의외로 얌전히 내 품에 안긴 녀석은 양쪽으로 뻗은 수염을 바르르 떨면서도 손톱을 빼내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원래 순한가 보네.’
“자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구먼. 받게. 내일 오후에 프로스트 교수와 합류해 출발하면 될 걸세.”
“예? 스승님은요.”
“내 나이가 몇인데 거길 가나. 자네들끼리 다녀오게.”
아니, 이 양반이.
“그럼 저도….”
은근슬쩍 받았던 초대장을 내려놓는 안토니오.
“어허. 위대한 마법사가 되려면 다른 이들과도 견해를 나눌 줄 알아야 한다네. 내 뒤를 이을 자네라면 응당 그리하겠지?”
“헛, 옙!”
냉큼 다시 초대장을 품에 집어넣는 녀석. 너도 참….
이후 나르 비앙트라를 예시로 든 소환학파의 마법 운용 방식과 이를 응용한 주문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드륵
협회의 행사에서 잘 놀고 오라는 매저드 교수의 인사를 뒤로하고 강의실 밖으로 나오자 나비가 내 품에서 뛰어내려 본체로 돌아간다.
그 큰 복도가 꽉 찬다. 이렇게 보니 꼭 큰 식빵 같기도 하고.
-당장 그분을 해방하거라.
“뭔 소리야 갑자기.”
-인간 따위와 계약할 분이 아니다. 약점을 잡았다면 차라리 내가….
“나중에 이야기하자. 지금은 강의 들어야 돼.”
이를 갈며 가르릉 대던 나비는 커다란 솜방망이를 번개 같은 속도로 휘둘렀으나 끝내 내 몸에 닿지는 않았다.
이러는 이유가 궁금하기는 한데, 언급한 대로 강의가 먼저였기에 고스트핸드 수업에 들어왔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률이 높다. 그러니 오늘은 카지노 시설이 어떻게 운용되는지에 대해 알려주마.”
별 흥미가 생기지 않는 내용인지라 옆옆 자리에 앉은 퀸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흡―, 미쳤어요?”
작은 목소리로 반문하는 퀸.
“마가렛 덕에 안 보이니까 쫄지 마.”
“그게 아니라 허리를 왜 찔러요!”
“그런 사소한 건 됐고, 너 프로스트 교수랑 협회 간다며.”
“사소한 게 아니라. 어, 그쪽도 가요?”
“그렇게 됐다. 협회에 대해서 뭐 들은 거 없어?”
“행사 말하는 거죠? 내가 아는 건 별로 없는데.”
라고 말하는 것치고는 퀸은 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협회에 모이는 학생들 간의 교류전이라든지 행사의 상품이 꽤 희귀한 것이라든지 말이다.
“상품?”
“네.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물건들도 있대요. 아버지가 운이 좋으면 코스튬에 쓸 만한 것도 구할 수 있다 하셨고요. 특히 교류전 우승 상품은 매년 특별했어요.”
퀸의 아버지면 전 세대의 유명한 히어로였다. 그런 이가 보장할 정도면 수준이 꽤 괜찮다는 건데.
“거기, 조용! 네 명밖에 없는 강의실인데 내가 모를 줄 아나. 적당히 떠들어라. 적당히!”
“죄송합니닷!”
교류전이라, 재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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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