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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37화 (37/201)

<37화>

훼방꾼들 (5)

“막스!”

“드라크!!”

“내 딸이, 내. 내.”

자식들의 잃어버린 신체 부위가 든 시설을 붙잡고 오열하는 부모들.

지금까지의 일을 장모에게 전해 들은 트윈버스터는 격노하며 가장 수상한 안쪽 방을 열었다.

“빠~”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앳된 음성. 멈칫한 트윈버스터는 유아용 침대에 누운 아기를 발견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목 뒤에 연결된 선과 주변 홀로보드에 떠 있는 자료들이 아니었다면, 진짜 사람의 아기라 믿었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외형이었다.

결심을 내린 트윈버스터가 휴머노이드를 파괴하기 위해 주먹을 들어 올리는 찰나.

“잠깐만요!”

그레이스 멜론이 끼어들었다.

“비켜라.”

“…아기는 죄가 없어요. 모든 건 협회장이 잘못한 거잖아요.”

“목숨을 밟고 태어난 생물, 아니, 로봇에 불과하다. 네가 이렇게 막을 이유가 없다.”

숙였던 고개를 드는 그레이스 멜론. 떨림 없는 목소리와 올 곳은 눈.

“저도, 당신도,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에요. 눈을 떠보니 세상이 있었던 거죠. 이 아기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이건 당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트윈버스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세를 풍기는 그레이스 멜론. 트윈버스터는 고개를 젓는 장모를 확인하곤 주먹을 거둬들였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다.”

울프를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이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리쳇은 마이크로 드론을 통해 연구실의 자료를 싹 긁어 복사한 뒤 물리적으로 소멸시켰다.

-어디 보자. … 이 파일은.

[마리 프로젝트]

헤드라이트가 잃어버린 딸과 같은 이름의 프로젝트명이었다.

* * *

“마리. 네 딸 이름이잖아. 기억 안 나? 10년 전에 죽었다고 벌써 잊은 거야?”

리쳇을 통해 전달받은 정보를 자극적으로 말하자 헤드라이트가 어깨 위의 아울 캠을 잡아 내 귀 옆에 대고 부순다.

으드득, 드득.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빌런.”

오우야. 세게 나오네.

“너야말로.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연쇄 살인범.”

나는 헤드라이트의 뒤통수를 잡아 끌어당겨 그에게만 들리도록 귓가에 속삭였다.

“고철 덩어리로 변한 마리를 보고 싶지 않거든 모든 죄를 자백해라. 전 히어로.”

정상급 히어로도 인간이다. 세상에 나와 살아가는 이상 반드시 약점이 존재한다.

그것이 전면에 드러났을 때. 그 인간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잠깐의 정적 후. 그는 내 가슴을 걷어차며 답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렇게 나오시겠다?

나는 헬기를 비췄던 홀로보드를 잡아 그에게만 보이게끔 저지 안쪽으로 끌어당긴 뒤 리쳇이 보내온 사진 하나를 띄웠다.

트윈버스터가 마리의 머리를 부수려는 모습.

“그만둬!”

“자백해, 그래야 감옥에서라도 네 딸을 볼 수 있지 않겠어?”

“…으.”

아.

절망으로 물들어가는 히어로의 얼굴은 언제나 내게 희열을 안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는 존재를 내 아래로 끌어내렸을 때 느껴지는 이 쾌감!

하물며 그게 세간에서 정의롭다 평가받음에야, 더할 나위 없는 결과다.

“비, 빌런.”

협상가의 눈이 나를 향했고 그의 동공에 비친 나는,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 * *

혹시나 했던 헤드라이트의 마지막 반항은 없었다. 그는 거물답게 몇 마디 말로 이름 있는 기자들을 모은 뒤, 자신이 노브레인 사건의 주모자라 자백했다.

“왜 그러셨습니까.”

빌런으로의 변장을 지운 미란다의 물음에 그는 품에서 작은 액자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헤드라이트가 딸이 2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건, 그에게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아는 사실이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되살리려고 했다.”

“미친 새끼! 죽어, 이 개X끼야!”

“마더 X커. 쉬X놈!”

“너 같은 놈 때문에, 막스가. 막스으으. 흐윽.”

피해자들이 동석하고 있었기에 헤드라이트는 한마디 말을 할 때마다 욕을 먹어야 했고 누구도 그들의 울분을 막을 수도, 만류할 수도 없었다.

피해자들이 지쳐 입을 다물고 나서야 헤드라이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죗값은 치르겠다. 그러니.”

그는 가로로 긴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마리만큼은 살려다오.”

“네 자식은 소중하고 남의 자식은 인간도 아니냐!”

“뒈져라. 인간 말종 새끼야!”

“마리고 뭐고 다 부숴버리겠어!”

“부탁한, 합니다. 제발….”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네놈도 우리와 같은 심정을 느껴봐라!

처음. 피해자들은 철저한 보복을 바랐다. 사건을 함께 했던 부유층 자제들이 보복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주기로 약조까지 했고.

참고로 몇몇 집안은 희생자들을 도왔다는 긍정적 이슈를 가져오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리는 죽어야 합니다.”

헤드라이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소년. 이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이자 탑 히어로의 자백을 이끌어낸 장본인.

“남만혁 씨. 마리를 어쩔 생각입니까.”

눈물이 흐르는 얼굴로 죽일 듯이 노려보는 헤드라이트. 온갖 감정이 뒤섞인 피해자의 부모들. 그리고 심각한 표정의 기자들까지.

“말씀드렸잖습니까. 마리는 죽습니다. 영원히.”

그리고 그 자리에서 리쳇이 전송해온 영상을 틀었다. 유아용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가 천장에서 돌아가는 모빌을 잡기 위해 잼잼을 하는 광경.

그러다 어느 순간 동공에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앙증맞은 손짓이 완전히 멎는다.

으아아, 으아아아아!

헤드라이트의 절규가 기자회장을 울렸고 이어 내게 달려들었다.

지금의 상황을 예견한 나는 옆에 서 있던 진압팀 대원 뒤로 숨었고. 그는 가지고 있던 구속포로 헤드라이트를 묶었다.

“어딜. 이 살인자 새끼가!”

살해당한 헬기 조종사의 동생에 의해 붙잡혀 끌려 나가는 헤드라이트.

그가 건물을 벗어날 때까지 전신을 울리는 듯한 절규가 이어졌다.

정적이 내려앉은 공간에서 나는 바닥을 구르는 펜 마이크를 집어 들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농담입니다.”

“예?”

버튼을 눌러 멈춘 영상을 재생하자 마리의 동공에 다시 불빛이 들어온다.

-빠~ 꺄하~

“사실은 그냥 재부팅한 겁니다.”

“…그럼, 마리는 죽일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까?”

“예, 이미 피해자 가족들과 이야기가 끝난 부분입니다. 헤드라이트가 충분한 아픔을 맛보길 바랬거든요.”

“그, 그렇군요. 앞으로 마리는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키워야죠.”

“키운다고요?”

“여러 분야의 전문가분들께 여쭤보니 사실상 인간이랍니다. 19명, 어쩌면 그 이상의 생명이 마리 안에 존재한다는 견해도 있고요.”

기자가 재차 질문하기 전에 내 곁으로 다가온 울프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마리는 우리 모두의 딸입니다.”

* * *

사건은 이틀 만에 끝났다. 행사장에 돌아다니던 반쪽짜리 휴머노이드들은 리쳇의 손을 거친 마리의 데이터를 이식받아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외형도 최대한 생전 모습에 근접하게 성형해 가족들에게 보내니 큰 위로가 되었다며 눈물의 감사 영상이 돌아왔다.

제대로 묻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편지도 있었고.

뭐…, 휴머노이드를 어떻게 활용하든 그건 그들의 의지니까.

이렇게까지 해줄 의리나 이유는 없었지만, 한국 속담에 그런 말 있지 않나.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려거든 보따리까지 내주라고.

할 거면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굴어야 죽기 전까지 은인으로 기억에 남지 않겠나.

“내가 할 수 있을까?”

“충분하지.”

그리고 마리는 하나 보육원에 데려왔다. 내 눈이 닿는 가장 가까운 장소이기도 하고 소민 누나는 사람 보살피는 데 타고났으니까 믿을 수 있다.

“이름이 마리라고?”

“꺄~”

“아유, 귀여워. 말 알아듣는 거지?”

“그럼. 두 살인데. 조금 있으면 걷기도 할걸?”

“정말? 우리 마리 천재였네?”

소민 누나가 볼통한 볼을 쓰다듬자 그게 좋은지 꺄르르 웃는 마리.

‘리쳇. 어때?’

-완벽해.

헤드라이트는 자신과 마리의 추억을 마리에게 저장했었다. 리쳇은 그걸 비롯해 인체 활동에 필요한 기억 이외의 모든 것을 지웠고, 개발 진행 중이던 성장 시스템까지 완성시켰다.

이제 마리는 추가적인 업데이트가 없어도 다른 아이들처럼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성장할 것이다. 물론, 바디 파츠는 매년 교환해야겠지만.

“갈게.”

“벌써?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아직 협회 행사 중이라. 가봐야 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알았어, 조심해. 뉴스 보니까 너 너무 나서더라. 여기선 얌전하던 애가 왜 그래?”

“나는 안전이 보장될 때가 아니면 안 나서니까 걱정하지 마.”

바로 가기는 좀 그래서 애들에게 필요한 거 사라고 용돈 좀 쥐여준 다음 보육원을 나왔다.

근처 운동장에 대기 중인 헬기를 타고 다시 뉴욕으로 날아오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교수도 룸메이트도 아닌.

“남만혁.”

분홍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퀸이었다.

아, 맞다. 데이트.

한여름이라도 밤은 쌀쌀하다. 10시가 넘어가는 시각. 아마 오늘 행사가 끝나는 9시에 보기로 했던 거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콧잔등이 빨갛게 변한 퀸이 뾰족한 눈으로 나를 쏘아본다.

“선물 사느라 늦었어.”

좋아. 급하게 짜낸 변명치고는 그럴듯했다.

“…선물이요?”

이제 수습을 해야 하는데, 가진 거라곤 태양이가 이제 필요 없다며 준 악력기. 나라가 내게 버린 인형. 그리고 아인이가 큰 결심 하고 양보한 주리퐁 과자.

나는 그나마 그럴듯한 걸 내밀었다.

“악력기? 그건 저도 있어요!”

역시 그렇겠지. 머리를 긁으며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 하자. 손목을 꽉 붙잡는 퀸.

“그, 그래도 선물이니까 받을게요.”

“그래라 그럼.”

적당히 영화를 볼 예정이었으나 이 시간에 하는 거라곤 전부 19금뿐이었던지라 아쉽게도 퀸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해서 결국 WHA 호텔로 돌아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리쳇의 음성이 들렸다.

-농장주. 이거 좀 먼저 봐봐.

피해자의 실체 일부가 들어 있던 실험관 아래쪽을 클로즈업한 사진. 거기에 낯설지 않은 인물의 머리가 보였다.

‘저건, 스턴코인?’

거기엔 엔들리스가 납치했던 빌런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에 퀸이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뭐가요?”

“아무것도 아냐.”

미간을 찡그린 퀸이 자기 앞에 놓인 조각 케이크를 포크로 푹푹 찌르며 중얼거린다.

“1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아니, 그건.”

“선물은 누가 쓰던 악력기고.”

-말해도 상관없어. 이미 알고 있을걸?

아. 이 녀석 거기 갔었지.

“스턴코인이 그 실험관 안에 있대서.”

“아. 그 리쳇이라는 AI가 알려주던가요.”

“어.”

“선수를 뺏겼네요. 오늘 이 시간이 끝나면 마가렛이랑 함께 의논하려 했는데.”

리쳇의 생각대로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씁쓸해하는 퀸의 모습에 괜히 미안해져서 전에 드레스 입었을 때 보기 괜찮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됐어요. 교장과 헤드라이트의 관계가 궁금한 거죠?”

“어, 어….”

내게 몸을 기울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퀸.

“제가 아버지께 듣기로 예전에 우연히 둘이 사석에서 만나는 걸 봤다고 하셨어요.”

둘과 연관된 이야기는 그게 전부였다. 리쳇에게 찾아보라고 하니 나오는 게 없다.

“교장. 수상하죠.”

수상한 정도가 아니라 나쁜 놈이지. 데드레드스컬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장본인인데.

“조심해. 티 내지 말고.”

“네,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어쩐지 상기된 얼굴의 퀸이 오늘은 늦었다며 먼저 방에 돌아갔고 나는 홀로 남아 잠시 생각하다 자문했다.

“…그럼 스턴코인의 몸은?”

* * *

다음날.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임시 히어로 협회장이 벌써 정해졌다고요?”

“예, 만장일치였답니다. 유일하게 빌런의 인권을 최소한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분이 계셔서요. 헤드라이트의 자료가 엉터리였던 것도 있어 순식간에 처리됐습니다.”

회의실에서 데커드에게 보고를 받는 교감. 프리실라 루드라는 남만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건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분이 누굽니까.”

“그게, 교감 선생님도 잘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냐고 묻잖아요?”

“우리 아카데미 교수로 계신 게타….”

벌컥!

염탐 특성을 가진 각성자답게 자신의 소개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교수.

“커험! 데커드, 물 좀 주겠나?”

“예, 게타 교수님.”

한껏 빳빳하진 그의 태도와.

“데커드, 앉으세요. 직접 가져다 드세요. 게타 교수.”

그런 그를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프리실라.

학생들을 귀환시켜야 할지 말지에 대해 논하기 위해 모인 교직원들의 눈이 둘 사이를 분주히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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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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