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교류전 (2)
나 윌리엄 브래들리는 영국 왕립 히어로 아카데미 로열클래스에 재학 중인 히어로 지망생이다.
특성은 감속과 분신이지.
상대의 속도를 느리게 하고 머릿수로 제압한다. 특성에서 나올 수 있는 이 가장 단순하고도 효과적인 전술은. 1학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내게 안겼다.
“상대는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의 그레이스 멜론!”
그러므로. 저 트리플 기프트의 소유자가 내 상대라 하여도 나는 승리할 자신이 있다.
“감속!”
특성을 입에 담지 말라는 기드 공작의 지적이 있었음에도 고치지 않은 이유는 내 어린 시절 마법 선생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윌리엄. 말에는 힘이 있단다.
상대는 감속을 상쇄할 수 있는 가속을 보유했음에도 움직임이 느려졌다. 주문처럼 말을 뱉은 덕분임이 분명하다.
“분신!”
평상시에는 여섯의 분신이 만들어지나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서인지 하나가 더 생겼다.
나 자신을 포함해 도합 8명. 한 손으로 여러 손을 상대할 수는 없다. 이건 불변의 진리다.
“공격3, 견제2, 방어2. 가라!”
나는 분신에게 역할을 부여해 그레이스 멜론을 몰아붙였다.
‘응?’
분신들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상대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다. 분신의 공격 중에 정타로 들어가는 게 없다.
피하고 쳐내는 게 대부분이고 맞더라도 근육이 많은 부위로 받아낸다. 내구 특성 보유자답지 않은 유려한 회피 기술.
‘쯧, 이르지만 어쩔 수 없나.’
“하늘로 쏘아진 쇳빛 폭우는 적의 폐부를 가르고—”
아이언 애로우.
기초 화살 마법 중 가장 물리력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마법.
대전이니만큼 촉 끝을 뭉툭하게 해뒀다. 그녀는 이 배려를 경기가 끝난 후에 깨닫고 내게 감탄하겠지.
“후후. 음? 헉!”
* * *
그레이스 멜론의 기세가 변한 것은 그때였다. 주문이 끝나기 직전. 쇠 화살이 하늘로 쏘아지려는 찰나.
횡으로 길게 스텝을 밟아 외곽에서 봉으로 견제하던 분신의 턱을 체중을 실어 경기장 밖으로 날려버린다.
이로 인해 본체로 향하는 일직선의 길이 뚫렸고. 부유와 가속을 일시에 폭발시켜 쏘아져 나갔다.
“시, 실드!”
영국의 히어로답게 메모라이즈해둔 마법을 발동시키는 윌리엄 브래들리였으나.
창을 깨고 들어오는 야구공처럼, 실드는 그레이스 멜론의 주먹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커헉!
복부에 얻어맞고 그대로 허리가 꺾여 공중으로 뜬 윌리엄에게 그레이스가 남만혁을 상대하던 때처럼 연속기를 넣으려 하자 심판이 그녀를 말렸다.
“그만!”
거리를 벌린 뒤 흘러내린 금발을 쓸어 넘기고 품에 넣어놨던 안경을 쓰고 앞을 보자 윌리엄 브래들리가 거품을 문 채 기절해있었다.
“승자, 그레이스 멜론!”
남만혁과 두식이 그리고 블랙팽을 상대로 다대일 전투를 연습해오던 그레이스 멜론에게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승리였다.
정신을 차린 윌리엄은 생에 처음으로 동년배에게 패배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레이스의 조언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윌리엄 브래들리. 어서 그레이스 멜론 학생의 장단점을 말하세요.”
“아? 아. 네. 빠르고 강했습니다. 혹시 처음 거북이처럼 웅크린 건 작전이었습니까?”
“네, 전력 파악이 우선이었으니까요.”
“그렇군요. 제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정보도 입수하셨나 봅니다.”
“그건 습관이에요.”
“네?”
“윌리엄 학생! 상대의 단점을 말씀하세요. 지금은 당신의 의문을 해소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
고민하던 윌리엄은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상대는 언젠가 빌런이 될지도 몰랐기에 치욕을 감수하고 입을 열었다.
“시력. 심판이 말리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죽었을 겁니다.”
진심 어린 그의 목소리에 그레이스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두 사람의 경기가 끝났다.
자리로 돌아온 그레이스 멜론이 남만혁을 보고 웃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좋단다.”
“…치.”
다정한 한 마디를 바랐던 그레이스였으나 그가 칭찬에 인색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다음 경기는 뉴욕 히어로 아카데미의 드위츠 스트라우드와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의 남만혁!”
사회자의 부름에 주위 학생의 응원을 받으며 내려온 두 사람.
“그날의 수모를 갚아주마.”
앞뒤 자르고 던지는 드위츠의 말에 남만혁은 비웃음으로 받았다.
“수모가 아니라. 그때 그게 네 위치다. 아직도 인정 못 하는 걸 보니, 트윈버스터의 마음고생도 알만하다.”
“이 새끼가!”
삑—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기 전에 심판이 호각을 불었다.
“드위츠 스트라우드 학생. 욕설은 실격사유입니다.”
“큭.”
그 광경에 대 놓고 웃는 남만혁.
“남만혁 학생도 도발은 적당히 하세요. 지금은 실전이 아니잖습니까.”
“예.”
두 학생을 대하는 심판의 태도는 판이하게 달랐다.
드위츠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이었다면 남만혁에게는 약간의 존중이 담겨있었다.
그럴 것이, 그는 협회장의 비리를 정면에서 밝혀낸 인물.
과정이 히어로답지 않았다는 평도 존재하긴 하나 말 그대로 일각의 의견일 뿐.
지금도 연일 남만혁이라는 이름이 매스컴에 거론되고 있다.
‘저놈만 아니면!’
세간의 이목이 자신에게 향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드위츠 스트라우드는 이번 대전에서 남만혁을 박살 내고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생각이었다.
남만혁의 특성은 고작 해변을 구현하는 게 전부.
패배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여겼기에 초격부터 자신의 특성을 최대한 끌어냈다.
“프로즌스톰!”
드위츠 스트라우드. 히어로명, 프로즌 스노우. 특성, 눈보라.
구현계인 그는 단련 정도에 따라 눈을 얼음덩어리나 물로도 변화시킬 수 있었고. 지금은 가장 강력한 위력을 내는 얼음 폭풍을 생성했다.
드위츠의 머리 위에서 사선으로 내려꽂히는 뾰족한 얼음덩어리들에서 살의를 읽은 심판이 급히 중단하려 했으나, 남만혁의 대처를 보곤 다시 뒤로 물러났다.
“미르토스.”
경기장 전체를 수심이 깊은 바다로 바꾼 남만혁은 잠수를 통해 놈의 공격을 무효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만일에 대비해 부표 아래에 만들어둔 보관함에서 스쿠버다이빙 장비까지 꺼내 장착했다.
산소통의 용량을 확인하고 아울캠까지 켜서 행사장 내 교류전이 중계되는 대형 홀로보드와 연동. 물속으로 파고드는 얼음덩어리들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여유를 보이자 드위츠는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구현계와 구현계의 전투는 보통 초반에 승부가 난다. 그러나 지금처럼 지구전이 될 경우 누가 더 숙련도가 더 높냐로 승패가 갈린다.
회귀 이후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훈련해온 남만혁과.
자신이 구현계에다 막강한 위력을 가졌음을 자각한 뒤로 노력을 게을리한 드위츠.
이 승부는 처음부터 결론이 나와 있었다.
낙하하는 얼음덩어리의 개수가 줄어들자 보관함에서 장난감 물총을 꺼내 드위츠의 얼굴에 쏘는 남만혁.
저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숙련도가 낮아 냉기 저항이 부족한 드위츠에겐 동상에 걸릴 정도로 심각한 타격이었다.
“으아아!”
얼굴 한쪽이 불타는 듯한 고통을 느낀 드위츠 스트라우드가 심판의 포기 권유를 뿌리치고 재차 얼음 폭풍을 퍼붓는다.
“멍청하긴.”
남만혁은 놈이 흥분하는 것을 보곤 멀리 돌아 은밀히 드위츠의 뒤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미 한계에 가까운 만큼 적당히 목덜미를 가격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테지만, 남만혁은 그러지 않았다.
카츄에게서 돌법봉을 꺼내 야구 타자처럼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자세를 취하더니.
“야.”
“뭣, 언제. 컥!”
돌법봉 풀스윙이 그대로 드위츠의 관자놀이에 꽂혔고 실신했다.
닥터팀이 올라와 그를 치료하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남만혁이 조언을 빙자한 폭언을 쏟아냈다.
“그런 특성을 보유했으면서 한다는 게 고장 얼음쪼가리 쏟아내는 거냐. 상상력을 좀 키워. 변화계 쪽도 같이 공부하고. 구현의 폭이 달라질 거다.”
“어?”
아울캠을 끄고 드위츠에게 다가가는 남만혁.
“그리고.”
그의 뒷머리를 뽑을 듯이 움켜쥐고 강하게 잡아당겨 나지막이 속삭이는 남만혁.
“퀸에게 찝쩍대지 마, 이 새끼야.”
드위츠는 방송에서 나왔던, 협회장을 나락으로 밀어 넣을 때 지은 그 표정이 지금 자기 앞에 있음을 깨닫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만혁은 장난이라는 듯 웃는 낯으로 바꾸곤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열심히 수련하면. 너도 네 아버지처럼 큰 사람이 될 거다.”
“…….”
충격을 받고 멍하게 있는 그를 심판이 재촉한다.
“드위츠 학생. 상대의 장단점에 대해 할 말 없습니까?”
“…지형을 선점하는 것으로 많은 이점을 가져가는 특성 같습니다. 단점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제가 남만혁 학생의 단점을 대신 언급하도록 하죠.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 특성이니, 작전에 투입될 때 반드시 지형을 고려하길 바랍니다.”
학생이 답하지 못한 단점은 심판과 진행팀이 참석 중인 교수들에게 자문해 지금처럼 알려주기도 한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렇게 예선이 끝난 다음 날. 본선이 시작되자 남만혁의 상대들은 그에게 가르침을 갈구했다.
“어때?”
“괜찮네. 여러 개 발동시키는 쪽으로 발전시켜 봐. 손가락 사이에 끼워도 되잖아. 안 된다고? 그럴 리가. 될 때까지 해.”
쇠구슬을 던지면 폭발하는 특성.
“저는—”
“좀 위험한데. 너는 힘 조절부터 다시 해야겠다. 내 마운틴 짐 연락처 줄 테니까 도저히 안 되겠으면 전화해.”
전신에서 레이저를 뿜는 소녀.
“키리릭, 키루릭!”
“아가미? 그거보다는 지느러미 변이부터 하는 게 낫지.”
상어로 변하는 특성.
남만혁이 일타강사처럼 요점만 집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니 자연스레 별명이 생겼고 이는 어느 교수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미라클 남이 누군지 아냐고?”
“예, 프로스트 교수님.”
협회장의 지인이자 주장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다 오늘에야 무혐의처분이 떨어져 행사장에 복귀한 프로스트.
“흐음, 자네가 이리 들뜬 것을 보니 우리 아카데미 학생이겠고. 남씨 성을 가진 건 그 아이뿐이니. 남만혁이겠군?”
“맞습니다. 역시 현명하십니다.”
“아부는 됐네, 내가 없는 동안 수습하느라 고생 많았겠어.”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 이렇게 유능한 자네를 조교로 부려 먹는 일도 얼마 남지 않았구먼.”
그의 말대로 프로스트를 존경해 자진해서 조교 일을 하던 그는 그간의 실적과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곧 조교수에 임용될 예정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네. 참, 그건 어떻게 됐나?”
“교류전 우승 상품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잘 도착했습니다.”
“다행이군. 하긴 한 입으로 두말하실 분은 아니지.”
교류전의 상품은 매년 행사에서 최고의 상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하필이면 교류전 직전에 그레이스 멜론이 파워 샌드백에서 신기록을 갱신하는 바람에 기존에 준비한 상품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됐다.
그래서 게타 교수와 상의하여 상품을 어찌할지 의논했는데.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내가 주마!”
서히아의 교장, 엔들리스가 대뜸 상품을 기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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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