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40화 (40/201)

<40화>

교류전 (3)

8강 대진이 정해졌다.

[쥬라기 드레이크 vs 옵티머스 플라티늄]

[마가렛 예프소비치 vs 그레이스 멜론]

[스위프트 vs 데릭 움바야]

[남만혁 vs 안토니오 골드우드]

8강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미라클 남과 안토니오 골드우드의 경기를 기대하는 분위기였으나 막상 총력전이 벌어지자 공룡과 로봇의 격돌에 이목이 쏠렸다.

크아아아아!

그위이이잉!

옆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교류전 최대 격전이 궁금한 건 남만혁도 마찬가지.

“빨리 끝내자. 저거 보러 가야 돼.”

시간 관계상, 네 경기가 동시에 진행 중이었고, 남만혁은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저 광경을 꼭 눈에 담고 싶었다.

“그러면 기권하던가.”

안토니오 골드우드는 생각했다.

‘오늘이다.’

이곳은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므로 남만혁이 언데드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기에 평소의 대련과는 달리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본때를 보여주겠어!’

가문에서 시험을 치를 때의 경험과 매저드의 칭찬으로 한껏 자신감이 차오른 안토니오 골드우드가 호기롭게 말을 뱉는 순간.

덜걱.

“어?”

두식의 주먹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뻑—

심상치 않은 충격음이 경기장을 울렸고 안토니오 골드우드는 공중에서 세 바퀴를 회전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언데드?”

심판은 혼란스러웠다. 규정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네크로 학파나 부를 법한 언데드를 꺼낸 남만혁을 탈락시키느냐.

아니면, 기절한 안토니오 골드우드의 안전을 위해 남만혁의 승리로 경기 종료를 선언하느냐.

그나마 다행인 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로봇 vs 공룡 경기에 집중하느라 이곳의 관중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심판은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해 판독을 준비하는 척하며 진행팀에 어찌할지 물었고 한참 만에 돌아온 답변은 의외의 것이었다.

-문제없음.

“언데드인데 문제가 없다고요?”

-예, 완전 통제 중이라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는 중앙마도협회 마도사님의 판단입니다. 계속 진행하세요.

중앙마도협회.

과거 매저드가 수장으로 있었던 단체이자 세계에서 가장 중립적인 마법 집단으로 평가받는 곳.

최근, 사장된 마법을 되살리자는 캠페인을 대규모로 진행 중이고 그중엔 네크로 학파도 존재한다.

그동안 워낙 언데드에 대한 배척이 심해 드러내놓고 홍보할 수는 없었으나 남만혁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크게 홍보할 결심을 세운 중앙마도협회였다.

물론, 여기에는 혹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스탠스를 미리 정해 두라는, 사실상 내 제자 건들지 말라는 매저드의 엄포가 있기도 했다.

그리하여.

“안토니오 골드우드 학생! 10을 셀 동안 일어나지 않으면 패배입니다. 10, 9—”

심판이 판정을 보류하는 사이 진작에 정신을 차렸던 안토니오는 얼얼한 턱을 매만지며 벌떡 일어섰다.

“저게 된다고?”

“규정에 어긋난 점은 없습니다.”

전신에서 유황 냄새를 풍기는 거구의 언데드.

안토니오는 이를 악물고는 가문에서 보내온 마법봉을 쥐고 휘둘렀다.

“스닉 스파크지?”

주문은 남만혁의 입에서 나왔다. 무영창으로 날려 보낸 마법이 무엇일지 뻔했기에 반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반원을 그리며 날아오는 안토니오의 마법을 피하는 남만혁.

은밀함과 속도에 힘을 실은 마법인 만큼, 학생 수준에서는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공격.

하지만 상대는 매일같이 대전을 벌이고 함께 성장한 인물. 통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안토니오 골드우드는 맹렬히 궁리했다.

‘저 빌어먹을 주둥아리에 한 방만. 딱 한 방만 먹일 수 있다면!’

이러한 안토니오의 간절함은 얼마 전 그의 오리지널 매직을 탄생시켰다.

정확히. 남만혁이 협회장을 나락으로 밀어 넣는 그 시각이었다.

“악을 멸하는 정의의 벼락이여, 썬더!”

압축된 영창을 통해 소환된 스펠은 남만혁이 피한 스닉 스파크를 향해 쇄도했다.

남만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안토니오의 모습에 의아해하다 이내 처음 쏘아진 스닉 스파크가 한 발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런 씨—”

채 반응하기도 전에 두 번째 스파크를 허벅지에 허용. 급히 두식이에게 안토니오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는 이미 허벅지에 달라붙은 스파크를 향해 낙뢰가 내달리고 있었다.

콰르릉!

썬더 마법은 본래 이동한 거리에 비해 급격히 약화되는 성질을 가졌으나, 안토니오는 스닉 스파크 두 개를 중계지로 삼음으로써 약점을 극복.

이것이 남만혁으로 하여금 욕이 나오게 한 안토니오 골드우드의 비장의 수!

다만, 안타깝게도 남만혁이 영역 전개를 습득한 마법사라는 점이 변수로 작용했다.

“X될 뻔했네.”

영역 내로 진입해온 안토니오의 마나를 자신의 마나로 억제하는 데 성공한 남만혁이 옷 위로 굴러다니는 스파크를 손으로 쳐낼 때쯤, 붉은 안광을 피워올린 두식의 주먹이 안토니오의 턱에 닿아 있었다.

2m가량 솟구치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안토니오.

심판은 눈이 하얗게 뒤집힌 그를 두식에게서 몸으로 보호하며 경기 종료를 선언.

얼마 후 정신을 차린 안토니오 골드우드는 또 패배했다는 자괴감에 썩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다 남만혁의 얼굴을 보곤 폭소했다.

눈썹이 없었다.

“남 일 같냐?”

“크하하, ……어? 아, 안돼!”

너무 집중한 나머지 머리에 있는 털이 죄다 타버린 안토니오가 홀로폰의 카메라 모드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절망한다.

“이번엔 괜찮았다. 쓸만해. 이거 실전에서도 한 번은 무조건 먹힐 거다.”

“…그래?”

“어. 내가 빈말하는 거 봤냐. 그러니까 이쪽으로 진득하게 연구해봐. 그리고 단점은 여전히 포커페이스가 안 된다는 거?”

“큭. 네놈은 방심해서 내게 마법을 허용한 주제에 말이 많군.”

남만혁이 틀린 말은 아니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눈가를 찌푸리는 안토니오.

“네가 스스로 자기 머리를 태울 줄은 몰랐거든. 야, 대단하더라. 찍어놨으니까 나중에 보내줄게.”

“필요 없어! 소나무 숲에 올리면 죽인다!”

“흐흐.”

“야!”

* * *

8강전 경기의 관중은 단연 독보적으로 두 낭만의 싸움에 집중되었으나 남만혁과 안토니오 골드우드의 전투를 본 사람들은 모두 훌륭한 경기 내용에 극찬했다.

그러나 도중 언데드가 출현한 것 때문에 의견이 분분했는데.

“네크로 학파를 이대로 놔두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당장 홀로폰을 켜서 아무 채널이나 틀어보십시오. 남만혁 학생의 이름이 지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제재하면 우리가 피를 뿌리며 쌓아온 중립 이미지가 망가질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당신의 요구는 이상하군요. 임시 협회장, 게타.”

“저를 아랫사람처럼 부르지 마십시오. 그렌델 알프.”

그렌델 알프. 중앙마도협회의 간판 마법사로, 마도협회의 대외적인 업무를 맡고 있으며 히어로 협회 소속이기도 하다.

“당신이 교수로 재임 중인 아카데미의 학생이잖습니까.”

“그것과는 관계없습니다. 저는 임시 히어로 협회장으로 이곳에 있는 겁니다.”

“후, 좋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예?”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단 하나는 알아두십시오. 마법이 핍박받는 순간 저희는 히어로 협회를 탈퇴하겠습니다.”

“그 발언, 중앙마도협회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해도 됩니까?”

게타는 단순히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뱉은 말이었으나, 그렌델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후. 남만혁은 실격 처리되었으며 모든 행사에 참여할 수 없도록 조처되었다.

이것이 대중에게 알려지며 엄청난 반발이 있었으나, 임시 협회장인 게타가 모두 뒤집어쓰고 사퇴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남만혁 보이콧이 확정되기가 무섭게 협회 내에서 불만을 품고 있던 마법사들이 대거 탈퇴.

사실상 히어로 협회는 마법적 조력을 전혀 얻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자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의 교장, 엔들리스가 나선다.

“다음 협회장이 정해질 동안은 내가 맡지. 도와주실 분들도 모셔 왔네.”

테이블의 상석을 자연스레 차지한 그가 신호하자 문이 열리며 일련의 무리가 금발을 휘날리며 들어왔다.

“다들 알겠지? 소환학파로 유명한 골드우드 가문일세. 걱정하지 말게, 자네들 자리를 뺏겠나. 자문위원이나 명예직으로 앉힐 걸세.”

히어로 협회를 둘러싼 권력 암투는 서히아 교장의 등장으로 흐지부지되었고 남만혁에게 포커스가 모였던 세간의 관심도 점차 흐려질 무렵.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원하는 물건을 가져온 남자는 홀로 웃었다.

* * *

“역시. 그 노인네가 가만히 있을 리 없지.”

내 목표는 교류전 우승 상품이었다. 교장이 제공했다는 수상쩍은 것들 말고, 본래 상품.

파이락시스트.

이게 지금은 그냥 보석처럼 희귀하기만 하고 큰 쓸모가 없는 광물 취급이지만 VZ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광물이다.

VZ는 특성을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드는 기술.

퀸에 의하면 그블린에게 VZ기술이 넘어가면서부터 진정한 종말이 시작됐다고 했으니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금부터 내가 싹쓸이해둘 필요가 있다.

뭐, 히어로 전원에게 보급할 수 있도록 생산설비를 만들 수 있으면 가장 좋고.

“이런 게 기념품 취급이라니. 참.”

아는 게 힘이다. 영국의 철학자가 한 말은 진정으로 진리였다.

그래도 8강전까지는 인정해줘서 8등 상품을 받았는데, 그게 이거다.

내 위로는 전부 구하려면 억 단위를 써야 구할 수 있는 귀한 소재들을 받았고.

절대, 배 아파서 합리화하고 있던 게 아니다.

똑똑.

“누구?”

“나다.”

“들어와.”

붉은 머리칼에 안경. 올해의 교류전 우승자, 스위프트 되시겠다.

그는 안에 도시락이 들었을 것만 같은 보자기를 내밀었고 고갯짓으로 그게 뭐냐고 묻자.

“1등 상품.”

“그건 왜 가지고 왔냐.”

“나는 필요가 없는 물건이고. 이번 임무는 고역이었겠더군. 내 나름 위로의 선물이다.”

무뚝뚝한 녀석은 그대로 제 할 말만 하고 가버렸다.

저 녀석, 아직도 나를 아카데미에서 심은 관찰자로 여기는 건가.

아무튼 주는 선물 거부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보자기를 벗기자, 어쩐지 낯설지 않은 돌멩이가 들어 있었다.

나는 운명에 끌리듯 이쪽으로 굴러오는 돌법봉을 그 옆에 두었고.

“은석아, 쌍둥이였어?”

똑같이 생긴 돌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교장이 내놓은 물건이라 찜찜하긴 하지만 일단 손을 대봤다.

혹시 은석이처럼 내게 다음 슬롯을 열어주지 않을까 해서.

…….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심지어 훈련석도 아닌 듯하다.

“생긴 것만 비슷했나.”

괜한 아쉬움에 발로 툭 쳤고.

빠각—

반으로 갈라지더니 안에서 꿀 비슷한 금빛 액체가 흘러나왔다.

“오, 이게 요즘 유행한다는 최고급 밀폐 석청인가 뭔간가.”

그래, 우승자 상품인데 쓰레기를 줄 리 없지.

나는 그대로 꿀을 모조리 튼튼한 유리병에 담았고 맛볼 겸 한술 떠서 입에 넣으려는데.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져 내 베개를 차지하고 있는 골드우드 가문의 수호신이자 고양이인 나비의 입속으로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반쯤 졸던 나비는 달콤한 액체가 입에 들어와서 그런지 냠냠대며 핥아먹다 어느 순간 꼬리를 바짝 세우고 눈을 크게 뜨고는.

-이, 이 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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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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