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독 같은 영약
탁!
숟가락을 앞발로 쳐내곤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는 나비.
-감히 이 몸에게 독을 먹이려 해?
“독?”
-발뺌하려는 게냐!
나비의 전신이 샛노랗게 변하며 부풀어 오르기에 나는 급히 말을 이었다.
“아니, 몰랐다니까. 내가 먹으려다 양보한 건데, 이러면 섭섭하지.”
내 앞에 놓인 흔적들이 말을 뒷받침하고 있었기에 나비는 의심의 눈길을 풀진 않았으나 원래의 몸집으로 돌아왔다.
-흥, 이번만 넘어가 주마. 당장 진짜 꿀을 가져오너라.
어쩔 수 없이 언젠가 마가렛이 가져다 놓은 러시아산 곰 꿀을 찬장에서 꺼내 건네며 물었다.
“그런데 이게 독이라고?”
냠—
꿀을 음미하며 말하는 나비의 설명은 이러했다.
이 독은 섭취자의 신체 능력을 단기간에 급격히 성장시키는 힘이 있으나 서서히 폐인이 된다고 한다.
‘일종의 불법 스테로이드 같은 거구만.’
-마법의 시대에 존재했던 독이다. 잊혀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 흘렀건만. 역시 기록의 종답구나.
매서운 눈으로 석청이 담긴 병을 노려보는 나비.
“적당히 희석해서 쓰는 건 어때?”
-의미 없느니라. 이건 저주에 일생을 바친 마법사가 살의를 담아 제작한 물건. 다른 용도로는 쓸 수 없음이야.
‘…잠깐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거. 생명체가 썼을 때 이야기지?”
-그야 당연…. 너! 안 된다!
“삼식아.”
컨테이너 밖에서 놀고 있던 삼식이가 내 부름에 흙이 묻은 발을 털고 안으로 들어온다.
돌곡?
왜 불렀냐는 물음에 나는 눈짓으로 석청을 가리켰다.
“먹어볼래?”
-이노옴! 감히 마굴의 대선배께 무슨 망발을 하는 게냐!
참, 알고 보니 이 둘은 활동한 시기만 다를 뿐 같은 혼몽의 마굴 출신이란다.
나비가 777일 생존이고, 우리 삼식이가 보자….
【이름 : 삼식】
【종 : 임프】
【힘 : 8->15】
【지 : 30->53】
【마 : 65->99】
【잠 : 255】
【특성 : 변이된 매직 미사일(B), 블링크(B), 집중(F)】
【설명 : 혼몽의 마굴 999일 생존, 블러디커스랫을 학살했다, 인간의 등은 포근하다, 삼식이라 불리는 게 좋다, 계약자의 마법 실력이 늘고 있어 행복하다, 후배가 생겨서 기분이 좋다.】
오래간만에 확인해서인지 스텟 상승량이 엄청나다. 숙련도도 두 단계씩 올랐고 집중이라는 특성도 생겼다.
확실히 다른 세상에서 온 언데드라 그런지 특성이 이쪽보다는 쉽게 생기는 느낌.
그리고 보다시피 마굴 999일 생존. 저게 별거 아닌 거 같아도 나비의 말에 따르면 상상조차 힘든 엄청난 업적이라고 한다.
-500일부터는 하루하루가 고됐고 600일 이후는 찰나의 방심이 죽음을 부른다. 700일은…, 그저 운명에 맡겨야만 했지.
-죽음의 신이 안배한 마굴을 마지막 날까지 버틴 이가 지금껏 딱 한 명 존재한다.
-마굴의 주인이라 불리며 그분과 함께했던 자들이 지금도 차원 교차로에서 기다리고 있다지.
그 마굴의 주인이 우리 삼식이란다. 어쩐지 잠재력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과거가 있었을 줄이야.
“이거 먹을래?”
신체 기능을 올린다는 건, 뼈에도 작용이 있을 터. 들어보니 무기력증에 우울증, 평생 근육을 만들 수 없는 몸이 된다는 거 같은데. 우리 애들에게는 하등 관계없는 패널티다.
삼식이에게 석청을 들이밀자 나비가 발광했으나 녀석과 나는 무시했다.
하얀 검지로 찍어 입속에 넣은 삼식이는 잠시 골몰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돌고곡.
“두식이 주라고?”
돌곡!
“양보하는 거야? 착하네, 우리 삼식이.”
돌돌~
-아니야. 그 위대한 분이 저리 인간 친화적일 리 없다. 그렇군, 환상 마법이구나. 인간, 당장 정신 마법을 거둬라!
삼식이만 없으면 스트리트를 지배하는 카리스마냥이지만, 지금은 그냥 밥 안 줘서 빽빽대는 집냥이나 다를 바 없는 모양새다.
저래도 자기 세상에서 꽤 잘나갔다는 거 같은데. 혼자 저리 북 치고 장구 치는 꼴이 안쓰러울 지경.
아무튼 바로 두식이를 부르자 녀석도 삼식이처럼 맛을 보더니 정말 이 보물을 다 가져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어, 말했다시피 내가 쓰기엔 좀 부작용이 있어서. 부하들에게 나눠줘도 좋고. 너 알아서 써.”
두식이는 흐물거리는 안광을 만들며 그 큰 몸으로 내게 매달리더니 일전의 그 감사의 춤을 춘다.
나도 조금 외웠기에 같이 추자 두식이 크게 좋아하다가 갑자기 허리춤에 달아준 주머니를 뒤적여 기묘한 물건 하나를 내민다.
“뭔데?”
덜걱, 덜거걱—
심계의 유황 지대 인근에서 거들먹거리는 놈을 때려눕히고 뺏은 물건이란다.
매저드가 심계는 특별한 환경이라 지구에 없는 신비가 많이 존재하는 곳이라 했다.
거기서 가져온 물건이라 하니 괜히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었는데.
“뿔?”
나선형으로 꼬인 신기하게 생긴 뿔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때.
【특성 : 낭만주의자, 변이 감지】
【슬롯 개방 중….】
【낭만주의자, 4번째 슬롯 개방 완료.】
뜬금없는 슬롯 개방에 당황했으나 금방 정신을 가다듬고 상태창을 열었다.
【특성 : 낭만주의자】
【슬롯1 : 미르토스 해변】
【슬롯2 : 리쳇】
【슬롯3 : 뾰로롱☆마법 소녀, 블랙 위치】
【슬롯4 : 없음】
“오!”
그간 슬롯을 열기 위해 교감이 입학시험 때 내기로 걸었던 금액 이상을 썼다.
그런데도 찾지 못해 반쯤 포기한 상태였는데, 이렇게 얻을 줄이야.
“두식아, 고맙다.”
두꺼운 뼈 손가락을 잡고 진심을 담아 말하자 녀석도 내 마음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안아 들었다.
덜걱!
지금껏 내게 받은 은혜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선물인데도 그리 좋아해 주니 기쁘단다.
짜식이….
내가 부모 복은 없어도 언데드 복은 있나 보다. 하나같이 착한 녀석들이랑만 만난 걸 보면 말이다.
순간 컨테이너 창문 밖으로 일식이의 석청을 향한 애처로운 안광이 보였지만, 곧장 눈을 돌렸다.
두식이가 꿀을 들고 돌아가자 나는 즉시 리쳇에게 물었다.
“석청 이거 1위한테만 줬대?”
-잠시만, …3위까지 비슷한 상품을 받았어. 1위 석청, 2위 버섯, 3위 산삼.
전부 먹으면 몸에 도움이 되는 영약들이다. 나는 곧장 2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퀸. 난데. 너 교류전에서 받은 상품 말야, 먹었어?”
-아니요. 부모님 드리려고 아직 가지고 있어요. 왜 그러세요?
“일단 아무 말 말고 그거 가지고 여기로 와.”
그럴 리야 없겠지만, 주변에 듣는 사람이 있거나 도청이 될 때를 고려해 은밀히 불렀다. 3위도 마찬가지.
* * *
잠시 후.
“나는 왜.”
퀸 옆에 앉은 뚱한 표정의 안토니오. 놀랍게도 3위는 저 녀석이다.
내가 협회의 제재를 받으며 실격해 4강에 올랐고 스위프트에게 패배, 옵티머스 플라티늄에게 승리하여 3위에 안착했다.
“내놔봐.”
둘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들고 온 보자기를 등 뒤로 숨긴다.
“아무리 그래도 정당하게 받은 상품을 뺏는 건 몰상식한 행동이에요!”
“그래, 이 이기적인 자식아.”
그런 둘에게 영약에 든 독을 상세히, 나비의 증언까지 곁들이며 설명하자 이해했는지.
“그런 이유였군요…. 어쩐지. 알겠어요.”
“저 말을 믿어?”
나도 이렇게 덥석 알았다고 할 줄은 몰랐다.
“저를 속일 이유가 없으니까요.”
“제기랄! 너 다 처먹어라.”
사탕을 뺏긴 애처럼 침대 위로 산삼이 든 상자를 내던지는 안토니오.
“자자, 침착해. 그냥 달라고 하겠냐. 나는 기브앤테이크가 확실한 사람이야.”
나는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듯해 진작에 매저드에게서 물건 하나를 받아놨었다.
그 물건이 든 종이봉투를 녀석에게 건네자, 은근히 기대하는 기색으로 받아 들었다.
[매저드 과외 1시간 이용권]
“이, 이건! 이 자식!”
흥분하며 내 멱살을 잡는 안토니오.
아, 이건 좀 심했나. 하기야 아들 생일 선물을 깜빡한 아빠가 급히 ‘아빠 이용권’을 준 느낌이니. 얘가 그 정도로 어리진 않지.
다른 건 뭐 없나 생각하는 그때.
“이런 보물을 정말 내게 양보해도 괜찮은 거냐!”
이게 먹히네.
나는 곧장 입술을 깨물고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빨리 가져가. 다시 뺏고 싶어지니까.”
“잘 쓰마! 으하핫!”
그렇게 매저드 이름만 나오면 바보처럼 구는 안토니오가 떠나자 표정을 풀고 이쪽을 뚫어져라 보는 퀸을 바라봤다.
“왜.”
“두 분 사이가 좋은 거 같아서요.”
“좋기는. 됐고, 너도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어지간하면 마련해줄 테니까.”
“후후. 없어요, 그런 거. 자요.”
되바라진 금발 놈과는 다르게 순순히 내주는 퀸.
역시 미래의 슈퍼히어로는 뭐가 달라도 달라.
“갈게요. 더 있다간 곧 정각이라 순찰하는 사감님께 들킬 거에요.”
“고맙다. 잠깐만, 여기까지 와줬는데 그냥 보내긴 그렇고. 이거라도 가져가.”
나비가 아껴먹던 곰 꿀을 빼앗아 주자 퀸은 곤란해하면서도 받아 들었다.
“조심히 가라.”
“네.”
꿀통을 품에 꼭 안고 떠나는 퀸의 뒷모습이 얼굴을 들이미는 나비에 의해 가려졌다.
-이게 무슨 짓이냐!
작은 고양이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마력.
그녀가 유례없이 화가 났다는 것을 의미했으나 나는 되려 당당히, 심지어 약간의 한심함을 담아 말했다.
“언제까지 인조 꿀 먹을래.”
-뭣이?
“최고는 자연산인 거 알잖아. 내가 마침 봐둔 벌집 있으니까. 거기 위치 가르쳐줄게. 로열젤리도 있을걸? 어때?”
-당장 안내하거라!
천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나비가 거절하기에는 너무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 * *
히어로, 엔들리스의 모처.
“셋 다 고놈이 회수했다?”
“예, 마그네틱 렌즈가 확인했습니다.”
“허, 구린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구나.”
“처리할까요?”
“…되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열매는 무르익었을 때 따 먹어야 제맛을 내지 않더냐.”
“따르겠습니다.”
“구하느라 무척 고생했거늘. 남은 건 하나인가…. 어쩔 수 없구먼, 다른 두 녀석은 포기하고 스위프트에게 이걸 먹이도록.”
나비가 간파해낸 독의 이름은 코틱 포이즌. 엔들리스가 억압 중인 네크로 학파 마법사의 지식을 강제로 짜내 제작한 독이다.
코틱 포이즌은 저주 전문 마법사가 일생에 하나 만들면 성공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제작이 몹시 까다롭다.
이때만큼은 네크로 학파의 마법사를 좀 더 살려둘 걸 그랬다고 잠깐 후회한 엔들리스가 나가려던 부하를 불렀다.
“알렉세이, 자네 조국에선 뭐라던가.”
교류전에서 러시아의 비밀병기라는 별명을 얻은 알렉세이. 그는 엔들리스의 눈이 검게 물드는 것을 직시하며 답했다.
“러시아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흠, 알겠네. 가보게.”
서재에 홀로 남은 엔들리스는 책상의 서랍을 열어 노란 스파크가 튀는 동전을 꺼냈다.
그것은 스턴코인이 다루던 그것과 동일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팅—
엄지에 의해 튕긴 동전이 핏방울을 뿌리며 회전. 다시 엔들리스 손 위로 떨어졌을 때는 앞면이 위로 올라와 있었다.
“알렉세이. 자네도 운이 좋구먼.”
다시 서랍이 열리고 그곳에 스턴코인의 동전이 들어가는 찰나.
우우우—
“어허.”
서랍 안쪽에서 흘러나오던 음울한 울림이 엔들리스의 으름장에 놀란 듯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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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