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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47화 (47/201)

<47화>

네크로 마탑 (1)

트레이시. 이런 거에 흥미가 있었나. 인디아나 줄리아 모험 세트는 각 아카데미당 3개만 입고된 한정판. 리쳇은 놓고 가도 이건 포기할 수 없다.

뚜르르.

-남 교수? 웬일?

“어디냐.”

-나야 늘 기숙사지.

다행히 아직 집에 안 간 모양.

“안 바쁘면 나와.”

-이거 혹시 데이트 신청이야? 그레이스는 어쩌고. 너 바람둥이구나.

“넘겨짚지 말고. 나올 거야 말 거야. 그것만 말해.”

-글쎄, 어쩔까.

탐색계 각성자답다. 이 자식들은 하나같이 이리저리 재는 게 많아서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

“일주일에 고급 식권 30개.”

고급 식권은 일반 식권과 달리 영양과 맛을 동시에 잡은 아주 호화스러운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서히아의 학생들은 운동량이 또래보다 압도적인 만큼 그만큼 소모하는 열량도 상당하다. 강화계는 대부분 하루에 5끼 이상을 섭취하고 아니더라도 3끼는 반드시 먹는다.

그러나 A반을 제외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고급 식권은 하루에 하나. 이건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이면 누구라도 눈 돌아갈 만한 제안이고.

-어디로 갈까?

트레이시 그웬 역시 다르지 않았다.

* * *

“여기 맞아?”

“맞다니까.”

“다시 확인해 봐. 진짜 여기 맞냐고!”

얼굴에 물을 들이부어도 웃는 낯을 유지하는 얘가 이렇게 화를 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지금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사헬에 와 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사헬은 6,400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넓이의 사막이고 토지확장에 진심인 국가들마저 외면하는 최악의 기후를 자랑한다.

미친 듯이 날라가는 체내 수분과 따가우리만큼 내리쬐는 태양은 어지간한 고문보다 더 사람을 괴롭게 한다.

“자자,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미르토스.”

탐색계인 트레이시를 데려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녀석이 없었다면 이 넓은 땅에 점 하나 찍어주고 찾아가라던 교감의 말만 믿고 허송세월할 뻔했다.

리쳇도 위성뷰로는 한계가 있고 온도 때문에 드론이 활동하긴 어렵다.

이게 내가 틈틈이 해변을 구현해 녀석의 기분을 풀어주는 이유다.

첨벙!

물이 구현되자마자 옷이고 뭐고 그대로 바다에 뛰어드는 트레이시 그웬.

“으아, 이제 살 것 같아! 남 교수, 나 야자수!”

음료수 달란 소리다. 보관함에서 야자 음료를 꺼내 건네자 소주잔을 내려놓는 아저씨처럼 탄성을 뱉는 트레이시.

“한 잔 더!”

누군가 내 특성을 보고 그런 말을 했었다. 지형에 영향을 많이 받는 능력이라고.

정확하다. 인근에 바다가 있을 때 구현하면 지속시간이 길어지지만, 지금처럼 사막일 경우 유지 시간이 무척 짧다.

“앗 뜨거워!”

쫄딱 젖은 채 모래를 짚고 헤엄치던 트레이시 그웬이 벌떡 일어나 나를 노려본다.

“놀았으면 찾아. 시간 없어.”

교감의 지원도 없고 해서 자력으로 여기까지 오는 데 나흘을 썼다. 트레이시가 떠나기 전엔 어떻게든 마탑을 찾아야 한다.

“저쪽 같아.”

애매한 말투. 본인의 일이 아닐 때는 특성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적중률 자체는 상당히 높은데 기능 자체를 안 하니 이렇게 헤매고 다니는 것. 이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아쉽기는 해도 재촉하거나 탓할 필요는 없다.

“가보자.”

다른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간다. 교감이 찍은 점은 지도상 반경 15km 정도. 폐허라고 했으니 어떤 흔적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데, 보이는 거라곤 누런 잔디와 드문드문 솟아 있는 나무가 전부.

달이 머리 위로 오기 전까지 무리해서 돌아다녔음에도 소득이 없었다.

산장에서 쓰던 텐트를 카츄에게서 꺼내 설치하고 모닥불을 피우자 트레이시가 준비해둔 요리를 시작한다.

우연히 만난 카라반의 상인이 나눠준 죽은 전갈들을 기름을 두른 냄비에 넣었다.

치이익.

징그러운 외형과는 달리 고소한 향이 올라오자 찌푸린 얼굴을 펴고 포크 질을 하는 트레이시.

녀석은 한참 망설이다 결국 갑각을 떼고 드러난 살점을 입에 넣었다.

“으! 음? 어. 맛있어!”

“당연하지. 이 전갈 정도면 식용 전갈 중에서도 고급이다.”

“어떻게 알아?”

한참 빌런으로 활동하며 쫓길 때 온갖 것들을 먹어봤었다.

“…빨리 먹어라. 또 왔다.”

트레이시는 내 말에 후다닥 입에 전갈 고기를 쑤셔 넣는다.

사헬 사막에 사람이 없는 이유. 특히 밤에는 접근금지가 상식인 이유는.

그어어.

끼아아악.

오직 인간만 노리는 저 언데드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땅에서 올라오는 좀비. 허공에서 전조 없이 등장하는 스펙터. 이 둘이라면 그나마 일반인도 상대할 수 있으나, 저게 문제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약 50m 떨어진 곳. 새파란 안광을 뿌리며 지팡이를 쥔, 해골마법사.

흔히 스켈레톤 메이지라 불리는 저 언데드는 생전 네크로 학파의 마법사일 것이라는 설이 있다.

본스피어를 머리 위로 생성한 해골마법사가 모닥불을 향해 쏘아냈고 이를 삼식이가 매직 미사일로 요격한다.

첫날에나 놀랐지, 지금은 익숙한 패턴이었기에 메이지는 삼식이에게 맡기고 나는 언데드들을 포격했다.

말 그대로 포격. 미르토스 해변과 넥서스를 조합한 공격으로 인근의 언데드를 몰살시키는 데에 이것보다 빠른 연계는 없었다.

일전 에플 루인스를 잡을 때 써보니까 조합이 괜찮더라고.

트레이시 그웬이 엄청나게 놀라긴 했지만 모른 척하겠다더라.

“끝났네.”

텐트로 도망쳤던 트레이시 그웬이 입구를 살짝 열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아직. 메이지 남았어.”

“걔야 또 도망치겠지.”

그렇다. 스켈레톤 메이지는 자기가 포탄에 맞을 거 같으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나는 그걸 보고 직감했다. 저거, 지성이 있구나. 최소 동물 수준의 지능은 보유했을 거라는 생각에 포획을 시도했고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오늘은 삼식이에게 대등하게 여기게끔 연출하라는 명령을 내려둔 상태라 사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 교수, 왔어.”

들고 있던 전갈 꼬치를 떨어트리며 눈동자를 빛내는 트레이시. 특성이 발동한 모양.

“뭐래?”

“뒤로 돌아가서 잡아 보래. 이쪽이야, 따라와.”

몸을 낮춘 채 언덕을 끼고 돌아 해골마법사의 뒤로 접근. 충분히 거리가 좁혀지자 트레이시가 나를 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순간 움직임이 가장 빠른 이고강을 불러내 저걸 사로잡으라고 하자 즉시 해골마법사의 배후에서 코브라트위스트를 걸어버린다.

“…그냥 처음부터 쟤 보냈으면 됐을지도.”

트레이시의 중얼거림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에서 보는 건 처음인데, 저 녀석 엄청 빠르네.

삐걱대며 이고강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꾸물대는 스켈레톤 메이지가 불쌍해 보일 때쯤, 그대로 뒤로 쓰러지며 안광을 꺼트린다. 이후 연결되어 있던 뼈들이 힘을 잃은 듯이 흩어졌고. 발로 툭 건드리자 데굴 굴러가는 두개골.

“죽었나? 억, 왜?”

트레이시가 가까이 가려 하기에 급히 소매를 잡아 끌어내 뒤로 보냈다.

“연기다.”

내가 데드레드스컬의 진전을 이어서 그런지 원래 마나를 다루는 사람이면 볼 수 있는 건지는 몰라도, 저 두개골 안에 응축된 마나 덩어리가 느껴진다.

“죽은 척 적당히 하고 일어나라. 머리통 빠개버리기 전에.”

전갈을 굽던 프라이팬으로 두개골을 쿡 찌르자 다시 안광이 생겨나는 해골마법사.

달…각.

죽…여라.

“죽이긴 왜 죽여. 너. 네크로 학파 마법사냐?”

안광을 가늘게 좁힌 해골마법사가 좀 전보다 짙은 의지를 전해왔다.

-내 말이 들리는 걸 보면 후배겠군. 몇 기지?

후배는 염불.

“내 직속 스승님은 데드레드스컬이랑 매저드 님이다. 너는 스승이 누구냐.”

-믿을 수 없다! 감히. 네놈이 어떤 분의 제자라 자처하는진 알고 있는 게냐! …헉?

데드레드스컬의 마법, 스컬러가 부여된 일식이를 불러내자 급격히 말 수가 줄어든 스켈레톤 메이지.

“자, 이제 그쪽 스승이?”

-마하트마…, 님이시다.

“누구?”

-…원하는 게 뭐냐.

그렇지. 이제 대화가 되겠네.

“네크로 마탑의 위치.”

-흥, 마탑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니까, 원래 어딨었냐고.”

-아무것도 없는 그곳을 알려 하는 이유가 궁금하군.

“그럼 같이 가던가.”

-…좋다.

호기심. 내가 낭만에 달려드는 불나방이라면 마법사는 호기심에 영혼을 파는 작자들이다.

그렇게 이고강에게 약한 코브라트위스트가 걸린 채로 절그럭거리며 이동했고 만나는 언데드들은 모두 길을 비켜섰다.

-여기다.

노란 잔디 아래에 풍화된 돌판이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니 암만 돌아다녀도 못 찾지.

“아무것도 없어.”

트레이시의 시무룩한 반응에 개의치 않고 제안했다.

“지금 돌아갈래, 아니면 같이 갈래?”

“갈래!”

또 특성이 힘을 발휘했는지 즉답하는 트레이시.

“대신 앞으로 겪게 되는 모든 일은 비밀로 해.”

“알았어.”

“좋아, 그럼 연다.”

돌로 된 이 바닥은 마법진이다. 매저드의 강의를 강제로 들은 보람이 있다.

정확히 마법진의 중앙에 내가 서자 스켈레톤 메이지의 안광이 확장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쇠를 꺼내 허공에 박아넣었고.

쿠우웅—

바닥에서 커다란 진동이 울렸다.

-멍청한!

해골마법사는 이고강이 트위스트로 조여옴에도 상관하지 않고 모종의 마법을 발동했다.

“안개?”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가 넓게 펼쳐졌다.

-세상에 네크로 학파의 비밀을 떠벌릴 셈이냐!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뭐 이건 나중에 묻기로 하고.

평평한 지형이었던 곳이 아래로 꺼지며 나선형 계단이 된다.

-내려가지.

스켈레톤 메이지가 계단 아래로 내려갔으나, 나나 트레이시 모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는 왜 안 가?”

“너 하는 거 보려고.”

아무리 이런 상황을 기대했다고 해도 최소한의 안전은 검증한 뒤에 움직이는 게 상식.

게다가 여기는 마법사와 관련된 장소이지 않은가. 부패한 마법사의 던전을 몇 개 털어본 경험상 이런 데는 무조건 트랩이 있다.

트레이시 그웬은 옆의 돌 몇 개를 줍더니 계단을 향해 강하게 던졌다. 그러자 아이언니들, 파이어브레스, 그리스, 윈드 따위의 마법들이 발동된다.

대부분 중앙의 텅 빈 곳으로 미는 데 치중된 마법들.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보는 트레이시.

쯧쯧.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더니.

나는 녀석에게 빌린 인디아나 줄리아 모험 세트에서 손전등을 꺼내 켰다.

그러자 함정이 설치된 계단이 붉은색으로 변했고 나는 입을 크게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는 트레이시를 뒤에 두고 계단을 내려왔다.

“치사하게! 내놔! 내 꺼잖아.”

누가 누구보고 치사하다는 건지. 나는 트레이시에게 손전등을 넘기고 벽에 기대고 있는 해골 마법사에게 물었다.

“우릴 죽일 셈이었나?”

-이 정도도 간파하지 못하는 마법사는 ‘하층’에 입장할 자격이 없다.

“하층?”

쿠구궁!

내가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방금까지 우리가 밟고 있었던, 약 1층에 해당하는 계단이 접혀 천장으로 변했다. 정확히 스켈레톤 메이지가 기대어 있는 계단 뒤쪽까지였다.

지금 막 내 옆으로 온 트레이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바라본다.

흔들리는 동공. 17살 소녀. 한창 이런 게 무서울 나이긴 하다.

“어떡해.”

“왜.”

“너무 재밌어!”

그래, 이런 녀석이었지. 잠시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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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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