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네크로 마탑 (2)
인디아나 줄리아 손전등의 맹활약 덕에 함정이란 함정은 모조리 간파하고 안전하게 계단 내려오자 해골 마법사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호통을 쳐댔다.
-그런 물건은 대체 누가 만든 거냐!
이쯤 되니, 나도 궁금해서 세트 박스를 살펴봤으나 그저 중앙마도협회 인증 마크만 있고 제작자의 이름은 없었다.
“그런데 이건 뭐에 쓰는 거야?”
세트 박스에서 채찍과 돋보기를 꺼내는 트레이시 그웬.
“영화 안 봤어?”
“몰라.”
하기야, 20세기 영화라 애들이 접하긴 쉽지 않겠어. 나도 멸망 후에 벙커 뒤지다가 우연히 본 거니까.
그래도 이렇게 한정판이 주기적으로 발매되는 거로 봐서, 마니아층은 꾸준히 존재한다는 거겠지.
트레이시가 채찍은 마음에 안 드는지 슬그머니 옆으로 밀기에 내가 집어 들었다.
‘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손에 착 감기는 게,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물건 같은 느낌이다.
스켈레톤 메이지 바로 옆 바닥을 향해 휘두르자 정확하게 내가 노린 곳을 할퀸다.
“괜찮네.”
주춤 뒤로 물러난 해골 마법사가 흔들리는 안광으로 이쪽을 노려본다.
찰싹!
-윽.
찰찰싹!
-그, 그만!
“앞장서.”
-…너의 거짓말이 진실이라 해도 자격이 없으면 절대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고강을 매단 채 어기적대며 앞서 걷는 해골 마법사.
툴툴대긴 해도 말은 잘 듣는 게 꼭 일식이 같네.
얼마간 이동하자 들어왔을 때처럼 마법진이 새겨진 평평한 석제 바닥이 나왔고 스켈레톤 메이지가 무어라 하려기에, 그냥 여기다 싶은 곳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그그긍!
12시 방향의 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통로를 드러냈다.
-뭣?
“트레이시, 손전등.”
“으, 으응.”
만화처럼 기괴하게 턱이 빠진 해골을 힐끔거리며 내 옆으로 온 트레이시가 손전등을 통로 안쪽으로 비췄다.
아무런 색이 없다. 안전하다는 뜻이었기에 그대로 진입. 통로를 지나자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도시?”
드넓은 공동. 천장에는 태양을 대신하는 마나로 이루어진 광구가 다수 존재했고 그 아래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여기가 높은 곳인지라 내려다봤을 때 도시는 세 구역으로 나뉜 것처럼 보인다. 상가, 주택가. 마지막은….
“남 교수, 저 사람!”
중앙 가도를 따라 이쪽으로 오는 행렬의 선두를 가리키는 트레이시.
사진을 찍고 확대해서 보자 우리에게 전갈을 나눠줬던 그 카라반 상인이었다.
트레이시가 급하게 언덕을 내려가 상인을 부르자 그는 우리를 발견하고 매우 놀란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말로 무어라 하더니 껄껄 웃으며.
잘그랑.
동전 몇 개가 든 돈주머니를 내게 건넨다.
“이걸 왜?”
“사막에선 호의를. 하층에선 투자를. 우리 가문의 가훈일세. 부디 네크로 마탑이 성공적으로 복원되길!”
낙타의 등에 달아둔 커다란 깃발을 팡팡 때리고 이 문양을 꼭 기억해달라며 떠나는 상인.
깃발에 쓰인 문양은 IK. 어디 본 거 같은데….
아.
퀸에게 물자를 우주로 수송하자고 제안했던 기업이다. 실제로 엄청난 물량을 기부했고.
저런 곳이 잘돼야지.
‘리쳇.’
츠즉.
-신호, 불.
지하라 그런가 신호가 안 좋은 듯하다. 즉각적인 소통은 어려운 듯해 사막에서 활동하는 IK 카라반을 후원하고 키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카피.
리쳇과 소통하느라 잠시 방심한 탓일까. 이고강의 사념이 뒤늦게 내게 들어왔다.
-마법, 이놈 마법 써요. 마법 쓴다고!
황급히 채찍을 휘둘러 저 뒤에 있는 해골 마법사를 공격했으나.
-늦었다. 얼간이들아. 그 열쇠가 뭔진 몰라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게 이곳의 순리다! 내 삶 일주일을 헌신해 이 탑의 규칙을 영혼에 새겨주마! 으하하!
나와 트레이시의 발아래로 생성되는 검은빛의 마법진. 빌어먹을, 하급 전송 마법이다.
섣부르게 움직이면 신체가 절단되기에 트레이시에게 꼼짝하지 말라고 하려 했는데.
“흡!”
녀석은 숨까지 멈춘 채 파라오처럼 팔을 교차해 사지를 몸에 딱 붙인다.
하여튼 쟤는 어디 사막에 던져놔도 살아 나올 녀석이다.
나는 이고강에게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린 뒤 트레이시와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곧 검은빛이 우리를 감싸고 사라졌을 땐.
“웨엑, 무슨 냄새야! 으.”
고물과 쓰레기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 있었다. 저 멀리 우리가 들어온 입구가 보이는 거로 봐선 작정하고 돌아가면 갈 수는 있겠는데….
달그락, 달각, 덜거걱.
저것들이 문제다. 산을 타고 기어 올라오는 것들. 덩치도 안광도 움직임도 제각각인 해골.
나는 채찍으로 가장 가까이 온 녀석의 목을 휘감아 근처 삐죽이 솟은 고철에 걸고 당겨 교수형에 당한 것 같은 모습을 만들었다.
그러자 경주하듯 달려들던 녀석들이 멈춘다.
아하, 지성이 있네?
이미 죽은 몸이다. 교수형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저건 생전의 공포가 아직 남아 있다는 뜻.
“이름.”
덜걱?
두개골을 기울이는 교수형 해골. 곧장 목을 몸에서 떼어내 고물 저편으로 날려버렸다.
“다음, 너. 이름.”
-아, 아이바르 온셰.
“왜 왔지?”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두 번 안 물어. 저놈처럼 얼마나 날아야 천장에 닿는지 실험해보고 싶나?”
-아, 아니요. 돈이 필요해서요.
내 허리춤에 상인이 준 주머니를 힐끔거리는 체구가 작은 해골.
“언데드가 돈이 왜 필요해?”
-마법을 배우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까요.
마법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소리 같은데.
“마법을 배운 적이 있나?”
-저는 못 배웠고. 저 아저씨는 하나….
-이 새끼가!
납작 엎드려 있던 거구의 해골이 벌떡 일어나 꼬마 해골의 두개골을 걷어찬다.
-아악, 죄송해요!
-다 지껄여 놓고 죄송은 시X. 내가 하나 배웠수다. 용건이 뭐요.
내 채찍과 돈주머니, 그리고 목을 번갈아 보는 안광.
이놈. 사람 죽여본 새끼네.
“해 봐.”
-뭐를?
“하고 싶은 거.”
놈은 주변을 슥 훑더니 몇몇에게 고개를 까닥인다. 그러자 어느새 나를 포위한 해골들이 몸체를 일으킨다.
-후회하지 마라. 애송아. 그깟 채찍 따—
철썩.
사념으로만 전해도 될 것을 주둥이를 움직이기에 보기 싫어 채찍으로 후려치자 맞은 부위를 만지며 뚜둑, 소리를 내는 해골.
-이 시X놈 죽여버려!
혼자 처리하기엔 수가 많다.
“두식아, 다른 애들 좀 맡아라.”
덜걱.
쿵!
고물산의 일부를 무너트리며 등장한 두식은 유황 연기를 뿜어내며 블랙팽을 불렀고.
내 앞의 해골 외에는 전부 뼛조각 하나 남지 않고 두식이에게 먹혔다.
-이, 이럴 수는.
“마법 써 봐.”
-그러면 살려주는 거요?
“보고.”
화륵.
놈은 블랙 파이어라는 검은 불꽃을 검지 끝에 피워냈고 의기양양하게 지껄였다.
-아무나 못 하는 거요. 나니까 이 정도 크기로 만들었지.
“공식은?”
-…그건 돈을 받아야겠소만.
이 새끼 봐라?
“두식아, 그냥 먹어라.”
-말, 말하겠소! 신장 부근의 음차원 마나 3Mg을 손가락 끝에 모으고 대기 중의 불의 원소를 부싯돌처럼 튕기면 되오.
Mg는 마나그램으로 비교적 최근 공식화된 측정 단위다. 내 기준으로 1Mg은 십 분 정도 명상하면 얻을 수 있는 마나량.
곧장 실행하자 녀석과 동일한 크기와 화력의 블랙 파이어가 생성됐다.
-무…영창?
이거 하는데 무슨 영창을 해.
“너도 무영창이었잖나.”
-나는 3년간 필사적으로 연습했다!
버럭하는 놈의 두개골을 채찍의 손잡이로 내려찍자 쩌적하고 균열이 생겼다.
-잠, 잠깐만. 살려준다고 했잖아!
“언제?”
내 손짓에 두식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먹어 치운다.
‘응?’
평소와 달리 녀석의 행동이 급해 보여 연유를 물으니 자기가 영역으로 삼은 유황 지대에 침입자가 있어서 그랬단다.
“고생했다, 가봐. 문제 생기면 도움 요청하고. 컨테이너에 할 일 없는 녀석들 많은 거 알지?”
덜걱.
말씀만이라도 감사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는 두식이. 녀석은 이건 자기의 힘으로 해내고 싶다며 내 도움은 고사하겠단다.
짜식, 다 컸구만.
두식이가 떠나자 지속적으로 삐그덕대던 고철 산이 침묵에 잠긴다. 인근의 모든 언데드가 멈추면서 생긴 정적.
“내 목소리가 들리는 언데드는 전부 집합.”
옆에서 눈치만 보던 트레이시가 어디서 찾았는지 좌우로 넓은 소파를 가져와 내 앞에 두고 씩 웃으며 뒷짐을 지고 선다.
소파에 앉아 5분 정도 기다리자 19명의 해골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이바르 온셰. 앞으로.”
-예, 옙!
녀석의 두개골 위에 손바닥을 올리자 목을 움츠리는 녀석.
“이놈은 내 돈을 훔치려 했다. 그리고 실패했지. 이 경우 이곳의 규칙은 어떻게 되나? 너. 말해봐.”
깨진 안경을 쓴 학자풍의 해골이 손을 들기에 지목하니.
-개인이 보상할 수 없을 경우 열흘 노역으로 벌어들일 수익을 제공합니다.
“어떤 노역이지?”
해골은 손가락을 아래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쓰레기 산 수색입니다. 가끔 쓸만한 물건이나 광석이 나오고 이걸 고물상이 삽니다.
흠….
“너희는 전부 내게서 돈을 훔치려 했다. 맞나?”
-저는 아닙—
아니라는 놈은 목이 분해되어 다른 산 너머로 날아갔다.
“또 있나?”
안경을 쓴 해골을 보며 묻자 녀석은 고개를 숙인다. 그러자 주변의 해골들도 전원 같은 행동을 취한다.
‘저놈이 대장인가.’
어떤 곳이든 집단은 존재한다. 지성체인 이상 소속을 원하는 건 본능. 그러면 자연스레 집단을 대표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열흘 간 노역 대신 나를 위해 일해라. 불만 있는 놈?”
-없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수용하는 안경 해골. 나는 녀석에게 아이바를 보내며 물었다.
“마법을 배우려는 이유는?”
-중층으로 가기 위해섭니다. 그곳은 이곳보다 풍족합니다. 적어도 이런…,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일은 없지요.
마치 중층을 가본 듯한 말투다. 내가 이에 관해 묻기 전에 녀석이 입을 열었다.
-저는 중층 마법사였습니다. 죄를 짓고 모든 마나를 추출 당한 뒤 하층으로 추방되었지요.
“그럼 여러 마법을 알겠군.”
고개를 젓는 안경 해골.
-사후 맹약에 걸려있어 그에 관한 질문은 답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이곳 정세에 관해서 이야기 좀 해 봐.”
-…마법에 관해 더 묻지 않습니까?
“마법은 필요 없다. 원하면 언제든 가르쳐 줄 스승님도 계시고.”
-알겠습니다.
아주 잠깐 안광이 일렁였던 안경 해골은 이어지는 내 질문들에 정성껏 답했다.
정리하면 이곳은 네크로 학파가 공격당할 당시 수련 마법사였거나 우연히 흘러들어온 이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유일하게 외부와 교류하는 층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중층과 상층의 마법사들은 하층으로 오는 경우는 없나?”
-야간 경계를 위해 출입할 때 말고는 없지요.
밤에 언데드가 나타나는 건 차후 비밀리에 네크로 마탑을 복원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를 수십 년간 반복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불모지라는 인식을 새길 셈이었던 것.
-중층 마법사는 경계근무 외에는 외출이 허락되지 않아 서로 본인이 서기 위해 경쟁을 하곤 합니다. 저도 그러했지요.
경계를 서려는 이유는 가지각색인데, 대부분 수련을 위해서란다.
탑 내에서의 수련 시설은 한계가 있지만. 바깥은 그냥 맘껏 쏟아낼 수 있다나.
“그런데, 너. 중층 마법사 맞냐?”
이야기를 들어보니 중층 마법사가 대충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이 녀석은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름 : 샤아 나탈리아】
【종 : 인간】
【힘 : 10】
【지 : 75】
【마 : 0(130)】
【잠 : —】
【특성 : 마나세이브(S), 잠재력돌파(B), 봉인(EX)】
【설명 : 사후맹약에 의해 스테이터스와 특성이 영구 봉인됨, 최근 잠재력 돌파를 재각성함, 마나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 하층 슬럼가의 리더.】
언포스에 의해 드러난 그의 스테이터스는 굉장히 놀라웠다.
무엇보다, 잠재력 돌파란다. 말 같지도 않은 특성이 내 눈에 박혔다.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