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하층
샤아 나탈리아.
네크로 학파의 몰락 이전, 차기 탑주로 거론되던 인물이자 천재라 불렸던 마법사.
생전에 써낸 ‘마법사의 체내 최소 마나량에 관해’라는 논문은 학회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종래에 마나그램이라는 기준을 정립하게 된다.
본래 학회에서는 마나샤아라는 단위를 붙이려 했으나, 당사자가 한사코 거절하여 보편적인 그램을 붙이게 되었다.
이후, 데드레드스컬이 죽고 네크로 마탑이 무너지자 그녀를 시기하던 이들이 탑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샤아 나탈리아는 이런 순간을 대비해 언데드 부활 주문을 자기 자신에게 걸어놨었고 시체가 버려지는 하층 쓰레기장에서 눈을 떴다.
사후맹약에 의해 많은 것이 제한되었지만, 생전의 연구를 이어서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지냈다.
그분을 닮은 저 남자가 오기 전까진 말이다.
“샤아 나탈리아. 나랑 계약하자.”
없어진 지 수십 년이 넘은 심장이 두근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샤아 나탈리아는 남만혁의 제안에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왜?”
달각.
샤아 나탈리아가 자신은 어떤 계약도 불가능하다는 사념을 남만혁에게 보내자 그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사기캐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는데. 스승님께 물어볼까.”
남면혁은 누가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하더니 제 가슴께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스승님, 보고 계신 거 압니다.”
츠즉.
남만혁은 안토니오 골드우드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모종의 마법을 걸었을 거라 확신했고 예상이 맞았다.
-허허, 무슨 일이냐.
언제부터 걸려 있었는진 모르겠으나 매저드라면 자신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위기감은 들지 않는 남만혁이었다.
“사후맹약 말입니다. 이거 취소 못 시킵니까?”
-할 수 있지.
매저드의 답에 가장 놀란 것은 샤아 나탈리아였다. 먼저 그랜드위저드 매저드가 이 소년의 스승이라는 것에 한 번, 맹약이 해제가 가능하다는 말에 두 번. 마지막으로 자신이 사후맹약에 걸려 있다는 것을 간파한 이 소년에게 세 번.
“어떻게 합니까?”
-맹약을 건 자가 완벽히 소멸하면 되네.
소멸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매저드의 어휘에 남만혁이 되물었다.
“소멸이요?”
-사람의 혼이라는 것은 생존본능이 무엇보다 뛰어나서 소멸시키기가 몹시 어렵네. 하지만 자네의 경우 두식이에게 먹이면 해결되겠구먼.
“쉽네요?”
-그렇지.
“고맙습니다. 들어가세요.”
그렇게 스승과의 대화를 끝낸 남만혁은 샤아 나탈리아에게 물었다.
“너 이렇게 만든 놈, 어딨어?”
검은 눈동자로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말하는 남만혁의 말에는 묘한 힘이 실려 있었고 이를 과거에도 겪어봤던 샤아 나탈리아는 감정의 동요를 표출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했다.
“말하기 싫어? 소중한 사람이냐? 그럼 골치 아픈데.”
달각!
그 배은망덕한 놈들은 절대 소중하지 않다는 사념을 보내자 남면혁이 화색을 띤다.
“그래? 잘됐네. 어딨는데. 그놈들.”
지독한 현실에 포기했던 복수심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샤아 나탈리아가 그들의 이름과 위치, 생김새까지 상세하기 떠올려 남만혁에게 넘겼고 이를 확인한 그는 픽 웃더니 한마디 한다.
“전형적인 나쁜 놈들 관상이네. 걱정하지 마. 이런 거는 내 전문이니까. 너는 내게 상층으로 갈 수 있는 자격만 알려주면 돼.”
그들 전원이 상층에 개인 연구소를 둘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임을 알았음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남만혁의 모습에서 데드레드스컬을 떠올린 샤아 나탈리아는 자신이 어릴 적에 그분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너의 재능을 당당히 여겨라. 그건 죄가 아닌 선물이다.
-두려움이 마법사의 한계를 만든다. 늘 도전하거라.
-샤아. 나는 나의 정답을 향해 걸을 뿐이다. 너는 너의 정답을 향해 나아가라.
무작정 그를 추종하고 따라 하던 시기에 들었던 조언들. 그걸 계기로 나 자신을 관조하게 되었고 Mg의 확립까지 이어졌다.
“중층 가는 조건이 마법 다섯 개?”
샤아 나탈리아가 생각에 잠긴 사이 주변의 해골들이 남만혁의 물음에 답했다.
다크파이어, 본스피어, 블리딩, 위크니스, 포이즌.
네크로 마법을 전공한 마법사에게는 너무 기초여서 데드레드스컬의 책에는 기록조차 되지 않은 마법들이었다.
이를 앉은 자리에서 샤아 나탈리아의 설명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남만혁의 모습에 19인의 해골은 황당함이 담긴 사념을 사방에 뿌려댔다.
그나마 빨리 정신을 차린 샤아 나탈리아는 조심스럽게 남만혁의 부족한 부분을 꼬집었다.
달가각, 달각.
“그렇지? 제대로 안 되네.”
다크파이어는 라이터 수준의 불은 곧잘 만들어내나 그 이상의 화력을 내고자 하면 연비가 무척 나빠졌다.
본 스피어는 포크 크기가 한계. 블리딩은 상대를 과다출혈로 무력화시키는 게 목적인데, 이 정도 속도면 출혈량보다 체내에서 생성되는 피가 더 많다.
신체 기능을 떨어트리는 저주, 위크니스는 아예 반대로 적용이 돼서 되려 활력이 돋았다.
“이게 그나마 낫네.”
포이즌.
보유 중인 독을 추출해 무기에 바르거나 설치하는 마법. 약한 위력과 복잡한 연산 과정 때문에 비주류로 밀려난 지 오래된 마법이다.
그런데도 중층 입장에 포이즌 마법이 필요한 이유는 초대 탑주가 이 다섯 개의 마법을 네크로 학파 기초 마법으로 선정했기 때문.
샤아 나탈리아가 포이즌 마법은 어린 마법사들의 연산 능력을 기르고자 많이들 가르치긴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남만혁은 종종 보일 때마다 잡아 뱀주를 담근 독뱀들에게서 독을 추출해 아무런 고물에다 인챈트했다.
그러자 샤아 나탈리아가 깜짝 놀랐는데, 그 이유는 저 정도 산성이면 녹아야 할 고물이 처음 형태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
이는 포이즌 마법을 오랫동안 연구한 마법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달각.
샤아 나탈리아가 어떻게 고물을 녹이지 않고 독을 부여했냐고 묻자, 남만혁은 잠시 고민하다 진중한 얼굴로 답했다.
“음, 마법도 일종의 구현이라 생각해서 그런 거 같다. 구현은 디테일이 중요하거든? 바른 독이 무기를 녹이면 내가 위험하니까 이 부분을 섬세하게 떠올렸지.”
구현계로 각성한 마법사가 네크로 학파에 없었던 것도 아니다. 허나, 그들은 저리할 수 없었다.
샤아 나탈리아는 자신이 마나 감응에 큰 재능이 있듯, 이 소년도 포이즌 마법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재능이 있다고? 타고난 독쟁이?”
독쟁이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맞다는 의미로 샤아 나탈리아가 끄덕이자 그는 헛웃음을 짓더니.
“그린들이나 하던 짓을 나보고 하라는 건데…. 좋아, 좋지. 그래.”
아주 작게 중얼거린 그 음성을 들은 사람은 샤아 나탈리아밖에 없었고 그녀는 자신이 아는 포이즌 마법을 그에게 가르칠 생각으로 가득해 흘려들었다.
“오, 진짜? 고맙다. 내가 너 네크로 학파 탑주 시켜줄 테니까, 나랑 계약하는 거다?”
갑자기 훅 들어온 제안에 머뭇거렸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인 샤아 나탈리아.
이제 마탑주 자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위크니스를 블레싱처럼 쓰고 마법을 구현의 연장이라 사고하는 이 마법사의 앞날이 매우 궁금할 뿐이었다.
“참, 연구 자금도 무한 지원해줄게. 뭐든 말만 해.”
달각!
연구 자금이라는 말에 방금보다 더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샤아 나탈리아였다.
* * *
“이게 되네.”
하층에서는 앞선 다섯 가지 마법만 가르치고 익혀야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규칙이 있었다.
해서 가능한 한 빨리 중층으로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중층 시험이 시작되는 시기는 매번 달라 알 수 없단다.
시간이 생긴 김에 이것저것 실험하다 꽤 흥미로운 조합을 발견했다.
독과 피의 조합.
이것까지는 네크로 학파에서도 흔히 있는 응용마법이다. 거기에 내 특유의 비틀린 저주를 부여하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좌로 굴러.”
데굴.
“우로 굴러.”
데굴데굴.
초보 소환 학파 마법사가 불러낸 슬라임이라는 괴물처럼 생긴 검붉은 덩어리가 내 말을 따라 움직인다.
온갖 마법을 접해본 매저드도 신기하다며 자세히 보여달라 하기에 아예 조합하는 방법을 알려줬으나 본인은 조합이 안 된단다.
-원인을 알았네. 저주가 핵심일세. 자네의 저주는 고위 사제의 축복과 유사한 방식으로 마나가 이동해.
사제가 음차원 마나를 보유하는 건 있을 수 없고, 네크로 학파의 마법사가 축복을 쓰는 건 더 황당무계한 소리다.
그러니 절대 나올 수 없는 조합인데….
“저는 위크니스를 썼을 뿐인데요.”
-저주에 재능이 없으면 그럴 수 있지. 보통 자네 같은 이가 축복 마법을 배우면 대성하네만, 타고나길 음차원 마나를 타고나서 뭐가 되었든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왔을 걸세.
“다른 저주도 배워볼까요?”
-으음, 그건 권장하고 싶지 않네. 이번에는 운이 좋아 반전 정도로 끝났지. 자네에게 돌아갈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어차피 크게 끌리지도 않는 분야였기에 저주 쪽은 아예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포블링이라 이름 붙인 슬라임을 숙련도도 높일 겸 일주일 정도 가지고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 * *
새벽. 고물산 한쪽에 차린 내 텐트로 샤아 나탈리아가 왔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달각.
-십 분 후 중층 시험이 시작됩니다.
“시험 장소는?”
내가 배 위에 올려둔 포블링을 급히 옆으로 밀어내며 일어나자 샤아 나탈리아가 그럴 것 없다는 사념을 보낸다.
-어떤 곳에서든 다섯 개의 마법을 발현하기만 하면 중층으로 통하는 포탈이 열리지요.
신기한 시스템이네.
“너도 갈 거지?”
-예.
나흘 전. 그녀는 마나 없이 마법을 쓰는 방법에 관해 매저드에게 자문했다. 힌트를 얻었는지 열심히 뭔가를 하더니 성과가 있었던 모양.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중층 시험 희망자는 움직이지 말고 대기할 것.
-15분 이내에 다섯 가지 마법을 사용할 것.
-포탈이 열리면 합격이니 즉시 입장할 것.
그러고 카운트 다운을 하더니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들렸다. 나와 샤아 나탈리아는 다섯 개의 마법을 발동했고 곧장 포탈이 열렸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달가각, 달각, 그극!
지켜보던 해골들이 샤아 나탈리아에게 감사함과 응원의 사념을 보냈다. 그녀는 그간 자신이 돌본 해골들이 인사를 하는 모습에 감격했는지 안광을 흐물대다 한마디 남기고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곧 보게 될 겁니다.
한을 품은 마법사의 맹세. 샤아 나탈리아의 목적을 생각하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곧 보게 될 거라고 한 건.
‘정상을 찍겠다는 거지.’
재능이 없어 다섯 개의 마법을 익히지 못하는 이들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부르겠다는 소리. 그걸 잡음 없이 해내려면 탑주라는 타이틀이 필요하고 말이다.
문득, 그녀의 스테이터스 창에 잠재력 돌파라는 특성에 다시 눈이 갔다.
【잠 : —】
【특성 : 잠재력 돌파(S)】
【설명 : ……, 뛰어난 마법사를 만나 연구가 크게 진전됐다. 최근 복수라는 동력을 다시 얻었다. 】
언데드, 무한 성장, 힘에 대한 갈망까지. 괴물이 탄생하기에 충분한 조건들이었다.
…나랑 계약하겠지?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