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층간 전쟁 (1)
빌런은 언제 습격받을지 모른다. 항상 의심하고 경계해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 빌어먹을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누가 봐도 뜬금없는 등장인 것은 물론이고 거북한 마나까지 느껴져 의심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동작 그만, 밑장빼기냐.”
내 말에 목걸이를 받아들려던 샤아가 멈칫한다. 밍크코트를 걸친 해골은 사과하느라 굽혔던 허리를 펴며 나를 내려다보고는.
“밑장빼기라는 게 무슨 뜻이지?”
“그 목걸이에 수작질 부려 놨지? 내가 언데드 눈깔로 보이냐 이 새꺄.”
“허.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모른 척은 시벌놈이. 가져와 봐. 이거, 이거. 정신계 마법 아니야? 샤아 나탈리아를 지배해서 연구 성과를 모조리 뱉어내게 하겠다. 이거잖아 지금!”
“어린 녀석이 말을 지어내는 데는 천부적이구나. 증거 있나? 이게 정신계 마법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냐는 말이다.”
“증거? 있지. 샤아, 분석해봐.”
마법을 해부할 때면 새파란 안광이 샤아의 두개골 안에 피어난다. 이를 본 마법사들이 기겁하며 중얼거리길.
“분석안? 저거 분석안이지?”
“천만 단위의 마법을 해석해야만 터득할 수 있다는 그……”
“조용!”
달각.
-결박, 매혹, 중독, 혼란, 웃음 유발 외 8개의 마법이 발동어에 묶여 있고 한 번 발동하면 사라지는 부여 마법입니다.
“발동어는?”
-멍청이 인형.
놈의 안광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저렇게 나이를 먹어도 동요는 하는구나.
“쯧, 너무 유능해도 문제군. 죽여. 사체에서 뽑아낸다.”
메모라이즈 해둔 마법을 발동했는지 즉시 대기가 검붉게 물들었고 화염구와 번개들이 쏟아져나왔다.
마법전 스페셜리스트를 두고 내가 나서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컨테이너에서 나비랑 놀고 있을 녀석을 불렀다.
“삼식아.”
돌곡!
나와 호흡을 여러 번 맞춰봐서인지 등장과 동시에 아홉 개의 매직 미사일을 뿌려 접근한 마법 둘을 요격. 이후 매직 미사일을 증식시켜 연구실 내부를 빼곡히 덮었고 이를 코앞에서 지켜본 마법사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건 무슨 마법이지?”
“변종 마법 같군.”
“이 세상의 마법은 아니야.”
“위력은 약해도 숫자가 문제다.”
“저는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자커 선배님.”
가장 뒤에서 나를 주시하던 해골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네던 해골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빛무리와 함께 사라졌다.
“저저, 못 배워먹은 놈!”
“됐네. 저놈도 하층으로 내려보내면 그만이야.”
“쯧쯧. 겁이 저렇게 많아서야.”
“자네들은 내가 매직 미사일을 막는 동안 저 두 놈을 처리하게.”
언데드까지 되어가며 마법을 추종한 이들답게 다양한 방식으로 대량의 매직 미사일을 무효화 하기 시작했다.
넓은 범위의 공격을 터트려 미사일들을 날려버리거나 검은 구체를 생성해 한 점으로 끌어모아 소멸시키는 마법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성이 안 좋네. 잘해봐야 시간 벌이 수준이겠어.’
매저드가 처음 변이된 매직 미사일을 보고 그랜드 위저드 상을 받기에는 어려운 마법이라 한 이유가 아마 지금과 같은 상황이 포함된 것일 터다.
단순한 마법인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마법사에게는 대처가 쉽다.
‘마나가 넉넉하지 않다. 이쯤에서 승부수를 던지자.’
“서몬 애시드 좀비.”
애시드 좀비 서른 마리를 불러일으키고 창가 쪽으로 물러섰다.
“응? 처음 보는 마법이군.”
“연구는 나중에. 일단 파훼해.”
“메인은 포이즌이로군. 다들 수속성이나 블러드 계열 주문을 외워라. 빅 워터 밤!”
“알고 있다. 디몰리셔 블러디 캐논!”
“스파이럴 블러디 스피어!”
“흥, 멍청한 놈들. 프로즌 노바!”
앞선 세 개의 마법은 독을 희석, 손실되는 정도로 끝났으나 마지막의 자커라는 놈이 쓴 빙결 주문이 치명적이었다.
마법사들을 향해 접근하던 좀비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랑 삼식이는 좀비들 뒤에 숨어 저 빙결 파동을 파하는 게 고작.
노괴는 노괴인가. 이대로는 답이 없다. 샤아를 데리고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쾅!
창문이 일시에 안쪽으로 깨지며 현대 무장을 갖춘 이들이 굴러들어왔다.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모종의 사인을 보내자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고 우리를 향해 날아들던 마법에 적중함과 동시에 둘 다 사라졌다.
마법사들이 놀라는 사이 두 사람이 나와 샤아를 붙잡고 창가로 뛰어내렸다.
“히드라. 야생마, 물주. 확보. 이탈한다.”
“이탈!”
이들의 신속한 움직임에 마법사들은 뒤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추락하는 와중 저들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흡마탄? 반란군이다!”
“놓치지 마라!”
“잠깐, 독이.”
“제기랄, 해독부터 해!”
한 방 먹이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어 무리해서 애시드 좀비를 작은 방에 한 마리 소환해 가까운 마법사를 덮치라고 해뒀다.
삭은 뼈 정도는 우습게 녹일 테니 꽤 고생할 거다.
대로에는 그들이 준비한 지프차가 두 대 준비되어 있었고 샤아와 나는 각각 다른 차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건물이 밀집된 지역을 벗어나 창밖으로 손을 뻗으면 검은 벽을 만질 수 있는 곳까지 와서야 차가 멈췄다.
“샤아 나탈리아.”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며칠 전에 봤던 골동품점 주인이었고, 그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고 치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예전도 지금도. 나는 가만히 있었어.
“…네 말이 맞다. 후, 아무튼 너희 덕에 결전의 날이 당겨졌다.”
나와 샤아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 골동품점 주인.
-결전의 날?
“무능한 부탑주들을 쳐내는 날이지. 원래 예정은 3년 뒤였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어떤 물주 덕에 일정을 당길 수 있었다.”
나를 보고 씩 웃는 배불뚝이.
“참, 이 친구랑 인사해. 너랑은 구면이라던데.”
운전석에 앉은 이가 마스크를 벗고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아, 그 용병?”
그는 입층 심사대에서 만났던 흑인 용병이었다.
“스미스라고 불러주시오. 물주.”
내게 악수를 건네는 스미스. 손을 맞잡고 팽개치듯 놓은 뒤 답했다.
“물주가 아니라 다크 넥서스다.”
“하하, 농담도. …진심이야?”
진지한 얼굴을 유지하자 진짜 이름이 그거냐고 되묻기에 무시하고 궁금했던 걸 물었다.
“샤아를 왜 내버려 뒀지?”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수염을 벅벅 긁으며 답하는 배불뚝이.
“하층은 안전하니까. 상층 마법사들은 하층으로 내려가는 행위 자체를 영락으로 여긴다. 그래서 제자들을 활용하지. 이 녀석도 그놈들 꼭두각시 중 하나였고.”
차 뒤쪽으로 와 트렁크를 열어 작은 관을 내게 보인다.
“이건?”
“너를 이곳에 데려온 마법사의 유골이다. 마하트마의 제자지. 아, 마하트마는 자커 옆의 이마에 푸른 보석이 박힌 해골이다. 봤나?”
“그. 잘난척하며 빅 워터 밤 쓰던 놈?”
“맞을 거다. 그놈은 자찬이 습관이니까.”
관을 열자 가장 위에 이고강의 잇자국이 남은 두개골이 반으로 쪼개진 채 들어 있었다.
“이놈은 왜 죽였지?”
“마하트마의 제자니까.”
배불뚝이는 샤아에게 시선을 두고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이 층을 오를 결심을 한순간. 죽은 목숨이었지.”
두개골이 저거 하나만 있는 게 아닌 거로 봐선 아주 사냥을 하고 다닌 듯하다.
“화끈하네.”
“이 친구 가문이 대대로 마법사 사냥꾼이라. 일이 편했어.”
“저야 받은 만큼 하는 겁니다. 밀린 월급이 들어왔으니 없는 힘이라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스미스가 유쾌하게 답하자 그의 말이 맞다며 동료들이 맞장구친다. 나는 그들의 웃음이 멎길 기다렸다 나섰다.
“샤아 나탈리아의 사후맹약을 해제하는 조건을 알고 있나?”
“물론이다. 맹약에 마나를 소모한 이들의 영원한 죽음. 이놈들이 죽은 이유 중 하나지.”
관을 주먹으로 쾅쾅 때리는 배불뚝이. 그는 대뜸 헛기침을 하고는 샤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가게에서는 미안했다. 거긴 지켜보는 눈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어.”
둘의 대화가 짧게 이어졌고 배불뚝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앞으로의 계획을 읊었다.
“우리는 중층을 점령할 거다.”
중층이라고 해봐야 마법사들이 사는 연구단지와 하층의 절반 수준의 상가가 전부다.
“여길 점령해서 뭘 하겠다는 거지.”
“부탑주라 자칭하는 다섯 장로의 부패를 알리고 실각시킨다.”
“여기가 민주주의로 돌아가는 거 같진 않은데. 다수의 지지를 받는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나?”
“생긴다. 우리는 마법사니까. 지금 저 연구동에 들어앉아 연구하는 이들이 전부 평화적인 마법을 연구하는 줄 아는 건 아니겠지?”
“음.”
“중층에 신분증을 보유한 마법사는 약 800명. 그들의 연구가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진행된다면, 상층 마법사는 아무것도 아니다.”
주먹을 불끈 쥔 배불뚝이가 한심한 이상론을 늘어놓고 있어 무어라 하려다 삼켰다.
‘내 일도 아니고.’
내 목적은 모험. 상층,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를 최상층에 도달하는 것.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이 열쇠의 비밀을 밝힐 수 있으면 더 좋고.
달각.
-안색이 안 좋으시군요. 잠시 쉬지요.
다만, 지금까지 봐온 어떤 해골보다 특별한 스테이터스를 가진 샤아가 탐이 나는 게 문제다.
잠재력 돌파라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 마탑의 정점에 앉아 계속 발전해나간다면….
앞으로 수십 년 뒤에 침공해올 그블린 전에 유의미한 세력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샤아를 살필수록 가정은 확신이 되었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나도 도울게.”
“아니, 돈은 이제 충분하다. 어린 친구는 구경이나 해.”
“그거 가지고 충분할 리 있나. 용병 한 무리 고용하는 게 전부일 텐데.”
“70억을 그거라니. 대단하구먼.”
70억? 뭔 개소리야.
나는 슬쩍 리쳇에게 보냈던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
끝에 0이 하나 더 달려 있었다. 이 정도면 리쳇이 불려둔 재산의 절반이 날라간 수준이다.
투자해둔 걸 빼진 않아서 핵심 시드머니가 소모된 건 아니지만, 70억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 속이 너무 쓰리다.
“……그거로 만족한다면 어쩔 수 없군. 이만한 돈을 냈으니 감독할 권리 정도는 있겠지?”
“호, 이러려고 처음부터 제시 금액의 10배를 낸 거였구먼? 외견에 비해 영악해. …좋다, 허락하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이 정당한 반란의 끝을 내 옆에서 확인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나는 어떻게든 70억 만큼의 뽕을 뽑기 위해 적극적으로 반란군 행사에 가담했다.
* * *
남만혁이 다크 넥서스라는 이름으로 중층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지 열흘째 되던 밤. 네크로 마탑 역사에 길이 남을 대사건이 터졌다.
“부패한 부탑주의 머리통을 장대 끝에 매달자!”
해킹당한 방송 매체에서 반란군의 방송을 송출한 것과 더불어 부패한 마법사로 언급된 이들이 하나같이 전시대를 풍미했던 거물들이었던 것.
“우리 샤아 결사대는 중층 마법사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저 거머리 같은 상층 마법사들에게 선전포고한다!”
이때 결집한 중급 마법사의 수는 반란군을 제외하고 30인이었고. 그다음 날 배로 늘었으면 일주일이 되었을 때. 수백을 헤아렸다.
처음에는 무지한 녀석들의 투정 정도로 여겼던 상층 마법사들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자 대책 회의를 열었고. 종래에는 다섯 부탑주의 주도하에 작전명, 대청소가 수립되었다.
후에 층간 전쟁이라 불리는 탑의 패권을 둔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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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