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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56화 (56/201)

<56화>

맹약의 끝

체내 마나가 돌아온 샤아는 자력으로 자신에게 사후맹약을 건 이들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지휘 막사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마법사들이 노심초사한 얼굴로 내 입을 바라봤고, 나는 협상 결과를 답을 입에 담았다.

“전쟁은 끝났다.”

“저희의 목적은 전쟁 종결이 아닙니다!”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상급 마법사들의 탑 내 자원 독점과 외출 억제 그리고 폭력 때문이었다.

내가 협상 자리에서 이것들을 언급조차 하지 않은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다.

“걱정하지 마라. 곧 해결될 테니.”

사야를 보며 그리 말하자 다른 이들도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인지했는지 불만 어린 표정을 지을지언정 대놓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하나, 찾았습니다.

“가자.”

지휘실을 나선 샤아는 옥상으로 올라가 누구나 볼 수 있게 세워둔 쇠 장대 앞에 섰다.

돌곡.

“별일 없었지?”

-옙.

밤새 자커를 감시한 이고강과 삼식이를 돌려보내고 샤아에게 눈짓했다.

“둘 다? 아니면 저놈만?”

-…확인해보겠습니다.

-네놈을 저주한다…, 다크 넥서스. 이 몸이 사라져도 망령이 되어 네놈을 저주할 것이다!

놈의 헛소리에 귀를 기울일 생각은 없었기에 무시하자 더욱 발악하며 주문을 외운다.

“어이쿠.”

나는 장대를 뽑아 걷어찼고 두개골이 바닥을 거칠게 구른다. 주문이 캔슬된 건 물론이고 금가는 소리까지 들렸다.

밤사이에 많이 시달렸는지 두개골 여기저기에 마법에 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자커.

샤아가 비난하자 자커에게서 무언가 사념이 전해져오는 듯했으나 너무도 희미하여 알아들을 수 없었다.

“두식아, 먹어라.”

샤아가 말하길 상급 마법사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영혼을 소멸시키는 주문, 소울 브레이크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두식이를 봐라. 저렇게 두개골을 깨부숴 흡수하는 것만으로 혼을 파괴해버린다.

“우리 두식이 잘했다. 어?”

덜걱, 거걱.

이번에도 감사의 춤을 추는가 싶었으나 어째 행동이 좀 부자연스럽다.

“괜찮냐?”

발작을 일으킨 사람처럼 전신을 벌벌 떨더니 어느 순간 뼈가 시꺼멓게 물들기 시작한다.

-이럴 수가….

샤아는 뭔가 짐작이 가는 게 있는지 매우 놀라며 두식이 주변으로 실드를 친다.

-진화입니다. 중요한 순간이니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겠습니다.

옥상으로 올라오는 문을 잠그고 주문으로 돌벽을 일으켜 막는다.

“해골도 진화를 해?”

-오래된 서적에서 언데드가 진화할 때 저런 형태의 마나를 뿌린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먹는다는 행위는 음식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두식이에게 있어 영혼도 일종의 음식이라면, 자커 정도 되는 마법사가 가진 에너지의 양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날 것이다.

경련이 서서히 멎더니 까만 두개골 안으로 녹주석 같은 안광을 피워 올린다.

그리고 대뜸 양쪽으로 팔을 들어 올리더니,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게 아닌가.

“고맙다고? 오냐. 알았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 봐.”

움직이면 언포스도 같이 움직여서 어지럽다.

【이름 : 두식】

【종 : 오크 해골 장군 -> 오크 해골 대장군】

【힘 : 20->43】

【지 : 13->32】

【마 : 18->51】

【잠 : 197->211】

【특성 : 용맹(A), 사기진작(B), 악식(C), 빙술(F)】

【설명 : 계약자를 잘 만난 행운의 오크 족장, 계약자의 터전을 일궈 뿌듯함, 블랙 팽을 하사받아 영광으로 여기는 중, 유황 지대의 경쟁자를 처치해 기쁨, 최근 영지에 침입한 적 : 리자드 메이지 무리에 의해 일부 땅을 뺏김, 방금 육체가 강해지고 새로운 특성을 익혀 황홀함.】

두식이는 말 안 해도 늘 잘해줬기에 그동안은 딱히 언포스로 스테이터스를 확인할 일이 없었다.

“이야.”

종족이 대장군으로 승격한 것과 더불어 스텟의 상승량이, 오랜만에 연 걸 감안해도 엄청나다. 게다가 소폭이기는 해도 잠재력까지 올랐고.

‘저거 때문인가?’

악식이라는 특성에 주의를 집중하다 새로운 창이 하나 팝업된다.

【악식 : 섭취한 물질의 에너지 일부를 체내로 흡수, 종종 한계를 돌파한다.】

【설명 : 두식의 생전 특성. 풍족하지 못한 환경에서는 무엇이든 먹어야 했다. 그것이 비록 썩은 동물의 뼈와 살점이라 할지라도.】

오크 족장으로 살 때 상당히 고생했나 보다. …초기에 언데드라 음식을 안 줬는데 그거 때문에 이 스킬을 다시 각성한 건가.

살짝 죄책감이 드는 걸 애써 외면하고 새롭게 익힌 또 하나의 특성을 눈에 담았다.

【빙술 : 얼음을 다루는 주술.】

【설명 : 네크로 학파 상급 마법사, 자커의 혼을 섭취해 습득했다. 오크 문명에 맞게 개량되었다. 마력과 숙련도, 상상력에 따라 범위, 거리, 강도가 증가한다.】

“빙술 좀 써볼래?”

덜걱, 덜걱…, 덜걱!

이번에도 춤을 추는데, 기쁠 때와는 아주 미세하게 다른 동작이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어느 순간 두식이는 옥상 구석을 중지로 가리켰고 거기에 좁은 빙판이 생겼다. 슬쩍 끝을 밟아보니 곧장 부서진다. 별로 미끄럽지도 않다.

“끝?”

덜걱.

이게 다란다.

솔직히 이대로면 실전에는 못 쓴다. 뭐, 그래도 영향을 받는 능력들이 많으니 나중에 엄청난 넓이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면, 좀 달라지겠지.

두식이는 나의 실망한 기색을 읽고는 안절부절못하다 손뼉을 치며 대뜸 블랙 팽을 불러냈다.

“오?”

원래 까무잡잡한 애들이었는데 두식이의 영향을 받아 완전히 검은 뼈로 변해 있었다. 안광도 녹색이고.

언포스로 확인해보니 개개인의 스텟이 10~20% 정도 올랐고 공통으로 ‘낙수효과(F)’라는 특성이 생겨 있었다.

효과는 두식이가 악식을 통해 흡수하고 남은 에너지를 얘들이 나눠서 가져간단다.

“너희들, 두식이 말 잘 듣고 있지?”

갈각, 들극, 기기긱.

희미한 사념들이 날아온다. 전부 긍정적인 거로 봐서 두식이가 험하게 굴리지는 않나 보다.

“더 강해져라, 그래야 리저드 메이지 놈들 내쫓지.”

하나같이 두개골을 끄덕이는 녀석들.

-대화 나누시는 중에 죄송합니다만, 한 명 또 찾았습니다.

샤아가 춤추는 두식과 블랙 팽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내게 말한다.

“그래? 누군데.”

하얀 손가락을 들어 방금까지 자커의 두개골이 있었던 곳을 가리키는 샤아. 내가 고개를 기울이자 살짝 옆으로 손을 옮긴다.

“그럼 그렇지. 그럴 것 같더라.”

부노의 두개골을 집어 들자 녀석이 간절한 목소리로 외친다.

-살려주십시오. 뭐든 하겠습니다. 뭐든, 제발….

“네가 마법사로서 샤아보다 잘난 점 한 가지만 대봐. 그럼 살려주고.”

-…….

“잘 가라.”

-으아, 아, 안돼!

오돌뼈 씹어먹듯 맛있게 부노의 두개골을 흡수한 두식이가 또 한 번의 춤사위를 선보이는 동안, 샤아는 보다 강력해진 마력으로 사후맹약에 가담한 사람을 찾아냈다.

그는 오드스컬 빌딩에 머물고 있었고, 나와 샤아가 놈의 연구실 문을 뜯고 들어서자 그는 책과 실험병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겠는가.”

골든팁을 바라고 상층에서 내려온 최초의 마법사였다.

이거, 샤아가 중층에 나타나고 급하게 움직인 놈들이 범인이네.

“10분 이상은 어려운데.”

사람 하나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 정도거든. 다음 사람 찾기 전에 처리해야 시간 낭비가 없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결과만 기다리면 되니.”

5분여가 흐르자 그는 실험병 안에서 색이 변하는 액체를 한참 들여다보다 껄껄 웃고는.

“되었다.”

스스로 주문을 읊어 삶을 마감한다.

너무 쉽게 죽어주는 게 영 찜찜하긴 한데, 일단 혼의 소멸을 위해 그의 사체를 두식이에게 먹였다.

-잠시만요.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색이 달라진 액체가 든 실험병을 내게 건네는 샤아.

“뭔데.”

-언데드의 색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액체입니다. 데드레드스컬 님을 추종하던 분이셨던 거 같습니다. 스컬러를 흉내 내려던 거 같은데….

살았을 때면 몰라도 이미 죽은 이에게는 관심 없다.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자 샤아는 액체를 그가 스스로 무너졌던 자리에 뿌리고는 조심스럽게 예를 갖추며 연구자료를 챙겼다.

“다음은?”

-잠시만요, 아….

“왜, 시간 더 필요해?”

-아닙니다. 반란군 숙소로 가시지요.

* * *

샤아가 지목한 사내는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안색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확실해?”

-예.

반란군 리더이자 친구가 사후맹약에 참여했다는 건가.

“괜찮냐?”

-…아니요.

그를 호위하는 두 마법사는 영문도 모른 채 나와 샤아를 마법봉으로 겨눈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마십시오!”

히드라가 사후맹약에 참여했다는 것보다 놀라운 건.

“네놈들 눈깔은 옹이구멍이냐. 저놈 죽었잖아.”

“헛소리!”

“헛소리는 팍 씨. 가만히 있을 테니까 가서 확인해봐.”

“움직이지 마십시오!”

한 명이 슬금슬금 움직여 히드라의 코 밑에 손을 대더니 실시간으로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 옆 목과 손목을 잡아보곤. 사색이 되어 동료에게 고개를 저었다.

“죽었지?”

“…당신 짓입니까?”

“말이 되냐. 나 여기 처음 온다.”

“으으, 으.”

“나와.”

호위 마법사들은 언행에 비해 히드라에게 충성심이 대단하진 않았는지 두식이가 히드라를 먹는 모습을 보고도 놀라기만 할 뿐 공격하진 않았다.

“응?”

흐트러진 베게 아래로 편지가 보여 꺼내니 가장 윗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편지를 보고 있다면 나는 이미 죽은 뒤겠지. 샤아. 나는 너를 증오함과 동시에 사랑했다. 증오하여 사후맹약에 가담했고 사랑하여 너를 도왔다.]

개소리를 장황하게도 써 놨다. 헤어진 여친에게 꼬장 부렸다가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 사과하는 모양새.

그 나름대로는 큰 결심이자 희생이었겠으나 하층에서 썩어가던 샤아 입장에서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

봉인이 해제되어 전신에 푸른 빛이 머무는 광경은 몹시 신비로웠으나 사념으로 전해져오는 복잡한 감정들은 어지간하면 눈치를 살피지 않는 나조차도 그녀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멍때리며 샤아를 구경하는 호위 마법사 둘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샤아가 감정을 추스르고 내 앞에 선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 * *

-일어나셔야 합니다.

“으음, 음. 샤아?”

-네크로 마탑 중층 연합이 항의하고 있습니다.

“무슨 연합?”

-중층 연합은 금일 새벽에 발족됐고 그들의 요구는 하나입니다. 상층 포탈을 생성하는 기관을 수리할 것.

나는 그 말을 듣고 옷을 대충 챙겨 입은 뒤 방문을 열었다.

“다크 보이!”

“어우 씨, 놀래라. 미치광이 벨벳. 여기까진 웬일이야.”

덥수룩한 수염을 들이밀며 눈을 부릅뜨는 벨벳.

“너, 이대로 나가면 죽는다.”

“뭔 소리야.”

“그웨일이 기관 수리해준다는 거, 네가 거절했다며?”

“그웨일이 누군데.”

“협상장에 왔던 상층 마법사! 그웨일이 너랑 협상하는 영상 뿌리고 갔단 말이다!”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철저하네. 그걸 녹화해?

“상층 시험이 언제지?”

“갑자기 시험은 왜. 최대 2주니까 조만간 열리겠지.”

“일단 다들 시험에 집중하라고 해. 상층 포탈은 내가 열 테니까.”

“네가? 무슨 수로.”

“그건 알 거 없고. 그렇게 전해. 나는 좀 더 자야겠으니까.”

“야. 보이, 보이!”

별것도 아닌 거로 사람 깨우고 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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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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