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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57화 (57/201)

<57화>

최상층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백 명 남짓한 마법사들이 오드스컬 정문에서 한목소리로 외친다.

“우리의 피 값을 돌려내라!”

“돌려내라, 돌려내라!”

“포탈을 고쳐라!”

“고쳐라, 고쳐라!”

텅!

문이 거칠게 열리고 그들이 기다리던 소년, 다크 보이가 걸어 나와 계단에 걸터앉는다.

그 옆으로 마나를 되찾은 샤아가 비서처럼 자리하자 마법사들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었다.

남만혁은 정면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외치던 중층 마법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시험 통과할 자신은 있고?”

“당, 당연하지!”

“샤아, 언제 시작한대?”

-중층에 밀려드는 마나가 급격히 상승하는 것으로 보아, 1시간 내외일 듯합니다.

“들었지?”

웅성거리던 마법사 무리는 이내 피켓을 내던지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앉아 각자의 방식대로 마법을 훈련한다.

“안으로 들어와서 하렴. 길에서 그러면 민폐잖니.”

뒤에서 지켜보던 오드스컬이 마법사들을 안으로 들였고 그들에게 주스를 가져다주며 소량의 돈을 받았다.

“장사 잘하시네.”

“이렇게라도 벌어둬야지. 누구 덕분에 이번 달은 적자거든.”

“…물자 징발은 히드라의 지시였으니까, 그놈한테 가서 말해요.”

“어디로 갈까? 시체도 무덤도 없는데?”

전쟁으로부터 나흘이 지난 지금, 중층에는 남만혁이 히드라의 사체를 먹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두식이가 흡수한 거긴 해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닌지라 다크 보이는 부정하지 않았다.

“저 테이블에 이거나 가져다줘.”

“옙.”

오드스컬이 쟁반에 음료를 담아 건네자 잽싸게 자리를 벗어나는 남만혁.

얼마간 서빙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 하늘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고 이후 모든 마법사의 눈앞에 작은 창이 등장했다.

[상층 시험을 개시합니다.]

[본인이 개발한 ‘융합 마법’을 아래의 박스에 사용해 주십시오.]

[합격 기준1 : 타 마법과의 일치율이 70% 미만인가.]

[합격 기준2 : 두 가지 이상의 마법을 섞었는가.]

[합격 기준3 : 네크로 학파에 도움이 되는가.]

[남은 시간 : 59분 55초]

남만혁은 시험 시작과 동시에 서몬 애시드 좀비를 창 아래의 검은 상자 안에 생성하고 잠시 기다렸다.

[‘서몬 애시드 좀비’와의 일치율 86%]

[불합격]

[설명 : 기존에 존재하는 융합 마법입니다. 남아 있는 시간 동안 계속 도전하셔도 좋습니다.]

“어?”

-왜 그러시지요?

“불합격이라는데.”

-아. 누군가 그 마법으로 합격했나 봅니다.

썩을. 나 말고도 포이즌에 재능이 있는 불쌍한 사람이 존재했을 줄이야.

“너는 끝났어?”

-예, 체외 마나 코어로 통과했습니다. 다만, 예상대로 포탈이 열리지 않는 듯합니다.

곳곳에서 합격이 떴는데 왜 포탈이 안 열리냐며 내게 소리 지르는 마법사들이 더러 보인다.

-그보다, 다크 넥서스. 어서 융합 마법을 만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고야 싶지만, 마법 배운 지 얼마나 됐다고 창조를 하겠나.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고.

“아이디어 없어?”

-처음 다크 넥서스를 만났을 때부터 생각해온 게 있긴 합니다.

“오, 말해봐.”

잠시 망설이던 샤아는 고철 지팡이를 매만지다 입을 열었다.

-영역에 포이즌을 씌우는 건 어떻습니까.

“뭐? 그게 돼?”

-가능합니다. 이런 식으로.

샤아가 팔을 벌리며 영역을 전개했으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하여 의문을 담아 바라보자.

-죄송합니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범위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지금 영역을 좁히지요.

“응? 아.”

전개한 영역이 오드스컬의 로비를 넘기는 바람에 육안으로 인지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서서히 마나 밀도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고 나와 샤아 둘만 감싸는 크기가 되자 물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무게감이 영역 전체에서 느껴졌다.

-영역 내부의 마나는 마법사가 원하는 속성으로 변환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철 지팡이로 가볍게 땅을 치자 머리칼을 흔드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매혹과 바람 속성을 섞었습니다. 상대의 전의를 꺾는 효과가 있지요.

[합격!]

샤아 앞에 떠오른 창의 검은 상자도 영역에 포함되었던지 합격 판정이 떴다.

-이는 쉽지 않은 기교이니 막 영역을 전개한 마법사에게는 자신이 배운 마법 중 가장 자신 있는 속성을 부여하게 합니다.

“그럼 융합이 아니지 않아?”

-본래 영역이라는 것이 시전자의 마나에 영향을 받아 생성되는 것이기에 마법으로도 취급됩니다.

[남은 시간 : 31:12]

나야 두말할 것 없이 포이즌이다. 그간 여러 가지 독으로 실험해봤는데, 산성도가 높을수록 나랑 궁합이 좋더라.

카츄에게서 요구르트병 크기의 캡슐을 꺼내 바닥에 던져 깨자 샤아가 놀라며 묻는다.

-이건?

“바이쓰가 연구하던 거. 버린다길래 챙겨뒀지.”

-바이쓰면…, 초록 점 문어와 붉은 삿갓 복어의 교배를 실험하던 상급 마법사지요? 실패했다 들었습니다만.

“어. 근데 알까지는 만들었더라고.”

산성 분사와 체내의 독으로 유명한 두 동물의 이름을 들은 샤아와 주변 마법사들이 내게서 멀찌감치 떨어진다.

“마법사라는 양반들이 쫄기는.”

솔직히 나도 후달린다만 영역이 시전자에게 해를 입힌 전례는 없다는 샤아의 말을 믿고 마나를 들이부었다.

“포이즌.”

-지금 생성된 포이즌을 촉매로 영역을 전개하셔야 합니다.

허공에 생성되는 검보랏빛 구체. 그걸 내 가슴 앞까지 끌고 온 뒤, 손으로 움켜쥐었다.

으악!

멀리서 들리는 누군가의 비명. 복어 독의 마비 때문인지 그리 아프진 않았다. 손이 따끔거리기 정도.

“전개.”

액체가 방울방울 흩어지며 내 주위를 에워싸더니 회전. 이후 지름 5m 남짓한 정육면체 점막이 형성됐다.

-괜찮으십니까? 여기선 안쪽이 안 보입니다.

약간 보랏빛이긴 하지만 나는 바깥이 잘 보인다. 매직미러 같은 역할을 하나 보다.

[합격!]

[남은 시간 : 16:50]

“괜찮아. 마법 하나 적당히 이쪽으로 날려 봐.”

-알겠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삼식이 두개골 크기의 다크 파이어가 사방에서 쏘아졌다. 샤아의 마법이 내 영역에 진입하는 순간 초록색으로 변한다.

변화는 그뿐이었기에 나는 급히 바닥에 엎드려 네 개의 불덩이를 피했다.

“적당히 하라니까.”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다크 넥서스가 제게 마법을 사용해 보시지요.

안 그래도 이 영역의 사용법을 짐작한 상태였기에 샤아를 골려줄 겸 곧장 다크 파이어를 쏘아냈다.

손끝에서 생성된 녹색의 불공은 내 영역을 빠져나가서도 그 색을 유지했으며 샤아가 펼친 실드에 닿자 약하게 폭발했다.

그리고 액체 괴물을 벽에 던진 것처럼 꾸덕하게 흘러내리다 어느 순간 연기로 변했다.

-독성 저항력이 없는 사람에겐 치명적이겠습니다.

샤아가 고철 지팡이 끝부분을 녹색 연무에 가져다 대자 어떤 전조도 없이 녹아내렸다.

독연은 약 5초간 머물다 사라졌는데, 샤아가 평하길 유지 시간을 희생해 강력한 독성을 가진 경우란다.

-지금 그런 형태의 영역은 인챈트 에어리어라고 불립니다. 사용하는 모든 마법이 지금과 유사한 효과를 적용받은 채 시전 될 테지요. 다양한 변수를 만들 수 있겠습니다.

늘 쫓기는 빌런 입장에서 히어로를 당황하게 만들 변수는 많을수록 좋다.

영역을 응용한 비장의 수 몇 가지를 구상하던 중, 샤아가 갑자기 내 영역에 고철 지팡이를 밀어 넣는다.

츠즈즈.

-역시, 현재 다크 넥서스의 영역 내부도 방금과 같은 독으로 가득합니다. 호신 수단으로는 그만한 것도 없겠습니다. 그런데 마나 소모량이 엄청날 텐데, 버틸만하신지요?

“아니.”

사실 다크 파이어를 쐈을 때부터 어질어질하다. 영역을 해제하고 숨을 고르자 마법사들이 불과 1시간 전과는 딴판인 얼굴로 내게 다가와서는 질문을 퍼부어댄다.

어떻게 했냐. 영역은 언제부터 전개할 수 있었냐. 포이즌을 촉매로 사용한다는 아이디어는 누구 생각이냐.

나는 그들의 호기심을 한 마디의 답으로 갈음했다.

“샤아 나탈리아 님이 시킨 대로 했어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홱 돌아가는 마법사들의 고개. 샤아는 안광을 껌뻑이며 나를 바라보다 어색한 안광 웃음을 지으며 내 옆에 붙는다.

-다크 넥서스. 상층으로 가시지요. 어서요.

바디슬램까지하며 샤아에게 달라붙는 마법사들을 밀쳐내던 샤아를 위해 나는 안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남은 시간 : 05:01]

[포탈 기관을 대체할 아티팩트, 마스터키 감지.]

[탑주 대리에게 묻습니다.]

[합격자를 전송하시겠습니까?]

“탑주 대리? 일단 합격자들 올려보내.”

[포탈 오픈]

[합격자는 생성된 포탈에 신속히 입장하시길 바랍니다.]

큭!

한순간에 빨려 나가는 마나에 기겁하며 열쇠를 놓으려 하자 샤아가 급히 내 손을 붙잡고 대신 열쇠에 마나를 공급한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샤아는 지금 매우 위험한 상태라며 마나 회로가 뜯겨 나갈 수도 있으니 작은 미동도 하지 말라며 재차 경고했다.

그 덕에 숨만 간신이 쉬며 약 5분 동안 열쇠만 쥐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 앞에 있던 포탈은 닫혔고 나는 기진맥진하여 바닥에 널브러졌다.

“어후, 폭포 아래에 서 있는 느낌이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간접적 마나 샤워입니다. 경험하셨으니 차후 마나 회로가 좁아 고생할 일은 없으시겠습니다. 다중 영창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축하드립니다.

마나 샤워.

매저드를 통해 마나 샤워라는 게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조차도 위험해 내가 일정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시도하지 말라며 신신당부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겪게 될 줄이야.

[탑주 대리에게 묻습니다.]

[최상층에 방문하시겠습니까?]

“어쩔래?”

내 메시지 창을 본 샤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시지요.

허공에 떠 있던 창이 스크롤 말리듯 접혔다 펴진다. 거기엔 처음 하층을 열 때 봤던 마법진과 유사하지만 좀 더 복잡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중앙에 열쇠를 넣고 돌리자 문틀에 뱀이 똬리를 튼 듯한 문이 나타나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요?

내가 가만히 서 있자 샤아가 의아해하며 다가온다. 나는 가까이 온 그녀를 향해 허리를 살짝 숙이며 문 안쪽으로 양팔을 뻗었다.

“레이디 퍼스트.”

-…예. 고맙습니다. 다크 넥서스.

든든한 샤아를 앞세워 들어가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붉은 카펫과 커다란 샹들리에. 그리고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은 엄청난 크기의 광구.

[최상층에 오신 두 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타워 코어입니다. 초대 탑주께선 저를 브래들리라 칭하셨습니다.]

[저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옆의 책자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책자는 세탁기 설명서처럼 브래들리의 사용법과 주의사항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대충, 탑 내부의 시험과 진급을 타워 코어가 담당하며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건 탑주와 탑주 대리뿐이라는 내용.

‘주의사항, 시험 기간엔 탑주의 마나가 부족할 시 사망할 수 있으니 여력을 남겨둘 것? 샤아 아니었으면 죽었다는 소리네.’

[두 분께 묻습니다.]

[현재 탑주 자리는 공석입니다.]

[탑주 시험을 치르실 분은 누구십니까.]

“당연히 샤아지.”

-다크 넥서스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잠시 바라봤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를 탑주 만들어주는 게 우리 계약이었잖아.”

-그 파트너 계약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제가 탑주가 되지 않아도 맺을 수 있습니다.

“아니, 나는 애초에 탑주 자격이 안 되잖아. 마법에 입문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건 제가 가르쳐드리면 그만입니다.

…아하.

“너, 욕심이야 그거.”

-…….

“히드라의 유서 때문이냐?”

-꼭 그렇진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 네가 싫어도 때가 되면 양지로 끌어올려 줄 테니까. 탑 내실이나 잘 닦고 있어.”

외부와의 소통이 억제된 지 수십 년. 히드라의 편지에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외부 인사를 등용해 고위직에 앉힐 필요가 있다고 적힌 걸 얼핏 본 기억이 난다.

이해한다. 그렇기에 필요 없다. 나로선 그블린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적극 활용해야 하니까.

나가서 리쳇더러 오래된 중소기업 부흥시킬 기획 하나 짜서 보내라고 하면 알아서 해결될 문제다.

‘중앙마도협회도 네크로 학파를 미는 중이고.’

“탑주는 샤아 나탈리아다.”

열쇠를 넘기며 그리 말하자 브래들리가 수용이라는 문자를 커다랗게 써낸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탑주의 권한으로 다크 넥서스를 명예 부탑주로 지목하겠습니다.

[수용하겠습니다.]

이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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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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