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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61화 (61/201)

<61화>

가일 (3)

드륵.

수트라 가일 입장에선 결코 열려선 안 될 문이 열렸다.

“…면회 끝났습니다. 나가주세요.”

“나가야 하는 건 너다.”

수트라 가일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검은 복장으로 온몸을 감싼 중년이 서 있었다.

“당신은?”

남자는 말 없이 다가오더니 수트라 가일이 미하일 그웬에게 꽂은 주사기를 빼앗아 든다.

“뭐 하는 짓입니까!”

“언젠가는 말이야.”

“이봐요.”

“인생 선배로서 언젠가는 그 녀석들이 누군가를 잃는 고통을 겪게 하고 싶거든?”

“대체 무슨 소리를.”

“상실의 아픔도 인위적으로 가르칠 수 있단 말이지. 애들은 그걸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거고.”

“뭐?”

“나는 이걸 일종의 예방 주사라고 생각해. 나중에 그런 일들이 많이 생길 테니까. 그런데.”

“윽, 이 손 놔라!”

“그게 오늘은 아니야.”

포이즌.

나지막이 주문을 읊조린 중년의 남성, 남만혁은 주사기에 든 독을 매개로 포이즌을 시전해 공중에 띄웠다.

코앞에 생겨난 투명한 구슬을 보며 벌리던 입을 급히 다무는 수트라 가일.

하지만 구체는 남만혁의 손짓을 따라 빠르게 솟구쳐 그의 코로 들어갔고 한동안 컥컥대던 수트라 가일은 이내 잠든 것처럼 숨이 멎었다.

남만혁은 쓰러진 놈을 발로 밀어 치우고 미하일 그웬의 체내로 흡수된 소량의 독을 포이즌으로 추출해냈다.

“이게 되네.”

서서히 내려가던 미하일의 바이탈 사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고 병실을 나서려는 때에.

“손들어!”

“경찰이다!”

병원에 상주 중인 히어로와 경찰, 의료진이 급히 병실 문을 부수며 들이닥쳤다. 개중에는 수트라를 돕기 위해 의사로 위장한 가일 측 인사도 있었는데 그가 바닥에 널브러진 것을 보고는 낯빛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남만혁은 끌고 나가기 위해 잡고 있던 수트라 가일의 바지 끝단을 놓고 양팔을 천천히 머리 위로 올려 저항 의사가 없음을 표시한 뒤 입을 열었다.

“오해일세. 내 바디캠을 확인하게.”

이런 일을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결백을 증명할 수단은 항상 갖추고 다니는 남만혁이었기에 담담히 말했고 경찰 중 하나가 총구를 겨눈 채 가슴팍에 달린 소형 카메라를 가져가 자신의 휴대용 홀로 보드와 연결한다.

소리가 녹음되지 않는 카메라였기에 화면에 비치는 남만혁의 모든 행동은 정의로웠다.

라벨이 없는 수상한 주사기. 뺏기자 당황하는 수트라 가일. 액체를 먹고 쓰러지는 모습까지.

사정을 모른다면 충분히 오해를 부를 만하였으나 주사기의 파편에 남은 액체의 정체를 금방 확인한 다른 의사가 ‘독입니다.’라고 한마디 하자 경찰들이 총을 집어넣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서까지 동행해주시겠습니까.”

“그럴 순 없네. 나에겐 시간이 많지 않아. 지금도 또 다른 희생자가 죽어가고 있으니.”

“큼, 알겠습니다. 가셔도 좋습니다.”

“고생하게.”

“저!”

“음?”

“이름, 아니. 히어로 명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름을 밝힐 정도는 아닐세. 허나, 소속된 단체는 있지.”

“그럼 그거라도.”

“다크 넥서스.”

* * *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트레이시.”

“아버지가 죽을 뻔했어. 그것도 두 번이나.”

딱한 눈으로 트레이시를 바라보던 그레이스가 화제를 전환했다.

“미하일 씨를 도와주신 분이 다크 넥서스라고 했었죠?”

“어? 어….”

남만혁과 하층을 함께한 트레이시 그웬은 다크 넥서스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당사자에게 비밀리에 활동해야 하니 말조심하라는 통보를 들었다. 특히 눈앞의 그레이스 멜론 앞에서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 그랬고.

“고마우신 분이네요.”

“그렇지.”

“된 거 아닐까요?”

“응?”

“제가 이래라저래라할 건 아니지만…, 복수 말이에요. 아버지는 살아계시고 다행히 손도 붙일 수 있다고 하니까.”

“이쯤에서 끝내라?”

“네.”

구출은 히어로의 덕목이다. 그렇다면 복수는? 그레이스 멜론은 아직 이에 대해선 답을 내리지 못했다.

“가일과 우리는 공존할 수 없어. 그레이스. 너도 저놈들이 하는 짓을 봤잖아.”

“하지만 충분히 벌을 받았잖아요. 전 회장은 실종. 장남은 사망. 차남은 중태. 여기서 뭘 더 바라는 건가요.”

“파멸.”

독기 어린 눈. 그레이스는 일전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버틀러 일가에 불을 지른 방화범. 재판 중에 신고한 놈들을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할 때. 그때의 광기와 닮아 있었다.

“나를 도와줘. 그레이스. 부탁이야.”

“저는….”

그로부터 이틀 후, 새벽. 가일 뱅크 본점이 폭발했다.

* * *

“이건, 이건 아니에요. 트레이시. 그만두세요!”

폭주하는 트레이시를 말리겠다는 일념으로 옆을 지키던 그레이스는 그녀가 가문의 인맥을 동원해 만든 폭탄으로 테러까지 일삼자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아직 아니야. 그레이스 멜론. 겨우 이 정도로는 아버지의 고통을 갚을 수 없어.”

이제는 직접 폭탄 제조까지 하는 트레이시. 그레이스는 고민하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 홀로폰을 열었다.

[남만혁]

꾹 누르자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퀸. 왜?

쏴아아.

저편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파도 소리. 인사 따위는 생략하고 본론을 묻는 남만혁. 그의 털털한 목소리에 그레이스는 그간의 불안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 트레이시 그웬이요.”

-대충 소식은 들었는데, 뭔 일 있냐?

“테러를 하고 있어요.”

-테러?

“네. 저는 트레이시가 그만뒀으면 좋겠어요.”

-나보단 네가 설득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제 말은 듣지 않아서요. 남만혁 씨. 당신이 다독여주세요. 트레이시는 당신 말이라면—”

-관둬.

“예?”

-가족이 죽다 살았잖아. 나도 소민 누나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천 갈래로 찢어버릴 거 같은데. 너는 안 그래?

“…이만하면 충분하잖아요.”

-그건 당사자가 결정하는 거지. 제삼자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야.

“당신도 복수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군요.”

-의미 없지.

“그럴 줄. 예?”

-의미 없다고. 복수.

“그런데 왜 가만히 두라고 하는 건데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거든. 후회는 일찍 할수록 좋아.

“남만혁!”

-어이고, 화났냐?

“…….”

-알았어. 도와줄게.

“정말요?”

낄낄.

불쾌한 웃음소리가 홀로폰 너머에서 들려왔으나 그레이스 멜론은 폰을 귀에서 떨어트리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트레이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는 남만혁.

“후우.”

그에게 괜히 전화한 게 아닐까. 고개를 내저은 그레이스 멜론은 다시 트레이시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트레이시?”

그녀는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속보]

-현재 미초아칸주에 위치한 가일 뱅크가 포격을 맞았습니다!

-저, 저, 저기 유령선. 유령선이 다가옵니다.

-여기에 미사일을 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 치츠는 목숨을 걸고 중계를—

생방송 카메라 앞에서 결의를 다지던 치츠라는 여성은 바로 옆에 나타난 흑의 중년인에게 마이크를 뺏겼다.

-나는 다크 넥서스다. 선량한 시민을 대리해 이곳에 있지. 가일 가문의 악행은 DN.com에 올려놨으니 확인하거라.

그러고 여성에게 마이크를 가볍게 던지고 돌아가려던 그가 무언가를 까먹었다는 양 다시 가까이 오더니. 카메라를 향해 검지로 가리킨다.

-우리를 빌런이라 칭해도 좋다. 단, 그건 평생 죄를 짓지 않고 살아온 이들에 한해서다.

그로부터 하루에 걸쳐 가일이라는 이름을 단 모든 건물은 유령선의 포격을 맞았다.

이후 본점의 폭발도 다크 넥서스의 소행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으며 모든 국가가 다크 넥서스를 적색 수배자, 빌런으로 등록했다.

그러나 일부, 아니 대다수 시민은 가일 가문이 행해온 악행들이 드러나자 공분하며 다크 넥서스를 옹호했다.

[redit : DarkNexus]

-잘했네! 저딴 기업은 아주 박살을 내버려야 해!

-그, 하지만 저런 폭력을 정당화하면 사회는 무너집니다.

-정의를 부르짖던 히어로들이 침묵할 때 나선 거잖아. 칭찬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대중의 반응과는 별개로 불시의 습격에 크게 당한 가일은 용병을 고용하고 히어로 연합에 도움을 요청해 다크 넥서스를 견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처음 포격 이후 2주간 공격이 없었고. 슬슬 고용비가 신경 쓰일 때쯤. 다크 넥서스는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가일 가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지역에 대뜸 나타난 다크 넥서스가 현지 기상 캐스터의 마이크를 낚아채 인근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고, 특종을 직감한 카메라맨은 즉시 뒤따랐다.

-으읍, 읍!

거기엔 눈과 코를 제외한 전신이 덕 테이프로 묶인 초췌한 노인이 있었다.

-이놈은 나파 가일이다.

다크 넥서스가 놈의 입 부분의 테이프를 거칠게 떼며 말을 잇는다.

-그웬 가에 네가 한 짓을 말해라.

-…미하일 그웬을 납치했다.

-왜지?

-가일 컴퍼니의 성장에 방해가 됐으니까.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처리한 기업이 몇이지?

-…많다.

-자세히.

망토 안으로 들어갔던 손이 나오자 소형 리볼버 한 정이 잡혀 있었고 그의 관자놀이를 겨눈다.

-큭, 11곳.

-전부 기억하겠지?

가일에게 잡아먹힌 기업과 사람의 이름이 나파 가일의 입을 통해 하나씩 흘러나왔다.

-데려가게.

-저희가요?

다크 넥서스는 대답 없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고 줄이 내려와 그를 끌어 올렸다.

급하게 밖으로 나온 카메라맨이 집 지붕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안개 속 유령선을 보며 비명을 질렀고 기상 캐스터는 이미 기절한 뒤였다.

이를 본 관계자와 시민들은 격분하여 나파 가일의 사형을 주장. 멕시코 정부는 이례적으로 수용했다.

* * *

트레이시의 방으로 다시 돌아와 두 소녀의 이야기를 잇자면.

그레이스 멜론은 다크 넥서스 덕에 트레이시가 폭탄 제조를 그만둔 건 다행이라 여겼으나 이후 무기력하게 변한 것이 걱정이었다.

똑똑.

“그레이스? 들어와.”

“보드게임 할래요?”

단순히 블록을 쌓아 하나씩 빼며 먼저 넘어트리는 쪽이 패배하는 규칙. 그레이스가 가져온 건 흔히 젠가라 불리는 보드게임.

트레이시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자.”

시간이 흐르고 공사 중 골조만 드러낸 건물처럼 나무 탑 내부가 텅 비자 트레이시가 무심결에 중얼거린다.

“나 같네.”

“네?”

“…허무해.”

“다크 넥서스가 대신 가일을 몰락시켜서요?”

“그것도 그거지만 복수 말야. 가일이 완전히 끝장나면 엄청나게 기쁠 줄 알았거든.”

“어떤데요?”

툭.

트레이시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나무 탑을 건드리자 와르르 무너진다.

“이런 느낌.”

작은 탑을 무너트리는 쾌감. 딱 그 정도라며 말을 덧붙인 트레이시는 다시 탑을 쌓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깨달은 건 있어. 내 계획대로 진행했으면 큰일 났겠구나. 저 다크 넥서스는 빌어먹게 유능하구나. 복수는 짜릿하지도 행복하지도 않구나.”

말하며 이전의 표정을 점차 되찾아가는 트레이시를 본 그레이스는 그녀를 껴안으며 경청했다.

“…그리고 내가 친구 하나는 잘 사귀었구나.”

“후후,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네요.”

“하아, 라이벌은 싫은데.”

“네?”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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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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