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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62화 (62/201)

<62화>

협상은 없다

내 기준으로 트레이시 그웬의 복수는 가일 뱅크 본점을 폭발시키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만약 녀석이 본점에 비상경보를 울리지 않고 테러를 감행했거나 가일 가문 구성원을 살해하는 쪽으로 노선을 잡았다면, 나는 끝까지 나서지 않고 기다렸다 녀석을 한동안 빌텔에 처박았을 것이다.

트레이시 그웬은 입학시험에서부터 그런 기미가 있었다. 우화 중이었다고 해야 하나. 번데기를 찢고 나왔을 때 히어로일 지 빌런일 지 알 수 없는 녀석.

결과적으로 트레이시는 다소 폭력적이기는 하나 사상자를 내지 않는 선에서 그쳤다.

후에 그블린 전 첨병으로 녀석을 다뤄야 하는 나로선 매우 흡족한 선택이었기에 상이라 하기엔 뭣하나 가일 컴퍼니 전체를 치우는 쪽으로 결단을 내렸고, 시작은 은행이었다.

“리쳇, 경보 울려.”

웨에엥!

사람이 빠지고 히어로가 도착할 때쯤 포탄을 날린다. 모든 건물을 파괴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가일 뱅크를 이용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발생할 거라는 암시를 대중에게 심는 것이 목표다.

며칠간 추적해오는 군대와 히어로들을 꼬리에 달고 멕시코에 존재하는 가일 뱅크의 지점들을 포격하고 다녔다.

세계의 각국은 다크 넥서스를 적색 수배자로 등록했고, 나를 빌런이라 칭했다.

이후 갱단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망자가 나오자 부정적인 여론이 생성되었고 차츰 분위기가 반전되는가 싶었으나.

“갱? 마피아? 죽어 마땅하다. 우리는 짐승에게 인권을 준 적이 없다. 나는 시민의 대표로서 다크 넥서스에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멕시코 대통령의 옹호 발언으로 인해 다크 넥서스 반대 운동은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위와 같은 선동으로 생존을 꾀하던 가일 컴퍼니의 임원진이 거듭되는 실패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나파 가일의 자백이 생방송을 탔다.

그것이 결정타가 되어 하나둘씩 이직하거나 사임하기에 이르렀고.

엉겁결에 대표직을 받게 된 가일 가문의 사람은 생에 다시 없을 기회라 여겨 사명을 바꾸거나 기존 사업을 정리하는 둥. 필사적으로 살길을 찾았으나 밤이면 유령처럼 나타나 물리적으로 공사를 차단하는 다크 넥서스의 존재에 두손 두발 들고 포기하게 되었다.

가일 컴퍼니에서 실직한 직원들은 그웬 가에서 거두었고 사정이 여의찮은 이에겐 다음 직장을 구할 때까지 생활비를 책임졌다.

기상 캐스터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에 의해 이슬라 마리아 섬 교도소에 수감된 나파 가일은 며칠 지나지 않아 같은 방의 죄수에게 살해되었다.

살인범은 살해 동기에 관한 심문 중에 몹시도 당당히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빚을 갚았을 뿐이다.”

나파 가일은 별장 지하에서 수하에게 한 말처럼. 그 자신이 가문의 몰락을 지켜보다 최악의 순간 죽음을 맞이했다.

섬 뒤편에 안치된 그의 묘소는 해풍에 비석이 삭는 순간까지 찾는 이 하나 없었다.

* * *

“기드빈.”

“중위 기드빈!”

“쟤 쓸만해?”

나는 넥서스 선교에서 갑판을 닦는 전직 해커, 현직 군인. 마이클을 가리키며 물었다.

“빠릿빠릿합니다.”

딱히 특기는 없다는 소리네.

“컴퓨터 잘 다룬다는데, 그쪽은?”

“우주군 기초교육을 수료한 제가 낫습니다.”

“네가 다 할 수는 없잖아. 레이더 보는 법 가르쳐서 시켜.”

“알겠습니다!”

본래 넥서스는 이동과 공격. 이 두 가지 기능만 있었으나 기드빈이 조종대를 잡자 이동 쪽에 보너스가 생겼다.

안개나 모래 위를 이동하는 것 외에도 내가 명령을 내려 넥서스 호를 움직이는 것보다 기드빈이 조종할 때가 훨씬 빠르다.

“1번 교육생. 똑바로 청소합니다. 그게 태양 방위군이 보일 정신 상태입니까!”

“열, 열심히 하겠습니다!”

24살 해커, 마이클은 집도 가족도 친구도 없는 길거리 인생이었으나 주에서 진행하는 청년 무료교육을 통해 크래킹을 배워 해커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본래는 가일이 처리되면 놓아줄 셈이었는데, 마이클은 넥서스에 매료됐다면서 제발 여기서 일하게 해달라고 애원하기에 일단 써보고 있다.

나야 적당히 월급 주면서 부리면 되는지라 크게 상관이 없는데, 문제는 구현을 해제했을 때 어찌 되는가였다.

실험 삼아 빈 선실에 넣어 놓고 구현을 해제하자 공중에서 떨어져 내린다.

실망하는 그에게 기드빈 중위가 다가갔다.

“마이클. 훈련생이 되고 싶나!”

“예, 예!”

놀랍게도 기드빈이 그를 정식 훈련생으로 받아들이니 넥서스와 한 몸이 된 것처럼 구현 해제와 동시에 사라졌다. 다시 넥서스를 불러 방금 어디 갔었냐고 묻자.

“우, 우주였습니다! 제가 우주에!”

흥분한 녀석을 진정시키고 찬찬히 들어보니 솔라 파이러츠의 배경으로 짐작되는 우주에 떠 있었던 거 같다.

“정지해 있었다?”

“네. 모든 것이 멈춰 있었습니다. 우리만 빼고요.”

“음, 사는 데 지장은 없겠나?”

“식량만 충분하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기드빈, 네 생각은?”

“함선을 움직이지만 않으면 우주법에 저촉되는 일은 없습니다!”

우주법. 복잡한 설정이 나올 거 같아서 아예 묻지도 않았다.

이후 나도 기드빈에게 임시 훈련병으로 임명받아 그 우주에 가고자 했으나 구현 해제하자 나만 빼고 사라지더라.

‘안 되나.’

은신처나 도주 수단으로 쓰려했는데. 아쉽게 됐다.

* * *

나파 가일 사망 사건으로부터 2주 후. 멕시코 시티의 고급 식당.

“반갑습니다. 멕시코 합중국의 대통령 플리페 데 에우스 칼드 이노요.”

“다크 넥서스. 이름은 없네. 협상하러 온 건 아니네만, 일단 인사는 받지.”

두 사람이 악수하고 자리에 앉는다.

“당신이 다크 넥서스를 대표한다 생각해도 되겠소?”

“물론.”

대통령과 그의 참모진, 그리고 외교부 장관이 함께한 식사 자리는 메인 디쉬가 나오기 전까진 소소한 농담이나 근황 따위를 물으며 시간을 보냈고 이어 까맣게 탄 랍스터가 나오자 플리페가 작은 망치를 들고 랍스터의 갑각을 부수며 속내를 꺼냈다.

“혹. 네크로 학파와 연관이 있나?”

“그렇네만. 음, 훌륭하군.”

냅킨을 목에 걸고 대통령이 부순 부위에 살점이 드러나자마자 포크를 쑤셔 박아 퍼먹는 다크 넥서스의 행태에 주변인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 건방—”

“어허.”

참모진 중 하나가 나서려 하자 대통령이 눈치를 준다.

“큼. 수십 년 전. 이 땅에 언데드 웨이브가 발생해 사망자만 8만에 달하고 피해 규모는 조 단위가 넘었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쾅!

대통령은 랍스터 대가리를 망치로 깨부수고는 짓씹듯이 말했다.

“내 나라에서 개짓거리하지 말고 꺼지라는 소리요!”

“그대가 나에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가일 컴퍼니와 갱이라는 이 나라의 거악을 도려내 주었는데 말이야.”

대통령은 망치를 내려놓고 손을 털더니 의자에 등을 깊게 묻으며 답한다.

“그러고 떠났다면, 나와 우리 국민은 평생 그대들에게 감사했겠지. 하지만 아니잖소!”

“내가 무언가 했나?”

“모른 척 마시오. 농장과 인력사무소를 통합하고 있잖소.”

남만혁이 트레이시 그웬을 아낀다 해도 아무런 이득 없이 멕시코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사할 만큼 인자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멕시코 전역에 달러를 뿌리고 있으니 감사받을 일이라고 생각되네만.”

“거기서 파견 나온 게 인간이었다면 그랬겠지!”

그렇다. 남만혁은 리쳇이 계획한 네크로 학파 부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언데드에 대한 이미지 쇄신과 수익 창출을 노리고 멕시코에 언데드를 보낸 것.

갱단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농장에도 적지 않은 포격이 ‘의도치 않게’ 떨어졌고 거기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해 인부들은 멕시코의 치안과 안전에 불안을 느끼고 대거 이탈했다.

리쳇과 남만혁은 이로 인해 발생한 노동 인력 공백을 신속하게 언데드로 채워 넣었다.

처음에는 언데드라는 이유로 반발이 대단했으나 그들의 복장에 ‘DN’을 박아 넣자 경계는 하면서도 값싼데다 대체 노동자가 없으니 차츰 이용률이 늘어 현재는 공급이 부족할 지경.

멕시코 대통령은 언데드가 자국의 가장 밑바닥을 차지는 하는 것에 엄청난 모욕과 부담을 느끼며 중앙마도협회에 진정 및 제재를 요청했으나. 바로 어제, 중마협회에서 언데드 노동자 합법 의안을 멕시코 한정으로 통과시켰다.

경악한 멕시코 대통령은 마지막 수단으로 다크 넥서스를 호출했고 지금에 이른다.

상대의 일갈에 어떤 내색도 없이 음식을 우물거리던 남만혁이 포크를 소리 나게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토지는 어떤 식물을 심느냐에 따라 지력이 쇠하거나 강해지기도 하네.”

“갑자기 땅 이야기는 왜 나온단 말이오.”

“아보카도는 명백히 지력을 흡수하는 쪽이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자국민들이 현재를 팔아 금을 얻고 있는데, 중요하지 않다? 진심인가?”

돈은 움직이지만, 땅은 그대로다. 지력이 쇠한 땅을 복구시키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이걸 돈으로 환산해 비교하면 아보카도를 팔아 얻는 수익은 우스울 정도.

“…….”

“아보카도 문제만 잘 조명시키고 해결해도 높은 확률로 재당선이 될 텐데.”

멕시코는 오래전부터 지력이 쇠해 온갖 화학비료를 투입해 아보카도를 키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멕시코 땅에 처음으로 아보카도 열풍이 불었을 때의 맛과.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아보카도의 맛은 아주 다르다. 안 좋은 쪽으로.

“…마치 당신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렇다네.”

네크로 학파에서 진행되던 연구 중, 휩이 기반을 제공하고 벨벳이 성공시킨 진흙 꽃이라는 게 있다.

어느 장소건 흙과 물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는 식물. 수술에서 매일 생산되는 소량의 꽃가루가 지력을 회복시킨다.

본래는 흙 속에 묻힌 시체의 품질을 상승시키기 위해 만든 꽃인데 효과를 검증하다 지력 회복이라는 특성도 발견하게 된 것.

약물이나 인공적인 화학소재가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고 인체에도 무해하다.

다크 넥서스가 진흙 꽃 씨앗이 담긴 주머니를 품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놓자 대통령은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한 뒤 참모진과 급히 의논하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 위저드 상을 받았겠지요!”

“퇴출시키면 그만입니다. 여기는 우리 땅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부정적인 의견을 듣던 남만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뉴스가 켜진 홀로 보드에 테이블에 올려둔다.

-멕시코시티 상공에 거대 비행물체 등장! DN, DN입니다!

-이번에도 기업사냥을 하려는 걸까요!

-시민 인터뷰가 있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유령선이 나타났는데도 도망치지 않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제가 죄를 지었다면 도망쳤겠죠. 하지만 저는 법 앞에 당당하거든요.

-어어, 주포가 움직입니다. 식당을 가리키는데…, 저곳은!

주포의 끝은 바로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크 넥서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먼!”

“다들 조용하게. 다크 넥서스, 지금 상황에 대해 할 말이 있소?”

“처음에 말했다시피 나는 협상을 하러 온 게 아닐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치울 뿐이지.”

“아무리 당신이라도 일국의 군대는 상대할 수 없을 것이오. 설령 우리가 목숨을 잃더라도 또 다른 시민의 대표가 나타나 당신을 막을 거요!”

“자네 같은 이상론자의 논리를 아주 쉽게 논파하는 방법을 내 하나 알고 있네. 들어보겠나?”

“…….”

“자네들이 유령선이라 부르는 저 배는 분당 1발의 포격을 무한히 사용할 수 있다네. 다시 한번 강조하지. 무한일세. 탄환에 제한이 없다는 뜻이야.”

“…설마.”

“진보한 기술이나 마도학의 집대성인 줄로 알았나?”

“저 거대한 병기가 당신의 특성이란 말이오?”

남만혁은 빙긋 웃으며 테이블에 올려둔 씨앗 주머니를 톡톡 치며 말했다.

“받아들인 것으로 알겠네. 아, 만약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뭐, 그런 것도 좋지. 해보게.”

쾅!

바다를 향해 쏘아진 열 발의 포격이 귀청을 때리자 모두의 청각이 일순 마비되었고 그때 움직이는 다크 넥서스의 입.

-자네 말고는 몰살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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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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