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파이브 파이트 리그 (2)
A팀. 남은 작전시간 7분.
“내가 간다니까.”
“너는 안 어울린대도? 왜 말귀를 못 알아먹지. 뇌까지 개가 돼버린 거야?”
“개가 아니라 자칼이다!”
“그게 그거지.”
“야!”
자칼과 플라주는 서로 자기가 주택가에 최적이라 주장했고 점점 분위기가 과열되자 스위프트가 나섰다.
“우리 팀이 질 확률은 낮다.”
네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모인다. 평소에 끼던 안경을 벗고 전투용 고글을 장착한 스위프트가 몸을 공중에 띄우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와 그레이스는 윗길로 가지.”
월말 평가 중, 지정 좌표로 이동하는 시간을 측정하는 시험이 있다.
퀸과 스위프트는 아카데미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괴물들. 이는 주택가까지 커버할 수 있으니 그렇게 싸울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니까 더욱 내가 가야지!”
목까지 붉게 변한 자칼의 주장을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스위프트가 손톱을 다듬는 케롤라인 칠링에게 물었다.
“케롤라인, 아랫길을 부탁해도 되겠나?”
“응.”
늘 협조적이었던 케롤라인을 먼저 구슬린 스위프트는 갑자기 입을 닫은 채 머뭇대는 자칼에게 다가갔다.
“자칼, 케롤라인 칠링을 지켜라.”
“내가?”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부탁하지.”
“…쳇, 알았다. 플라주, 너 나대지 마.”
자칼은 케롤라인 칠링에게 마음이 있다. 이는 두 사람을 제외한 A반 전원이 알고 있는 사실.
‘음.’
지금과 같이 인간관계를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는 용병술은 남만혁의 가르침이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더 잘 먹혀. 뭐라 지껄이든 결국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거든. 유전자가 그래 유전자가.’
…라던 그의 얼굴을 떠올린 스위프트가 고개를 끄덕이곤.
“플라주.”
“말 안 해도 알아. 너희가 시선을 끄는 사이 잠입해서 목표물을 가져오라는 거잖아.”
“그건 플랜 B다.”
“A는 뭔데.”
“시작 직후 퀸이 아음속으로 날아 제단을 유물째 파괴하는 것.”
“오전 강의에서 봤던 그 다이브?”
퀸은 지금도 플랜 A를 위해 공중에서 가속 중이다.
“바보 같은 소린데, 그레이스가 한다니까 그럴듯해지는 게 무섭네. 그러면 이런 회의는 의미 없는 거 아냐?”
“상대 팀에 남 교수가 없었다면 그랬겠지.”
플라주도 알고 있었다. 교내에 뭔가 시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하면 전부 그의 이름이 거론되곤 했으니까.
게다가 오전에만 해도 빌런 역할인 주제에 당당하게 항복하고 들어왔을 땐, 잠깐이지만 감명받았을 정도였다.
“남 교수는 윗길로 가겠지? 이쪽 팀의 전력은 빠삭할 테니까.”
“그렇게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이런 고민도 안 하겠지.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다.”
-1분 남았습니다.
하늘을 울리는 음성에 긴장한 기색의 친구들을 눈에 담은 스위프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학생이다. 실수해도 용서받을 수 있지. 전력으로 부딪쳐라. 설령 결과가 죽음이라 해도. 그 또한 경험으로 치환하면 그만이다.”
스위프트가 주먹을 앞으로 뻗자 다들 거기에 자기 주먹을 댄다. 거창한 화이팅은 없었다. 서로의 눈을 보며 각오를 다질 뿐.
-시작!
A팀 전원이 유물 제단 앞으로 이동됨과 동시에 스위프트는 윗길로 쏘아져 나가는 그레이스 멜론의 뒤를 쫓았다.
입학시험을 치를 때만 해도 자신이 우위였는데, 지금은 그녀를 앞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상대 진영 쪽 윗길 진입로에 그레이스 멜론이 들어섰을 무렵. 아래에서 기척이 느껴졌고 총성이 울렸다.
탕! 타탕, 탕!
무시하고 지나치려던 그레이스 멜론은 탄두 한 발을 어깨에 맞더니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멈추어 선다.
그레이스가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판초를 걸치고 카우보이모자를 눌러 쓴 사내가 리볼버로 자신을 조준하고 있었다.
“고속으로 비행하는 물체에 총알을 명중시키면?”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반대편 볼로 옮긴 소구경은 비틀거리며 회피하는 그레이스 멜론을 끝까지 추적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모든 탄에 피격당한 그레이스 멜론은 하늘로 통과하는 건 어렵다 판단하고 지상에 내려와 나무 뒤로 몸을 피했다.
총구에 올라오는 연기를 입으로 훅 분 소구경이 사탕을 콰득 부숴 먹으며.
“정답은 박살이다. 그레이스 멜론. 아무리 내구 특성을 가진 너라도 버틸 수 없을 터.”
그레이스가 숨은 나무를 조준한 채 집중하는 소구경의 모습을 멀리서 본 스위프트가 통신으로 지원하겠다고 하자.
“혼자 할 수 있어요. 가세요.”
“…그러지.”
플랜 A가 실패하면 자동으로 B로 넘어간다. B의 핵심은 윗길을 어떻게든 그레이스가 틀어막고 스위프트가 주택가와 윗길을 오가며 견제하는 것.
즉, 지금 A팀의 주력이 그레이스 멜론에서 플라주로 바뀐 것이다.
스위프트는 그레이스가 크게 다친 건 아니라 판단하고 즉시 자연체로 변해 주택가로 이동했다.
그레이스는 호흡을 고르곤 소구경의 총알에 맞은 어깨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갖다 대었다.
“윽.”
고통은 거의 없으나 탄두가 보이지 않을 만큼 박혀 있었다.
멕시코에서 갱이 쏜 총알을 무난히 막아낸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된 케이스. 자신의 속도를 간과했기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레이스는 반성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지형을 눈에 새겼다.
타당!
조금만 고개를 내밀어도 날아오는 탄환. 방금 소구경과의 거리를 살펴보니 생각보다 멀다. 가속할 여유는 없고 부유는 과녁이 될 뿐이기에 자연스레 내구만이 남는다.
‘버티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
왼쪽으로 페이크를 주고 오른쪽으로 돌아 달리는 그레이스 멜론.
크로스 가드로 급소만 막은 채 질주. 가드 사이로 소구경의 당황한 듯한 표정이 보인다.
‘앞으로 열 걸음이면—’
“내 친구, 를 죽게 둘 순 없, 지.”
나무 위에 숨어 있던 곽재우가 그레이스 멜론의 등으로 뛰어내리자 인근 공간이 멈췄다.
그러나 그의 접근을 인지하고 있었던 그레이스는 오전, 빌런 역할을 했을 때처럼 내구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 ‘멈춤’을 벗어났다.
“엇? 큭!”
낙하하는 곽재우의 다리를 잡아 굵은 나뭇가지 위에 자리 잡은 소구경을 향해 던졌다.
“피해!”
“흡!”
반사신경이 좋은 소구경이 점프로 피하는 건 유효했으나 거의 시간 텀 없이 안면에 가해지는 그레이스의 주먹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빠각!
골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소구경이 죽었다는 메시지가 떴으나 그레이스는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고 바닥을 뒹구는 곽재우를 따라잡아 마찬가지로 주먹을 때려 박으려는 찰나.
“아?”
사라졌다.
그때 돌연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그레이스 멜론의 머리칼을 흔들었고. 잠시 시야가 가려져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때에 사방에서 환도를 든 다수의 곽재우가 나타나 공격해왔다.
저 정도 공격은 내구로 버틸 수 있을성싶었으나 남만혁이 말하길.
‘피할 수 있으면 무조건 피해. 저놈이 무슨 능력을 가진 줄 알고 그걸 맞아줘.’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기에 그레이스는 부유로 날아올랐다.
곽재우의 공격은 겨우 그녀의 허벅지를 스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환하게 웃으며 소리친다.
“됐어! 튀어!”
“꺄아아악!”
지금까지 숨을 참아가며 숨어 있었던 칸탄테가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쳤고 곽재우는 맞서는 시늉만 하며 후퇴한다.
‘왜 저러는…, 읏?’
적 본진을 향해 날아가던 중 빈혈이 느껴져 몸 상태를 살피니 총을 맞은 어깨와 환도에 베인 허벅지에서 피가 멎지 않는다.
“아!”
칸탄테의 특성은 버프송, 출혈을 부여하는 노래를 부른다.
한 달 정도 같이 강의를 들었음에도 잊고 있었다. 솔직히, 당시의 그레이스 멜론은 칸탄테의 능력이 특별하지 않다고 여겼었다.
그리고 지금. 그 별 볼 일 없는 능력에 자신이 죽어가고 있었고.
“…쓸모없는 특성은 없다고 그랬었죠.”
남만혁이 지나가듯 한 말을 중얼거리며 나무에 등을 기대는 그레이스 멜론.
스스로 약자라 판단한 F반 윗길 팀은 이동하는 도중 치밀하게 작전을 짰다. 그레이스 멜론이 소구경의 탄환을 맞으면 그녀가 자신의 상태를 최대한 늦게 알아차리게 하기 위해 전투를 속행하기로 한 것.
그 결과, 트리플 기프트 보유자의 목숨과 소구경을 맞바꿨다. 이게 실전이었다면, 아군의 죽음이 슬프긴 해도 적의 핵심 전력을 병사 한 기로 소거한 것이다.
그렇게 윗길은 F반의 분전을 통해 교착상태가 되었다.
* * *
“트랩퍼~ 나와라~ 놀자~”
윗길과 아랫길에서 죽고 죽이는 난전이 벌어질 때. 플라주는 다른 길엔 등장하지 않은 트랩퍼를 찾아 주택가를 돌아다녔다.
이윽고 상대 팀의 유물 제단이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자 크게 실망했다.
“진짜 여기에 아무도 안 보냈다고? 쟤네 이런 게임 안 해봤나?”
투덜대며 제단으로 이어지는 외길 초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철컥.
기분 나쁜 쇠음이 들렸고 플라주는 본능에 따라 자신의 특성, 동화를 사용해 주변 환경에 녹아들었다.
방금까지 자신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작살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플라주가 애써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이야, 최종 방어선. 뭐 그런 건가?”
한참 떠들어댔으나 어디에서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플라주는 침을 꿀떡 삼키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려다 공중에서 발을 멈췄다.
‘잠깐만. 주택가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게 말이 안 돼. …그래, 제단 근처에 함정을 설치하느라 시간을 다 쓴 거야.’
이 앞은 함정으로 도배된 게 분명하다. 그리 여긴 플라주가 앞에 놓으려던 발을 되돌리곤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위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스위프트. 플라주가 손짓하기 무섭게 내려온다.
“무슨 일이지? 그대로 유물을 취하면 된다.”
“여기 함정투성이야. 네가 가서 가져오는 게 안전할 거 같은데.”
스위프트는 플라주의 말을 듣곤 망설임 없이 유물 제단으로 날아가더니 마비라도 된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주변을 살피고는 다시 플라주에게 돌아온다.
“왜 그냥 와?”
“없다.”
“어?”
“제단에는 유물이 없었다.”
“왜?”
그럴 수가 있냐는 듯이 묻는 플라주에게 스위프는 확신 어린 어투로 답했다.
“남 교수 짓이다.”
스위프트는 플라주를 놓아둔 채 남만혁이 있는 아랫길로 향했다.
“야! 같이 가야지! 에이씨.”
플라주는 그대로 돌아 나와 상대측 진영에서 이어지는 아랫길로 가려다 터널 좌우에, 대놓고 함정이 설치된 걸 보곤 진입을 포기했다.
“어차피 주택가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터널 바깥쪽을 끼고 가면…, 응? 꺅!”
방향을 틀기가 무섭게 발바닥에 아주 미세한 감각을 느낀 플라주가 고개를 기울임과 동시에 공중을 날았다.
플라주의 동화는 양발이 지면에서 떨어지면 풀린다.
포물선을 그리며 주택가 외곽으로 추락하는 플라주의 모습을 터널 위, 언덕에서 지켜보던 트랩퍼는 방독면을 가볍게 들었다 놓는 것으로 자신의 즐거운 기분을 표출했다.
“흐.”
육각형 스테이터스를 가진 플라주답게 낙법으로 피해를 최소화한 건 훌륭했으나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함정을 건드리고 말았다.
파즈즉!
스턴건처럼 사람을 마비시키는 함정이 옆 건물 처마에서 튀어나와 플라주를 덮친다. 비장의 수를 사용해 회피하려던 그녀였으나 대뜸 정면에 뿌려지는 수면 가루에 의해 허사로 돌아갔다.
“아직 한참 남았는데, 아쉬워.”
새총으로 수면 가루가 든 주머니를 던진 트랩퍼가 아쉬워하며 그녀를 밧줄로 묶어 함정용으로 설치해뒀던 구덩이에 숨겼다.
그렇게 플라주는 파이브 파이트 리그가 끝날 때까지 전장에서 이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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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