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치워줘요
프로스트 교수의 한마디에 죽음을 겪은 아이들이 움찔한다. 특히 나와 눈이 마주친 케롤라인은 몸을 부르르 떨며 시선을 피했다.
그런 그녀의 머리 위로 프로스트 교수의 상처 가득한 손이 얹힌다.
“겁쟁이가 돼라. 도망쳐도 좋다. 그렇게라도 살아남아라. 작전의 성공? 그것도 히어로의 목숨이 붙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오늘 많은 걸 느꼈겠지. 지금의 감정을 히어로가 되어서도 잊지 마라.”
“예!”
케롤라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하자 프로스트 교수는 인자하게 웃으며 녀석의 정수리를 가볍게 두드린다.
“그러면 지금부터 반성회를 할 텐데. 먼저 자기 실수를 고백할 용감한 녀석 있나?”
우물쭈물하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하여튼 순둥이들. 이런 건 첫 순서가 무조건 유리하다.
“허, 원맨쇼를 벌인 네가? 하여튼 한국인은 겸손하군. 좋다, 말해봐라.”
“소구경을 잃은 거요.”
“네 실수보다 작전의 완성도가 불만인가 보군?”
“예, 스위프트가 퀸을 버리고 주택가로 가는 멍청한 짓을 할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과감하게 나갔어도 됐죠.”
사실 반성을 빙자한 비판을 하고 싶었다. 쟤는 쓴소리 좀 들어야 한다.
표정 변화가 드문 스위프트의 얼굴이 구겨진다.
굳이 자극적인 단어를 선택해 스위프트의 화를 돋운 건, 주변에서 부둥부둥해줘서 세워진 저 녀석의 알량하고 허술한 주관을 쳐내고 융통성과 올바른 판단력을 채워 넣고자 함이다.
“결과 중심의 사고 같다만. 당사자가 이해하는 듯하니 할 말은 없지. 그게 끝인가?”
“아뇨, 퀸을 알고 있다고 착각한 거요.”
“음?”
“경기 후반부에 제 언데드를 파괴한 공격 말입니다. 단순히 다이브를 할 거로만 생각해 견제를 소홀히 해서 당한 거죠. 어떻게든 하늘로 올라가는 걸 막았어야 했어요.”
“알면, 막을 수 있나?”
“당장 떠오르는 게 없긴 한데. 뭐, 못 막겠으면 안 싸우면 되죠.”
크핫!
프로스트 교수가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말이 맞다. 너희도 ‘안 싸운다.’라는 표현, 기억해 둬라.”
내가 자리에 앉는 것으로 실수 고백을 마치자 퀸이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입을 열었다.
“윗길로 온 F팀을 만만하게 봤어요. 죄송해요.”
뒤로 돌아 우리가 앉은 뒷줄을 향해 머리를 숙여 사과하는 퀸.
“어? 괜찮아.”
칸탄테가 당황하며 손을 내젓자 퀸은 나를 힐끔 보곤 다시 정면으로 몸을 돌린다.
“상대가 각성자라면 어린아이여도 신중을 기해라. 히어로 업계 상식이지. 이번 기회에 몸에 새겼길 바란다. 또 있나?”
“남만혁이 유물을 가지고 있었어도 저는 윗길을 지켰어야 했어요.”
옳다. 그리고 이해한다. 가상이라고는 하나, 17세 소녀가 홀로 출혈사를 겪었다. 그런 상황에서 냉정하게 판단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음. 시야를 넓게 가졌더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겠지.”
“네…. 그리고 신기술만 믿고 너무 방심했어요.”
마지막에 조잡한 함정에 걸린 게 신경 쓰였는지 얼굴을 붉히는 퀸.
“그래, 같은 실수만 반복하지 마라. 다음.”
스위프트가 손을 들고는 일어나 자신이 이번 경기에서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떠들었고 녀석이 맞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뒤에서 ‘그래! 알긴 아는구나! 의외로 눈치가 좋네?’ 같은 추임새를 넣었다.
“…이상입니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구나. 본인이 가장 잘 알겠지만, 이번 경기의 워스트를 뽑으면 너다. 스위프트. 남만혁 학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팀원을 믿어라.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잖나.”
“명심하겠습니다.”
스위프트는 자기가 한 말은 지키는 부류의 인간이다. 다음 경기 때는 꽤 볼만하겠어.
그 뒤로 강의가 끝날 때까지 신랄한 반성회가 이어졌다.
아, 참고로 BC팀과 DE팀의 경기 결과는 BC팀의 압승이었다. 활쟁이 하나가 저격을 기가 막히게 하더라.
* * *
먀~
하악!
“응?”
컨테이너로 돌아오자 웬 까만 고양이와 나비가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챙이 넓은 고깔모자를 쓴 검은 고양이는 나를 발견하곤 자기 앞에 놓인 상자를 앞발로 톡톡 건드린다.
“웬 길고양이가 여기까지 왔대.”
그리 말하며 손바닥 크기의 택배 상자를 들어 올리자 낯선 고양이가 대뜸 마나를 뿜어내며 허공에 마법진 하나를 순식간에 그려낸다.
“윽.”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기에 나는 영역을 펼치는 게 고작이었다.
고양이는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하품을 했고, 그러자 마법진에서 잉크가 묻은 깃털 펜이 나타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먀.
이번에는 앞발로 펜을 치는 고양이. 조심스레 깃털을 집어 들자 고갯짓으로 택배를 가리킨다.
[보낸 이 : 중앙마도협회, 시크릿 옥션 한국지점]
[받는 이 : 남만혁]
“…옥션?”
묘한 고양이의 눈치를 보며 상자를 뜯자 안엔 뽁뽁이로 꽁꽁 감싸인 유리병과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제자에게]
[친우의 한을 풀어줘서 고맙네. 자네가 멕시코에서 벌인 사업은 언데드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틀게 될 테지.
유리병 안의 물건은 뜨거운 물에 넣어 먹으면 되네. 고가의 영약은 아니니 부담 없이 섭취하게.]
매저드 교수가 보냈구나. 곧장 유리병을 열려고 했으나 고양이가 내 바짓단을 할퀴고 상자 밑에 깔려 있던 종이 하나를 가리킨다.
“아, 사인해달라고요?”
무영창 따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마법 발현을 견식하고 나니 절로 존대가 나왔다.
먀.
대충 끄적여서 주자 고양이가 고개를 젓고는 바닥에 손톱으로 글씨를 쓴다.
-마나 사인.
마나 사인이 뭐야.
“이렇게요?”
직관적으로 대충 펜에 마나를 주입해 사인하자 까만 고양이님이 눈을 반짝이며 끄덕이고는 종이를 텁 물더니 삼킨다.
먀~
그러곤 꼬리로 허공에 원을 그리자 다른 장소로 이어지는 작은 포탈이 생겼다.
고양이는 내게 손을 흔들곤 구멍에 두 발로 서서 걸어 들어갔다.
뭐야 저거. 무서워.
깜냥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나비는 부풀렸던 몸을 본래대로 되돌린다.
-어, 어딜 마녀 따위가!
포탈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야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며 작은 목소리를 내는 나비.
녀석의 다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저럴 녀석이 아닌데, 많이 무서웠나보다.
아무튼 유리병을 열자 안에는 검은 불꽃이 제자리에서 불타고 있었다.
“신기하네.”
-황금 마탑에서 발견한 이계의 보물이래.
리쳇이 옥션에 올라온 정보를 내 망막에 띄운다. 훑어보니 한 세기에 한두 개밖에 거래되지 않은 엄청난 영약이었다.
최소 거래가가…, 허. 리쳇이 불린 돈으로도 못 사겠어.
-어, 농장주. 빨리 물 끓여.
“왜?”
-개봉하면 최대한 빨리 먹고 명상하라네?
구매자만 달 수 있는 댓글에 그렇게 적혀 있단다.
유리병 뚜껑을 닫고 얼른 정수기 물을 냄비에 받아 버너 위에 올렸다.
물이 끓자 유리병 안에 부었고 검은 불꽃은 한동안 부글거리며 안에서 기포를 발생시키다 천천히 녹아내렸다.
미지근하게 변한 액체를 두어 번 흔든 뒤 입에 털어 넣었다. 맛은 파스와 박하사탕을 같이 먹는 느낌?
-명상.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싹 긁어먹고 삼식이를 불렀다.
“내 마나 바닥날 때까지 매직 미사일 계속 써. 집중해야 될 거다.”
돌곡?
매일 하는 훈련이지 않냐는 삼식이의 사념이 전해져온다.
“오늘은 좀 다를 거 같아서.”
돌곡!
매직 미사일을 날리는 거라면, 자신 있다는 삼식이의 두개골을 쓰다듬고 눈을 감았다.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며 내 안의 마나를 관조하자.
부글.
아주 작은 형태의 검은 불꽃들이 체내를 돌아다니는 게 느껴졌다. 삼식이가 캐스팅을 시작했는지 여유 마나 중 9할이 빠져나갔고, 직후 검은 불꽃들이 맹렬히 기포를 생성해댄다.
기포 방울이 터질 때마다 마나가 차올랐고, 2분이 채 되기 전에 5천에 달하는 마나가 모조리 회복되었다.
‘미친.’
엄청난 효과다.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회복이 가능하다면 이론상 서몬 애시드 좀비나 삼식이의 매직 미사일을 무한대로 뽑을 수 있다.
“윽.”
다만, 몸 안의 수분도 같은 수준으로 증발한다는 게 문제. 우선 급한 대로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자 탈수증이 조금 가신다.
-보스. 찾아보니까 음차원 속성을 가진 영화(靈火)는 그게 첫 거래 같아.
내가 먹은 건 영화라 불리는 희대의 영약이었고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효과가 검증되지 않아 가격이 측정 불가란다.
“미르토스. 삼식아, 더 빨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해변을 구현해 물 위에 몸을 띄우고 삼식을 닦달하자 마나의 소모와 회복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다.
‘된다!’
모공을 들락이는 바닷물을 태우고 마나를 뱉어내는 불꽃들. 수증기와 소금 가루가 날리는 게 조금 기묘한 광경이기는 하나 마나 회복량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눈을 반개하자 하늘을 빼곡히 뒤덮은 매직 미사일들이 보였고 처음으로 삼식이가 버거워하는 게 느껴졌다.
소모와 회복이 안정적으로 진행되자 말을 할 여유가 생겼고, 내 옆에서 열심히 매직 미사일을 생성하는 삼식이에게 응원을 건넸다.
“일당 두 배.”
돌, 돌곡!
요즘 삼식이는 하루에 만 원을 받는다. 전에 그 돈으로 뭐 하나 보니 슈퍼에서 요구르트를 사서 몸에 바르더라. 이유를 물으니 나만 알고 있으라며 뼈에 좋다는 사념을 보내곤 돌돌 웃었다.
아무튼 최근엔 굴이 최고라는 이야길 들었는지 그걸 노리고 돈을 모으고 있다.
금융치료 덕에 삼식이의 퍼포먼스가 정상을 되찾자 다시 눈과 입을 닫고 명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저 멀리서 리쳇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 눈을 떴다.
내 머리맡에 누운 삼식이는 지금도 무아지경으로 매직 미사일을 생성하고 있다. 여기서 1차로 살짝 불안감이 느껴졌고.
-…노예주. 나는 최선을 다해 깨웠어.
리쳇의 멘트로 확실히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챘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카데미 상주 히어로 수십 명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남만혁 학생. 진정하세요!”
“당장 저걸 해제해라!”
“원하는 게 뭐냐!”
팀장들이 방패 뒤에서 내게 소리쳐댔고 영문을 모르는 나는 대다수의 시선이 닿아 있는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어우야, 장관이네.”
어느 날 일어났더니 태양과 같은 빛 덩어리가 하늘에 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심지어 그 색이 보랏빛이라면?
마운틴 짐 나무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니 다행히 아직 오전 강의가 시작되기 전이다.
나는 해변 구현을 해제하고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로 풀었다.
“남만혁!”
긴장한 기색의 히어로가 속박포를 내게 겨눈다.
“흉한 거 좀 치워요. 뭔 일을 내려면 진작 냈지. 저건 사고니까 기다려 보쇼.”
어푸, 어푸.
마운틴 짐 수돗가에서 대충 얼굴과 입을 헹구고 컨테이너로 들어와 마저 씻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다시 위를 보자, 빛 덩어리는 여전하다.
“삼식아, 그만.”
그제야 삼식이가 안광을 꺼트린다.
“고생했다. 참, 생굴 주문해뒀으니까 오후에 올 거야. 일어나면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어.”
돌…곡!
삼식이를 돌려보내자 속박포를 내리는 히어로.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보랏빛 구체를 가리켰다.
“아저씨들. 저거 좀 꺼림칙한데, 치워줘요.”
“네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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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