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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72화 (72/201)

<72화>

홀리

스으으….

후우우….

이른 아침. 각종 시약병이 가득한 방의 중심에 앉아 있는 노인. 놀랍게도 그의 호흡에 맞춰 주변 공간이 심장처럼 박동한다.

띵동.

기억이 시작되는 나이부터 동이 트는 시각이면 늘 명상을 해온 마법사, 매저드는 교감에게만 전달한 긴급 호출기에 신호가 들어왔음을 인지했으나 눈을 뜨지 않았다.

수십 분 후. 최근 제자의 성으로 이름이 바뀐 산 위로 해가 보이고 나서야 자세를 풀고 콜을 받는 매저드.

“자네가 이 시간에 웬일인고?”

-선배님께서 아끼시는 제자가 사고를 쳤으니 수습 좀 해주시지요.

“허허, 미국의 부패 히어로들을 홀로 처단한 후배님이 처리하지 못하는 사고를, 이 노인네 보고 해결하라는 겐가.”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시는지요. 마법은 제 분야가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이번 일을 해결해주시면 시크릿 옥션에 제 이름으로 낙찰받은 건은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1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시크릿 옥션. 매저드는 자신이 움직이면 엔들리스가 나설 게 분명하기에 최대한 행적을 남기지 않고 외부 활동을 하고 있었다.

“프리실라. 잘 듣게. 사실 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네.”

-선배님. 그 핑계는 3년 전에 써먹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번 달에 받으신 건강검진 결과도 제게 있지요.

“자네.”

묵직한 매저드의 음성에 혹시 자기가 놓친 것이 있을까 하여 흠칫한 교감이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 귀엽지 않구먼.”

-…….

“젊을 때는 좀 더 순수했었는데 말이야. 알겠네, 가봄세.”

매저드는 창문의 블라인드를 걷어 교감이 말한 남산 위의 하늘을 보곤 본인도 모르게 중마연합 의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말버릇이 튀어나왔다.

“홀리—”

* * *

어느새 매직 미사일 덩어리는 퍼플 썬(Purple Sun)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게 보이는 지역은 난리가 났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교감의 언론 장악 능력이 대단하여 ‘퍼플 썬은 아카데미 내부에서 진행된 행사.’로 기사가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뭐? 다시 측정해!”

아카데미 내부에는 상주 히어로들이 많고, 그중에는 특성이 폭주한 학생을 전문적으로 맡는 히어로 팀도 있다.

“똑, 똑같습니다. 15kt입니다.”

원자폭탄에나 붙을 법한 단위를 들은 폭주대책반 팀장은 침을 꿀꺽 삼키곤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천막 밖으로 나왔다.

“김 팀장님, 어떻습니까?”

“금 팀장님. 뭘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겉만 저렇지. 겨우 학생이 만든 건데, 고작해야 1t 내외일 게 뻔합니다.”

“하긴, 이제 1학년이라고 듣긴 했습니다.”

팀장 셋의 시선이 모이자 김 팀장은 그들에게 방금 자신이 들은 사실을 전했다.

“15kt입니다.”

농담하지 마라, 장난칠 때가 아니다, 진짜냐, 당장 격리해야 한다. 같은 온갖 반응이 튀어나오는 와중.

“어어. 누가 접근합니다!”

“당장 떨어트려!”

“여기는 남 마운틴, 퍼플 썬에 비행물체 접근 중. 확인 바람.”

-확인 중…, 그랜드 위저드 매저드. 반복한다. 퍼플 썬에 접근 중인 비행물체는 그랜드 위저드 매저드 님이다.

그제야 딱딱하게 굳어 있던 팀장들의 얼굴이 풀어진다.

매저드는 매직 미사일로 만들어진 덩어리를 흥미롭게 관찰하다 마법봉을 내리긋는다. 퍼플 썬이 비스듬히 잘려 미끄러지자 매저드는 드러난 내부에 자신의 마력을 투사해 얽히고설킨 마나들을 풀어 자연으로 되돌렸다.

와아아아!

팀장들은 물론이고 각자의 장소에서 위기를 인지했던 모든 이가 퍼플 썬의 소멸에 환호한다.

사람들이 마운틴 짐에서 소란을 떠는 사이 느긋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남만혁은 삼식이가 만들어둔 덩어리가 사라져 있자 방긋 웃으며 근처에 있던 김 팀장의 팔을 두드렸다.

“이야, 고생 많으셨네. 수고들 하세요. 저는 강의 들으러 갑니다.”

커다란 해골 말을 소환해 그것의 등에 눕는 남만혁을 본 몇몇 히어로가 분노해 나서려 했으나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 김 팀장이 급히 만류했다.

“놔요! 저놈 마빡에 꿀밤이라도 먹여야겠으니까!”

모두 퍼플 썬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간과한 사실을 언급하는 김 팀장.

“퍼플 썬이 한 번만 뜨라는 법이 있습니까? 괜히 사춘기 학생 자극하지 말고 한 살이라도 많은 금 팀장이 참으세요.”

“으아아!”

* * *

모의 빌런 격파전. 오늘의 빌런은 추첨으로 결정되었고 소구경이 당첨을 뽑았다. 빌런에게 주어진 상황은 1시간 버티기.

A반은 낙관했다. 소구경의 특성은 건 마스터. 총은 강하고 편리하지만, 소리나 화약, 강선흔 같은 많은 흔적을 남긴다.

자칼과 네로는 거리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자신 있게 정찰을 나섰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음으로 날아온 고무탄을 후두부에 맞고 탈락 판정을 받아야 했다.

당황한 A반은 상의 끝에 총을 버틸 수 있다고 판단되는 퀸과 마가렛이 선두에 서서 소구경을 추적. 그러나 소구경은 항상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견제 사격만 날릴 뿐 쉽게 잡혀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없어.”

탄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퀸이 쇄도해도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뭐지? 탄이 휘어서 날아오는 것도 아닐 텐데.”

도슨 칠링의 중얼거림을 들은 모두가 고개를 번쩍 들며 탄성을 뱉는다.

“그거다!”

이후 소구경의 탄이 날아오자 방사형으로 돌진. 칠링 남매와 플라주가 팔과 다리에 탄을 맞고 탈락하였으나 퀸이 소구경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A반은 스위프트가 당첨을 뽑아 빌런이 되었고 그는 아슬아슬하게 염력의 제어가 먹히는 곳까지 부상해 F반을 괴롭힐 계획이었다.

하지만 스위프트의 작전은 정말 의외의 인물에게 막혔는데.

“호로로록!”

염력과 바람을 타고 공격하는 쇠구슬을 클린에어가 청소기처럼 전부 흡입해버린 것.

우물거리던 그는 이내 기계로 된 자신의 배를 열어 쇠구슬이 담긴 종량제 봉투를 꺼낸다.

도수정이 다시 스위프트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닐까 우려하자.

“봉투에 들어간 물건은 한동안 내 통제하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쇠구슬을 빼앗긴 스위프트는 당황하지 않고 고도를 낮춰 날카로운 바람을 쏘아내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고 이는 도수정의 단절과 곽재우의 정지 공간, 블리딩블러드의 피 방패에 의해 막혔다.

그러나 바람처럼 이동하며 칼날을 날리는 스위프트의 공격을 전부 대응하기는 어려웠고 결국 빈틈을 노려 자신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칸탄테를 탈락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후 마인 트래퍼와 버추얼박스가 합작해 꽤 규모가 큰 함정을 만들었으나 찜찜함을 느낀 스위프트는 아예 거리를 벌리는 것으로 이들의 함정을 무마시켰다.

“3분 남았습니다.”

데커드 교수의 공지에 F반 아이들이 조급해졌다. 급히 움직임이다 보니 삼각형을 이루던 진형이 흔들렸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스위프트가 맹공을 퍼부어 도수정과 클린에어를 무력화하는 데 성공.

이어 진영 한중간에 있던 쇠구슬이 자유를 되찾았고 사방으로 퍼져 F반을 타격했다.

쇠구슬 봉투를 들고 있던 트래퍼가 가장 먼저 탈락 판정을 받았고 이어 F반이 줄줄이 당하는 와중, 남만혁은 두식과 블랙 팽으로 뼈 돔을 만들어 살아남았다.

“내가 예전에 반세기 전에 유행했던 게임을 해봤거든?”

“게임?”

“전략 시뮬레이션이었는데. 인간 종족이 벙커에 들어가서 총이나 화염 방사기를 갈겨대면 달려드는 괴물들이 싹 녹더라고.”

“그래서?”

“재밌어 보였다는 이야기지.”

이후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고 삼식을 소환한 남만혁은 작은 틈으로 보이는 스위프트를 향해 빙긋 웃은 후 매직 미사일을 개틀링처럼 쏘아 보냈다.

매직 미사일의 속도와 스위프트의 이동 속도가 비슷한지라 유효한 타격 없이 시간이 끝났다. 빌런 측의 승리였다.

애초에 아이들의 성장이 목적인 남만혁이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아 패배한 것이었으나 F반은 ‘남 교수는 원래 그런 놈이지.’라며 누구도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모두 고생했습니다. 방심은 히어로의 최대 적입니다. 그리고 진형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우세요. 이상입니다.”

데커드의 짧은 비평과 함께 오전 강의가 끝나고 식사를 마친 뒤 강의실로 조금 일찍 간 남만혁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매저드를 만났다.

“자네는 스승을 너무 부려 먹는구먼.”

“죄송합니다.”

“전혀 죄송한 얼굴이 아니네만. 좋네, 그래서 얼마나 늘었는가.”

마나를 늘리는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매저드가 묻자 남만혁은 숨김없이 답했다.

“10만 정도 됩니다.”

10만.

언데드 하나에 100마나그램이 필요하니 작정하면 천 명의 언데드와 계약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 네크로 마탑 기준으로 중급 마법사의 평균 마나량에 해당하며 마법 가문에서 태어난 적통 계승자가 20대 중반은 되어야 도달하는 마나량.

이를 기발한 방식으로 단숨에 따라잡은 남만혁을 기특하게 생각한 매저드가 껄껄 웃었다.

“축하하네.”

“다 스승님 덕입니다.”

“무얼, 자네의 노력이지.”

“그럼 그런 거로 하죠. 그런데 매일 이렇게 늘진 않을 거 같습니다.”

“그럴 걸세. 지금껏 발견된 모든 영화는 첫 명상에서만 마나를 대폭 늘려줬으니.”

“그게 효능의 전부인가요?”

“그렇게 알고 있네.”

“마나 재생량이 급격히 늘어난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습니까?”

“내가 알기로 없네. …자네?”

남만혁은 눈을 감고 내부를 관조해보니 여전히 검은 불꽃들이 명상하기 전과 같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매저드에게 알렸다.

“예에. 아무래도 스승님께서 주신 영화는 좀 특별한가 봅니다.”

“직접 보는 게 빠르겠군. 어제 명상할 때처럼 해보겠나?”

매저드는 만에 하나를 대비해 영역을 펼쳐 강의실을 자신의 마나로 덮었다.

“알겠습니다.”

삼식이를 부르고 해변을 구현해 드러누운 남만혁이 매직 미사일을 고속으로 찍어내기 시작하자 매저드의 눈이 반짝인다.

“그만. 되었네.”

드물게 흥분한 기색의 매저드가 생각을 정리한 다음 입을 열었다.

“자네는 의지가 정말 강하구먼.”

갑작스레 튀어나온 매저드의 영문을 알 수 없는 칭찬에 고개를 기울이는 남만혁.

“알다시피 보통 마법사는 수식과 주문으로 마법을 발현하네. 나를 포함한 마법사 전원이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마법’을 쓴다고 생각하지.”

“그렇겠죠?”

“자네는 아니잖나.”

아이에게서나 볼 법한 장난스러운 미소가 매저드의 입가에 매달린다.

“네, 뭐. 네크로 마탑의 파트너에게 그런 소리를 듣기는 했습니다. ‘당신은 마법을 구현하는 거 같다.’라고요. 제가 구현계라 그런가 봅니다.”

“세상에 구현계 각성자인 마법사가 자네뿐인 줄 아는가.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네.”

“으음.”

남만혁이 고민하는 듯하자 매저드가 말을 이었다.

“자네는 마법을 신비의 대상이 아닌 포크나 나이프 정도로 여기고 있진 않나?”

“에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매저드의 추측은 정확했다.

“나는 마법에 인간 이상의 지성이 깃들어 있다고 믿네.”

“그렇습니까?”

“세상은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바뀌네. 내가 웃으면 자네도 웃고. 내가 울면 자네도 슬퍼하지.”

“동의합니다.”

“마법도 그러하네. 자네가 하찮게 여기니 마법도 자네를 하찮게 여긴 게야.”

“어…, 그러면 안 좋은 거 아닌가요?”

“허허, 필요에 의해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도 썩 나쁘지 않지 않나. 물론 이러한 일이 가능하려면 처음에 말했듯. 엄청난 의지력이 요구될 게야. 행성의 수명과 함께해온 법칙과 거래를 하는 셈이니.”

“그러면….”

“자네는 마법을 그 해변처럼 구현하면 되네. 수식과 영창은 필요 없겠지. 발동되는 원리는 알아야겠지만.”

하여, 남만혁은 포이즌을 떠올렸고 대량의 마나가 소모되더니 허공에 검녹색 구체가 구현되었다.

매저드의 말처럼 된 것이다. 이에 남만혁은 빌런으로 활동할 당시에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를 입에 담고 말았다.

“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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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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