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슬럼가의 백인 (2)
총을 잡은 쪽의 어깨가 움직이기에 재빨리 굴러서 피했다. 피 웅덩이에 몸을 던지는 바람에 전신이 붉게 물들었다.
“관둬.”
다시 방아쇠를 당기려던 놈을 노려보며 나지막이 말하자 움찔하며 총구를 내린다.
리쳇의 위성 뷰를 보면 71번가 인근에 집결하는 병력이 점점 늘고 있다. 총성이 울린 횟수가 심상치 않으니 대응팀에서 방법을 달리한 거겠지.
다소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생존자를 확보하는 식으로 말이다. 미국 애들이 이런 거 잘하거든.
“너, 이대로면 빌런은커녕 아무것도 못 하고 죽는다.”
리쳇이 찍은 사진을 홀로 보드에 띄워 놈에게 보였다. 유명 히어로들과 다수의 무장병력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빌런 대응팀에서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짐작이 가는 광경이다.
“인질을 죽여서 꺼지라고 하면 돼!”
“멍청한 놈. 인질은 살아 있어야 가치가 생긴다. 그리고, 만약 죽였는데도 물러나지 않을 경우엔? 저들이 희생을 각오했다면 어쩔 거냐.”
“으으, 아니야. 겨우 이 정도로…. 썅!”
심각한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신경질적으로 총을 내던진다.
어수룩한 빌런에게 현실을 박아 넣었더니 드디어 놈도 생각이라는 걸 하는 모양이다. 이쯤에서 결정타 하나 날려주면 되겠지.
“슬럼가의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자수해라. 그게 네가 빌린 담보를 갚는 유일한 길이다.”
“씨발…. 담배 있냐?”
“나는 없다만, 저 사람은 있어 보이네.”
경비원으로 생각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꽁꽁 묶인 덩치 큰 흑인의 품을 뒤지자 고급 시가가 나왔고 거기에 불을 붙여 놈에게 건넸다.
후우—
“무기징역이겠지?”
“모범수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요즘엔 빌런 인권을 주장하는 인간들이 많으니까.”
치이이.
담뱃불을 바닥에 고인 피에 지져서 끈 빌런은 대뜸 떨어진 총을 주워 총구를 자기 관자놀이에 댄다. 그러곤 나를 올려다보더니.
“안 말려?”
“겁쟁이 새끼. 뒤지든가 말든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쫄린다. 쟤를 살려서 데려가야 히어로 협회에 크게 요구할 수 있으니까.
당기지 마라. 당기지 마!
간절한 염원이 통했는지 놈은 큭큭 웃으며 금박이 벗겨진 총을 다시 던지곤 노인의 시체로 막힌 문을 억지로 밀치고 나갔다.
“손들어!”
“자수한다. 자수한다고! 쏘지 마! X발놈들아!”
저격수와 히어로들이 순식간에 다가와 놈을 제압해 차량에 싣는다. 나는 은행 내부로 진입하려는 경찰들에게 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떠밀었다.
“이 사람들 출혈이 심해. 당신이 좀 데려가.”
“곧 구급대원이 올 거다. 우리는 내부를—”
“데려가.”
꾹.
경찰의 복부를 금박 권총으로 누르며 말하자 그의 움직임이 멎었다. 눈치를 보며 입을 열려 하기에 재빨리 급소를 걷어차 은행 밖으로 밀어낸 뒤 문을 걸어 잠갔다.
“뭐 하자는 거지?”
“미라클 남!”
“당신 미쳤습니까!”
방금까지 빌런을 기습하기 위해 모인 병력의 대표와 히어로들이 소리 지르는 게 들렸다.
나는 놈이 사용하던 확성기 마이크를 찾아 입에 대곤 짧게 말했다.
“쉿. 10분만 기다려.”
지옥과 천상을 오르내린 인질들이 내가 다가가자 눈물을 줄줄 흘린다. 특히 나이가 많은 이들은 실례까지 한 상태.
“다들 걱정하지 마쇼.”
경비원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풀어줬다. 자유를 찾은 그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나를 슬금슬금 포위해온다.
“거, 댁들 어떻게 해보려는 거 아니라니까. 이보쇼, 영감.”
경비원 바로 뒤에 있던, 꼬장꼬장해 보이는 노인 옆에 앉았다.
“…왜 그러나?”
“뉴욕 슬럼가. 상황이 어때? 내가 지금 시대에 이쪽 사정을 잘 몰라서.”
“최악이다.”
최악. 거기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었고 노인의 구겨진 표정을 통해 얼마나 낙후된 곳인지 또한 예측되었다.
리쳇이 찍어 보낸 사진들도 그렇고. 네크로 마탑의 하층, 고물산과 다름없는 곳. 인간 쓰레기장.
확실히 개선이 필요한 구역이다. 저런 곳을 청소해두면, 조금이나마 그블린의 앞잡이가 줄겠지.
절대, 빌런의 처지가 공감되고 딱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런 곳을 내버려 두는 이유가 뭐요?”
“개선하고 환경을 달리해줘도 다른 곳에 비슷한 형태의 슬럼가가 생긴다. 세상의 경제가 그러하지 않나. 한정된 자원. 누군가 누린다면 누군가는 포기해야 하지. …적어도 여기 시장은 그렇게 생각하더군.”
“그게 슬럼가를 버릴 이유가 되진 않는데. 뭐, 어쨌든 알겠소.”
그때 리쳇이 두 장의 사진을 내 망막에 띄운다. 하나는 뉴욕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이 사람.
-뉴욕 시장의 장인이야.
아하. 왜 진작에 은행을 습격하지 않았는지 알겠네.
“이 노인 빼고 다 나가.”
너무 작게 말했나? 왜 가만히들 있지.
탕!
꺄아악!
총에 들어 있는 마지막 총알을 천장에 쏘자 그제야 우르르 튀어 나가는 인질들. 속박포에 구속된 경비원은 내가 직접 굴려서 밖으로 떠밀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잡으려던 히어로가 있었으나 포이즌을 먹인 영역을 짧게 전개해 마비시켰다.
“댁도 들어와. 싫다고? 흐, 그럼 나대질 말았어야지.”
눈을 좌우로 굴리며 거절 의사를 필사적으로 표출하는 이름 모를 히어로.
딱 봐도 초짜다.
남는 속박포로 히어로를 포박한 다음 노인 옆에 다시 앉았다.
“할배, 뉴욕 시장 장인이라며.”
“나를 이용해 뭔가를 요구할 생각이라면 그만둬라. 소용없다.”
리쳇이 알아보니 시장이랑 사이가 안 좋단다.
소용없기는 개뿔.
이미지로 먹고사는 게 정치인인데, 민간인 인질이 없는 상황에서 사위가 장인을 버린다? 바로 사회적 사형이다.
“그쪽 보고 나서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까 가만히 있으쇼.”
빌런에게 맞았는지 광대에 피딱지가 앉은 그와 마비된 히어로의 얼굴을 증명사진처럼 찍은 뒤 SNS에 올렸다. 저들이 충분히 확인할 시간이 흐른 다음 마이크를 잡았다.
“반갑다. 나는 한국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너네 도와주러 온 남만혁이다.”
“미라클 남.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그분을 놓아주십시오!”
빌런이 떠나서 개입을 할 수 있게 됐는지, 은행 내부 스피커에서 사이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원래 그 빌런 놈만 내보내면 가려 했는데, 하. 이 동네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너무 답답해서 안 나설 수가 없겠더라고.”
“네?”
“슬럼가. 거기는 사람 사는 곳도 아니냐? 왜 인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지금 시장이 당선되고부터 더 심해졌다며?”
“당신 말이 맞습니다. 원하는 걸 말해보세요.”
목소리가 달라졌다. 사이렌녀가 아닌 중저음의 남자.
“교육.”
“교육이라면?”
“저들 스스로 슬럼가를 변혁시킬 수 있게. 공부시키라고. 단기간에 배워 써먹을 수 있는 기술도 좋고.”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그러니 인질은 풀어주시고—”
탁.
음?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 내 손에 쥐어진 마이크를 뺏어 가더니 호통친다.
“이 몸은 인질이 아닐세! 그리고 이 젊은이의 주장은 합당하네. 칼스. 듣고 있는 거 안다. 당장 고등 교육기관을 짓고 교사를 보내게. 호위와 보안은 내가 해결할 테니.”
스피커는 침묵했고 한참 후에야 낯선 음성이 들렸다.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그만 나오시지요.”
-시장이야. 지금 생방송 중. 그리고 이건 뉴욕 슬럼가에 시행된 정책 정보들.
리쳇에 의하면 슬럼가를 정화 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늘 있어 왔다. 그 선두에 선 사람이 바로 이 노인. 버텍스 벨소프트. 그는 유명한 민간군사기업의 회장이었다.
-뉴욕 시장은 슬럼가라는 공공의 적을 만들어 헤드라이트 사건으로 인해 분열된 주를 다시 결집시킬 계획이었어.
딱, 멸망하기 전 인류가 하던 짓이다. 그블린이라는 명확한 적이 존재함에도 내부 결속을 위해 사회적 약자를 만들고 고립시켰지.
결과는 그 약자들이 그블린에 투항, 자기들이 속해 있던 집단의 은거지를 불어 헬피엔딩으로 끝났다.
“나가쇼.”
“어린 친구는?”
“나는 아직 할 게 남아서. 훠이.”
파리 쫓듯 손짓하자 눈썹 한쪽을 치켜뜬 노인이 쓰러진 히어로를 한 번 슥 보고는 밖으로 나간다.
‘리쳇. 준비는?’
-언제든지.
내려놨던 마이크를 들었다.
“원하는 게 있다.”
“미라클 남. 당신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한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억지스럽게 이루어져선 안 됩니다. 급조된 정책은 모래성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일단 나오세요.”
아까 그 중저음의 남자다. 아마 협상전문가겠지.
“나는 히어로를 인질로 잡고 있다.”
어벙한 히어로의 입에 마이크를 대자 내가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엉엉 울면서 구해달라 외친다.
“나대서 죄송합니다! 살고 싶어요. 으허허헝.”
어이없는 그 통곡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협상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번에는 원하는 게 뭡니까.”
“전 세계의 파이락사이트가 보관된 위치.”
광물을 채취하면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어디서 캤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보관되다 어떻게 사용됐는지까지.
“그거면 됩니까?”
정부 인사라면 어렵지 않게 조회할 수 있다. 미래 기술로 해킹하는 리쳇 역시 마찬가지고. 그런데 굳이 묻는 이유는 오전에 언급했다시피 이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거기다 생방송 중이란다. 이런 기회를 날려서야 쓰나.
“서류로 작성해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니, 말로 해. 기업명과 창고 위치까지. 전부.”
“알겠습니다. 먼저 로스앤젤레스의 하우메탈—”
장장 한 시간에 걸친 낭독이 끝나자 나는 히어로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얼굴을 보는군요.”
핼쑥한 얼굴의 협상가가 사이렌녀 뒤에서 나타나 웃는다.
“말 안 한 기업은 미국 정부 쪽 기업인가 봐?”
“…글쎄요? 저는 받은 대로 말한 것뿐이라.”
상관없다. 어차피 지금 이 쇼의 목적은 대중에게 파이락시스트의 중요성과 수요를 어필하는 거니까. 당장 검색량만 해도 수천 배로 증가했을 거다.
리쳇은 때에 맞춰 감상용이나 행운을 불러온다는 식의 증명할 수 없는 소문을 흘려 사람들의 구매욕을 부채질했다.
UVZ의 존재는 그블린의 손에 VZ가 넘어갔을 때만 공개할 생각이다. 그전까지는 최대한 확보하고 칼질하기 좋게 도마 위로 올려놓는 게 목표.
철컹.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무섭게 내 손목에 은색의 수갑이 채워졌다. 이후 미란다 원칙이 사이렌녀의 입에서 나왔다.
“같이 서로 가시죠. 큰일은 없을 겁니다.”
그녀의 제안대로 순순히 경찰차에 올라탔다. 완벽한 알리바이가 필요하거든.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슬럼가를 지원하라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라클 남이 설득한 빌런, 스인트 거브가 슬럼가 출신인데. 이것과 관련이 있는지요!”
“시장의 장인과는 어떤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드론들이 따라붙으며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낸다.
원하면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할 수 있었으나 나는 괜찮다고 했고 이들도 내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막지 않는 듯했다.
관할 경찰서에 온 나는 형식적인 조사를 받았고 NYPD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죄로 유치장에 갇혔다.
그러나 스인트 거브를 체포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과 초범인 점을 고려해 소소한 벌금형이 나왔다.
“미안, 너 하루는 여기 있어야 해. 우리 대머리 서장이 뉴욕 경찰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대서.”
사이렌녀가 작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고 나는 쿨하게 받아들였다.
“괜찮아. 아카데미에 말만 좀 해줘. 밥도 맛있는 거로 넣어주고.”
“그 정도야.”
이후 안정을 되찾은 인질과 그들의 가족이 찾아와 내게 감사 인사를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양 흘려 넘겼다. 그리고.
“저, 고맙습니다. 우리 형 살려주고 도와주셔서.”
슬럼가의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오더니 꼬깃꼬깃한 돈을 내게 건넨다. 이들의 가장 소중한 것일 터다. 나는 그걸 받아 품에 넣으며 말했다.
“오냐. 공부 열심히 해라. 이건 형이 좋은 데 잘 쓸게.”
“네!”
마지막으로 시장이 멀리서 나를 살피곤 돌아갔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고, 나는 사이렌녀를 비롯해 몇몇 경찰의 박수를 받으며 유치장을 나왔다.
정오. 가장 햇빛이 따가운 시각.
“쏴.”
-라져.
다음 날.
수용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던 스인트 거브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아주 짤막하게 뉴스를 탔다.
나는 컨테이너에서 그 뉴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쓰레기는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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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