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77화 (77/201)

<77화>

봉사활동 (2)

[멜론 종합병원]

[새크라멘토 동물원 임시 진료소]

[외과 전문의 마를린 베이커]

동물원 주차장에 세워진 하얀색 천막 안은 의사와 간호사가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흐아아아암.”

“마를린 선생님. 입에 벌레 들어가겠어요.”

대규모 공원과 동물원 옆이다 보니 날벌레의 숫자가 어지간한 목장보다 많다.

“뭐 어때. 최상위 포식자답고 좋잖아.”

“환자분이 보면 안 좋게 생각하세요.”

“내가 아쉽나. 자기들이 아쉽지. 그리고 여길 누가 온다고.”

“선생님!”

새크라멘토는 캘리포니아의 주도이나 이곳만큼은 조용하다. 그럴 것이 바로 어제 테러범의 협박이 있어 인근 일대가 대피했기 때문.

이들은 테러 예고 지역의 한중간에 자리 잡은 셈이다.

“알았다, 알았어. 그런데 오늘 오기로 한 히어로는?”

“히어로가 아니라 아카데미 봉사자로 바뀌었다네요.”

“허이고. 고것이 나를 죽이려고 아주 작정했구나.”

“어지간한 히어로보다 나은 아이라니까 기다려보죠. …아, 저기 오네요.”

검은 머리칼의 검은 눈을 가진 사내가 하얀 치타가 그려진 팸플릿으로 햇빛을 가리며 천막을 향해 걷는다.

홀로폰에 띄워둔 위치를 재차 확인한 소년, 남만혁은 한숨을 푹 쉬고는 자신과 눈이 마주친 간호사에게 물었다.

“케이트 씨?”

“네, 제가 케이트입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남만혁은 실링을 통해 발급받은 봉사활동증과 캘리포니아주 내에서만 임시로 활동 가능한 히어로 면허를 내밀었다.

“한국인이시네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어요. 들어오세요. 천막이 좁아도 있을 건 다 있답니다. 아보카도 주스 한 잔 드릴까요?”

번역 앱이 아니라 어색한 한국말로 인사하는 간호사에 살짝 놀란 남만혁이 드물게 웃으며 인사를 받는다.

“주시면 잘 마실게요. 케이트 씨. 한국말을 잘하시네요.”

“사실 한국분이 오신다고 해서 조금 연습했어요. 괜찮았나요?”

“지금 현지에 가셔도 되겠는데요?”

입을 가리고 살포시 웃은 간호사가 막 남만혁에게 얼음을 띄운 아보카도를 건네고 의사 마를린을 소개하려는 순간.

쾅!

길 건너편으로 보이는 초등학교가 폭발했다. 그 여파로 천막은 한순간에 뒤집혀 동물원 안쪽으로 날아갔고 철근이 박힌 콘크리트 파편이 하늘을 날았다.

비처럼 쏟아지는 흉기들을 올려다보던 마를린과 케이트는 이 재난을 소년이 대처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기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몸을 던져 소년의 몸을 덮었다.

두 여성 아래 깔린 남만혁이 중얼거렸다.

“…이래서 버릴 수가 없다니까. 삼식아.”

돌곡!

“두 분은 숨 참으시고.”

번역 어플을 켜 의도를 전한 남만혁은 해변의 바다를 구현해 수중으로 빠져들었다.

당황해 버둥댈 것을 예상한 남만혁이 두 사람의 목을 팔로 꽉 끌어안았으나 2m 이상 내려왔음에도 조용하다.

보글보글.

가슴팍에서 서로 입 모양으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독순술까지는 아니지만, 대충 읽어보니 저 폭발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피해를 가늠하는 듯했다.

‘대단하네.’

남만혁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세상 모든 의사가 이렇게 침착하고 이타적이면 응급환자들의 생존율이 수직으로 상승하지 않을까 하는 잡생각을 하며 수면으로 올라왔다.

폭발로 인해 추락한 모든 콘크리트 덩어리는 매직 미사일에 맞아 먼지로 바뀌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고생했다.”

돌곡!

새벽 명상에 비하면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라며 투정이 슬쩍 담긴 사념을 남만혁에게 전한 삼식은 엄지를 세우곤 돌아갔다.

푸우우. 콜록, 콜록!

“흐어어, 죽는 줄 알았네. 케이트. 괜찮아?”

“후욱, 숨이, 후. 좀 차는 거 말곤 이상 없어요. 선생님은요?”

“멀쩡해. 그보다, 만혁?”

언데드를 꺼림칙하게 느끼는 건가 싶어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하던 만혁은 이어지는 마를린의 말에 벌리던 입을 다물어야 했다.

“고마워. 살려줘서.”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두 분이 진짜 히어로네요.”

미각성자가 각성자를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행위는 절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저들은 정말 목숨을 걸어 자신을 살리고자 했다. 그들의 심성에 감탄한 남만혁은 그들을 가벼이 대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의향을 물었다.

“의료 천막이 박살 났는데, 여기서 환자를 받을 수 있습니까?”

“최소한의 도구는 항상 휴대하고 다니니까, 응급처치 정도는 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다친 환자가 없나 찾아보고 싶고. 하지만 네 의견을 따를게. 히어로.”

“저도 마를린 선생님과 같은 의견이에요.”

과거, 내전 중인 국가에 의료지원을 나갔었던 둘이었기에 이럴 때는 히어로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생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대기하시죠.”

초등학교가 폭발함과 동시에 리쳇이 인근 지역의 피해 현황과 생존자, 폭탄의 종류를 남만혁에게 알렸고. 이를 확인한 그는 우선 둘을 그나마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동물원 안으로 데려왔다. 주변에 건물이 없고 시야가 트여있었기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다만, 테러 경보 이후 사람만 급히 대피시켰기에 동물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굶어 사나워진 맹수가 움직이는 고깃덩어리를 노리고 다가왔다.

크르릉!

수풀 속에서 눈이 충혈된 암사자 무리가 달려들었으나 남만혁이 미리 포이즌을 매개로 전개해둔 영역에 의해 에프킬라를 맞은 모기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그 광경을 놀랄 겨를도 없이 지켜본 두 사람은 역시 히어로는 히어로라며 재잘대던 중, 하늘에서 돌연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꺅!”

“후우우—”

전신을 탈의한 건장한 몸의 사내는 반타블랙에 가까운 새까만 피부를 가졌으며 숨을 내쉴 때마다 입에선 검은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리쳇의 인물 조회를 통해 이 자가 폭탄 테러리스트 용의자라는 걸 알아낸 남만혁은 즉시 움직여 놈을 영역 안에 넣었으나 어떠한 피해도 줄 수 없었다.

독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저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초등학교 폭파한 놈이 너냐?”

여자 둘과 소년 하나를 번갈아 보던 전직 군인이자 현직 테러리스트인 익스더스트는 소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후욱—

익스더스트 입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 나온 검은 가루는 뱀처럼 움직이더니 남만혁을 둘러싸고는.

딱.

핑거스냅 소리가 울렸다.

쾅!

수십 줄기의 검은 줄기가 붉게 타들어 가더니 사람 하나는 완전히 연소시켜버릴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불어닥친 열풍이 의사와 간호사를 악어 우리까지 날려버렸다. 다행히 악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 무사할 수 있었고 둘이 안도하고 자욱했던 폭연이 사라질 무렵.

남만혁이 서 있었던 곳에는 찰랑거리는 검은 웅덩이만 남아 있었다.

“아마추어 따위가.”

이를 핏물로 착각한 익스더스트는 건방진 눈빛을 가진 소년이 죽었음을 확신하고 쓸데없이 사람을 살려대는 의사를 죽이기 위해 몸을 돌렸다.

“설마 그 아마추어가 나냐?”

미르토스 해변을 소규모로 구현해 회피했던 남만혁이 물에 젖은 모습으로 나타나자 얼굴을 일그러트린 익스더스트가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벌린다.

“폭발력이 번의 절반 수준이네. 야, 근데 그 나이 먹고 홀딱 벗고 다니면 안 쪽팔리냐.”

화약인간. 익스더스트는 14살에 각성한 후 10년을 이런 몸으로 살아왔다.

물과 습기에 취약한 건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미약한 전기신호에도 폭발하는 민감한 화약인간이 되는 바람에 부모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가 끊어졌다.

정확히는 끊김 당했다.

군대라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줄 것이라 믿고 입대했으나, 연구소 지하실에 갇혀 몸이 난도질당했다.

어느 날 극한의 상황에서 재각성을 하게 됐고 육체를 구성하는 화약을 좀 더 자유롭고 강하게 다룰 수 있게 됐다.

그날 연구소를 폭파하고 탈출한 뒤 자신을 연구소로 발령내는 것에 참여한 모든 인물을 죽였다.

그때 깨달았다. 내 몸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이래야 누구도 나를 병신으로 여기지 않는구나!

복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중, 고등학교에서 자신을 놀렸던 연놈을 죽였고 그들이 외롭지 않게 가족도 함께 곁으로 보냈다.

“익스더스트!”

간호사가 비명같이 소리친다.

빌런, 익스더스트.

자신을 실험명으로 부르는 이들의 얼굴이 공포로 젖어 들 때면, 언제나.

“유쾌하지.”

“유쾌? 이거 답 없는 변태 새끼네.”

남만혁은 리쳇이 읊어주는 그의 과거 이력에는 조금도 흥미가 일지 않았다. 사람이라도 죽이지 않았으면 빌텔에 처넣어 갱생시키겠는데, 놈은 이미 피 맛을 봤다.

혹여 의료진에게 피해가 갈까 하여 신속하게 미르토스 바다를 넓게 구현해 놈을 물속에 빠트릴 작정이었으나.

“얕은 수작을.”

발아래로 폭발을 일으켜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익스더스트.

“씁, 귀찮게 하는구만. 내려와 이 비겁한 놈아.”

“무능을 자랑하는 재주가 있구나, 꼬마야.”

히어로가 가장 예민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 잘 아는 익스더스트는 히어로를 등지고 의사와 간호사를 향해 날았다.

사거리 안에 들어오자 즉시 화약뱀으로 목을 휘감으려 했으나 갑자기 코앞에 녹색의 액체 덩어리가 나타나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큭.”

“마를린 씨, 케이트 씨. 지금부터 보는 건 모두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다크 넥서스로 활동할 때만 쓰려던 포이즌을 너무 대놓고 사용하고 말았다.

아무리 본캐, 부캐 나누는 게 중요하다지만, 저런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내린 결단.

“네.”

“알았다.”

“리쳇, 안개. 넥서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게 깔리는 안개. 이후 거대한 함선이 남만혁의 후방에서 등장한다.

“…다크 넥서스?”

히어로에게 쫓기는 빌런은 언제나 최신 소식에 빠삭하다. 익스더스트 역시 멕시코의 모든 갱단을 쓸어버린 다크 넥서스의 위용을 알기에 이제까지와는 달리 긴장한 기색으로 거대한 함선을 살핀다.

“대위. 주포 조준.”

예 써!

함선 저 위 어딘가에서 들려온 우렁찬 목소리. 직후 수십 개의 포신이 익스더스트를 조준한다.

“폭발을 즐기는 거 같은데, 도와줄게. 아주 짜릿할 거야.”

육체의 일부를 태워도 금방 재생되는 익스더스트였으나 지금 꼬마가 말하는 폭발이 무엇인지 직감한 그가 황급히 이탈하려 했으나.

“발포.”

천지가 진동하는 어마어마한 충격과 발포음이 대기를 강타했고 익스더스트가 무언가에 맞았다고 스스로 인지했을 땐 이미 한 줌의 잿가루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군대의 가혹한 실험을 통해 막강한 재생력을 가진 익스더스트는 잿가루가 되어서도 아직 죽지 않은 상태였고, 꼬마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놓아주마.’

익스더스트는 이 순간만 넘기면 꼬마를 철저히 조사해 놈의 지인과 가족을 잔혹하게 죽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포이즌.”

‘컥!’

강력한 산성에 의해 약해진 육신이 완벽히 분해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익스더스트가 폭발을 일으키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포이즌 마법만큼은 그랜드 위저드급인 남만혁이었기에 소용없는 저항이었다.

이후 리쳇에게 화약의 성분이 완전히 변질되었다는 보고를 듣고서야 포이즌을 해제한 남만혁은 자신을 멍하게 바라보는 두 여성을 발견하곤 어깨를 으쓱였다.

“세상 참 흉흉하네요. 저런 변태가 멀쩡히 돌아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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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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