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78화 (78/201)

<78화>

루트 커토스의 수사

남만혁이 데커드 교수에게 봉사활동에 관한 소식을 듣고 있을 무렵.

NYPD의 경감, 루트 커토스는 종이 한 장을 미심쩍게 쳐다보는 중이었다.

“샤렌, 이거 확실해?”

경감 승진 기념으로 가족과 장기 휴가를 다녀온 루트 커토스는 밀려있던 결재를 하던 중, 스인트 거브 사망 사건 발견하곤 담당이었던 샤렌을 불렀다.

“예? 아, 그거. 경감님 안 계시는 동안 FBI 왔다 갔습니다.”

“또? 그 새끼들은 여기가 지들 안방인 줄 아나. 칵, 퉤! 그래서 뭐라던?”

“볼트에서 무기 개발하다 실수한 거니까, 그렇게 알고 덮으랍니다.”

하지만 수사 종결은 엄연히 경감의 권한.

“엿 먹으라고 해. 다시 조사한다. 내가 볼트에 가볼 테니까, 샤렌. 네 팀은 사망 현장 긁어와. 감식팀에는 내가 협조 요청해두마.”

“예 써!”

모든 흔적과 단서를 박박 긁어 오라는 경감의 명령에 샤렌은 신나서 팀원을 데리고 경찰서를 나섰다.

루트 커토스는 FBI가 움직인 만큼 이 사건의 이면엔 꽤 무거운 사실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무장을 완비한 후 볼트사(社)로 향했다.

얼마 후. 지구본을 형상화한 거대한 건물 앞에 도착한 루트는 다가오는 경비원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NYPD의 루트 커토스 경감이오, 국장을 만나러 왔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차 안 조수석에 놓인 유탄발사기를 발견한 경비원이 긴장하며 총집에 손을 올리다 루트의 신분이 확인되자 태도를 바꿔 친절하게 국장실까지 안내했다.

똑똑.

“열려있으니 들어오십시오.”

얼마 전 국장으로 부임한 루덴은 퀭한 몰골로 루트를 맞이했다.

“괜찮으십니까?”

“후우, 루트 커토스 경감님. 제가 전임 국장이 싸지르고 튄 폭탄을 치워야 해서,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간략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인트 거브를 죽인 게 볼트라는 뉴스가 나자 전임 국장은 경질되고 루덴이 국장에 임명됐다.

그 통지를 새벽 조깅할 때 들은 루덴은 사람이 쳐다보건 말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러댔다.

그간 국장의 아내를 유혹해 열심히 비리를 빼돌리던 고생이 모두 헛수고가 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런 여자는 만나는 게 아니었다며 한탄하는 것도 잠시뿐. 인수인계를 받으며 드러난 비리에 전임 국장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열 번도 넘게 한 그였다.

“이해합니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스인트 거브를 죽인 위성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그간 경찰들에게 시달렸던 기억이 떠올라 욱하는 감정이 치고 올라온 루덴이었으나 국장이라는 직위가 가진 무게를 떠올리며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건 저희 위성이 아닙니다.”

볼트에서 아무리 부정해도 증거는 넘쳐난다. 인근에서 우주 쓰레기를 회수하던 이들과 같은 궤도를 돌던 위성이 찍은 사진, 영상이 지금도 너튜브를 떠돌고 있다.

“그러면 어디 위성입니까?”

“모릅니다.”

수첩을 꺼내 루덴 국장의 말을 적으려던 루트 커토스가 눈만 위로 치켜떠 그를 쳐다본다.

“볼트의 힘만으로는 전임 국장이 남긴 폭탄을 처리하기 어렵나 봅니다?”

FBI의 도움을 받기로 했냐는 루트의 물음에.

“어떤 식으로든 눈앞에서 빨리 치워버리는 게 마음이 편해서요.”

루덴은 네 말이 맞으니까 그만 꺼지라고 답했다.

“그래서 없는 죄를 뒤집어쓰시겠다는 겁니까?”

“필요하다면.”

루트는 루덴이 스인트 거브 사망 사건을 통해 이득을 본 자라 판단하고 곧장 일어나려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짐작되는 위성이 정말 하나도 없습니까?”

없다고 답하려던 루덴은 순간의 변덕으로 볼트의 치부나 마찬가지인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플래싱.”

“플래싱이요?”

말하고 아차 싶은 루덴이었으나 이미 엎지른 물이었기에 플래싱에 관한 정보를 경감에게 전달했다.

최초 관측은 반년 전이고 대한민국의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내의 산에 빔을 발포했었다는 것과 자기 돈을 먹고 잠수탄 용병들이 괘씸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다 그 산이 누군가의 사유지가 됐다는 것까지.

수첩에 용병이라는 단어를 쓰려다 만 루트는 자신의 치부가 될 수 있는 정보를 서슴없이 하는 루덴을 힐끔 봤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런 것까지 말씀하셔도.”

“예, 조사 의뢰를 한 것뿐인지라.”

루덴은 아직도 자신이 납치가 아닌 조사 의뢰를 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것도 불법입니다만, 아무튼 알겠습니다. 협조 고맙습니다.”

피로에 취해 더 이상 말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던 루덴은 그의 인사를 받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 * *

하나 보육원.

“미국 경찰이라고요?”

머리에 쓴 갈색 중절모를 들어 놓으며 헌신하는 이에게 예를 표한 투크 커토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아카데미를 찾았으나 방학이라는 벽을 만나 좌절했다.

FBI의 의사를 거스르는 이상 본국에서 정보 지원을 해줄 리 만무했기에 현지 탐정이라도 고용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반쯤 장난으로 너튜브에 야산의 주인인 ‘남만혁’이라는 이름을 넣으니 ‘하나 보육원TV’라는 채널이 나와 곧장 달려왔다.

“예, 제 관할의 사건을 해결해준 만혁 군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거짓말을 잘 못 하는 루트 커토스다운 어색한 핑계였으나 만혁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소민은 그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들어오세요. 얘들아! 손님 오셨어. 나와서 인사하렴.”

형을 졸라 산 러닝머신을 타던 태양이 먼저 튀어나와 소민 앞에 서선 루트 커토스를 면밀히 살핀다.

“하얀 은사님?”

“아니, 만혁이 보러왔대.”

“누나. 연락 없이 갑자기 온 사람은 집에 들이지 말라니까.”

남만혁이 뉴스를 타기 시작한 이후로 종종 이런 사람이 보육원을 찾곤 했다. 대부분은 기자였고 가끔 일반인이나 히어로가 와서 기부를 하고 갔다.

“씁, 김태양.”

“…알았어.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만혁 군은 없나 봅니다.”

“네. 해외 봉사활동 간다 하더라고요. 어딘지는 저희도 모르고요. 아, 그레이스 씨라면 알 수도 있겠네요. 잠시만요.”

“멜롱 누나 부르게? 내가 갈게.”

더 혼나기 전에 자리를 피하고 싶었던 태양이 재빨리 손님방으로 달려가 문을 두들겼다.

“멜롱 누나, 소민 누나가 찾아!”

“언니가요? 그리고 저는 멜론입니다. 김태양.”

한국어로 언니라 말한 그레이스가 방에서 나오자 루트 커토스는 남만혁에 대해 상세히 물었다.

“외모요? 잘생긴 건 아니지만, 준수하죠. 아, 이 사진은 각도가 이상해서 못 생기게 나온 거고요. 성격은, 지켜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특성은 해변을 구현하는 능력이고요.”

생각과는 다른 그레이스 멜론의 묘사에 루트는 펜 뒷부분으로 머리를 긁으며 질문을 이었다.

“혹시 평소 위성에 대해 말한 적은 없었습니까?”

그레이스는 과거, 헤드라이트 사건에서 자신을 도왔던 ‘리쳇’이라는 인공지능을 떠올렸다.

그 AI가 위성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개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루트 커토스의 물음이 점점 심문으로 느껴지던 그레이스였기에 고개를 저었다.

“위성이요? 모르겠네요.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는 거 같았어요. 근데 왜 물으세요?”

“위성이 쏜 광선에 사람이 죽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도착한 샤렌의 보고를 통해 사건의 개요를 확인한 루트가 웃으며 답하자 그레이스는 더더욱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죽일 애는 절대 아니에요.”

“음, 알겠습니다.”

단서가 끊겼다. 루트는 침음을 흘리며 보육원을 벗어나려는 때에. 그레이스 멜론이 뭔가 생각났다는 양, 탄성을 뱉어 그를 붙잡았다.

“아, 혹시 다크 넥서스라고 아시나요?”

“멕시코의 큰 갱단을 전부 처리함으로써 무력을 홍보하고 정부에 딜을 건, 영리한 집단이죠.”

“어, 그랬나요. 그. 제가 보기에 그만한 크기의 배를 안개 위에 띄우는 기술이면 말씀하신 위성 빔? 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의견 고맙습니다.”

더는 수확이 없겠다고 생각한 루트 커토스는 소액의 달러가 든 봉투를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소민에게 건넸다. 그리고 보육원 대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뻐억—

루트의 얼굴에 누군가의 주먹이 떨어졌고 옆으로 나뒹굴었다. 그래도 현장 일선에서 일하던 감각이 어디 가진 않았는지 재빨리 낙법을 치고 일어나 공격한 자를 쳐다보는 루트.

“네놈….”

스킨헤드에 전신에 피어싱을 한 남자가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며 씩 웃는다.

“나 알아?”

“모른다. 내게 원한이라도 있나?”

“큭큭, 그렇겠지. 네놈이 처넣은 죄수만 천이 넘으니. 내 이름은 갈랑이다.”

“갈랑. 기억나는군. 부녀 강간 및 살인, 방화. 79년형이었을 텐데. 어떻게 벌써 나왔지?”

“벽 부수고 탈출. 왜? 안 믿겨? 걱정하지 마. 곧 내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게 될 테니까.”

갈랑이 칼을 쥔 채 달려들자 루트는 반사적으로 총을 뽑아 올렸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제기랄.’

보육원에 간다고 총을 차에 두고 온 게 실수였다. 피하기에는 늦었다. 일단 손을 내주고 시간을 벌자고 생각하는 와중.

덜컹.

보육원 대문이 열렸다.

“들어가!”

갈랑이 혹시 보육원 아이를 노릴까 싶어 열고 나온 금발의 소녀에게 급하게 소리치는 루트.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레이스가 나이프를 쥔 갈랑의 손을 움켜쥐는 것으로 상황이 끝났다.

“끄아악! 어, 어째서 내 내구가!”

이름, 갈랑. 나이, 39세. 특성, 내구. 최근 재각성을 해 내구의 강도가 교도소의 벽을 부술 정도로 크게 강화되었으나 나이도 많고 단련을 게을리해 잠재력을 잃었다.

그레이스 멜론은 주먹을 잡고 부유로 끊임없이 상승. 성층권에 도달하자 갈랑이 벌벌 떨다 졸도했다.

“괜찮으세요?”

“휴. 덕분에 살았습니다. 히어로.”

히어로라는 말에 몸을 돌리고 입을 가린 채 웃는 그레이스 멜론.

수염에 살얼음이 앉은 거무죽죽한 피부의 갈랑을 내려다본 루트 커토스는 팔에 돋는 소름을 쓸어내리며 새삼 히어로라는 자들이 얼마나 강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이후 소민이 CCTV로 보고 신고해 한국 경찰이 도착. 루트가 상시 착용 중인 바디캠을 전달하며 신분을 밝히자 약식으로 조서를 작성하고는 갈랑을 특성자 전용 교도소에 처넣겠다며 데려갔다.

이후. 루트 커토스는 한국에 남아 일주일간 더 조사했음에도 남만혁이 플래싱을 조종한다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반면, 금발의 소녀가 말했던 다크 넥서스에 관해 이것저것 알아보니. 혐의점이 상당히 보여 수사 방향을 틀었다.

“빌런은 가차 없이 죽이는 성향. 유령선의 포격이 빔이라는 것. 그리고.”

유튜브에 다크 넥서스가 찍힌 영상에 나타나는 공통점.

“이 하늘을 보는 버릇.”

그것은 남만혁도 인지하지 못한 습관이었다.

* * *

엣취!

“누가 만혁을 욕하나 보네요.”

“그럴 리가요. 저처럼 남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누가 욕한답니까.”

마를린과 케이트의 시선이 내 앞에 속박포로 묶여 있는 사람들로 향한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나를 노려보는 놈들.

익스더스트를 처리한 다음 날. 그를 추종하던 테러리스트들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제압, 사살했고. 그 결과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묶인 이것들이다.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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