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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80화 (80/201)

<80화>

히어로 매니저 (1)

“만혁! 괜찮아요? 사고가 있었다면서요.”

고무장갑을 벗으며 일어나는 퀸. 소민 누나와 아이들도 나를 발견하곤 우르르 몰려온다.

“정말? 왜 말 안 했어!”

소민 누나의 타박에 나는 괜한 말을 한 퀸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별일 아니었는데 뭐. 근데 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대?”

“정말 몰라서 그래?”

소민 누나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툭 건드린다.

“모르니까 묻지.”

“어휴, 그레이스. 나머지는 우리가 할 테니까 좀 쉬고 와. 만혁아, 네가 관광 좀 시켜줘.”

“아니, 나는 이제 집에 왔는데. 그리고 이 동네 볼 게 뭐 있다고.”

“너 공원 산책 좋아하잖아? 거기라도 다녀와.”

그저 웃는 낯으로 퀸과 내 등을 떠미는 소민 누나.

엉겁결에 쫓겨나는 바람에 퀸은 김치 양념이 묻는 앞치마를 한 채였고 나 역시 여장을 풀지 못해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우물쭈물하는 퀸. 그대로 서 있기도 뭐해서 하는 수 없이 녀석의 앞치마를 벗겨 대문에 대충 걸어두고 공원으로 이끌었다.

예전에 교장과 대화를 나눴던 그 자판기 카페로 가 신상인 따뜻한 바나나우유를 뽑아 건네자 손이 닿지 않게 조심하며 받는다.

호로롭.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공원의 오솔길을 걸었다. 종이컵 안의 음료가 넘치지 않도록 천천히.

“오.”

“왜 그러세요? 어머.”

가끔 이곳에 올 때면 볼 수 있는 날다람쥐가 나무 사이를 날아와 내 앞에 재주를 넘으며 착지한다.

어지간한 히어로보다 더 히어로다운 랜딩.

“랜서, 잘 지냈냐?”

“그게 이 아이의 이름인가요?”

“나는 그렇게 불러. 랜서. 야, 랜서!”

가끔 들릴 때마다 해바라기 씨나 땅콩 따위를 줬었는데, 오늘은 쫓겨나는 바람에 가지고 있는 게 없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불러도 반응조차 하지 않고 떠나는 랜서

옆에서 쿡쿡 웃는 퀸.

그때 녀석의 머리로 낙엽이 내려앉는다. 그걸 떼어내고자 손을 뻗는데.

툭.

퀸의 손과 내 손이 닿았다. 직후, 복부에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

컥!

불시의 일격에 당한 나는 그대로 벤치에 처박혀 바닥을 뒹굴었고 시야 저편으로 정권 지르기 자세로 당황하는 퀸이 보였다.

“미, 미안해요. 괜찮아요? 저도 모르게.”

어린 시절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퀸은 각성 후, 자기 몸을 만지려는 이를 무의식적으로 공격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이걸 회귀 전부터 알고 있었고.

낄낄.

그래, 이게 퀸이지. 저 안경을 쓴 순둥한 외모 뒤에 숨겨진 본성을 잠시 잊은 내가 병신이다.

“멀쩡해. 야, 근데 너 훈련 더 열심히 해야겠다. 주먹이 이렇게 물렁물렁해서야 잡범이나 잡겠냐?”

죽겠다. 하필이면 파편이 뭉텅이로 박혔던 곳을 맞아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으….”

고개를 푹 숙인 녀석. 딱 두드리기 좋게 정수리를 내주기에 이번에도 무심결에 손이 갈 뻔했으나, 제정신이냐고 묻는 듯한 복부의 고통 덕에 어떻게든 참아냈다.

이후 산책로를 두어 바퀴 돌고 돌아가자 하나 보육원TV 행사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참여했다.

* * *

요즘 아침이 행복하다. 모의 빌런 격파전이 내 산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이전 학기보다 30분은 늦게 일어나도 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침의 30분은 정말 황금과도 같기에 나날이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얼마 전 종례 때 도수정이 불공평하다고 징징대기에 네 기숙사 방이랑 내 컨테이너랑 바꾸자고 하니 조용해지더라.

어딜, 콱 씨.

아무튼. 어째서인지 오늘은 다른 날과는 달리 분주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제까지처럼 다수의 천막으로 간이 요새를 만들거나 산장을 이용해 인질극을 준비하는 둥 일종의 상황 설정이 조금도 진행되지 않았다.

리쳇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각 반의 교수 대신 교감이 꽤 큰 상자를 싣고 올라오는 중이란다.

교감은 히어로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교내 에어보드 사용이 허가된 인물이었기에 헥헥 대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오고 있겠지.

바람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은발을 단정하게 땋아 내린 교감이 에어 보드 위에 서 있었다.

“남 교수, 짐 내리는 걸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돕는 건 상관없는데, 교감 선생님께 교수라고 불리는 건 좀 그렇네요.”

“별명이 부담스러운가 보군요?”

“정확합니다.”

“모두가 인정하고 있으니까, 편하게 받아들이세요.”

“인정과는 별개로 제가. 어우, 윽! 이거 뭔데 이렇게 무겁습니까.”

필통 정도 되는 크기의 길쭉한 상자들이 백 개가량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의 무게가 엄청나다.

도저히 내 팔힘으로는 들 수가 없어서 두식과 블랙 팽에게 옮기라 지시했고 이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교감이 한마디 툭 뱉는다.

“그가 멕시코에 다녀간 후 언데드 노동자가 급격히 늘고 있더군요.”

“…네?”

“어쩌면 남 교수가 졸업할 즘엔 평범하게 활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 두식 학생. 이쪽으로 옮겨주세요.”

학생이라니.

내 명령을 기다리는 두식에게 그렇게 하라고 사념을 보내자 사람 한 명 누울 수 있는 간격을 두고 상자를 내려놓는다.

교감이 상자의 표면을 건드리자 상자가 커지더니 직사각형의 캡슐로 변한다.

“이거 뭡니까?”

“어렵게 구한 군용 가상훈련 캡슐을 매저드 교수와 제가 개조를 좀 했지요.”

캡슐 구석에 독수리 마크가 있는 거로 봐서는 사실인듯하다.

“이만한 무게의 기계면 강의동에 자리를 마련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전기도 꽤 필요할 텐데.”

“강의동은 눈이 많아서 안 됩니다.”

“여기도 오가는 사람 꽤 되는데요?”

“학생들에게 보이는 건 상관없습니다. 제가 경계하는 건 부외자, 즉 하늘의 눈들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부근은 어떤 위성에도 찍히지 않더군요.”

“그건 아카데미에서 뿌리는 방해전파가—”

“제가 그걸 모르고 당신을 찾아올 확률과,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침묵할 확률. 뭐가 높을까요?”

교내 최강 권력자인 교감이다. 아카데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를 리 없지.

참고로 위성으로 여길 못 찍는 건, 현존하는 방해전파를 미래 지식으로 개량한 결과다.

“마음껏 쓰시죠. 어차피 노는 땅이었습니다.”

싱긋 웃는 교감.

“남 교수와는 늘 이야기가 잘 통해서 좋습니다.”

캡슐의 배치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반의 학생들이 도착했다. 담임 교수 대신 교감이 보이자 긴장하는 기색들이다.

“오늘부터 당분간 오전 강의는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제 소개를 해야 할까요?”

“아니요오!”

“좋습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빌런이 주축이 된 사건들을 해결해왔지요. 학생답지 않은 면모가 드러난 이도 있었고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아이들의 눈을 한 명씩 마주친 교감은 방금 두식이가 내린 캡슐로 다가가 뚜껑에 손을 대고는.

“강의 만족도도 높고 성취도도 훌륭합니다만.”

버튼을 누르자 텅, 하고 캡슐이 열린다.

“그러한 훈련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덕목도 존재합니다.”

교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안목.”

아이들의 얼굴이 의문 섞인 표정으로 변하기가 무섭게 우리의 질문봇, 도수정이 손을 든다.

“어떤 안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에 답하기에 앞서, 도수정 학생은 본인을 포함에 이곳에 모인 학생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어…. 월말 평가전에 표기되는 정도 만큼요?”

훌륭한 임기응변이었으나 교장은 고개를 저었다.

“수치로 표기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물을 분별하는 힘 또한 그렇지요. 이 캡슐은 미군에서 제작한 훈련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실제 상황과 흡사하게 제작했더군요.”

파이트 파이브 리그에서 이미 비슷한 기술을 겪은 나와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오전 강의는 치열하긴 하지만 유혈이 낭자하는 전투는 아니었다. 혹시 얘들에게 그러한 경험을 시키기 위해 들여온 거라면, 땅 조금 내어주는 것 정도는 전혀 아깝지 않다.

“그걸 저와 매저드 교수님이 개조를 좀 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한 달간, 이 히어로 매니저를 플레이하게 됩니다.”

뭔 매니저?

나만 의문을 느꼈던 건 아닌지 웅성거리는 아이들.

“도수정 학생이 어떤 안목인지 물었지요? 제 답은 ‘사람의 보는 눈’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팀의 매니저이자 리더가 되어 사이드킥 셋 이상을 고용하세요. 마지막 날 시험을 통해 누구의 안목이 정확했는지 판단하겠습니다.”

“시험의 종류는요?”

“그간 모의 빌런 격파전을 통해 다양한 상황을 겪어보셨을 겁니다.”

“아, 설마 그중에 하나인가요?”

“맞습니다. 추첨으로 뽑을 예정이지요. 자, 설명은 끝났습니다. 들어가세요.”

매일 하는 훈련과는 결이 달라서 그런지 아이들의 얼굴이 밝다. 나도 내심 기대하며 아무 캡슐에 들어가 누웠다.

[주의 사항]

[1. 참여하는 전원이 하나의 필드에서 활동함.]

[2. 현실을 기반해 제작되었음.]

[3. 플레이 타임은 매일 최대 6시간으로 한정함.]

확인했냐는 버튼이 등장하기에 눌렀다. 이어 접속하는 중이라는 음성이 들렸고 잠깐 눈꺼풀을 닫았다 열었더니.

【당신은 히어로 매니저를 플레이 중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_】

검은 화면에 흰 글자만 떠 있는 세상. 몸은 부유 중이었고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저 비어있는 곳에 내 이름을 새길 수 있었다.

언데드와 사념을 자주 주고받아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된다.

“남…, 아니지.”

본명을 쓰면 무조건 견제당할 거 같은데.

그래서 아무도 모를 이름을 약간의 낭만을 담아 거기에 적어 넣었다.

“로맨.”

【반갑습니다, ‘로맨’. 당신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계십니까.】

【*계통만 선택될 뿐, 특성은 무작위로 결정됩니다.】

어째서인지 파이브 파이트 리그와는 다르게 리쳇과의 소통도 언데드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 특성 자체가 희미해진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간섭계에 당하면 보통 이런 느낌이다.

‘교감이 손을 쓴 거겠지.’

【강화계】

【구현계】

【탐색계】

【빙의계】

【변이계】

【간섭계】

【조작계】

이것 외에도 길게 이어지는 계통들을 눈 드래그로 훑어보다 가장 아래쪽에 있는 체크 사항을 발견했다.

【초기 자금에 따른 특성 개수】

【1억 코인 : 특성 보유 불가】

【1천만 코인 : 특성 1개 보유 가능】

【100만 코인 : 특성 2개 보유 가능】

【0코인 : 특성 생성 가능】

특성 생성?

해당 항목을 의식하자 자세한 설명이 적힌 알림창이 떴다. 요약하면 단어 뜻 그대로 내 마음대로 특성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0코인.”

【번복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코인은 사이드킥 영입에 필요한 재화입니다.】

【정말 ‘0코인’으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친절하게도 한 번 더 물어주는 안내음. 아마도 실수로 선택한 학생을 위한 교감의 배려겠지.

“어.”

가상이긴 하나 신이 될 수 있는 기회다. 이걸 찰 인간이 몇이나 될까.

【원하는 특성을 묘사해주십시오.】

“사람의 능력을 수치로 보는 능력.”

망설임 없이 0코인을 선택한 이유다. 이런 형태의 게임에선 사실상 치트키인 특성. 실제로 언포스 덕에 얼마나 꿀을 빨았던가.

【특성 제작 중…, 완료.】

【당신의 특성은 ‘군단의 심장’입니다.】

…뭐?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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