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히어로 매니저 (2)
【로맨, 당신이 운영할 히어로 사무소 이름을 정해주십시오.】
사무소 이름은 팀의 특징이나 이념이 드러나게 짓는 게 보통이다. 다만, 나의 경우 정체를 숨기고자 하니.
【피스풀 라이프】
【사용 가능한 사무소 명입니다.】
평화라는 모호한 단어를 넣었다.
【외형을 결정해 주십시오.】
놀랍게도 남녀 모두 선택이 가능했고 나는 오랜 시간 고민 후에 남자를 골랐다. 아무리 그래도 나의 분신을 버릴 순 없지.
이후 백인, 평균 키, 중년, 준비만과 같은 사소한 육체 설정을 체크하고 완료하자 시야가 밝아졌다.
“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시야의 절반은 판잣집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저 아래의 도로엔 차들이 분주히 오가는 게 보인다. 불어오는 바닷바람도 상쾌하고.
“대서양의 냄새가 나. 음?”
목소리가 좀, 살짝 기계음이 섞여서 중성적인 느낌이다.
【튜토리얼 퀘스트(1)】
【퀘스트명 : 사무소 부지 및 건물 구매】
【설명 : 당신의 꿈은 헬로우 아일랜드 최고의 히어로 매니저가 되는 겁니다. 시에서 원대한 꿈을 품은 당신을 후원합니다. 무이자 대출을 약속했습니다.】
【업보 : 당신의 초기 자금은 0원입니다. 다른 히어로 매니저와 달리 대출을 끼고 시작합니다.】
“대출? 대단하다, 대단해.”
가상현실에서도 현실 패치를 꼭 해야 했나. 만든 사람 면상 좀 보고 싶네.
이어 작은 빛무리와 함께 종이 한 장이 내 앞에 나타났고 움켜쥐자 지도를 획득했다는 알림과 함께 자동으로 펼쳐졌다.
섬의 규모, 인구수, 땅값, 섬 안팎을 오가는 배. 디테일하게 현재를 반영해 보여주는 실시간 지도. 이건 미래에도 없던 기술이다.
굳이 만들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지. 칩과 렌즈를 몸에 삽입하고 통신사와 연동만 하면 어지간한 정보는 다 망막으로 쏴 주니까. 솔직히, 이건 직관적이긴 해도 에너지 낭비다.
“이야, 이것도 답정너네.”
구매 가능한 부지를 체크하고 지도를 보니 99%가 구매 불가를 의미하는 붉은색이다.
살 수 있는 곳이라곤 지금 내가 있는 ‘문힐 스트리트 1번가’ 구석. 그것도 골목 안쪽이라 길을 모르면 찾기 어려운 으슥한 곳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구매를 누르려는데.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던 부지들이 하나둘씩 아무런 색도 가지지 않은, 일반 부지로 변한다.
“시작한 건가.”
아마 다른 애들이 산 거겠지. 5천만짜리가 방금 팔렸는데, 특성 없이 시작한 녀석도 있나 보다.
돈 몰빵도 나름 방법이다. 현장에 나서지 않는 리더도 실재하니까.
하지만 학생 수준에서 그게 될지는 의문이다.
나도 정보가 조금도 없는 이런 곳에서 그런 도박을 할 자신이 없는데.
아무튼 나는 달동네, 아니 문힐 1번가 구석 부지를 샀다. 그래도 첫 번째 구매라 그런지 주소는 외우기 쉽게 1-1번지였다.
“어디 보자. 위치가….”
10분쯤 걷자 가로등이 켜져야 간판이 보일 법한, 채광량 0에 수렴하는 땅이 나왔다.
달동네 주제에 내 부지를 둘러싼 건물은 하나같이 10층짜리다.
“그래서, 건물 올리는 건 얼만데.”
가장 저렴한 모델은 10만이었고 다음은 50만, 드래그해서 마지막 칸을 보니 300억짜리도 보인다.
헬로우 시가 내게 대출해 준 코인은 50만. 부지 구매에 20만을 썼으니 답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하는 수 없이 가장 저렴한 건물을 고르고 구매를 누르자 해당 땅에서 소재들이 자동으로 솟아나 알아서 조립된다.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실 정도.
“씁. 이거 마법 아냐?”
조립 과정이 묘하게 익숙하다. 마법 몇 개 섞으면 될 거 같은데.
【튜토리얼 퀘스트(1) 완료!】
【설명 : 당신은 성공적으로 사무소 부지를 구매하고 건물을 신축하였습니다.】
【보상 : 고용 가능한 직원 방문】
판잣집 간판에 ‘피스풀 라이프’라는 글자가 분홍색 페인트로 쓰이는 순간 퀘스트가 완료됐고, 골목 어귀에서 전신을 로브로 가린 작은 몸집의 아이가 걸어왔다.
“저기….”
10살쯤 된 꼬마. 녀석의 등이 불룩하다. 처음에는 꼽추인가 했으나 가까이 가니 어린아이가 업혀 있었다.
“고용하마.”
“돈 될만한 일을 시켜주시면, 네?”
“너 고용한다고. 들어와.”
결과가 정해진 이상 불필요한 중간과정은 스킵하고 싶었기에 앞뒤 자르고 본론만 말했다.
그래도 녀석은 알아들었는지 의심스러운 눈을 하면서도 나를 따라 판잣집에 들어왔다.
“아.”
허름한 외견에 비해 내부는 산장처럼 꽤 아늑한 공간이었고 좁긴 해도 조리실과 카운터, 다수의 방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이 방은 너희가 써라.”
당연히 가장 넓은 안방은 내가 쓸 거고 카운터 뒤의 좁은 방에 녀석을 밀어 넣었다.
“고맙습니다. 흐흑.”
뭔, 갑자기 울고 난리야.
【튜토리얼 퀘스트(2)】
【퀘스트명 : 히어로를 고용하라!】
【설명 : 보유한 코인으로 히어로를 고용하라.】
【업보 : 당신은 부랑자 ‘버든’, ‘아이라’를 고용했습니다. 그들은 구걸을 위해 헬로우 아일랜드 전역을 돌아다녔습니다.】
튜토리얼이라 그런가, 말만 업보고 그냥 힌트 덩어리네.
“버든.”
“헛, 제 이름을 어떻게?”
“그냥 알아. 됐고, 아는 히어로 없냐? 싸게 고용할 수 있는.”
“얼마나 있으신데요?”
얘들 고용비나 생필품을 고려하면 15만 정도는 가용할 수 있다. 이를 전하자 버든은 미간을 좁히며.
“그거로는…, 아. 한 명 있긴 해요. 근데—”
“안내해.”
15만 코인은 한화로 치면 150만 원쯤 된다. 이 돈으로 고용할 수 있는 히어로는 당연히 고급인력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무리 보잘것없는 특성을 가졌어도 내가 어떻게든 사람 만들어서 굴리면 되니까, 상관없다.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의뢰가 들어오진 않을 테니까.
버든이 입을 우물거리다 이내 어깨를 늘어트리며 앞장섰다.
그렇게 30분간 걸었고, 우리는 한눈에 봐도 지독하게 험한 산의 초입에 도착했다.
【안악산】
【설명 : 헬로우 아일랜드에 존재하는 산 중 최악의 난이도. 아직 정상적으로 봉우리에 오른 사람은 없다.】
“산 이름에 ‘악’이 들어가면 구경만 하는 게 맞는데.”
“어서 가요!”
어째 신난 버든이 바위를 밟으며 휙휙 오른다. 나도 마운틴 짐에서 나름 훈련을 해왔기에 뒤처지진 않았다.
해가 산 중턱에 걸릴 무렵. 개울가에 지어진 허름한 움막에 도착.
“저기?”
“네, 안에 계실 거예요. 람 아저씨!”
버든이 부르자 입구에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벌이냐?”
“벌이 아니라 버든이요.”
“그게 그거지. 마침 잘 왔다. 고구마나 좀 삶아 보거라. …응? 뉘슈?”
백발노인까지는 아니어도 희끗희끗한 머리를 보아 얼추 50은 넘긴 나이.
“히어로 매니저다. 한 달에 15만. 어때?”
“나를 고용하겠다는 거요? 그럼 20만은 받아야겄는디. 없다는 소리는 하지 마쇼. 사무소 사고 나면 남는 대출금이 그 정도일 테니까.”
산자락에 혼자 사는 주제에 정보가 밝다. 그렇게 설정을 해둔 건가.
“그래? 그럼 네가 버든의 고용비를 뺏던가.”
“으잉? 얘를 고용했다고?”
“어.”
“…쩝, 알겠수다. 15만 받지.”
【튜토리얼 퀘스트(2) 완료!】
【설명 : 당신은 성공적으로 히어로를 고용했습니다.】
【보상 : 사무소로 무작위 의뢰 도착】
자, 이제 1억 코인을 걷어차면서까지 고른 치트키 특성을 써볼 때가 됐다.
‘군단의 심장.’
각성자들 사이에선 국룰아닌 국룰이 있다. 특성 명이 현대 문화 기준으로 외치기 부끄럽거나 오글거리면, 대체로 강력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특성은 거의 세상 절반 정도는 씹어먹을 레벨. 절대 빈약할 수가 없는 특성 명인 것이다.
‘…왜 발동이 안 돼. 설마 말로 해야 하는 건가.’
“군단의 심장.”
옆에서 걷던 버든과 람이 으, 하는 입 모양으로 나를 쳐다본다.
“야이, 나라고 하고 싶어서—”
오 떴다.
【대상 : 람에게는 군단의 심장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이게 뭔 개소리야.
“상태창.”
【이름 : 로맨】
【특성 : 군단의 심장】
【히어로 매니지명 : 피스풀 라이프】
【보유 코인 : 5만】
【소속 히어로 : 1】
【소속 직원 : 2】
군단의 심장에 시선을 집중하자 설명이 적힌 창이 뜬다.
【군단의 심장】
【일반인의 능력을 수치로 표현한다.】
‘잘 못 본 거겠지?’
두 번 세 번 확인해도 ‘일반인’이라는 문자가 없어지질 않는다.
나는 분명 히어로의 능력을 수치화해달라고 요구했었….
“아, 염병.”
당시에 히어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 했던 거 같다. 사람이 넓은 의미로 인류를 총칭한다 치면 현재는 일반인이 과반수이긴 하다.
근데, 히어로도 사람에 포함 시켜야 되지 않나?
누군가 내게 엿을 먹이기 위해 저 시스템 뒤편에서 암약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이를 뿌득뿌득 갈며 스크롤을 내리자 아주 작은 글씨로 팁이 적혀 있었다.
【tip : 특성 생성은 무작위 요소가 개입됩니다. 완벽히 원하는 특성이 만들어지진 않습니다.】
이런 건 만들기 전에 알려줬어야지!
“으휴.”
“왜 그러세요?”
버든이 시야에 들어오자 녀석의 머리 옆에 창 하나가 생겨난다.
【이름 : 버든】
【나이 : 12세】
【특성 : 없음】
【설명 : 성실하며 은혜를 잊지 않는 소년. 숫자에 밝고 계산이 뛰어나며 실수를 하지 않는다.】
【업보 : 폭력적인 부모에게서 아이라를 구출했다.】
【이름 : 아이라】
【나이 : 10세】
【특성 : 없음】
【설명 : 말수가 적고 신의를 지키는 아이. 9개월 전, 이름 모를 풀을 섭취한 후 하루 23시간 이상 잠들어 있다.】
【업보 : 소환 학파의 실험체였다.】
아이라의 상태가 수면 상태라는 게 좀 꺼림칙하긴 해도 둘 다 선한 아이들이었다.
내 기준에선 기적과도 같은 일인 게, 업보를 보면 성격이 시궁창처럼 더러워도 할 말이 없는 수준임에도 버든은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고 있다.
저건 환경 따위에 꺾이지 않을 정도로 올곧은 성정을 타고난 거다.
군단의 심장 평가를 정정한다. 이런 수준으로 일반인을 파악할 수 있다면, 상당히 쓸만하다.
* * *
히어로 매니저는 현실이다.
“위험한 프로젝트일세.”
매저드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우려를 표하자 프리실라 루드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도할 가치는 있지요.”
“허허, 아카데미 내에서는 내가 가장 정제된 광기에 가까웠다 생각했었네만.”
“이제는 저라는 건가요?”
“자네가 쌓은 모든 부귀영화가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데 모두 소모되었네. 상식인으로서 마냥 부정할 수는 없을 테지.”
‘히어로 매니저’를 운영하는 데 동원된 히어로의 수만 2천 명이고 일반인은 3만에 달한다.
이들은 프리실라가 현역으로 활동할 때 구매하고 오랫동안 환경조성에 심혈을 기울인 버다주 섬, 히어로 매니저에선 ‘헬로우 아일랜드’라 불리는 곳으로 보내졌다.
“저도 이렇게 이른 시기에 진행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호, 그러면 지금인 이유가 무엇인고?”
“먼저 이 프로젝트의 핵심인 선배님이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요.”
매저드의 전능에 가까운 마법이, 상태창을 비롯해 그럴듯한 특성이 부여된 것 같은 연출을 한다.
현재도 이를 위해 다량의 마나가 소모되고 있으나 그를 둘러싼 마나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허어, 내가 제자들을 두고 갈 리가 있나.”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제자의 유능함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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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