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자이젝
교감이 인지한 남만혁의 특성은 총 세 가지다.
하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기는 하나 심해마저 구현하는 해변.
둘, 대규모 드론 제어는 물론이고 빔 공격까지 가능한 무장 위성.
셋, 네크로 학파와는 다른 방식으로 언데드와 계약하고 다루는 능력.
그런 각성자가 사람을 보는 안목과 용병술을 익히면, 다음 히어로 세대를 이끌기에 충분한 재목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프리실라였다.
“히어로 협회장이라는 작자의 한심한 행태도 저를 자극하긴 했지요. 선배님, 강하기만 하면 찬사를 받는. 마초 히어로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각성자의 숫자가 나날이 늘고 있어요. 인구학계에선 2세대만 지나도 인류의 5할이 각성자일 거라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실정입니다.”
“흐음.”
“우리는 그들이 자기 힘에 취해 탈선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줄 현명한 리더가 필요합니다.”
특성 과도기에 따른 필연적인 혼란. 프리실라 루드라는 진심으로 그날이 도래할 것이라 믿었다.
그만한 시간이 흘렀을 때, 자신은 은퇴했을 것이고 지금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주류를 이룰 터였다.
영향력이 큰 인간의 잘못된 판단 하나는 다수의 불행을 낳는다.
교감은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그간 모은 재산을 과감하게 투자해 헬로우 아일랜드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아직 아이들일세. 후배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 좀 의심도 하고 그러게. 믿음의 근원이 궁금할 지경이야.”
이 세상에서 인간의 악의를 가장 가까이서 마주한다는 간섭계의 정점이. 인간을 아직도 믿는다는 게, 매저드 기준으로는 처음 신비 학파 마법을 접했을 때보다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매저드의 시선을 받은 프리실라 루드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선생이니까. 그뿐입니다.”
* * *
【튜토리얼 퀘스트(3)】
【퀘스트명 : 의뢰 시작!】
【설명 : 헬로우 아일랜드는 평화로운 섬입니다. 이곳에서의 질서는 시장에 의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죠. 그래서 섬 내에 활동 중인 히어로 매니저는 협약을 맺은 다른 섬으로 히어로들을 파견합니다. 물론, 당신도요.】
【업보 : ‘람’은 오지 생활이 익숙합니다.】
사무소에 돌아오니 퀘스트가 떴고 카운터 테이블 위에는 피자 상자 같은 널찍한 종이상자가 올려져 있었다.
【무작위 의뢰 상자】
【설명 : 개봉 시 무작위 의뢰가 생성된다.】
두 사람이 내 눈치를 보며 긴장하기에 냅다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백색의 종이가 있었고 위에서부터 글자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적힌다.
이거, 라이팅 마법 아닌가?
“아아….”
“그걸 그냥 열면 어찌합니까!”
“그럼, 기도라도 하고 열까?”
“당연히 복스러운 자리를 찾은 뒤 천지신명께 의례를 올린 다음 깨끗하게 씻은 손으로 열어야지!”
나는 저걸 한 단어로 일축할 수 있다.
“그거 다 미신이다.”
협약을 맺은 섬이 다수라 하더라도, 여기가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이상 의뢰가 무한히 존재할 가능성은 낮다.
만에 하나 의뢰가 없으니 순번을 기다리라는 메시지가 뜨면, 이미 히어로를 파견한 다른 매니저와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만다.
해서, 빨리 뽑은 거다. 결코, 마음이 급해서가 아니다.
“끄응, 매니저가 그렇다면야. 아무튼 무슨 의뢰가 나왔소?”
【의뢰 : 아마포레스트에 출현한 식인 빌런 퇴치】
【난이도 : ★】
【설명 : 채집을 위해 숲에 들어간 부족민들이 일주일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들은 당신의 팀이 해결해주길 바란다.】
【파견 가능한 히어로 : 람, 로맨.】
나도 갈 수 있는 건가. 하기야, 현장 지휘도 중요하니.
“람. 식인 빌런 처리할 수 있나?”
“숨어서 사람 먹는 놈치고 센 놈 못 봤수.”
【상황창】
【당신은 아마포레스트에 출현한 식인 빌런 퇴치에 ‘람’을 파견했습니다.】
【성공확률 : 72%】
저기에 나를 추가하면 99%까지 오르긴 한다. 그런데 내가 자리를 비우면 히어로 영입 쪽은 아예 멈출 테니, 기각이다.
“너로 정했다. 람!”
“…금방 다녀오지.”
미간을 좁히며 나를 쳐다본 람은 산에서부터 메고 온 망태기에 라이터나 코펠, 마체테 같은 서바이벌 도구를 챙겨 항구로 떠났다.
다른 건 몰라도 행동력 하나는 발군이네.
“난이도가 별 하나던데, 이런 건 보통 얼마나 걸리냐?”
버든에게 묻자 녀석은 고개를 기울이며.
“빠르면 몇 시간, 늦으면 이틀이었던 거로 기억해요.”
회전율이 괜찮네. 좋아. 박리다매 전략으로 간다.
이후, 람을 기다리는 동안 이 동네 유일한 대형마트, 헤이마트에 가 애들이 쓸 생필품과 식재를 샀다.
“그런데 버섯을 이렇게나 사요?”
하나당 천 원밖에 안 하는, 이상하게 저렴한 양송이버섯을 2박스 구매하자 버든이 우려한다.
“걱정하지 마. 너보고 다 먹으라곤 안 할 테니까.”
마트를 오가며 본 사람들에게 군단의 심장을 사용하자 버든과 아이라처럼 설명과 업보를 볼 수 있었다.
대부분 평범했으나 몇몇은 ‘운동신경이 뛰어난.’ ‘화술이 대단한.’ 같은 묘사가 있었다.
이쯤 되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싹수 있는 애들 죄다 고용해서 히어로로 만들면 되지 않나?”
그럴듯한 계획이었다.
참, 양송이를 산 이유는 마트 화장실에서 물을 꾸역꾸역 받아 마시던 청년 때문이다.
【이름 : 자이젝】
【나이 : 21세】
【특성 : 브레이브 졸트】
【설명 : 불우와 불행을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청년. 마트 아르바이트로 벌어들이는 수익 전부 가족에게 보내고 있다.】
【업보 : 어릴 적, 어머니가 해준 양송이 수프를 먹고 울었다.】
거기에 내가 산 양송이는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정보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헬로우 양송이】
【설명 : 문힐 지점의 헤이마트에 매달 2박스만 입고된다. 영양분이 다량 함유되어 하나만 먹어도 하루 활동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다. 맛은 없는 편.】
아마 나처럼 0원으로 시작한 매니저를 위한 구조용 아이템이 아닐까 싶다. 당장 밥값부터 걱정이었는데, 버섯 덕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한 박스에 24개가 들었고 총 48개. 이 정도면 한 달은 충분히 버티겠지.
“버든, 너는 여기 남아.”
“예?”
“기다렸다가, 쟤 일 끝나면 사무소로 데려와.”
나는 마구잡이로 놓인 옷가지들을 정리하는 청년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분노인지 열정인지 모를 눈으로 나를 바라본 버든이 주먹을 움켜쥐며 말한다.
“할게요! 해내겠습니다.”
버든과 아이라를 남겨두고 사무소로 오니 남은 플레이 타임이 2시간 남짓. 람을 고용하느라 산에 오른 게 시간을 꽤 잡아먹었다.
“빠듯하겠어.”
얼른 손을 씻고 앞치마를 걸친 채 조리실로 들어왔다. 좁기는 해도 가스레인지가 있어 요리하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 양송이랑 채소들을 프라이팬에 올리고 냄비에 물을 받았다.
이후 소민 누나가 알려줬던 레시피 대로 조리를 끝내고 간을 보니.
“크. 이거지.”
양송이 자체는 무미이나 식감이 괜찮았기에 채소, 조미료, 향신료로 맛을 덮으니 그럴듯하다.
카운터에 수프를 옮기고 뒤뜰에 자란 야생초를 꺾어 깨진 컵에 꽂자, 나름 빈티지 인스타 분위기는 났다.
“매니저님, 데려왔어요!”
마침 냄비에서 그릇으로 수프를 옮기는 사이 버든이 자신 있게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 뒤로는 사무소 안을 이리저리 살피는 청년이 보였다.
“자이젝 맞지? 앉아.”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우리 매니저님은 다 알아요. 형.”
“그런…. 음? 이 향기는 혹시?”
“먹어.”
접시 옆에 놓인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이는 청년. 반면, 버든은 냉큼 자리에 앉아 수프를 퍼먹었고 금세 한 접시를 비웠다.
“형, 혹시 안 먹을 거면.”
“누가 안 먹는대!”
화들짝 놀라며 수프를 한 숟갈 뜨는 청년. 그는 이내 끅끅대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의 울음을 모른 척했고 버든은 눈으로 저 형 왜 저러냐고 묻기에 무시했다.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라.”
“저 한 접시 더요!”
버든의 접시에 국자로 크게 퍼서 담자 녀석은 아이라를 조심스럽게 깨웠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좌우를 살피던 아이라는 이내 코앞에 온 숟가락을 물었고 우물대며 한참 음미하다 먹었다.
“저는 사실—”
묻지도 않았는데 자이젝은 자기 과거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약하면, 부모님을 여의고 동생 셋을 키우느라 돈이 많이 필요하단다.
“걔들도 섬에 있냐?”
“아니요, 여기는 평화롭긴 해도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없어서요.”
학교의 부재. 오직 히어로와 그 히어로를 받침 하기 위한 인간들이 모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삭막한 곳.
뭐, 애초에 히어로 육성을 위한 가상 현실이니.
“그런데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뭔가요. 버든은 매니저님께서 대단히 중요한 일을 제게 맡긴다던데.”
그렇게 꼬셔왔나 보다.
“자이젝. 너 각성자잖아.”
“그런 것도 알 수 있습니까? 예에, 특성을 각성하긴 했습니다만 대단한 능력은 아닙니다.”
일반인으로 사는 각성자 대부분은 대단치 못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자이젝은 아니다. 졸트는 내가 회귀하기 전에 경험해본 특성이다.
졸트 특성을 보유한 히어로는 나를 잡기 위해 인공적으로 지진을 일으켰었다.
“일단 써 봐.”
“정말 별롭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자이젝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꺾어온 야생초를 손으로 건드렸다 떼자 이파리가 부자연스럽게 흔들렸다.
진동.
확실하다. 약하긴 해도 그 졸트가 맞다. 단지 그 위력이 형편없다. 아마, 특성 앞에 붙은 ‘브레이브’ 때문이겠지.
이런 특성의 경우 자신의 정신 상태에 따라 위력과 규모가 결정된다.
“자이젝. 이 의자들 위에서 뛰어내릴 수 있지?”
의자 두 개를 쌓았다. 높이는 약 2m.
“제가 아무리 겁쟁이여도 이 정도는 합니다.”
쌓은 의자 위로 오른 녀석에게 나는 야생초가 담긴 컵을 내밀며 특성을 다시 써보라고 지시했다.
부르르, 빠각.
이파리가 진동하는 걸 넘어 컵이 깨졌다. 물이 쏟아져 팔이 흥건히 젖었음에도 나는 웃었다.
“어. 이게, 왜?”
“용기.”
“예?”
“네가 용감한 행위를 할 때. 특성이 강해진다.”
“그, 그런.”
본인이 말했다시피 그는 겁쟁이처럼 살아왔다. 자기가 없어지면 동생을 보살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불의를 봐도 못 본 척했다고 한다.
그럴수록 브레이브 졸트는 약해졌고 자이젝은 그걸 자기가 나이가 들어서 이리된 거라 여겼다고.
“자이젝. 강해져라. 너는 히어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저는 위험한 일은 못 합니다.”
“마트 아르바이트로는 셋 다 대학 못 보낸다. 나중에 원망 들으면 뭐라고 변명할래. ‘아, 내가 너무 겁쟁이였단다. 기회가 왔음에도 걷어찼지 뭐야.’ 이렇게?”
가장에게 동력을 제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효과적인 건 지금처럼 현실을 주입하는 거다.
“…제가 뭘 하면 되죠?”
“말했잖나. 히어로가 돼라. 자이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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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