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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84화 (84/201)

<84화>

팀업

“농담이다.”

진심이다. 하지만 저 퀸의 눈빛을 보라. 정말 네가 그렇게 쓰레기 같은 짓을 할 리가 없어. 라는 세상 순수한 눈이다.

저게 실망으로 변했을 때 나오는 펀치는 가공할 위력을 낸다. 나는 이를 경험으로 알기에 순순히 머리를 숙였다.

“미안하다.”

“왜 훔쳤어.”

트레이시의 물음에 나는 지금도 솥 안에서 약한 불에 끓고 있는 스프를 접시에 담아 그녀들 앞에 내려놨다.

“앞으로 이것만 먹어야 하니까.”

버든이 잽싸게 숟가락 세 개를 내려놓는다. 한 스푼씩 떠먹고는 모호한 표정을 짓는 소녀들.

“그렇다고 도둑질을 하면 어떡해! 차라리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

도수정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둘.

“그럼 좀 빌려줘.”

셋은 거의 동시에 입을 살짝 벌리고는 이내 큭, 하고 웃는다.

“진짜, 뻔뻔한 건 쟤가 세계 제일일 거야.”

“맞아요.”

“저건 타고난 거야.”

이후 각자 1만 코인씩 대가 없이 빌려줬고 나는 감읍하며 그녀들을 배웅했다.

마지막에 나가던 도수정은 F반에 누를 끼치지 말라며 호통치고 떠났다.

조용해진 사무소 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망했네.”

내 정체를 3만 코인과 맞바꿨다. 하필이면 트레이시가 거기에 있을 줄이야. 이게 다 리쳇의 부재로 인해 생긴 결과다.

“…녀석에게 너무 의존하긴 했지.”

“네?”

“아니다. 나 갈 시간이니까. 없는 동안 람이 돌아오면 네가 보고서를 받아 놔.”

“넵!”

곧 하루 플레이 가능 시간이 끝난다. 마지막으로 간판 아래에 ‘히어로 양성소’라는 글씨를 적고 내려오자 눈앞이 점멸했다.

덜컹.

캡슐의 뚜껑이 열렸고 익숙한 나무들이 시야를 점령한다. 잠시 몽롱했으나 캡슐을 완전히 벗어나자 시야가 또렷하게 잡힌다.

이후 미증유의 힘이 사방에서 내게 밀어닥치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리쳇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땠어?

헬로우 아일랜드에서의 일과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일 거라는 추측을 전달하자 리쳇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그러지 말고, 거기 각성자만 찾아서 내게 알려줘.”

최근 리쳇의 존재가 주목받고 있어서 숨길 필요가 있다. 아카데미 내의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외부에서 루트 커토스 같은 인물이 여럿 나오면 피곤해지는 건 결국 나니까.

-보스가 그러길 원한다면야.

그때 캡슐에 달린 외부 스피커에서 교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러분의 첫날 활동은 인상 깊게 지켜봤습니다. 벌써 파견을 보낸 사무소가 있는가 하면 신중하게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팀들도 있었지요.

막 캡슐에서 나와 자기가 겪은 일들을 떠들어대던 아이들이 교감의 차분한 목소리에 집중한다.

-사무소의 리더인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비록 가상이라고는 하나 누군가의 생명이 꺼지기도 할 테지요. 신중하게 결정하고 행동하세요.

-어떤 사무소가 가장 높은 점수를 취득했는지는 매주 금요일 밤에 공지하지요.

-한 달은 긴 시간입니다. 전략을 세워 움직임이길 바랍니다. 이상.

그렇게 첫 히어로 매니저 강의이자 실습이 끝났다.

* * *

르파키스탄의 아마포레스트는 대한민국과의 협정을 통해 조성된 인공 숲이다.

“항상 숲에서 튀어나왔단 말이지?”

잠수함을 타고 르파키스탄에 도착한 람은 원주민을 만나 대화해보니 어쩌면 쉽게 끝날 수도 있겠다고 직감했다.

“그렇다니까요. 헐벗고 다니면서 짐승처럼 울어댑니다. 그런데 어르신, 연세가 많으신데 괜히 무리하지 마시고—”

람은 원주민의 우려를 무시하고 숲으로 들어왔다. 인공 숲 조성 사업이 시작된 지 30년이 넘은 만큼, 숲은 울창하였으며 하늘은 초록으로 덮여 대낮임에도 밤처럼 어두웠다.

그야말로 몸을 숨기기에 최적의 환경이라 하겠다.

“요놈 보게.”

그러나 딸을 잃고 오지에서 반평생을 보낸 람에게 숲에서 이질적인 흔적을 찾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

식인 빌런은 자신의 변과 발자국을 영역 표시하듯 곳곳에 남겨놨다.

“뇌가 퇴화했구먼.”

각성자가 사람을 먹으면 뇌에 구멍이 난다. 이건 굳이 교육받지 않더라도 누구나 아는 본능 같은 것이었기에 각성자가 식인을 한 사례는 손에 꼽힌다.

“잡아서 조국이나 러시아에 넘기면 떼돈을 벌 테지.”

인체 해부를 광적으로 즐기는 두 국가였기에 이런 종류의 빌런은 부르는 게 값이다.

입맛을 다시며 흔적을 추적하던 람은 사람의 두개골을 나무줄기로 엮어 토템처럼 세워둔 공터를 발견. 그 구석에서 피 묻은 돌칼을 갈고 있는 인간을 발견했다.

“이보게.”

크르륵!

홱 몸을 돌리며 이를 드러내곤 늑대처럼 네 발로 엎드리는 사내. 충혈된 눈, 불룩한 배, 번들거리는 입가.

검증할 것도 없이 이놈이 식인 빌런이리라.

람은 곧장 쏘아져 나가 곰도 한 방에 골로 보내는 뒤돌려차기를 놈의 턱에 명중시켰다.

뻑—

뼈가 쪼개지는 소리가 공터를 울렸고 놈은 한차례 바들대더니 이내 축 늘어진다. 람의 일격에 절명한 것이다.

“끙, 몸이 예전 같지 않어.”

삐걱대는 무릎과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시체와 두개골을 챙긴 람은 원주민들에게 가져다주었다. 누군가는 슬픔을 누군가는 분노를 사체에다 토해내는 광경을 잠시간 지켜보다 약속된 장소로 이동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람 대인.”

지프차에서 내린 중국인 남자가 허리를 숙이자 람은 뒷짐을 진 채 물었다.

“날 아나?”

“흑회의 람.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적인 람은 지프차에 올라탔고 젊은 남자는 한 번 더 그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존중을 표하곤 운전대를 잡았다.

얼마 후.

“영광이었습니다.”

“무얼.”

도착한 항구에서 사내가 인사를 건네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대기 중인 잠수함에 몸을 옮기는 람.

“대인!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하게.”

“람 대인 정도나 되시는 분이 이런 난잡한 프로젝트에 참가하신 겁니까. 저처럼 궁핍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 람은 조소인지 비소인지 모를 웃음을 머금고는 입을 열었다.

“속죄일세.”

* * *

사연 없는 히어로는 없다.

“그러니까. 딸내미가 히어로가 되고 싶어 했는데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입장 때문에 앞길을 막았고. 하필이면 대차게 싸운 날 사고로 죽었다는 거네.”

“그…렇게 요약되는 건가요?”

“미사여구 다 빼면 이게 전부지 뭐.”

람의 이야기다. 오늘 히어로 매니저에 들어오니 람 본인이 직접 담근 뱀술을 마시고 있길래 옆에 앉아 적당히 리액션을 치자 이야기하더라. 솔직히 그다지 궁금하진 않았다.

【튜토리얼 완료!】

【설명 : 당신은 아마포레스트의 식인 빌런 의뢰 수행을 위해 람을 파견했고 그는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보상 : 명성 + 10, 1만 코인】

【*의뢰창이 개방되었습니다.】

【*히어로 : 람은 하루의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당장은 의뢰 완료만 해주면 되었기에 전직이 갱단 보스건 뭐건 아무래도 좋다. 세상에 상처를 입히기엔 너무 낡은 쓰레기이기도 하고.

고주망태가 된 람을 내 방에 눕혀놓고 나오자 새벽 배달 아르바이트를 마친 자이젝이 양송이 스프를 접시에 퍼 담고 있었다.

“지금 왔다는 건, 마음을 정했다고 봐도 되겠지?”

“예. 히어로가 되겠습니다.”

히어로 양성소 간판을 걸고 배출해낸 첫 히어로다.

“좋아! 너는 지금부터 히어로다.”

“…끝입니까?”

“뭐가 더 필요해? 사람 살리면 그게 히어로지.”

“그야, 그렇습니다만.”

얼떨떨해하는 자이젝을 놔두고 새롭게 개방됐다는 의뢰창을 열었다.

【의뢰창】

【설명 : 당신은 1성 의뢰를 완료했기에 2성 의뢰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

【★★】

별 두 개짜리를 누르자 서른 개의 의뢰가 나왔고 그중 가장 보상이 큰 걸 골라 자세히 보기를 눌렀다.

【의뢰 : 슈에츠 운하의 해적단 퇴치】

【난이도 : ★★】

【설명 : 해상 물류 운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해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행처럼 번진 이 해적질을 당신이 끊어주십시오.】

【최소 5인이 파견되어야 합니다.】

【파견 가능 히어로 : 로맨, 자이젝】

【보상 : 300만 코인】

【tip : 2성 의뢰부터는 보상이 표기됩니다. 보상은 파견 보낸 히어로의 활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tip : 신규 매니저분들은 팀업을 추천합니다.】

해적이야 뭐, 늘 있어 왔던 놈들이긴 하지. 치워도 치워도 바퀴벌레처럼 다시 생겨나는 놈들.

“5인 파견이 문젠데, 어쩔 수 없나.”

아래의 힌트 대로 협업을 하는 수밖에.

혹시나 해 다른 2성 의뢰를 살펴봤다. 대부분 해적단 퇴치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법한 것들 뿐이다.

하루라도 빨리 높은 단계의 의뢰를 완수해 다른 사무소와의 자금 차이를 줄여야 하는 나로선, 시간을 허투루 낭비할 순 없었다.

하여, 녀석들이 있는 헬로우 아일랜드 중앙지구에 도착.

트레이시의 건물 앞을 서성이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올 줄 알았다는 듯이, 트레이시가 나타나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큼.”

“2성 의뢰 때문에 왔지?”

안은 이미 퀸과 도수정이 모여 있었다. 오가는 대화를 들어보니 내가 올 줄 예상한 듯한 분위기였다.

“해적단 퇴치. 한 명 보낸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꺼내자 트레이시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우리도 그거 이야기하던 중이야. 마침 한 명이 부족하긴 한데….”

말꼬리를 늘리면서 사람 간 보는 어투는 누구한테서 배운 건지, 참.

“아, 할 거야 말 거야.”

의도적으로 짜증을 묻혀 말하자 트레이시가 픽 웃고는 퀸, 도수정과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러곤 저들끼리 소곤거리더니.

“끼워줄 테니까. 고맙습니다~ 라고 해봐.”

야이, 유치하게.

“고맙습니다.”

물론, 나는 얼마든지 유치해질 수 있는 남자였다.

“…재미없게. 능청스러운 걸 잠깐 잊었네. 야, 지금 파견할 거야?”

“어. 너희는 누구 보내게.”

“나랑 수정이는 사이드킥 보낼 거고. 그레이스는 현장 경험을 쌓고 싶어 해서, 본인이랑 사이드킥 같이 간다네.”

나는 아까부터 내 눈치를 보는 퀸에게 시선을 두고 입을 열었다.

“잘됐네. 우리 사무소에선 자이젝이라고 강화계 히어로가 간다. 너는?”

“저희 쪽에선 델로아라는 히어로가 가요. 물을 다루니까 해상전에서 유리할 거예요.”

오, 확실히 희소식이다. 성공률이 크게 늘겠어.

다음으로 트레이시네는 주먹을 미사일처럼 발사하는 히어로였고 도수정네는 방어막을 만드는 특성을 가진 히어로였다. 생각보다 팀의 밸런스가 좋네.

“그래서, 너 특성 뭐 골랐냐.”

죽을 수도 있다. 내가 겪어보니까, 아무리 가상이라 해도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을 거다.

물론, 그 정도로 모든 것을 포기할 녀석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게 또 어찌 될지 모르잖는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만혁. 당신이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꿍얼거리듯 말하는 퀸.

“뭐?”

순간 귀를 의심했다. 킥킥대는 트레이시와 도수정의 웃음소리가 고막을 간지럽힌다.

“어떤 특성도 생성할 수 있다기에. 한번 말해봤는데, 그게 됐어요.”

아니, 남만혁이라는 특성이 존재할 수가 있나?

“어, 어떤 능력인데.”

놀람을 숨기지 않은 채 묻자 옆에 붙어 있던 도수정이 퀸을 재촉한다.

“아까 우리한테 보여줬던 거 그대로 해봐.”

“하지만.”

“얼른.”

“후우. 말리부 해변.”

방금까지 나무판자였던 바닥이 모래사장으로 변하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의해 문이 열린다. 거기로 잔잔한 파도가 밀려온다.

정말, 해변이 구현된 것이다.

이게…, 된다고?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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