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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85화 (85/201)

<85화>

선동꾼, 로맨

내가 진정으로 놀란 이유는 이 현상을 일으키는 게 마법이라는 걸 깨달아서다.

언젠가, 내게 패배한 안토니오 골드우드가 자포자기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스승님. 마법은 특성을 이길 수 없는 걸까요….’

녀석이 의도한 건 아니었겠으나 시대상이 반영된 질문이라 하겠다. 거기에 매저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리 답했다.

‘충분히 숙련된 마법은 특성과 구분할 수 없다네. 함께 정진하세.’

지나가던 고위 마법사가 들었다면, 천하의 그랜드 위저드 매저드여도 제자에겐 현실을 가르치라며 훈계했을 법한 발언이다.

그러나 지금 이 광경을 봤다면 그리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게 다야?”

“아니요, 지도에 레이더 기능이 추가됐고 언데드도 소환할 수 있어요.”

언데드?

“언데드 불러봐.”

“줌.”

이름이 줌인가. 퀸이 말을 하기가 무섭게 바닥에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좀비 하나가 나타난다.

퀸을 살피니 나처럼 마법 소녀로 변하고 싶은 갈망에 휘둘리는 거 같진 않았다.

나타난 언데드는 익숙한 형태의 좀비였다. 트레이시가 내 옆으로 오더니 어깨를 툭 부딪치고는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거기 꺼 맞지?”

네크로 학파의 중층 산 언데드. 요즘 멕시코에서 단순 노동직에 한창 활약 중인 시리즈.

“아마도.”

내가 수긍하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떨어지는 트레이시. 그런 나와 녀석을 번갈아 보던 퀸이 내게 한 걸음 다가온다.

“그런데 싸우지는 못해요.”

전투력 측정을 위해 대련을 해보려 했다고 한다.

“그럴 거다. 전투용은 아니니까.”

네크로 탑주, 샤아는 언데드가 전쟁 병기로 이용될 것을 경계해 노동 이외의 용도는 명령이 불가능하게 프로세스를 짜놨다.

잘해야 고기 방패 정도겠지.

그래도 긴급상황에 고용주를 구출하는 정도는 허용범위 내니까 여차할 때는 도움은 될 거다.

레이더 능력도 들어보니 본인을 중심으로 반경 1km 내의 개체를 파악하는 정도로, 리쳇과 비교하는 게 미안한 수준의 성능이었다.

해변을 제외하면 내 특성을 복제했다기엔 매우 부족한 능력들이라, 내심 다행이다 싶다.

“대단하네.”

“그런가요?”

반쯤은 진심이다. 뭐랄까. 탐색계 히어로라고 생각하면 꽤 유능하게 보인다. 레이더만 잘 활용해도 해적 퇴치 임무는 순항하겠어.

“그럼 결정된 거로 알고. 작전 짜자.”

작전이라고는 하나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히어로 중 가장 연장자인 로켓 펀치를 날리는 녀석에게 대장을 맡기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으나 내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무조건 퀸 시켜. 얘 잘해.”

“네? 제, 제가요?”

퀸은 용병술에 조예가 있다. 수련을 이유로 부유를 상시 사용해와서 그런지 시야 자체가 범인이 비빌 수가 없을 정도로 넓다.

극한의 상황에서 나 못지않게 멘탈도 단단하니 예상 밖의 일이 벌어져도 침착하게 대응할 거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될 것이었기에 반대하는 녀석이 있다면 어떻게든 설득할 생각이었으나.

“난 상관없어.”

“그레이스가 맡는다면야.”

트레이시는 그렇다 치고 저 깐깐한 도수정도 긍정하는 건 좀 의외다. 내가 모르는 사이 친해진 걸까.

그리하여 파견 멤버가 결정되자 더 왈가왈부할 것 없이 바로 히어로들을 데리고 항구로 이동했다.

“다녀와.”

선미에 선 퀸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바라본다. 불안하겠지. 이해한다.

“퀸, 너 내구 없으니까 나서지 말고. 내가 하던 것처럼만 해.”

“네!”

녀석이 탄 배가 멀어지자 트레이시와 도수정은 히어로 영입을 위해 인근 인력사무소와 주점을 돌아본다며 먼저 돌아갔다.

“슬슬 가볼까.”

녀석들의 모습이 완전히 안 보이게 되고 나서야 리쳇이 뽑아준 ‘각성자로 예상되는 주민’ 목록을 떠올리며 항구를 나섰다.

* * *

열흘 후.

헬로우 아일랜드에선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희대의 이벤트가 개최되는 중이다.

[제1회 히어로 오디션]

[1등 상금 1천만 코인!]

[각성자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 지금 피스풀 라이프를 방문하세요.]

[심사위원 : 로맨, 퀸, one]

남만혁은 퀸이 해적 퇴치 의뢰를 떠난 날. 섬 각지를 돌아다니며 뛰어난 각성자들을 만났으나 전부 영입에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에는 코인의 부족함도 어느 정도 차지했으나 결정적으로 사무소의 명성 부족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놈을 어떻게 믿고 위험한 일을 하겠냐는 거였다.

그들의 업보를 이용해 하나하나 설득하기에는 숫자가 적지 않았기에 남만혁은 고민을 거듭하다 이러한 계략을 짜낸 것이다.

“너희가 안 하고 못 배기게 만들어 주마.”

그는 이것을 위해 과감히 열흘이라는 시간과 자이젝과 람을 굴려 마련한 천만 코인이라는 거금을 상금으로 걸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아무래도 첫인상이 중요한 것처럼. 이러한 행사 역시 어떻게든 긍정적인 이미지를 씌우는 게 중요했기에 남만혁, 아니. 로맨은 필사적으로 선전했다.

대광장의 중심.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으나 그동안 단 한 번도 활용되지 않았다는 시청 직원의 말에 로맨은 그 자리에서 한 달 치 이용료를 내고 독점했다.

헬로우 대광장의 하루 유동 인구는 약 5천. 섬 인구의 1/6에 해당하는 엄청난 유동량에 비하면 대여 가격은 헐값이었다.

처음은 네거티브 선동이었다.

“왜 우리가 히어로의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는가!”

로맨은 대중들에게 의문을 각인시키기 위해, 첫날은 온종일 그 말만 외쳤다. 물론,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평생 이렇게 살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주는 것만 먹고 시키는 것만 해라. 사료에 익숙해진 돼지가 소시지가 될 날만 기다리는 것처럼!”

이튿날부터 더 심하게 비판하자 처음으로 반박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네가 뭔데!”

“그래서 어쩌라고!”

“닥쳐!”

로맨은 화내는 이들에게 담담하지만 큰 목소리로 답했다.

“인간은 사실을 지적당하면 분노한다. 지금 우리처럼!”

사흘째 되는 날. 로맨이 무대에 섰을 때. 길을 걷던 다수의 사람이 팔짱을 낀 채 멈추어 섰다.

네놈이 무슨 개소리를 떠드는지 한 번 들어 보겠다는 제스처였고, 로맨은 웃었다.

“그깟 무지개 쫄쫄이들이 뭐가 무섭다고 대우해줍니까.”

“큭.”

흉흉하던 분위기가 농담 하나에 흐트러진다. 로맨을 이를 놓치지 않고 모인 사람들의 심중에 하나의 단어를 들여놨다.

“그들을 지탱하는 여러분이, 진정한 히어로입니다.”

그걸로 그날의 연설은 끝이었다. 3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스피치는 사람과 매체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많은 이슈를 낳았다.

인격이나 능력이 부족한 히어로라도, 단지 히어로라는 이유로 대우해왔던 주민들의 인식이 조금 달라졌다.

이는 모든 주민을 통제하는 교감, 프리실라 루드라마저도 어찌할 수 없는 큰 흐름이었다.

다음 날. 광장의 빵집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지켜준다는 이유로 늘 도넛을 하나씩 가져가던 나태한 히어로에게 빵집 주인이 도넛 지급을 거절한 것이다.

히어로는 폭력으로 도넛을 빼앗았고 이를 목격한 주민들이 히어로를 둘러쌌다.

“뭘 봐, X발 놈들이.”

다른 이도 아니고 남만혁이 벌이는 사건이었기에 모든 스케줄을 미뤄두고 지켜보던 교감은 충분히 놈의 만행을 저지할 수 있음에도 방치했다.

그리고 주민에게 주먹을 휘두르려는 찰나. 기대대로 로맨이 나타났다.

“그만.”

“여기서 시끄럽게 떠들던 새끼 아냐. 뭐 하러 왔냐. 왜? 이번에는 내 욕도 하게?”

로맨은 그의 말을 일절 무시하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16세 정도의 왜소한 체격의 아이에게 다가간다.

“너, 이름이 뭐지?”

“저요? 듀크인데요.”

“듀크. 너는 저놈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야…, 싫죠. 저런 게 히어로인가 싶고.”

듀크와 로맨의 대화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다.

“네가 저 쓰레기를 치워 불 테냐?”

“제가요? 저는….”

“각성자잖아.”

“네? 어떻게 아셨어요. 아직 아무에게도 말 안 했는데.”

듀크는 일반 주민으로 살다 이틀 전에 각성했다.

“그게 내 특성이다. 너는 마음만 먹으면 저걸 한 손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

“정말요? 할래요.”

로맨이 괜히 이 소년을 찍은 게 아니다. 무대 주변을 맴돌며 자신이 하는 말을 경청했을 뿐만 아니라 상태창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섬 내 각성자 중 파괴력만은 수위를 다툰다.

“저놈도 꼴에 히어로이니 죽일 수는 없다. 그러니 다리를 노려라.”

듀크의 팔을 잡고 조준하듯 히어로의 다리를 가리키자 놈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푹—

“끄아아아악!”

뛰던 자세 그대로 땅에서 솟아난 흙창에 의해 다리가 꿰뚫려 끌려 올라간다.

시청 직원이 구급대를 불렀고 금방 도착한 그들은 과다출혈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히어로를 데리고 급히 떠났다.

시민들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로맨이 듀크를 자기 앞에 세워두고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이 아이는 히어로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히어로다웠습니다. 저보다 오랫동안 이곳에 살아온 여러분이 더 잘 알겠지만, 저런 못난 히어로가 한둘이 아닐 겁니다. 그러면. 차라리 당신이 히어로가 되어 주십시오. 저런 놈들에게서 우리를 지켜주세요.”

항상 소란스럽던 광장에 온전히 로맨의 목소리만 울린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저를 찾아오십시오. 오늘 생애 처음으로 듀크가 ‘히어로’가 된 것처럼. 여러분도 세상에 필요한 히어로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편입니다.”

그렇게. 로맨은 헬로우 아일랜드 시민을 선동했고, 시장을 주축으로 한 히어로들이 로맨의 주장은 과한 비약이며 선행을 하는 히어로가 이렇게 많다고 광장에 공지를 붙였을 때쯤엔.

“어서 오세요. 오디션에 참가하고 싶다고요? 여기에 사인을—”

이미 피스풀 라이프 사무소엔 각성자들로 줄이 끊이지 않게 된 후였다.

선동에 5일. 자금 조달 및 오디션 준비에 다시 5일. 하루에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 쉽지 않았으나 로맨은 해냈다.

처음 광장의 무대를 장기 독점 대여한 게 포석이 되었다.

시청의 경계를 받는 이상 큰 공간을 빌리는 게 쉽지 않았는데, 광장에서 공개 심사를 한다는 과감한 수로 극복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다.

[로맨 : 50]

[퀸 : 65]

[one : 20]

사회자를 맡은 버든이 세 심사위원석 위의 점수 보드를 보곤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한다.

“총합 200점을 넘지 못하셨으므로 호노마루 님은 저희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소, 손나 바카나!”

“심사위원분들의 평이 있겠습니다.”

먼저 트레이시 그웬, one이 펜 마이크를 잡는다.

“젓가락 달인 특성. 이것도 히어로를 하기엔 부족한 능력이긴 합니다만, 무엇보다 숙련도가 최악이네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티가 나잖아요. 재미 삼아 나오셨으면 이쯤에서 추억 쌓은 거로 만족하시고 돌아가세요. 진심으로 히어로가 되고 싶은 분들께 실례입니다.”

옆에 앉은 로맨도 놀랄 정도로 신랄한 비판을 퍼부은 트레이시가 마이크를 놓자 곧장 65점을 준 퀸이 이어받는다.

“히어로가 되는 데 특성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히어로의 조건은 각오와 옳은 신념이라고 생각해요. 호노마루 씨의 퍼포먼스에선 신념을 느낄 수 없었어요.”

마지막으로 로맨에게 넘겨지는 마이크.

“기회에 편승해 한몫 잡겠다는, 알량한 마음으로 지원한 게 눈에 보입니다. 적어도 본심을 숨길 수 있게 된 다음 지원하세요. 다음.”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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