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86화 (86/201)

<86화>

히어로 오디션

[로맨 : 100]

[퀸 : 95]

[one : 90]

“점수 총합 결과, 우승자는…. 듀크!”

“와아아!”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에 일일이 호응하며 감사 인사를 하는 듀크. 그가 진정하길 기다린 사회자, 버든이 심사위원석에 마이크를 넘긴다.

“퍼스널 센스의 one입니다. 듀크, 당신은 장래에 완성형 히어로가 될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다듬을 부분이 보이는군요. 우리 사무소와 함께 고민해보죠.”

심사평을 가장한 영입 제안이었다. 듀크는 자기 손에 쥐어진 마이크에 대고 자신 있게 말했다.

“세 분 심사평 모두 듣고 결정하겠습니다. 그래도 되죠?”

약간의 오만이 깃든 멘트였으나 이틀간 진행된 오디션에서 보인 그의 여린 면모를 아는 관객과 심사위원들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오~

“글로리 펀치의 퀸입니다. 특성을 다룸에 있어 신중한 면모와 불의를 보고도 피하지 않는 심성. 이런 소년이야말로 반드시 히어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개를 끄덕이며 함박웃음을 짓는 듀크. 마지막으로 로맨이 마이크를 잡는다. 그는 한참 동안 흐뭇한 표정으로 듀크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시죠? 쟤 제가 키웠어요.”

와하하!

“우리 사무소에 와. 잘해줄게.”

그게 심사평의 끝이었다. 늘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평가하던 로맨이 처음으로 속내를 표하자 듀크가 울컥해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트린다.

“참, 그리고 100점 준 거 나밖에 없다?”

하하!

그렇게 제1회 히어로 오디션 우승자 듀크는 후에 최고의 히어로 육성기관이자 히어로 사무소로 성장하는, 피스풀 라이프에 입단하게 된다.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히어로 오디션은 대성공이었다. 초기의 목적대로 사람들이 히어로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건 물론이고 섬의 히어로 비율 자체를 기존 1할에서 2할까지 끌어올렸다.

심사 과정에서 피스풀 라이프 사무소가 유명해진 건 말할 것도 없고 헬로우 아일랜드 내에서 로맨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주민도 이제는 없다.

최종 10인에 오른 이들 중, 우리 사무소를 지원한 이들만 7명. 거기엔 당연히 듀크도 포함되어 있었다.

듀크는 ‘우승 상금은 사실 네 3년 고용비란다.’라는 다소 블랙 기업 사장 같은 발언도 흔쾌히 수용하는 대인배였다.

지원한 7인 외에도 탈락자 중에 쓸만한 각성자나 이전 내가 설득하러 갔을 때 퇴짜를 놨었던 이들이 제 발로 찾아와 자신을 히어로로 만들어주길 간절히 청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고.

그렇게 피스풀 라이프는 30인의 사이드킥을 거느린 대규모 사무소가 되었고 여기까지 딱 2주가 소요되었다.

감히 장담하건대, 한 주만 지나도 지금 활약 중인 모든 사무소의 의뢰 완수 점수를 합친 것보다 우리 사무소 하나의 점수가 더 높아지리라 단언할 수 있다.

* * *

“발상이 위험하네요.”

프리실라 루드라는 학생이 직접 발품을 팔아 사람을 고용하고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믿을 만한 인간과 못 믿을 인간을 구분하는 법을 익히길 바랐다.

다른 학생들은 전부 고배를 마시며 교감의 의도대로 움직였으나 남만혁만큼은 달랐다.

본인의 설득이 먹히지 않자 곧바로 히어로 오디션이라는, 정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허허, 예전에 언데드와 계약할 때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했네. 아마 그때의 경험에서 착안한 거겠지.”

“그랬었습니까?”

“또 마법사의 소양을 가르치기도 했네.”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라. 그거 말씀이지요?”

“잘 기억하고 있구먼. 마법사는 상상력이 곧 마법이니까 말일세.”

“후우…, 그나저나 이대로면 2등 승부겠군요.”

“그럴 테지. 그런데 이건 내 개인적인 호기심이네만. 우리 제자가 어째서 저리 열심히 하는지 알겠는가?”

“네?”

“제자는 내 강의를 제외하면 강의에 임하는 자세가 가볍다고 들었네. 아닌가?”

“맞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외에는 교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편이지요.”

“보게. 지금 히어로 매니저는 둘 다 해당하지 않음에도 저리 열심히 하잖은가. 자네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글쎄요, 단순히 재미를 느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허허, 내 잘난 제자는 또래 아이와는 다르다네. 하는 행동이나 말투가 꼭 쉰은 넘은 닳고 닳은 녀석 같단 말일세. 이 정도로 재미를 느끼기엔 정신연령이 너무 높지 않나 싶어.”

“선배는 남만혁이 다른 목적이 있을 거로 생각하시는군요.”

“그게 합리적인 사고 아니겠나.”

매저드의 추론은 옳다. 본래 타 사무소의 지원요청에 응할 수 있는 정도로만 피스풀 라이프를 키워 애들의 학습에 주력하려던 남만혁이었으나 일반인 중 히어로의 소양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과 헬로우 아일랜드가 실재하는 섬이라는 걸 알아챈 뒤론 노선을 틀었다.

섬의 위치는 버뮤다 삼각지대. 아메리카 대륙과 인접하면서도 실종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의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곳.

그에게 있어서는 후에 닥칠 그블린 습격을 대비할 요새 후보로 아주 적합한 섬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무언가의 대비겠군요.”

교내 커리큘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운틴 짐이라는 훈련소를 세워 촉망받는 히어로 지망생을 따로 교육하는 행위.

세계 제일의 보안 시설을 자랑하는 아카데미 내에 건설 중인 요새.

또 파이락사이트와 같은 미래에 가치가 생길 거라 판단되는 소재의 대량 매입.

하나같이 미래를 준비하는 뉘앙스를 지울 수 없는 행동들.

“뭔가를 직감한 게지. 자네도 말했잖은가.”

“혼란 말씀이시군요. 아주 소수의 인물만이 가능성을 추측하고 있는 그 사태를 17살의 학생이 내다봤다는 건가요.”

“허허.”

반신반의하는 교감의 물음에 매저드는 웃음으로 답했다.

* * *

아카데미 1학년들 사이에선 지금 히어로 매니저에서의 일이 매일 언급되고 있다.

특히 3주 차 금요일 저녁인 지금은 피크 중의 피크였고 기숙사에 생활하는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점수 집계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중에도 최근 ‘히드라 시스터즈’라 불리며 유독 붙어 다니는 셋이 있는데. 다름 아닌 그레이스 멜론, 트레이시 그웬, 도수정이었다.

“트레이시, 오늘도 히드라 시스터즈 모임이냐?”

매점에서 만난 트레이시와 네로.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죽어.”

트레이시가 이를 드러내자.

“아이고. 나도 오디션 참가자들처럼 심사평으로 울리게?”

“야!”

“캬하학.”

참고로 네로는 트레이시를 짝사랑하고 있다.

도망치는 네로를 노려본 트레이시는 매점에서 간식거리를 사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문이 열리자, 방 안에서 그레이스와 함께 침대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도수정이 벌떡 일어난다.

“안타볼 있어?”

식감이 좋아 항상 매진되는 안타볼이 하나 남아 있어 얼른 낚아채 왔다며 꺼내는 트레이시.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다 간식을 게걸스레 섭취하고 아이스크림을 흡입할 무렵, 홀로 보드와 연결해둔 한쪽 벽면이 까맣게 변한다.

“시작한다.”

【히어로 매니저, 사무소별 득점 순위】

【1위. 2,051점. 피스풀 라이프】

【2위. 1,085점. 퍼스널 센스】

【3위. 1,050점. 글로리 펀치】

【4위. 733점. 샤이닝 크리스탈】

이변은 없었다.

히어로 오디션이 대두되는 순간, 히어로 매니저에 참여한 학생 전원이 심사위원석 중앙에 앉은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챘고, 지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2, 3위가 4위에 비해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도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냐 아니냐의 차이었다.

“아, 역시 수정이 너도 오디션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난 그때 바빴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그건 괜찮아.”

당시 도수정은 해적 퇴치에서 파견한 히어로가 큰 부상을 입고 복귀하는 바람에 직접 보살피느라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가 여의찮은 상황이었다.

“그건? 뭔가 불만이 있긴 있다는 거네?”

“당연하지! 트레이시, 너 때문에 나까지 히드라라고 불리잖아.”

히드라라고 불리게 된 연유는 트레이시가 오디션 참가자에게 한 독설 때문이다.

그러나 밖에서는 하지 말라고 위협하지만, 내심 강한 이미지의 별명이 마음에 들었던 트레이시는 도수정이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쎄 보이고 좋은데 왜.”

“괴물이잖아! 난 사람이고 싶거든? 나중에 이상한 히어로명 붙으면 어떡해.”

꽃다운 나이에 히드라가 웬 말이냐며 울 것처럼 구는 도수정의 모습에 가만히 순위를 바라보던 그레이스도 킥 웃었다.

“나처럼?”

퀸.

남만혁 때문에 학기 초부터 불리는 오글거리는 별명. 그걸 인내하고 이제는 초연하게 웃을 수 있게 된 그레이스가, 도수정의 눈에는 마치 세상일에 달관한 부처처럼 보였다.

부처는 눈으로 본인이 너의 미래라 말하는 듯했다.

“으, 으아아! 싫어어!”

쿵!

“조용! 이제 자기 방으로 돌아가!”

사감이 문밖에서 소리치는 것으로 히드라 시스터즈의 세 번째 회담이 마무리되었다.

* * *

히어로 매니저 강의 마지막 날, 오전.

위이이잉! 위이잉!

사무소에서 업무를 보던 중, 갑자기 경보가 울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나는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상황 파악에 나섰다.

“버든,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버든은 달려 나가기가 무섭게 사색이 된 얼굴로 돌아왔다.

“사방이 해적이에요!”

문힐의 몇 없는 장점 중 하나는 고지대라 섬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런 행사가 있으면 항상 사전 고지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없다. 그렇다고 항상 섬 주위를 철통 경계 중인 관계자들이 진짜 해적의 침입을 가만히 놔뒀을 리도 없고.

고로, 이건 교감의 마지막 시험 비스무리한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겠지.

아니나 다를까.

【긴급 의뢰!】

【의뢰 : ‘스컬 파이럿츠’ 토벌】

【난이도 : ★x10】

【설명 : 대형 해적단 ‘스컬 파이럿츠’가 헬로우 아일랜드를 침공했습니다. 그들은 갓난아이조차 신선한 돈으로 보는 악질 해적단입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섬을 지켜주세요!】

【모든 히어로를 동원할 것.】

【파견 가능 히어로 : 로맨, 람, 자이젝, 듀크 외 34인.】

【보상 : 없음】

【tip : 단장인 ‘까미움’은 크라켄을 조종합니다. 헬로우 아일랜드 시장은 크라켄의 목에 3천 점, 까미움의 머리에 5천 점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tip : 선단 중 한 척에는 그의 보물 금고가 은닉되어 있습니다. 시장에게 양도할 시 3천 점을 지급한다는 소문입니다.】

막판 뒤집기는 어디에서나 존재한다지만 이건 좀 치사하지 않나 싶다. 지금까지 우리 사무소가 모은 점수가 딱 3천 점이다. 다 필요 없고 해적단 두목의 머리만 취하면 단숨에 1위라니.

시야 한쪽에 띄워둔 학생 전용 채팅창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간다. 나를 제외한 19명이 모두 채팅을 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버든, 의뢰 나간 애들 전부 불러들여. 이 긴급 의뢰에 집중한다.”

“보상이 없는데도요?”

별수 있나. 3위라도 하려면 저 셋 중 하나는 달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 순위는 섬 내의 영향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어.”

“알겠습니다. 람 아저씨를 현장 지휘관으로 두고—”

“아니, 이번에는 나도 간다.”

“사장님 싸울 줄 알아요?”

“아니?”

“예?”

“지휘만 할 건데.”

“예에. 람 아저씨를 부지휘관으로 둘게요. 그건 괜찮죠?”

이 자식이 나를 안 믿네.

“알았다.”

항상 대처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친 덕분에 우리 사무소가 가장 빠르게 항구에 도달했고 멀리서 다가오는 해적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괜찮겠소?”

람. 그간 술 몇 잔 주고받으며 나름의 정을 쌓아서인지 내가 걱정되나 보다.

“괜찮다마다. 이참에 내기나 할까?”

“무슨?”

“자네가 까미움이나 히드라의 목을 가져오는 게 먼저인지. 내가 보물 금고를 찾는 게 먼저인지.”

“재밌겠어. 뭘 걸겠소?”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의 부하 되기는 어떤가. 쫄리면 거절해도 좋다.”

“하! 지고 물려달라고나 하지 마시오.”

해탈한 척 굴어도 남자는 남자네. ‘쫄?’을 못 참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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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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