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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96화 (96/201)

<96화>

빌런 이지욱 (1)

리무진 버스에 올라타는 남자의 가방 속 물건을 훔쳤다. 저들은 소매치기를 당한 줄도 모르고 웃고 떠들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같은 세상에 같은 종으로 태어났음에도 저들은 웃고 나는 웃지 못한다.

왜일까.

“바퀴벌레. 그거 내놔.”

소매치기를 한 소년이 골목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청년, 서강패가 손바닥을 내민다.

“…….”

“야, 대답 안 해?”

반응이 없자 여느 때처럼 가스총을 꺼내 눈에 대고 협박하는 서강패.

소년, 이지욱은 그간 구차하게 발버둥 쳐왔으나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심정이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어.”

서강패는 이지욱의 내리깐 눈과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에 멈칫했으나 그 역시 보스의 지시를 어길 순 없었기에 강압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너희 엄마가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훔친 거나 내놓고 가라.”

“독감이 원인이었대. 제때 약만 먹었어도. 나았을 거래.”

“뭔 소리야 X발.”

퍽!

총 손잡이로 이지욱의 머리를 쳐 쓰러트린 서강패는 훔친 물건을 챙겨 몸을 돌렸다.

그렇기에 그는 볼 수 없었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려꽂히는 빛기둥이 이지욱을 휘감고 있음을.

쓰러져 있던 이지욱의 흐리멍덩하던 눈에 일순 살의가 깃들었고.

“어쭈, 멀쩡하네?”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소리에 서강패가 고개를 돌렸을 땐, 안주머니에 있어야 할 총이 둥실 떠올라 눈을 겨누고 있었다.

“잠, 잠깐만. 너. 각, 각성했냐? 침착하고 내 말 좀 들어봐. 어머니가 아프다고 했지? 내가 약 사다 줄게. 응? ……야 이 X끼야! 이거 치워! 너 내가 좋게 말로 하니까 X신으로 보이냐! 치우라—”

탕.

“끄아아악!”

퍽, 퍽, 퍽.

“끄윽, 윽….”

이지욱에게 있어 서강패의 죽음은 목에 드리워져 있던 올가미를 끊어내는 것과도 같았다.

“엄마는 죽었다고 했잖아.”

골목의 고철들이 그를 중심으로 부유한다.

철 조작. 일정 규모 이상의 물체에 조금이라도 철이 포함되었다면 숙련도 고하에 따라 자유롭게 제어하는 능력.

히어로 협회 내부에서는 조작계 특성 중 최상급으로 등급을 책정한 능력이다.

이지욱은 쓰러진 서강패에게 흘러나온 피가 어린 시절 어머니의 등에 올라타 보았던 불꽃놀이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훔친 물건을 집어 들었다.

골목을 빠져나가 이 물건을 그들에게 돌려줄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자기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놈들에게 복수를 할 것인지 고민하던 이지욱은 오래지 않아 결단을 내렸다.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어머니.”

이지욱은 깜빡이는 주홍빛 가로등을 뒤로하고 골목 깊숙한 곳으로 사라졌다.

* * *

-금일 02시경. 백웅파 조직원들이 무참히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단독범의 소행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목격자에 의하면 백웅파의 거점인 삼보 당구장 인근에서 각성광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범인을 수색 중이며, 시민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신속히 빌런을 체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VZ기술이 발표되었지요? 이번에 VZ-4라는 수류탄 형태의 투척용 VZ가 개발되어 히어로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복수를 끝마치고 백웅파 건물 옥탑방에서 옷을 훔쳐 갈아입고 나와 돌아다니던 이지욱은 편의점 안에서 들려오는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수류탄?’

편의점 홀로 보드에 떠 있는 VZ-4 사진. 이지욱은 저게 어제 백웅파의 명령으로 훔친 물건과 같은 것임을 알아차렸다.

본인도 모르게 안주머니로 손이 가는 그때. 편의점 문이 열리고 남자 둘이 나온다.

딸랑.

“이 근처인 거 같은데. 물 사용 로그 제대로 뽑아온 거 맞아?”

“맞다니까요. 그 시간에 물 쓴 건물은 거기밖에 없어요.”

“후, 키 160 중반에 체중은 45kg 정도. 오른손잡이고 남자. 특성은 조작계나 구현계. 원한에 의한 살인.”

바로 옆에서 경찰의 중얼거리는 걸 들은 이지욱은 못 들은 체하며 다리를 바삐 놀렸다.

이지욱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다음 전면부가 거울로 이루어진 건물을 통해 흘낏, 그들을 훔쳐보다 경찰 중 하나와 눈이 맞았고.

“어?”

“왜?”

“저거. 저놈!”

“응? …잡아! 으윽!”

“컥!”

경찰들이 착용하고 있던 벨트를 조작해 그들을 편의점 문에 묶어둔 이지욱은 재빨리 도망쳤다.

몇 시간에 걸친 추격전 끝에 이지욱은 CCTV가 없는 산으로 몸을 피신하게 되었다.

“이런….”

경찰과 히어로를 따돌린 것까진 좋았으나 당분간 이곳에서 자급자족하고 살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한 이지욱이었다.

반면, 경찰 측은 철을 조작할 수 없는 환경에 빌런을 몰아넣고 나서야 간신히 한숨 돌렸다.

“포위망 구축하고 함양, 산청, 하동에 빌런 주의보 때려.”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쫄쫄이 놈들도 별말 못하겠지.”

대한민국 경찰은 부산에서 지금은 적색 수배자인 다크 넥서스를 놓치는 바람에 히어로 협회에서 온갖 비난과 조롱을 들어야 했다.

빌런 체포는 히어로가 하는 게 맞다며 뻔뻔하게 국내 수사 권한을 요구해오는 협회의 행태에 열불이 난 김 서장은 이번에야말로 실수 없이 빌런을 포획하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실시간으로 보고 받으며 포위망을 좁혀나가던 중.

“서장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습니다.”

“강 경위. 시간 끌지 말고 그냥 보고해.”

“에헤이, 들어보시라니까요. 나쁜 소식은 지리산에 학생들이 합숙을 와 있다는 겁니다.”

“후, 좋은 소식은?”

“그 학생들이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거?”

김 서장은 포위를 갖춰놓은 후 빌런 전담팀을 호출할 계획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빌런이자 살인마 체포라는 달콤한 실적을 독차지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부하들이 죽어 나갈 터였다.

그런데 히어로가 아니면서 히어로에 준하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 저 산에 있다고 하니, 귀가 솔깃한 김 서장이었다.

“연락해.”

“이미 거는 중입니다. 데커드 교수라고. 교감 아들이라 현장 결정권도 있을 겁니다.”

잠시 망설인 김 서장은 이내 결정한 듯 강 경위가 내미는 홀로폰을 받아들었다.

뚜르르.

-데커드입니다. 누구십니까?

* * *

“경찰이 지원을 요청해왔습니다. 빌런 체포에 힘을 보태달라는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경찰에게 전달받은 빌런의 정보를 들은 집업미러와 세이프레그는 찬성과 반대를 한 표씩 던졌다.

“학생이 다칠까 걱정입니다. 차라리 저희가 나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세이프레그가 우려를 표하자 집업미러가 고개를 젓는다.

“저 빌런, 막 각성했다잖아요. 포위망 안에는 철도 없다 그러고. 딱 실전 경험 쌓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애들이 투입되었으면 해요.”

“트라우마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이제 고작 1학년입니다. 실전은 3학년 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

“1학년에 실전 감각을 몸에 익혀두면 남은 2년 동안 더 많은 걸 배울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닙니다.”

데커드는 두 히어로가 점점 언성이 높아지자 중재에 나섰다.

“차라리 학생들에게 물어보죠.”

“예? 애들은 17살입니다. 판단을 내릴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했어요.”

“그러면 여기서 잠자코 손가락이나 빨자는 건가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훈련을 하면 됩니다.”

펜션 식당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싸우는 두 사람.

“듣습니다. 목소리 낮춰주세요.”

“큼.”

“예.”

데커드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빈 컵을 들고 손가락으로 때려 시선을 모았다.

“공지가 있습니다.”

경찰의 조력 요청과 빌런의 정보를 읊은 데커드.

“이러한 상황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저희가 도움이 될까요?”

데커드가 도수정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때에 세이프레그가 나섰다.

“도수정 양.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히어로보다는 일반 각성자에 더 가깝습니다. 경찰분들의 업무를 방해하게 될 겁니다.”

반대를 종용하는 세이프레그의 언사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질문을 던진 도수정조차도 찬성에 손을 들었다.

후에 이유를 물으니, ‘헬로우 아일랜드의 의뢰보다는 쉬울 거 같아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원 찬성이군요. 좋습니다. 바로 가시죠. …그런데 남만혁 학생은 어딨습니까?”

“볼 일이 있다고 그러던데요.”

트레이시 그웬의 제보에 데커드는 고개를 끄덕이곤.

“저희끼리 가죠. 곧 포위망이 갖춰진다 하니 시간이 촉박합니다.”

“네!”

교수와 두 히어로를 따라나선 아이들은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안은 채 천왕봉으로 향했다.

* * *

그 시각. 백웅파에 VZ-4의 탈취를 의뢰한 기업. ‘루나테라’에선 긴급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그걸 놓쳐!”

쾅!

화려한 의자에 앉은 사내가 테이블을 내려치자 단숨에 박살 나며 다른 의자에 앉아 있던 홀로그램들이 진동한다.

“회, 회장님. 진정하시고.”

“지금 진정하게 생겼느냐는 말일세! 내가 어려운 일 주문했나? 그냥 주워오기만 하면 되는 걸, 일을 이따위로 만들어? 그딴 싸구려 조직 하나 간수 못 해서!”

“죄송합니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져!”

기다렸다는 듯이 일시에 사라지는 홀로그램들.

루나테라는 VZ를 개발하던 회사 중 하나로 길버트 슈타인 연구소가 남만혁의 투자를 받지 않았다면 세계에서 가장 먼저 VZ를 개발했을 회사다.

최초를 뺏긴 것에는 분노하지 않았다. 문제는 직원들의 대처. 1등이 글렀으면 2등이라도 해서 역전의 발판을 노려야 할 것 아닌가.

“이렇게 맹하게 일을 처리해서야. 쯧쯧!”

테라 회장은 얼마 전 모임에서 받은 명함 한 장을 서랍에서 꺼냈다.

[위대한 우주를 향해]

[볼트, 루덴]

“흠.”

명함을 뒤집자 홀로폰의 카메라로 인식할 수 있는 모종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건가? 됐군.”

볼트의 국장, 루덴이 그러했듯 이 주소는 조사가 아닌 납치 의뢰를 전문으로 받는 용병 목록이었다.

“이놈들 관상이 악랄하니 좋구먼. 세 팀은 보내야겠지? 뭐가 이렇게 비싸. 쯧, 어쩔 수 없나.”

부하들에게 과감하고 확실한 일 처리가 어떤 것이지 보여주기 위해 큰 투자를 한 테라 회장은 곧 도착하는 세 개의 메시지를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출발함.

-한국행 비행기 탑승.

-사흘 안에 목표물을 지정 위치에 데려다 놓겠다.

* * *

같은 시각. 지리산 천왕봉 인근.

“야.”

“뭣, 흡!”

리쳇이 VZ-4를 훔친 놈이 있대서 추적해보니까, 알아서 지리산으로 오기에 기다렸다.

그러다 경찰들이 포위망을 구축하고 잠시 딜레이가 되는 시점에 펜션에서 빠져나와 놈을 만났다.

“이지욱. 19살. 맞나?”

입을 막은 채 묻자 놈이 전신에 힘을 주다 이내 눈을 부릅뜬다. 무언가를 하려 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어 당황한 눈치다.

“매그닉 잡으러 가는데 철을 들고 왔겠냐.”

체내의 산화철까지 조작한다는 재각성자면 뒤도 안 보고 튀었겠지만, 이놈은 이제 막 각성한 초짜. 숙련도도 형편없을 거다.

그냥 내버려 둬도 알아서 경찰에 잡힐 만한 상황이고 VZ-4도 소유권을 주장하면 큰 소란 없이 돌려받을 수 있겠지. 그럼에도 내가 굳이 나선 이유는.

“너, 특성 좀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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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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