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아름다웠다
이지욱이 F반을 협곡으로 유인할 무렵.
마이크로 드론을 통해 지켜보던 남만혁은 리쳇의 보고를 듣곤 급하게 움직였다.
“몇 명이라고?”
-치밭목대피소에서 여섯, 세석 대피소에서 셋. 총 세 팀이고 전원 각성자. 진형과 복장으로 보아 중견급 용병으로 추정됨. 경찰 포위망 접촉까지 9분 42초.
웬만하면 경찰에게 떠넘기겠는데, 용병들 무장 상태가 범상치 않다.
대전차 소총, 대전차 로켓포, 무반동포까지.
이야, 어디 탱크라도 사냥하러 가나.
경찰의 화력으로는 저들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
할 수 없이 언데드 클럽을 불러 일식이와 삼식이는 치밭목대피소로 보내고 나는 두식이와 함께 세석 대피소로 향했다.
“근데 두식아. 너 안 본 사이에 많이 컸다?”
덜걱!
안 그래도 덩치가 훌륭했던 녀석인데 이제는 체고가 5층 빌라와 비슷하다.
“유황 지대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고? 그래, 나중에 천천히 들어줄게.”
두식이는 늘 바빠 보여서 무슨 일이 생기면 주로 일식이나 삼식이를 불렀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동하는 내내 쉼 없이 덜걱대며 사념을 쏟아내는 두식이.
“진짜? 대단한데? 그랬구나. 잘했어. …쟤들 맞지?”
대충 리액션을 하다 군복을 입은 세 명이 눈에 들어와 리쳇에게 묻자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 용병 하나가 주먹을 들어 수신호를 보냈고 일제히 자세를 낮춰 사방을 경계한다.
탐색계가 있다. 이 거리에서 경계를 한다는 건 아마 범위가 넓은 대신 위치를 특정하지는 못하는 종류겠지.
“두식아 가라.”
덜걱.
블랙 팽을 불러내 용병들을 향해 걸어가는 두식이. 어우야, 뒤에서 보니까 장관이네.
두식이 부하들도 어디서 구했는진 몰라도 그럴듯한 장비 한두 개씩 걸치고 있으니까 꽤 그림이 나온다.
어깨 형님들이 경쟁 조직 치러 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용병들이 두식이를 발견하곤 총구를 겨눈다.
“접근하면 발포한다. 물러나라.”
용병의 경고에 두식이는 쭈그리고 앉더니 대뜸 자기 입으로 손을 넣는 게 아닌가.
“오.”
손이 나왔을 땐, 공성추처럼 생긴 둔기가 들려 있었다.
‘다른 공간과 연결된 건가.’
두식이가 양손으로 추를 잡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블랙 팽이 먼저 용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쏴!”
쏟아지는 포격과 총탄들. 방패를 든 해골들이 전면에 서서 로켓포를 안정적으로 막는다.
저 전차를 뒤집어버리는 폭발력을 방패 몇 개로 저지한다는 게 말이 되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포탄을 맞을 때마다 희미한 빛무리가 방패에서 흘러나왔다.
‘아티팩트.’
심계에선 저런 것도 구할 수 있는 건가.
‘두식이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걸 그랬어.’
용병이 포탄을 장전하는 사이 방패 뒤에 숨어 있던 활을 든 해골 둘이 빠르게 접근하는 용병을 겨누고 시위를 놓는다.
살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고 그와 같은 숫자의 쇳소리가 재차 숲을 울렸다.
샷건을 든 용병이 총열로 화살을 모두 쳐낸 것이다.
‘저거 강화계네.’
놈은 개머리판으로 자신에게 들러붙는 방패 하나를 옆으로 밀치고 총구를 해골의 두개골에 겨눈다.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 창을 든 해골이 창대로 샷건을 올려 치고 그 반동을 이용해 그대로 용병의 목을 찔렀다.
탕!
하늘을 향해 쏘아진 샷건. 용병은 다가오는 창 촉을 보며 급히 몸을 옆으로 굴렸으나.
퍼억!
뒤에서 땅에 붙듯이 낮은 자세로 쇄도해온 두식이가 휘두른 공성추에 의해 머리가 터져 그대로 즉사했다.
“이야, 너희 호흡 좋다?”
덜걱, 덜걱.
두식이가 오면서 한 이야기 중에 ‘전장에서 굴렀다.’라는 말이 얼핏 기억나는데, 진짜였나보다.
내 칭찬에 평소대로 하는 거라며 겸손을 떤 두식이가 다시 쪼그리고 앉는다. 그 앞을 방패와 창, 활을 든 블랙 팽이 막아섰고.
“아.”
저러면 앞에서 볼 때 두식이의 큰 덩치가 방패 뒤에 숨겨진다.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었구나.
용병들도 아마추어는 아닌지 동료의 죽음에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단지 하나 의아한 것은.
‘왜 도망을 안 가지?’
전력 차이는 명백하다. 숫자, 조직력, 힘. 총알이 무용한 언데드라는 상성까지.
용병 입장에서는 승기가 조금도 없을 텐데.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싶어 주의를 기울이던 그때. 정면 사격만 하던 용병 하나가 갑자기 고각으로 포를 쏜다.
이 거리에서 고폭탄은 아닐 테니 신호탄이겠거니 싶어 활을 든 해골에게 맞추라고 하려는 때에, 갑자기 올라가던 미사일의 방향이 반전되어 아래로 꽂힌다.
정확히 두식이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조작계.’
저 용병의 특성이겠지.
두식이는 내가 피하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공성추를 던져 미사일을 맞췄다. 잘했다는 사념을 보내려는 순간, 폭발과 함께 보랏빛 구체가 생성되어 주변을 덮는다.
블랙팽과 두식이가 한순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두개골이 박살 나 역소환된 것처럼 24시간 쿨타임이 적용되었다.
이거, 보이드 존이다.
“리쳇.”
응답이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리쳇 역소환은 일이 크다.
나를 대리한 최종 결재는 물론이고 밀키 마이닝 자동화 시스템 대부분이 멈췄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손해 보는 돈이 엄청날 터.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코앞까지 당도한 생명의 위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수신호를 날려대던, 팀의 리더로 예상되는 용병의 총구는 명확히 내 미간을 겨누고 있었으며 고각으로 포를 쐈던 용병은 어느 순간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분명 은밀히 접근하고 있겠지.
혹시나 하여 카츄를 만져봤으나 입을 꾹 닫고 반응이 없다.
꾸물.
“응? 아.”
자기를 잡아달라는 듯이 품 안에서 꾸물럭대는 검은 구체, 위즈.
위즈를 잡자 어서 자기와 융합하자는 사념이 전해져온다.
찰칵, 찰칵, 찰칵.
위즈를 쥐고 있어서인지 멀리서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거리에서 총성이 나면 늦다. 내키지는 않지만 하는 수 없이 평생 다시 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융합을 허락했다.
먹물을 담은 풍선이 터지듯. 위즈는 팔방으로 비산하여 내 몸을 감쌌고. 직후 총성이 들렸다.
탕! 팅!
“마법 소년으로 변신 중이잖아요! 정말 신사적이지 못 하시네요!”
아니다. 내 입이 움직이고 성대가 울려서 낸 소리이기는 하나,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다.
타탕, 탕!
“고작 그런 공격으로는 제 슈트를 뚫을 수 없답니다! 노.력.하.세.요!”
…이해했다. 범인은 위즈다. 총을 튕겨내는 방어력을 얻는 대신, ‘대화’의 권한을 위즈가 가져갔다.
지금 머릿속으로 정령 계약에 대한 디테일한 내용이 떠오르고 있다. 계약 전체를 관통하는 법칙은 거래다.
내 몸 또는 정신의 일부를 위즈에게 제공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어드밴티지를 얻는다.
‘마법은?’
“못 써요!”
아쉽게도 나의 마나는 블랙 위치에 기인한 것이었기에 VZ를 맞는 순간 증발하고 말았다.
재생력을 믿고 다시 차오르길 잠시 기다려봤으나…, 그 재생력도 음차원 마나에만 적용되나보다.
“게이였나.”
수신호 용병이 처음 입을 열어 한 말은 아주 원색적인 비난이었다.
“아뇨! 마법 소년입니다!”
“변태였군. 일렉커터, 끝내라.”
기이이잉.
뒤에 있는 나무 위에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팔이 전기톱처럼 변한 사내가 내 머리 위로 뛰어내렸다.
“크카카카카카!”
‘저거 막을 수 있나?’
“아뇨, 머리가 쪼개지면 끝이에요!”
이 자식, 당당하기도 하네.
그래도 융합을 통해 상승한 육체 능력 덕에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지면을 갈아내며 떨어진 용병은 나를 쳐다보더니 이번에는 두 팔 전부 전기톱으로 바꿔 돌진한다.
기괴하게 웃으며 가드를 열고 다가오는 그 모습은 포식자의 사냥과도 닮아 있었다.
“캬하!”
용병은 개조된 팔을 허공에 휘두르며 나를 위협하고는 슬금슬금 옆으로 움직여 수신호 용병의 사선에서 벗어난다.
미래에 인체 개조를 한 용병은 흔하다. 전장에서 활약하는 용병단은 필수라고 해도 될 정도. 하지만 현대 기술력으로는 한계가 존재한다. 지금 저 행동이 그 증거다.
탕!
전기톱남이 사선에서 비켜나자 곧장 총격을 가해오는 용병.
나는 옆으로 구를 듯 페인팅을 한 번 주고 곧장 뒤로 돌아 수신호 용병을 향해 달렸다.
눈을 크게 뜬 놈이 한 박자 늦게 반응한다. 나는 곧장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 수신호 용병에게 향해 도약했고 간발의 차이로 목덜미를 붙잡았다.
위이이이잉!
그리고 내 바로 뒤까지 접근한 전기톱에 용병을 던짐과 동시에 앞으로 굴렀다.
“멈, 멈춰! 끄아아악!”
전기톱남은 동료와 함께 나까지 썰어버릴 심산이었는지 되려 톱의 회전수를 올렸다.
용병의 상반신이 쪼개지고 내 이마에 톱이 닿기 직전 톱날이 정지한다.
“이거 놔! 컥, 크륵.”
그 사이 수신호 용병이 떨어트린 소총을 주워 연발로 갈겼다. 반동을 누를 정도의 여유는 없었기에 전기톱남은 다리부터 머리까지 골고루 구멍이 난 채 쓰러졌다.
후우.
참았던 숨을 고르고 엉켜서 넘어진 시체 두 구를 밀어 차자 중간에 톱날이 멈췄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반으로 갈라진 수신호 용병의 뼈와 근육이 전기톱을 휘감고 있었던 것.
“그래서 놓으라고 한 거였나.”
시계를 확인하니 치밭목대피소 쪽에서 올라오던 용병들과 경찰이 조우하기까지 3분이 채 남지 않았다.
츠즉.
방향을 확인하고 달리려던 차에 뒷목에서 작은 충격이 느껴졌다. 특성이 작동한다는 신호였기에 즉시 리쳇을 불렀다.
“상황은?”
-…이지욱, VZ-4 사용. 생존한 용병 둘은 통화 후 은신 중. VZ-4 잔해 회수가 목적으로 보임.
내가 VZ에 당하기 전에 일식이와 삼식이가 용병들을 급습해 넷을 정리했단다. 역시 믿고 쓰는 언데드 클럽.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곧 시야 한쪽에 지도가 떠올랐고 용병들이 숨어 있는 위치가 붉은 점으로 찍혔다.
-집업미러 개입. 이지욱 포획. 용병 접근 중.
몇 분 지나지 않아 경찰이 포위망을 풀고 탈진한 이지욱의 손에 수갑을 채울 때쯤. 용병들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 VZ-4를 챙긴다.
나는 그 광경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다, 그들이 목표를 완수하고 주먹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그 방심의 순간에 두 사람 사이로 파고들었다.
올렸던 팔을 그대로 내리며 내 어깨를 내리찍으려는 녹색 복면의 용병과 뒤로 물러나며 소매에서 초소형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기는 하얀 가면 용병.
둘 다 늦었다.
“피유우우웅! 침투경 발사!”
이번에도 입을 내어주고 육체강화를 택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회복한 절반의 마나를 꼬아 양팔로 보냈고. 저들이 반응할 무렵엔 이미 복부에 내 손바닥이 닿아 있었다.
어깨를 찍으려던 복면 용병의 팔꿈치가 기형적으로 회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던 가면 용병의 손이 뒤틀린다.
“끄으윽. 이, 이게 왜.”
“아악, 악!”
마나를 꼬아 방출한 모습대로 육체가 강제로 끌려가는 광경은 꽤 볼만한 것이었다.
자연을 캔버스로 피의 소용돌이가 그려진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금이현이 나선을 강조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름답다.”
그녀도 젊은 시절에 지금과 같은 그림을 목도한 거겠지.
-이지욱하고 경찰, 지리산대로에 진입했어. 따라잡으려면 그거 불러내야겠는데?
필요한 단어만 뱉던 리쳇의 말이 길어졌다는 건, 급한 불은 껐다는 의미였기에 경직된 뒷목을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알리바이부터 만들고 가자.”
마을에 들리기 전 계곡에서 얼굴과 머리에 엉킨 먼지랑 피를 닦아내고 융합을 풀었다.
킥킥킥.
중성적인 음성의 웃음소리가 한차례 들리며 품으로 들어가는 검은 구체.
이 녀석은 다 좋은데 말투가 문제다. 나중에 교육을 좀 하든가 해야지.
똑똑.
금이현이 있는 비닐하우스의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싸웠구나.”
“어, 예. 일이 좀 있어서요. 어떻게 아셨어요?”
피 냄새는 확실하게 지웠는데.
“네 주변의 기(氣)가 영역 다툼을 끝낸 들개처럼 요란하다. 그보다 다친 곳은 없느냐.”
“저요? 상대요?”
금이현의 어깨가 흔들린다. 저거 웃는 거다.
“그래, 사람에게 써 보니 어떻더냐.”
“아름다웠죠.”
“고맙다.”
“예?”
할머니가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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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