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루나테라
“그것을 보았다면, 노사님의 무술을 이어갈 것이 아니냐.”
아하. 그런 뜻이었나.
“그렇죠.”
그 광경이 아니더라도 내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근접전을 보완하는 기술인지라, 꾸준히 연습하면서 쓸 생각이었다.
“그리고. …되었다.”
답지 않게 쑥스러워하는 모습에서 어느 정도 금이현의 생각이 짐작 간다.
“다른 비닐하우스로 안 가서 고맙다고요?”
세이프레그 교관의 강의 날에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야 했다.
다양한 무술을 견식 해보라는 의도이겠으나 나는 대충 듣는 시늉만 하다 자유시간이 되면 바로 금이현에게 돌아왔다.
대단한 이유는 없다. 다른 무술은 뭐, 무슨 문파의 대종사님이 창안한 비기라느니 대성하면 천지를 가른다느니. 아주 사기꾼 같은 소리만 늘어놓더라고.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알려주려는 태도가 의심스러웠다.
그에 반해 금이현은 나 이외의 학생은 받지 않았다. 억지로 들어오려 하면 호통을 치며 쫓아내더라.
거기서 좀 감동이었다고 해야 하나.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지레짐작이 과하구나.”
아마, 본인이 언급한 대로 일인전승할 대상으로 나를 택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살짝 자랑을 얹자면, 내가 몸치이긴 해도 마나량은 자신 있거든. 무협지에서도 무공이니 뭐니 해도 결국 내공빨이더만.
뚜르르.
금이현이 화덕 안의 고구마를 들쑤시는 사이 트레이시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알리바이를 만들고 비닐하우스를 나섰다.
“다시 오느냐.”
불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묻는 금이현.
“예, 금방 다녀올게요.”
“늦게 오면 탄 고구마를 먹어야 할 게다.”
“지금 꺼내두셔도 돼요. 식기 전에 올 테니까.”
흔들리는 금이현의 어깨. 하여간 이런 허세 멘트 즐기는 걸 보면 어르신은 어르신이다.
지리산대로를 타고 이동하는 빌런 수송 차량을 리쳇을 통해 특정하고 넥서스를 호출했다.
리쳇이 내 주변 일대에 스모그를 뿌리자 지면에서 구현되어 부상하는 넥서스 호. 이제 말 안 해도 호흡이 척척이다.
선상에 올라타 함교로 들어서니 각 잡힌 자세로 경례를 올려붙이는 기드빈이 보였다.
“제독님,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전에는 함장이라더니. 오늘은 왜 제독이냐.”
“저는 제독님이 우주함대를 거느리실 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멀었다.
이 넥서스 호를 복제하기 위해 내가 아는 미래 기술을 모조리 끌어다 써도 지구급 행성 하나를 갈아 넣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고로, 다른 항성계를 점령하지 않는 이상 함대를 만들 일은 없다.
“헛소리 말고 저거나 따라잡아.”
“예 써! 경로에 스모그 사출 요청! 이븐 엔진 가동!”
기드빈이 호령하자 자의 또는 타의로 넥서스에 소속된 이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훈련을 따로 한 건가. 음?’
오늘따라 유독 고도가 높다. 멕시코에서 활약할 적에는 기껏해야 상가 지붕을 스칠 정도였는데, 지금은 하늘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왔다.
“지금 고도가 얼마지?”
“1100m입니다!”
엄청나게 높지는 않아도 이거 지상에서 보면….
“리쳇, 해 봐.”
내 생각을 전달받은 리쳇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고는.
-농장주는 항상 발상이 재밌단 말이지.
넥서스를 더욱 짙은 안개로 덮었다. 사람의 눈에는 적층운으로 보일 정도.
“기드빈, 현 넥서스 호의 위장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지?”
“일반인의 눈으로 본 함선을 식별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함포 각은?”
“여유롭습니다!”
그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위협만 해.”
“함포 조준! …발포!”
구름을 뚫고 나아간 포격은 정확히 이지욱 수송 차량의 30m 앞에 떨어졌다.
폭발의 충격으로 차들은 농약 먹은 바퀴벌레처럼 모조리 뒤집혔다.
“사상자 없습니다!”
포격을 제압용으로 세팅했다며 기드빈이 추가 보고를 하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치하하고 이지욱이 탄 경찰차 옆으로 넥서스 호를 대라고 지시했다.
짙은 안개가 경찰들의 시야를 가리는 사이 빌런 호송 차량에서 안전벨트에 메여 대롱거리는 이지욱을 밖으로 꺼냈다.
“널 뭐라고 부르면 되지?”
“다크 넥서스.”
“…악취미로군.”
사족을 덧붙이는 이지욱.
“감히 제독님께!”
“컥!”
고릴라를 연상케 하는 기드빈의 주먹이 녀석의 복부에 작렬하자 새우처럼 등이 꺾인다.
저럴 줄 알았지.
“데려와.”
다시 넥서스에 올라 하늘로 부상했다. 안개가 걷히자 지상에서는 총을 든 경찰이 허공에 위협 사격을 한다.
그러다 이지욱이 사라진 걸 알아채고는 시끄럽게 떠든다.
-무전 들어볼래?
아까 잠깐 내려갔을 때 해킹했나 보다. 하여튼 유능하다니까.
“어.”
-김 서장님. 이지욱이 탈출했습니다.
-…찾아.
-갑자기 포격이 날아와서—
-개소리 말고 찾아, 이 X발 X끼야! 그 X끼 놓치면 너도 X 될 줄 알아!
김 서장 화끈하네. 저거 일반 채널일 텐데.
“어디 서장이냐.”
-잠시만…, 과천 서장이기는 한데 현 경찰청장 조카야. 정치 좀 하고.
국내 영향력이 높은 인물이라는 거구만. 그럼 당장 손을 쓰긴 좀 그렇다.
“적당히 직위 해제만 시켜봐.”
-…김 서장 자택 PC의 하드 싹 긁어왔는데, 암호 걸린 폴더가 있어서 풀어봤거든?
수백 개의 동영상 파일 중 하나를 재생했더니 내용이 가관이다. 어린 여자부터 노인까지. 가리지 않고 본인과의 관계 영상을 찍어놨다.
이거 쓰레기였네. 공개되면 무조건 감옥행이다. 경찰청장이 뒷배라 금방 튀어나오겠지만, 글쎄. 과연 나오는 게 좋은 일일까.
-상황 보고 조용히 처리할게. 심해의 석고상 정도면 되겠지.
“이 악당 같으니.”
-왜 이래, 동업자끼리.
큭큭.
문득 뒤에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이지욱이 황급히 시선을 피한다.
요동치는 동공, 메마른 입, 불안하게 떠는 손가락.
“내가 두렵나?”
어디서 들은 드립을 던지자 아무 말 없이 나를 올려다보는 이지욱.
얘 진짜 쫄았네.
“흠, 아직은 큐티 페이스라고 생각했는데. 참, 지욱아. 너 두 가지 중 하나 선택해라.”
“…뭘요.”
“넥서스 호의 선원이 될 건지, 빌런들이 모여 있는 호텔에서 살아갈지.”
“어머니를 양지에 모신 뒤에 자유롭게 살게 해준다. 그런 약속이었잖아…요.”
“야, 너 아직 어려서 뭘 모르나 본데. 대한민국에서 민증 없으면 정상적으로 못 살아. 불법체류자들 사이에서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할래? 그리고 너 현상 수배 걸린 건 아냐?”
현실을 알려주자 녀석은 멍하게 나를 쳐다보다 이내 주저앉는다.
“내가 나쁜 소리 하는 게 아니야. 넥서스에서 일하면 정당한 임금도 나오고 가끔 도시에서 생활할 수도 있어.”
“빌런 호텔인가 하는 곳은요?”
“거기 가면 빌런들 사이에서 한 20년 정도 특성 훈련만 빡세게 하게 될 거다.”
개인적으로는 빌텔에 가줬으면 하는데, 중딩을 거기로 보내는 건 나도 양심에 좀 걸린다.
“…넥서스에서 일할게요.”
자포자기한 듯한 언행에 나는 녀석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힘내, 자식아. 지금의 선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날이 올 거다. 기드빈! 조수 받아라.”
“예 써! 이지욱 훈련생, 따라오십시오. 제독님, 훈련생이 쓸 방을 안내하고 복귀하겠습니다!”
“오냐.”
두 사람이 떠나자 함교가 조용해졌다.
-꽤 공을 들이네.
리쳇의 의문 섞인 말투에 나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넥서스 호 부조종수로 딱 맞잖아.”
철 조작.
저 계열 각성자는 숙련도에 따라 인체 내부의 철분도 조작하는 게 가능하다. 만약 넥서스 호의 1할만 제어할 수 있어도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꿈의 기술인 제자리 고속 선회와 에너지 효율 향상, 급가속 등.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
-넥서스의 2할 정도는 철 원소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아예 가능성이 없진 않네.
거기다 혹시 재각성이라도 하는 날에는 아주 날아다니겠지.
‘당구 요정이나 머신 팩토리 때처럼 확 각성해주면 좋겠지만, 어렵겠지.’
그 둘은 숙련도가 이미 천장에 닿아 있었기에 약간의 자극만으로 재각성을 한 게 아닐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기드빈이 돌아왔다.
“대위 기드빈! 훈련생 숙소 인도 임무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고생했다. 네가 보기엔 어때?”
“이지욱 훈련생 말씀이시라면, 장래가 기대되는 각성자입니다.”
“잘 키워봐.”
“예 써!”
볼일도 끝났겠다 지리산 치밭목대피소에 내려 금이현 비닐하우스로 돌아가려는데, 리쳇이 불러 세웠다.
-보스. 용병들 말야. 누구한테 고용된 건지 안 궁금해?
그리고 보니 그놈들 VZ를 썼었지? 범위가 들쭉날쭉한 거로 봐선 우리 쪽 물건은 아니다.
“누군데.”
-루나테라 회장.
루나테라,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
“거기 VZ 개발하던 회사 아냐?”
-맞아. 개발 중이던 VZ를 용병한테 지급한 거 같아. 인천 공항에서 이지욱이 VZ-4를 훔친 것도 루나테러 회장의 지시였고.
루나테라는 길버트 슈타인 박사의 VZ 연구 및 개발이 성공하고 대중들에게 알려진 뒤로 급격히 주가가 내려간 기업 중 하나다.
원한을 가진 건 알겠는데, 용병들의 무장 수준이 단순히 기술을 빼돌리기 위함은 아니었다.
“혹시 나를 노린 건가?”
-그건 불가능해.
밀키 마이닝의 톱이 나라는 건 리쳇이 철저하게 은폐하고 있다.
그럼 좀 이상한데. 내 권유로 한국에 연구소를 차린 슈타인 박사를 노린 거면 모를까. 이 지리산에 대전차 무기를 들고 온 이유가 뭐지?
…에이, 몰라.
“네가 처리해.”
-오케이.
회귀전 같으면 잠입해서 내부에서부터 철저히 박살 내겠지만, 지금은 아카데미 생활이 먼저라 거기에 투자할 시간이 없다.
“내려가자.”
“예 써!”
대피령 때문에 한산해진 치밭목대피소 옆에 넥서스를 착륙시켰다.
“다녀오십시오. 제독님!”
“어, 고생해라. 애들 적당히 굴리고.”
기드빈의 우렁찬 경례 구호를 뒤로하고 금이현의 비닐하우스로 향했다.
“응? 산장?”
가는 길에 있는 농장식당에서 묘한 향이 나 들러보니 테이블에 양념갈비가 굽기 직전 상태로 놓여 있었다.
여기 있던 사람들이 놓고 간 건가. 마침 양념이 기가 막히게 배어든 상태라 얼른 상시 휴대하는 청결 지퍼백을 꺼내 주워 담았다.
학년 초에 텐트 생활할 때 구비해둔 생존키트가 또 이렇게 쓰일 줄이야.
이게 다 내 전용 창고인 카츄 덕이다.
“너도 한 입 할래?”
농담이었는데 볼통한 배를 출렁이는 카츄. 살살 긁어주며 작은 조각을 주머니 입구로 넣자 야금야금 먹는다.
그때 바로 옆에서 위즈가 꾸물대며 카츄를 흉내 낸다.
“너도 달라고?”
꾸물.
“넌 안돼.”
꾸물럭!?
“내 입으로 그따위 말을 하게 해놓고 감히 고기를 요구해?”
꾸물….
축 늘어지는 위즈.
“다시는 그러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주마.”
꾸물!
이것도 모종의 거래로 치는 건지, 녀석은 그러겠다는 사념을 수차례 날리며 허겁지겁 양념갈비를 받아먹는다.
나머지 고기는 비닐하우스에 도착해 금이현에게 건넸다.
“웬 고기냐.”
“오다 주웠습니다. 먹죠. 마침 고구마도 다 익은 거 같은데.”
자연스럽게 품에서 버너를 꺼내자 금이현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리고는.
“어허. 그렇게 구우면 맛이 없다. 이 봐라, 탔잖느냐. 집게 내놔라. 음, 집에 가서 양념단지를 가져오너라. 그럼 내 집이지 네 집이겠느냐. 어서 다녀오래도.”
금이현의 집은 여기서 멀다. 귀찮아서 싫다고 했더니 양념이 묻은 집게를 휘두른다.
누가 왕년 독접 아니랄까봐. 튀는 양념이 도저히 문을 나서지 않고는 피할 수 없는 궤적이었다.
“갔다 올 테니까, 그것 좀. 가만히!”
가는 시늉만 하면서 나무 숨어 리쳇을 불렀다.
“리쳇, 드론 보내자.”
-방금 이지욱에게 유골함을 전해준 드론밖에 없는데, 괜찮아?
…괜찮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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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