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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00화 (100/201)

<100화>

곽&도

합숙 마지막 날.

오늘은 그간의 훈련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펜션 인근의 공터에 모였다.

“11월의 평가전은 이 대련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남만혁 학생. 나와주세요.”

우우~

매달 겪어온 야유. 괜찮다. 내게는 저것들의 입을 한 방에 다물게 하는 비술이 있으니까.

“곽재우. 너 오늘 목소리가 크다?”

흡.

“우~, 엇. 아, 아니? 구경이가 먼저 시작했어.”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잖아. 곽재우, 나와.”

호흡을 고르는 모습에서 살짝 긴장한 기색이 느껴지기는 하나 이전처럼 눈알을 굴리며 도망칠 구석을 찾진 않는다.

합숙에서 자신감이 좀 붙었나. 하기야 무려 랭커 히어로가 알려준 식스센스를 익혔으니 그럴 만도 하지.

“들어와.”

“삼식이는 안 불러?”

“그럼 항복하게?”

“네가 아무것, 도 못 할까 봐 걱정돼, 서 하는 말이다!”

에이지를 빙의시켰나. 저 뒷박으로 말하는 버릇 좀 고치라니까. 나 누구 빙의시켰소,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녀석에게 접근하면 몸이 정지한다.

미르토스 해변을 광역으로 구현해 녀석을 물에 빠트리면 상황은 끝나겠지만…. 그러면 또 훈련의 성과를 확인할 수가 없다.

‘골치 아프네.’

쐐에엑!

“나는 오늘 너를 넘는, 다!”

녀석을 어떻게 상대할지 고민하는 사이 귓불 아래로 예리한 창날이 지나간다.

아니, 진짜 창이잖아 이거. 연습용 봉은 어디다 팔아먹고 살상 무기를 쥐여줘.

심판인 데커드를 노려보며 창을 눈으로 가리키자 그가 웃으며 엄지를 척, 세워 올린다.

아하. 의도된 거다 이거지? 오케이. 두고 보자고.

“위즈, 융합. …변신이라고 하셔야죠! 마법 소년 등장!”

편파 응원을 하던 아이들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끼어들 준비를 하던 데커드. 그리고 내 명치를 노리고 창을 찔러오던 곽재우. 전원이 동시에 숨을 들이켠다.

‘죽는다. 진짜. 고기 먹기 싫냐?’

“앗. 아니요. 얌전하게 행동하겠습니다!”

‘그냥 입을 다물어. 제발.’

애들이 수군댄다. 얼핏 들리기로는 약 먹을 시간을 놓친 거 같다거나 곽재우가 간섭계 특성을 각성했다는 헛소리들이었다.

“정령이야.”

다행히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트레이시가 나섰다.

“정령?”

“매저드 교수님 강의에서 배웠거든. 내가 레드레이랑 계약한 것처럼. 남만혁도 저거랑 계약했어.”

그제야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불쌍해.”

“아! 나 들은 적 있어. 저주의 정령, 뭐 그런 거지?”

흠칫하는 곽재우.

“진짜? 괜찮, 냐?”

“네! 저는 아무렇지도—”

이 녀석이 더 이상 대화를 하게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곧장 몸을 날렸다.

뼛속 깊게 박히는 수치심을 감내한 대가로 얻어낸 육체 능력으로 도약하자 단숨에 곽재우의 복부에 손이 닿았다.

“뭣, 정지!”

급히 주변 공간을 멈추는 곽재우. 하지만 늦었다. 아주 약하게 꼬아 방출한 마나가 이미 녀석의 내장을 타고 흘렀으니까.

“웩!”

곽재우의 허리가 접히며 눈을 깜빡였고 멈췄던 공간이 풀린다.

“—않아요! 앗, 괜찮으세요?”

후. 그냥 왼팔 제어권을 줄 걸 그랬다. ‘대화’는 그저 입 근육을 움직여 말하는 게 아니라 행위 자체를 의미해서 지금처럼 몸을 움직여 주둥이를 억제하려 해도 한계가 있다.

아, 블랙 위치는 뭐하냐고. 딸 교육 안 시키고!

무릎을 꿇으며 엎드린 곽재우가 속을 게워내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을 지목할 생각으로 아이들을 둘러보는데, 녀석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내 어깨 너머로 향한다.

“아직.”

창을 움켜쥐고 비틀대며 일어나는 곽재우.

“한 분…, 남았느니라.”

호기와 흥미로 반짝이던 곽재우의 눈이 맹수의 그것처럼 차갑게 변했다. 들고 있던 창을 옆으로 던지고 허리춤에 매인 월도를 꺼내 든다.

에이지를 빙의시켰을 때와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파고들 틈이 없다고 해야 하나. 위험을 감수하고 들어갔다간 한순간에 목이 베일 것 같은 느낌이다.

“본인의 치졸함을 미리 사과하겠네.”

그의 옆으로 두 개의 분신체가 생겨난다. 본체와 분신을 자유롭게 오가는 게 곽재우의 능력.

거리도 km 단위라 각 잡고 하면 그야말로 신출귀몰. 홍길동이 따로 없다.

저거 때문에 빌런 격파전에서 빌런 역을 맡았던 퀸이 꽤 애를 먹었다고 했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인물이 식스센스까지 깨달았다면, 꽤 위협적이다.

이거, 잘하면 지겠는데.

“들어가겠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분신 하나를 간신히 다루던 곽재우가 지금은 본인 포함 셋을 능수능란하게 조종한다. 나는 이 부분이 좀 감격스러웠다.

조상 의존증을 앓던 그 곽재우가 이렇게 성장하다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나의 감격과는 별개로 세 방향에서 공격해오는 월도. 금이현에게 틈틈이 몸을 다루는 법을 배웠기에 첫 공격은 무난하게 피했다.

‘이게 실체네.’

나머지 두 공격은 무시하고 재차 침투경을 준비하던 그때, 어깨에 두 번의 충격이 느껴졌다.

“아파요!”

“허허, 미안허이.”

슈트에 칼자국이 길게 생겨났다. 실체는 처음에 피한 게 아니었나?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뒤로 물러나자 곽재우가 따라붙는다.

녀석은 이번에도 내 정면과 측면을 점하며 월도를 휘둘렀고 나는 바닥을 굴러 회피했다.

그러는 도중 곽재우들의 발치를 보게 되었는데. 풀이 눌렸다 세워지기를 반복하는 게 아닌가.

‘이거였나.’

“뭐가요?”

“음?”

비밀은 스위칭. 분신과 본체를 전환하는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 저 정도 스위칭이면 본체와 분신의 경계가 없는 셈이다.

‘괜찮네.’

발전 방향이 훌륭하다. 이대로 순조롭게 성장하면, 그블린전이 발발했을 때 현장 지휘관으로 임명해도 되겠어.

다만, 이런 식으로 분신을 운용할 시 사고의 전환이 얼마나 신속하게 이루어지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테스트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이 꼬인 척하며 앞으로 넘어졌다.

“앗!”

“본인의 승리일세!”

나를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곽재우가 도를 역수로 쥐고 찍어 내리는 찰나. 굽혔던 무릎을 펴며 정면으로 돌진, 체중과 속도를 실어 녀석에게 간장 치기를 먹였다.

“읍!”

반응이 늦다. 공격적인 곽재우의 성격상 이쪽은 아직 부족할 거라 판단했고 예상이 적중했다.

“그만! 남만혁 승! 곽재우 고생했다. 내려가서 쉬어.”

“끄으으, 예.”

“마법 소년, 승! 리!”

또 위즈가 제멋대로 목소리를 낸다. 수군대는 아이들.

“저 흉흉한 얼굴로 귀여운 말투 쓰니까 좀 그렇네.”

클린에어가 툭 던지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씩 보탠다.

사실 저런 취미가 있는 거 아니냐,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던 걸까, 저걸 그레이스가 아느냐.

이것들이.

‘위즈, 돌아가.’

“또 봐요. 여러분! …다음, 도수정.”

“남만혁 학생. 안 쉬어도 되겠어요?”

“예, 마법 쓸 거라서요.”

“알겠습니다. 도수정 학생? 준비됐으면 올라오세요.”

“저 혹시 준비 안 됐으면 안 가도 되나요?”

데커드가 입만 희미하게 웃는다.

저 표정. 교감이 말 안 듣는 학생 혼내기 직전의 얼굴이랑 닮았다.

“가, 갈게요.”

도수정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고는 내 앞에 선다.

“연습 좀 했냐?”

본인이나 지정한 대상을 다른 차원으로 격리하는 능력, 단절.

도수정은 입학 당시 조금만 더 숙련도를 쌓아서 시험을 치렀다면 A반은 몰라도 B반은 확실히 갔을 거다.

아마 클래스 변동이 있는 2학년 땐 꽤 높은 반으로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네 재수 없는 얼굴을 찡그리게 할 정도는?”

도수정이 나한테 왜 저렇게 틱틱대는지 모르겠다.

‘대련 끝나고 부족한 부분 찍어서 알려줘, 조별 과제 조언도 해줘, 마운틴 짐에서 체력도 길러줘. 거의 내가 키우다시피 했는데 말야.’

-팩폭에 훈수, 고문까지. 역시 보스는 훌륭한 빌런이야.

“죽어!”

탕!

전개해둔 영역에 총알이 들어오다 내 코앞에서 완전히 삭아 사라진다.

“야, 이 거리에서 총은 좀 아니지. 그리고 죽어라니. 심하잖아.”

“아무것도 안 하다 조별 과제 기한 마지막 날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네가 제일 심해.”

와….

아이들의 탄식.

“그렇게 말하면 내가 쓰레기 같잖아.”

조별 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참여했다. 도수정은 내 멘탈을 건드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거고.

단절처럼 방어나 보조형 능력을 가진 아이들에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쳤었다.

“그리고 제발 내 게임 방송에서 톡으로 훈수 좀 그만해!”

어. 훈수는 맞다. 갤럭시 크래프트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는데, 더럽게 못하더라. 4드론 가 놓고 갑자기 해처리를 왜 늘리냐고.

“그건 네가 반성해야지.”

“야!”

삼식이가 없는 상황에서 내가 주력으로 쓸 만한 공격형 마법은 포이즌뿐이고. 이 포이즌은 가능하면 부캐인 다크 넥서스의 시그니처로 남겨두고 싶다.

해서, 현재 내가 쓸만한 마법은 아예 궁합이 나락으로 가서 효과가 반전된 계통의 마법.

“위크니스.”

저주를 내 몸에 걸었다. 위즈와 융합해서 얻는 육체 강화에 비할 바는 아니나 몸이 생각대로 움직일 정도로는 강화되었다.

이전 달 평가전에서 도수정은 자신을 단절함으로써 무승부를 가져갔다.

이번에도 그런 방식으로 나오겠거니 하여 빠르게 접근해 결정타를 날릴 생각이었는데.

타탕!

양손에 핑크색 총을 들고 쏴댄다. 첫발처럼 영역에 들어오면 녹겠거니 하고 그대로 진입하는데.

이마에 탄두가 툭 닿는다.

속도를 잃었기에 위력은 강하지 않았으나 중요한 건 내 몸에 총알이 닿았다는 거다.

“속성탄이라는 거다 이 자식아!”

총의 손잡이에 아카데미 공방 심볼이 박혀 있다. 소구경이랑 공방을 들락거리던 이유가 저거였나.

언젠가 뚫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지금일 줄이야. 이를 갈고 내 영역을 연구한 모양이다.

경기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도수정의 속성탄은 내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고 나 역시 녀석의 단절을 뚫고 공격할 수단은 없었다.

“무승부! 도수정 학생. 사격술이 많이 늘었네요.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보니 도수정이 쏜 모든 총탄은 내 얼굴에 닿았다. 몇 발 정도는 심장이나 다른 급소를 노릴 법도 한데.

…무슨 의미지 이거.

“칫.”

혀를 차며 내려가는 도수정. 표정에서 아쉬워하는 게 보인다.

“쉬었다 할까요?”

“아니요, 계속하죠. 다음은 리얼블—”

“나랑 붙지.”

내 말을 끊으며 일어선 소구경이 간이 대련장으로 들어온다.

“오~”

“뭐야~”

뭐냐.

도수정을 보니 손으로 볼을 감싸고 있었다.

진짜 뭐냐고.

“먼저 공격해도 되겠나?”

“아니.”

“알았, 음?”

“두식아.”

바닥에 검은 구멍이 열리고 유황을 덮어쓴 두식이가 땅을 짚으며 올라왔다.

두개골 속 녹색 안광이 껌뻑인다. 주변을 살핀 두식이는 자연스럽게 블랙 팽을 불러냈고.

덜걱.

부하가 의자를 만들 테니 거기 앉아서 구경하란다.

“괜찮은데.”

덜거걱.

그래야 자기 마음이 편하다네. 충성스러운 거 보게.

“큼, 그럼 어쩔 수 없지.”

듬직한 방패병이 몸을 굽혀 만든 해골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다리를 꼰 채 입을 열었다.

“두식아, 쟤 좀 혼내줘.”

덜걱.

늘 그래왔듯 원하는 대로 될 거란다.

내 앞에 우르르 모이는 두식이와 블랙 팽.

“…….”

화려하게 총을 돌리며 탄창을 점검하던 소구경과 기대하는 얼굴로 관전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짜게 식는다.

이럴 때마다 나는 늘 하는 말이 있다.

“뭐. 어쩔 건데.”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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