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소&그웬&칸탄테
어찌 되었든 수련의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인 만큼 두식이에게 적당히 봐주면서 하라는 사념을 보냈다.
그러자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블랙 팽만을 지휘해 소구경을 상대한다.
달각, 달각, 달각!
해골들이 분전했으나 소구경의 탄두는 휜다. 방패를 피한 탄이 두개골에 한 발씩 틀어박혀 무너지는 블랙 팽.
탄이 철제 투구의 아주 좁은 틈을 파고든 걸 보면, 소구경의 건 마스터 숙련도가 상당한 듯하다.
먼지로 화하는 부하들을 바라보던 두식이가 안광을 번뜩이며 일어난다.
덜걱.
공성추를 꺼내려 하기에 그러지 말라는 사념을 보내자 어색하게 다시 손을 빼는 두식이.
덜걱….
살짝 처진 안광으로 주변을 살피던 녀석은 인근의 나무를 뽑아 들고는 방패 겸 무기로 사용하며 소구경에게 접근한다.
신속히 물러난 소구경은 묘한 문양이 그려진 총알을 주머니에서 꺼내고는 리볼버의 실린더를 옆으로 밀고 빈 곳에 붉은 탄을 넣는다.
“조심해라.”
쾅!
건 마스터의 효과에는 반동 억제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저렇게 팔이 만세 자세가 될 정도로 튕겨 올라갔다는 건, 물리법칙에서 벗어난 무언가의 힘이 작용한 거다.
‘아!’
탄피의 문양이 모종의 마법진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챈 내가 급히 두식이에게 나무를 던지고 피하라는 사념을 보냈으나.
콰쾅!
나무를 터트리고 두식이의 머리에 명중한 적색 탄.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으로 보아 관통과 폭발마법이 부여된 듯하다.
관통에 의해 박살 난 나무조각들이 이어지는 폭발에 불이 붙었고 대련장에 불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매캐한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두식이는 크로스 가드로 얼굴을 막은 상태였다.
그걸 반응했구나! 역시 우리 두식이.
덜걱.
무기를 꺼내도 되겠냐고 묻는 두식이. 나는 그러라고 했다. 소구경이 마법탄을 쓰는 이상 이쪽도 그에 준하는 장비를 착용해야 상대가 될 테니.
두식이는 입에서 공성추를 꺼냄과 동시에 횡으로 휘둘렀다.
후웅!
주변의 나무들을 파괴하며 소구경을 향해 짖이겨든 공성추는 녀석이 허리를 뒤로 젖히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찰칵.
식스센스 덕인지 이어지는 공격을 한 뼘 차이로 회피하며 리볼버에 새로운 탄을 채워 넣는 소구경.
리쳇의 도움을 받아 살피니 이번에는 파란색 총알이다.
이를 두식이에게 전하자 공성추를 땅에 박고 그 뒤에 붙어 방패처럼 사용한다.
퉁.
반동이 없다. 게다가 조준도 이상하게 방패가 박힌 땅을 향해 쐈다.
일반탄으로 견제사격을 한 건가 싶어 주의하라는 사념을 보내는 그때.
탄착지점으로부터 방사형 공간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예전에 매저드가 이런 마법도 있다며 보여줬던 날씨 학파의 마법과 그 효과가 비슷하다.
뼈로 이루어진 언데드라 추위 따위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문제는 저 탄에 부여된 마법이 단순히 온도만 내리는 게 아니라는 거다.
쩌적!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자 땅에 박힌 탄두에서 재차 마력이 쏟아져나왔고 방패와 두식이의 하반신을 얼음이 덮는다. 아주 꽝꽝 얼어서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모양새였다.
“매저드 교수님이 제작하신 탄들은 전부 내 특성에 영향을 받더군.”
총을 돌리며 여유롭게 걸어와 두식이 옆을 지나는 소구경.
저게 뭔 소리냐면.
찰칵. 퉁, 퉁, 퉁.
마법탄이 무한대라는 소리다.
쏟아진 탄환에 의해 전신이 얼어붙은 두식이. 소구경은 내 앞까지 걸어와 콧등을 겨눈다.
“계속?”
총구 안, 강선 너머 붉은색 총알이 장전된 게 보인다.
“졌다.”
이예쓰!
와아아아!
잘했어!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
소구경이 내려가고 데커드가 휴식을 권유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식이도 돌려보내야 하고.
“야.”
대충 정리하고 공터 한쪽에 앉아 쉬는데, 트레이시가 왔다.
“왜 봐줬냐.”
“뭘 봐줘.”
“언데드. 돌려보낼 수 있잖아. 유황인가? 그거로 씻겨서 다시 불러내면 되고.”
“그런 방법이 있었네. 고맙다.”
심드렁하게 답하자 트레이시가 미간을 좁히고는.
“져주고 그러지 마. 나중에 알면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어.”
모르면 될 일 아닌가.
“오냐.”
일일이 답하기가 귀찮아 그리 말하자 트레이시가 한숨을 푹 쉬고는.
“다음 대련으로 나 찍어.”
웬일이야.
“오? 자신 있냐?”
어깨를 으쓱인 트레이시가 대뜸 데커드를 부른다.
“교수님! 만혁이 다 쉬었대요.”
“그래요? 남만혁 학생. 올라오세요.”
뭐라 따지기도 애매해서 그냥 가볍게 꿀밤 놓고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녀석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상태로 옆으로 움직여 피한다.
어쭈.
간이 경기장으로 올라온 나는 트레이시를 검지로 가리키며 까닥였다.
“너. 나와.”
그러자 트레이시가 홀로폰을 꺼내더니 락 음악을 킨다. 심장을 때리는 듯한 사운드와 보컬의 시원한 샤우팅.
“트레이시 그웬 학생. 이 음악은 뭔가요?”
“제 등장 음악으로 하려고요.”
히어로의 등장 음악이 유명해지면 이걸 틀기만 해도 빌런이 도망치는 효과가 있다.
지금은 구닥다리라는 인식 때문에 잘 사용 안 하는데, 2세대 전. 그러니까 교감이 활약할 당시에는 꽤 유행했다고 한다.
“좋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끄세요.”
“넵.”
쿵쿵대는 비트에 맞춰서 걸음을 내디딘 트레이시가 내 앞에 서자 데커드의 시작 휘슬을 분다.
음악이 멎음과 동시에 트레이시가 사라졌다.
‘음?’
사위가 고요하다. 방금까지 시끄러웠던 음악 때문에 그 차이가 더욱 극명하다.
트레이시는 내 청각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그 짧은 시간을 노려올 게 분명하다.
하여간 머리 하나는 비상한 녀석이다. 자기 발소리를 이렇게 숨길 줄이야.
툭, 툭툭.
내 우측으로 떨어지는 돌멩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더미임을 깨닫고 급히 뒤로 몸을 물렸다.
푹.
기다렸다는 듯이 등에 꽂히는 고무 단검.
“어때?”
모습을 드러낸 트레이시가 씩 웃으며 묻는다.
뿌듯함과 괘씸함, 그리고 꼬맹이에게 전술로 당했다는 치욕이 소용돌이친다. 나는 녀석처럼 큭 웃곤.
“잘했다. 데커드 교수님, 제가 졌습니다.”
완벽하게 읽혔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수. 소리에 매몰되어 트레이시가 단순히 전방에서 공격해올 거라 착각한 게 패배의 요인이다.
와중에 하나 드는 의문이 있어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내려가는 트레이시를 붙잡고 물었다.
“내 뒤로는 언제 온 거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한 시간은 없었다.
“처음부터. 우리 레드레이는 다재다능하거든.”
그러고는 내 귀에다 ‘굴절’이라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아. 저 정령, 파동 속성도 있었지 참. …그럼 내가 뒤로 피할 거라는 건 특성으로 예상한 건가.
도박에 걸었든 내 패턴을 파악했든. 이래저래 감탄이 나오는 한 수였기에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음 사람을 불렀다.
“칸탄테.”
“왜 나야!”
학기 초에 비하면 몹시 건장해진 체격의 칸탄테가 툴툴대며 올라온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잖아.”
“아아, 아!”
내 말은 귓등으로 듣는지 목을 푸느라 정신이 없는 칸탄테. 녀석의 특성은 출혈 부여.
노래를 듣는 사람의 무기나 주먹에 상대의 상처를 악화시키는 효과를 부여한다. 물론, 누구에게 부여할지도 조절할 수 있다.
“후웁, 훕.”
뾰족한 정이 달린 너클을 끼고 복서 스텝을 밟는 칸탄테.
예전에 내가 도수정처럼 원거리 무기를 써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었는데, 며칠 쏴보더니 싫다더라.
이유는 시끄럽고 무거워서.
뭐, 내가 보기에도 도수정과 달리 사격에 별 재능이 없어서 바로 수긍하고 원하는 무기를 구해다 줬다. 그게 저 흉흉한 너클이고.
“한 방만 맞추자. 아자!”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데운 칸탄테. F반에서 나를 제외하고 가장 특성 숙련도가 높은 사람을 꼽으면 칸탄테가 원톱일 거다.
부캐, 그랜마마로 활동할 당시. 자는 시간 말고는 계속 노래를 부르는 버릇을 들였다.
사건이 끝난 뒤로는 마운틴 짐에 꾸준히 찾아와 훈련했고. 그 노력에 반한 마가렛이 가전 무술을 전해주기도 했으니. 계기만 주어지만 날아오를 준비가 된 녀석이다.
“위즈. …마법 소년 강림!”
웬만하면 그냥 상대하겠는데, 저 출혈은 좀 위험하다. 조그만 상처도 수준급 힐러가 없으면 치유가 쉽지 않다.
알다시피 성인 남자는 2L만 피를 흘려도 죽는다.
그렇기에 이렇게 피부를 완전히 보호하면 칸탄테의 능력은 무용지물—
“초가속!”
뭐?
일순 제자리에 흐릿한 잔상만 남기고 내 시야에서 이탈한 칸탄테.
아니, 초가속은. 큭!
안면에 작렬하는 칸탄테의 주먹. 입안과 입술이 터지고 핏물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되면 시간이 많지 않다.
데커드가 스톱워치를 누르고 내게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인다.
3분 안에 못 이기면 네 패배라는 신호.
“흐엑, 헥. 어떠냐!”
“…이고강이 시키드나.”
초가속은 언데드 클럽, 이고강의 기술이다. 일식이가 배운 건 알았는데, 칸탄테도 익혔을 줄이야.
“으아. 이거 아직 실전에서 쓸 게 못 되는구나. 체력 쪽 빨리네.”
그러고는 볼에 숨을 한가득 물더니.
“초가속!”
시간만 끌면 이기는데도 또 공격을 한다고?
분명 이성적으로는 그딴 짓 하지 말라고 호통쳐야 하나, 지금의 나는 어째서인지 저 행동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일격에 필살을 담아서!”
왼쪽에서 들려오는 칸탄테의 흥얼거림. 두 번째 초가속은 눈으로 쫓을 수 있을 정도로 느렸다.
하여, 이를 보완하기 위한 교란용 멘트라 치부하고 왼팔로 가볍게 가드. 다른 곳에서 들어온 공격을 받아치기 위해 준비하는데.
“지리산 펀치!”
X병, 이게 진짜네.
저 얇실한 몸에 어떻게 이런 힘이 담겼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의 펀치가 내 가드 위로 떨어졌다.
끄드득.
경기장 밖으로 밀려나 한 바퀴 구르고 일어나자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한 칸탄테가 숨을 계속 들이켜기만 한다.
데커드가 응급처치를 위해 다가갔으나 고개를 젓는 칸탄테.
“아…직. 할 수 있. 어요.”
저 와중에도 말에 운율을 싣는다. 대단하다 대단해. 그래도 거기까지다.
“우욱! 웩!”
맞는 순간 녀석의 배에 침투경을 먹였거든.
결국, 앞으로 꼬꾸라지는 칸탄테. 데커드가 급히 녀석을 부축하는 그때.
“흐흐, 흐.”
데커드를 밀치고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리며 파이팅 자세를 잡는 칸탄테.
흐읍. 후. 흡. 후.
“고강이 오빠가 그러더라.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심폐기관이 끝장나게 좋대. 그래서 초가속도 가르쳐준 거래.”
“알았으니까 그만해. 너 지금 위험해.”
“우리 반 애들, 매일매일 강해져. 나만 두고 저 위로 가버리고 있단 말야. 니가 이 마음을 알아? 얼마나 무서운지 아냐고!”
알지. 세상에서 나만 제자리인 거 같은 그 감각을 왜 모를까.
“나는. 대등한 친구가, 히어로가 될 거야. …초, 끄흡. 가속!”
첫 번째는 잔상이 보였고. 두 번째는 본체가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녀석의 주먹이 코앞에 당도할 때까지, 나는 아무런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늘, 나무, 땅이 순서대로 시야에 들어왔고 뒤늦게 안면에서 충격이 느껴졌다.
반 바퀴 돌아 바닥에 엎어진 나는 설 수 없을 정도로 피를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고 항복의 더블탭을 하기 위해 팔을 드는 그때.
“둘 다 의료 천막으로! 소구경, 남만혁 엎고 따라와!”
심각한 얼굴의 데커드가 평소의 존댓말도 잊고 피 웅덩이에 쓰러진 칸탄테를 급히 들쳐 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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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