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마인 트래퍼, 르쏘
우리 집은 고물상 옆에 있다. 손재주 없는 어머니의 손으로 투박하게 만들어진 판자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앞에 한가득 쌓인 녹슬고 냄새나는 고물들이 보인다.
나는 비가 오거나 바람에 부는 날이면 늘 어머니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투정을 부렸다. 저 흔들리는 고물에 깔리기 싫었으니까.
“르쏘. 엄마랑 미라쥬 레스토랑에 갈까?”
미라쥬는 부잣집만 갈 수 있는 초고급 레스토랑이다. 당시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너무 좋다고 했고 어머니도 언제 봤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밝게 웃으셨다.
“이번 주 토요일에 가자.”
“네!”
약속 당일이 되자 나는 고물상 아저씨가 자리에 없을 때 몰래 세척장에서 몸을 씻었다.
깨끗한 옷을 꺼내 입고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미라쥬로 갔다.
레스토랑 입구에 서 있던 남자가 나와 어머니를 위아래로 훑더니 이렇게 말했다.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는 머뭇대다가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티켓을 한 장 꺼냈고 그걸 본 직원은 웃음을 터트렸다.
“부인. 그건 장난감입니다.”
‘미라쥬 무료 이용권’ 티켓은 보드게임에 쓰이는 카드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의 손님이 까막눈인 어머니를 놀리기 위해 준 거라고 한다.
그 길로 돌아 나온 어머니는 내게 가장 싼 피자 한 조각을 사주시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셨다.
“아들…, 엄마가 못 배워서 미안해.”
어떻게 우리가 고물상 구석에 살 수 있게 된 건지. 돈독 오른 놈팡이라고 욕하면서 왜 밤마다 억지로 아저씨네 집으로 가는지.
나는 안다.
“오늘 엄마랑 함께 나와서 즐거웠어요.”
“…르쏘.”
나를 끌어안고 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라고. 12살의 여름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부터 나는 내게 주어진 하잘것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배움을 탐닉했다.
어머니가 일하러 시내에 간 사이 나는 고물산에서 지식을 캐냈다. 찢어진 책, 파손된 실험 도구, 부주의하게 버려진 날붙이.
그것들만이 나의 세계였다. 조립하고 부수고 붙이고 안되면 짜증을 담아 내던지기도 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나만의 도구들을 만들게 되었고. 어느 날 고물상 아저씨의 눈에 띄었다.
“이 X끼가! 조금씩 사라진다 했더니만. 이 은혜도 모르는 쥐X끼!”
그의 분풀이 수단은 폭력이었다. 팔아봤자 채 30유로도 되지 않는 고물을 빼돌린 죄로 나는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맞아야 했다.
그런 나를 집에 돌아온 어머니가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밤중에 칼을 들고 일어서기에 필사적으로 말렸다.
“내, 내가.”
“르쏘야.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단다. 차라리….”
“복수할 거야.”
어눌한 발음으로 그리 말하자 어머니는 내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같이하자꾸나.”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죄를 어머니께서 뒤집어쓰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거 같다.
아무튼. 시간이 흐르고 15살이 되던 해에. 우리 모자에게 기적이 내려왔다.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를 배웅하는 순간, 하늘에서 빛기둥이 내려와 나를 덮쳤다.
빛을 보고 모여든 사람들의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으나 나는 내 뇌에 들어온 지식을 흡수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뭔 일이야!”
허겁지겁 튀어나온 고물상 아저씨는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또 너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려있어 이 소란의 주범이 나라고 생각했는지. 곧장 내 머리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퍽—
“아들! 이 짐승 같은 자식아! 내 아들 괴롭히지 마!”
어머니는 품에서 녹슨 식칼을 꺼내 고물상 아저씨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놈은 반사적으로 몽둥이를 휘둘렀고. 어머니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피를 흘리며 경련하는 어머니의 모습.
나는 인근의 고물을 움켜쥐고 떠오르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었다.
“어셈블리 드 마인.”
“무슨 헛소리를, 흡!”
그간 고물산 곳곳에 내가 만들다 만 도구들이 함정으로서 기능하게끔 자동 개조되어 내 신호에 맞춰 작동했다.
놈의 눈앞에서 멈춘 쇠꼬챙이와 발치에 날아와 꽂히는 쇳조각들.
“어머니를 치료해.”
“…내가 왜?”
“부탁이 아니야.”
쇠꼬챙이를 잡고 들이밀자 급히 머리를 뒤로 빼며 고개를 끄덕이는 놈.
“알았다. 알았으니까, 이걸 좀.”
곧 구급차가 도착했고 어머니는 다행히 가벼운 뇌진탕 정도로 끝났다. 막대한 치료비가 발생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고물상 놈의 비리와 가혹행위로 인해 보상금을 충분히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병상에서나 집에서나 늘 나를 걱정하셨다.
“너는 강한 아이란다.”
“그렇게 될 거예요.”
“…히어로 아카데미에 가는 건 어떠니?”
“어머니.”
지금 이 한마디로 그간 무엇을 걱정해 그리 시름시름 앓으셨는지 알았다.
“먼저 연락이 왔단다. 대한민국의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의 교감이 너를 지켜봤다는구나.”
“네?”
“너도 알다시피 브르통이 그리 고분고분하게 돈을 내어줄 사람이 아니지 않니.”
브르통은 고물상 놈의 이름이다.
그리고 저 말씀을 아카데미에서 도와줬다는 뜻일 테지.
“아들아, 너는 배운 사람이 되렴.”
어머니 곁을 떠나는 건 싫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무시하고 싶지도 않았다.
“…갈게요. 히어로 아카데미.”
2년이 흐르고 한국으로 떠나는 날.
“좋은 히어로가 되어야 한단다.”
“노력할게요.”
솔직히 히어로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이 함정조립 능력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그것에 매진하다 올 생각이었다.
입학시험을 치르고 F반이라는 최하위 클래스에 배정되었다. 반은 상관없다. 나는 히어로 자격증이 목표니까. 나 자신과 어머니만 지킬 수 있으면 그만이다.
실제로, 내 특성으로는 뛰어난 히어로가 되기 힘들다는 걸. 시험을 치르는 날 알게 됐다.
“부유, 가속, 내구. 메이저로만 트리플 기프트라니. 그레이스는 전생이 여신이었을 거야.”
“야, 스위프트가 더 대단하지. 태어나면서부터 각성했다는데.”
그건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나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이들의 서사들.
“야, 근데 들었어? 그레이스가 F반 애한테 졌대.”
“진짜? 누구?”
“이름은 모르겠고 남 교수라고 하던데?”
남만혁. F반이면서 A반의 엘리트를 상대로 승리를 쟁취한 인물.
입학시험 토너먼트에서 해변 구현만으로 트리플 기프트인 그레이스 멜론을 꺾었다.
나는 그저 우연이라고만 여겼다. 실제 반 배정도 F반이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자기가 원해서 F로 왔단다.
A반으로 졸업 시 주어지는 온갖 혜택을 포기하고 F반 따위로 오다니.
‘제정신은 아니군.’
그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지내던 어느 날. 파이브 파이트 리그라는 곳에서 내 적성을 찾고 남만혁과의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그가 진심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별명만 교수인 줄 알았더니.”
그는 F반을 떠나 모든 아카데미 학생들을 진심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너그럽게.
학생에 맞춰 티칭 방식을 유연하게 바꾸는 것처럼 대련도 최대한 상대의 스타일로 겨루려고 노력한다.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될 무렵.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군. 이게 존경심이라는 건가.”
나는 어느새 남만혁을 존경하고 있었다. 저런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히어로 자격증을 취득하자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남만혁에게 인정받겠다.’
히어로는 그다음이다.
그런 일념으로 노력했고 그 성과를 보일 때가 왔다.
합숙 훈련 마지막 날 예고된 공개 대련.
나는 치밀하게 준비했다. 남만혁의 장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해변 구현이다.
필드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전술적 이점을 생각해보면, 저 특성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중전을 상정해야겠지.’
밀봉된 화약을 사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남만혁의 심중에 따라 널뛰는 수압도 고려해야 하고.
그래서 용수철과 고무의 탄성을 이용해 발사하는 원시적인 작살을 구조물에 장치한 뒤, 그를 끌어들였다.
예상대로 해변을 구현했고 남만혁이 탄 보트에 구멍을 내는 것까진 성공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남만혁은 강하다. 학기 초에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 대련하던 것에 비해 지금은 상대의 능력에 맞춰주고 있다. 다른 힘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해진 거다.
그래서 현재 내 일차적인 목표는 해변 구현 이외의 힘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이는 물에 빠진 남만혁이 쏘아지는 작살을 보곤 삼식이를 부르는 것으로 충족되었다.
바닷속을 수 놓는 무수한 매직 미사일의 개수에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모든 방향으로 쏘아져 나간 미사일들이 내가 제작한 구조물과 함정들을 모조리 파괴했다.
누군가는 설치형인 나를 상대로 불합리한 공격을 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내 기준으로는 아주 흡족한 결과다.
저렇게 하는 거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는 거니까.
이러한 상황 역시 가정했었기에 미리 만들어둔 비장의 무음 어뢰를 밀봉된 주머니에서 꺼내 남만혁을 향해 날렸다.
이것이 나의 승부수다.
이게 막히면 내 위치가 노출될뿐더러 준비한 모든 함정이 사라진다.
어뢰는 화려하게 뻗어 나가는 매직 미사일들 사이에 숨어 남만혁에게 닿았고, 폭발했다.
‘됐—’
그러나 거품이 사라지고 드러난 광경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 *
“이게 얼마짜린데!”
명품 보트에 꽂혔던 작살을 뽑아내자 찢어진 틈으로 물이 밀려든다. 물을 퍼내서 해결될 상황은 아니었기에 하는 수 없이 보트를 포기하고 물로 뛰어들었다.
퉁!
‘이것 봐라?’
물속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수면에 떠다니는 모든 부유물에서 작살이 쏘아져 나온다.
트래퍼 이 자식, 처음부터 수중전을 상정하고 필드를 짰구나.
내가 아무리 미르토스 해변을 끼고 살았다 해도 물속에서 저 작살보다 빠르기 움직이긴 어렵다.
평소라면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하겠으나 칸탄테의 절실함에 나도 감화된 탓인지, 조금 더 해보고 싶어졌다.
뭐, 이런 함정에서 적이 빠져나왔을 때 트래퍼 녀석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삼식아.’
내 머리 옆에 검은 구멍이 열렸고 삼식이가 익숙하게 헤엄치며 내 어깨를 붙잡는다.
돌곡?
‘작살이랑 저 떠다니는 것들 전부 부숴버려.’
돌곡!
다가오는 작살을 맞추고 급격히 늘어난 매직 미사일로 내 요구를 충족시킨 삼식이가 이제 뭘 하면 되는지 물어왔다.
‘일단 마나 절반 정도 써서—’
매직 미사일이 발광체인 점을 이용해 사방으로 뿌리면서 트래퍼의 위치를 특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딱딱하고 차가우며 뾰족한 뭔가가 등에 닿아 돌아보니.
펑!
전신을 진동시키는 강력한 폭발이 연달아 일었고 나는 이게 어뢰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반사적으로 내 몸에 딱 붙는 영역을 전개해 어뢰 파편이 몸에 박히는 건 면했으나 충격까지는 흘려보낼 수 없었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거품들이 사라지자 어뢰가 날아온 방향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거기엔 스쿠버 장비를 입은 마인 트래퍼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어뢰를 허용한 게 의외인 걸까. 아니면 어뢰를 맞고도 기절하지 않은 거에 신기한 걸까.
하여튼 간만에 아찔한 경험을 했다. 순간적으로 위즈가 튀어나와 내 몸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저 수면의 잔해처럼 떠 있지 않을까.
‘강적이네.’
내 나름대로 세운 기준이 있다. 낭만 하나로 상대할 수 있으면 평범. 두 개는 강함. 세 개는 강적.
과정이 어찌 되었든 이 짧은 시간에 낭만 세 개를 썼다. 마인 트래퍼는 강적이다.
‘그럼 강적 대우를 해줘야지.’
위즈에게 대화의 권한을 넘겨 육체 강화를 가져오고 삼식이에게 마나 절반을 마음껏 사용해도 좋다고 한 뒤, 해변을 심해로 바꿨다.
‘자, 다시 해보자고.’
참고로, 나는 절대 맞아서 화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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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