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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05화 (105/201)

<105화>

클래스 업 (1)

오적수는 블리딩블러드의 심성을 시험하고자 했다.

그래서 보일러가 있음에도 장작을 해와 아궁이를 데우라거나 산골짜기의 계곡물을 떠오라는 등의 귀찮고 짜증 날 법한 심부름만 골라서 시켰다.

봉사 활동을 업으로 하는 이들조차도 불평을 할 법한 일인데, 블리딩블러드는 큰 감정 변화 없이 묵묵히 시킨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오적수가 혈마공의 위험성을 떠올리며 전수를 망설이던 중, 불청객이 방문했다.

“블러드!”

“엇! 수, 수정아. 여긴 웬일이야.”

“안녕하세요. 어르신. 러드 좀 데려갈게요. 안 바쁘지?”

“으, 으응. 당연하지.”

도수정의 손에 이끌려 초가집 밖으로 나가는 블리딩블러드는 전형적인 쑥맥이었고 오적수는 그 모습에서 혈마공을 전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되었다.’

혈마공의 문제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타인에게서 피를 흡수해야 폭발적으로 강해진다는 점이다.

이는 블리딩블러드의 피를 다루는 특성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지금껏 오적수가 망설인 이유는 바로 두 번째 문제.

‘여자.’

마공을 익히면 음심이 짙어진다. 본래 한 여자로 만족했던 인물이 마공을 익힐 시 경지에 도달하기 전까지 수백의 여자를 탐한다.

그러나 절간의 승려와 같이 여색을 멀리하는 이는 혈마공을 익혀도 여성을 탐하진 않는다.

그리하여 블리딩블러드는 ‘혈각(血角)’과 ‘혈조(血爪)’. 그리고 오적수의 노파심에 의해 동자공까지 익히게 된다.

이후 오적수가 블리딩블러드에게 마공의 위험성을 주지시키고 의도적으로 피를 고갈시켜봤으나 몸놀림이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바뀌는 것 외엔 마두의 특징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 안도하였다.

그렇게 당도한 합숙 마지막 날.

[하산하거라.]

“스승님,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시간이 촉박해 기초만 가르쳤으니 자주 찾아와 다른 기술도 익히도록 하—]

뚜르르.

“여보세요. 어, 수정아. 응, 지금 갈게. 아, 안녕히 계세요!”

‘…….’

* * *

합숙 훈련이 끝나고 아카데미로 복귀해 다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매주 진행되는 교직원 회의에 평소와는 다른 안건이 올라왔다.

“게타 교수? 다시 말해보세요.”

“그…. 1학년은 클래스 업이 필요합니다. 언제까지고 A반을 9명으로 놔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규칙상 A반 정원은 10명. 하지만 현재 남만혁의 자진 F반 행으로 인해 9명이 되었다.

매달 다른 반 학생을 한 명씩 데려와 A반 공통 강의에 참여시키고는 있으나 서류상 인원은 9명인 채였다.

교감은 들고 있던 홀로 보드를 둔탁한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에 던지고는 안경을 벗으며 물었다.

“이번에는 누굽니까?”

“예?”

“대체 얼마를 받았길래 클래스 업을 거론할 용기가 생겼을까 싶어서요.”

클래스 업은 말 그대로 하위 반 학생을 상위 반으로 이동시키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를 안건에 올리는 것부터가 전적으로 교감의 권한이다. 교장도 터치할 수 없는 행사인데 하물며 다른 교수도 아니고 평소 뇌물을 받아먹기로 유명한 게타 따위가 거론하니 프리실라 루드라 입장에선 충분히 분노할만한 상황이다.

“글쎄요. 저는 딱히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만.”

평소와 달리 뻣뻣한 태도의 게타 교수. 왜 저런 태도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던 교감은 슬쩍 게타에게 간섭파를 날렸다.

‘이거….’

그에게 닿기 직전 간섭파가 사라졌다. 헬로우 아일랜드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에 진행한 실험을 통해 이 현상이 VZ로 인한 특성 소실 현상이라는 걸 알아챈 교감은 미간을 찌푸렸다.

“협회입니까?”

“협회요?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그저 아카데미 규칙을 상기시켜드린 것뿐입니다. 커흠.”

현재 유통되는 VZ는 남만혁의 밀키 마이닝 사(社)가 제작부터 소규모 공급까지 독점하고 있다.

공급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곳이 히어로 협회고 게타 교수는 그곳의 임원이다.

‘올해 임시 협회장도 잠시나마 했었으니 VZ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겠지.’

추론을 마친 교감은 테이블을 검지로 두어 번 두드리고는.

“다른 분들은 어찌 생각하시지요?”

눈짓만 주고받는 교수들. 교감이 테이블 두드리는 소리가 점차 강해지자 한 사람에게 시선이 모였다.

동료들의 눈짓을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었던 프로스트 교수가 입을 열었다.

“탈락한 편입생을 기준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떤 기준 말인가요?”

교감의 회백색 눈동자가 스산하게 번들거린다.

“우리 아카데미의 클래스 업은 대대로 세간의 집중을 받아왔습니다. 이번에도 다를 바가 없을 테고 말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탈락한 학생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학생이 A반에 가야 합니다.”

“프로스트 교수님.”

“예.”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교감의 표정만큼이나 단번에 싸늘해지는 회의실.

“으음,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지요. 좋습니다. 일단 각 반에 A반으로 클래스 업을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도록 하지요. 명단이 나온 후에 기준을 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하, 아주 훌륭한 판단이십니다! 컥! 케흑. 저, 저는 이만!”

실시간으로 얼굴이 구겨지는 프리실라 루드라와 눈이 마주친 게타 교수가 도망치듯 회의실을 나간다.

“다른 분들도 일 보세요.”

그제야 우르르 일어나는 교수들. 홀로 회의실에 남은 프리실라 루드라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띵동.

“응?”

회의실 전용 홀로 보드에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보낸 이 : 게타 교수]

[제목 : B~F반 학생 프로필]

[내용 :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올린 안건인데 성의를 보이고자 이렇게 프로필을 첨부합니다.]

바로 쓰레기통으로 처넣으려다 혹시나 해 첨부된 파일을 바이러스 검사를 철저히 한 후 다운 받은 교감은 다른 학생과는 달리 유독 설명이 많고 강조된 한 사람의 프로필을 전면에 띄웠다.

[호밍보우]

[클래스 : B]

[특성 : 보우 마스터 / 정밀안]

[평균 성적 : A]

[태도 : 매우 성실하고 적극적이며 교우관계가 좋음]

[교수 평가 : 홀런 - 훌륭함 / 프로스트 - 장래가 기대됨 / 텅스텐카우 - 배짱이 있음 / 게타 - 천재이며 추후 주류 히어로 그룹에 소속될 가능성이—]

[첨언 : 외모가 준수하고 전문성이 높은 특성뿐만 아니라 훌륭한 심성을 가져 차후 아카데미의 이름을 드높일 학생입니다.

영국의 명망 높은 백작가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려선 사격 국가대표였던 어머니께 사격술을—]

‘교수 평가’까지는 프리실라 루드라가 보유한 학생 프로필과 동일하나 그 아래에 적힌 미사여구들은 게타 교수가 추가한 것이 분명했기에 무시하고 넘겼다.

“호밍보우. 교직에서 수십 년이나 학생들을 가르쳐 눈이 높아진 노교수들도 그의 예술적인 궁술에 감탄했다지.”

프리실라 루드라가 보기에도 호밍보우의 실력과 인품.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프로필 최하단, 마지막 장의 이 학생과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만혁]

[클래스 : F]

[특성 : 로맨티시스트]

[평균 성적 : A]

[태도 : 강의에 임하는 태도는 불성실함. 본인의 학습보단 다른 학생의 학습을 도움.]

[교수 평가 : 매저드 - 20년 안에 그랜드위저드 / 고스트핸드 - 승부사 기질 보유함. 판단력 및 임기응변, 판을 보는 시야가 현직 프로 히어로 수준. / 텅스텐카우 - 특성 지구력 항목은 교내 최고입니다. / 프로스트 - 모략의 귀재. 기상천외한 전술로 상대를 농락하며 당황하는 적의 모습을 상황을 즐김. / 게타 - 실제보다 훨씬 고평가된 케이스.]

[첨언 : 보육원 출신.]

다른 교수들이 F반치고는 잘한다는 의미로 고평가를 했다 쳐도 매저드는 허언을 하지 않는 인물.

“음….”

그 자리에서 달이 뜰 때까지 장고에 잠긴 교감은 끝내 결정을 내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왜요.

퉁명스러운 말투가 들리자 교감은 소리가 나지 않게 웃었다.

아카데미 절대권력자에게 저리 서슴없이 본인의 감정을 내비치는 인물이 몇이나 될까.

“많이 바쁜가요?”

-말씀해보세요. 들어는 드릴게.

“…클래스 업, 이라고 하면 아시겠지요?”

게타 교수가 소문을 퍼트렸을 게 뻔했기에 짐작해 그리 물으니 아니나 다를까 통화기 너머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그거요.

당연히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한 교감은 일단 참여만 해서 편입생들이 이해할만한 기준을 잡는 데 도움을 달라는 말을 하려는 때에.

-저 2학년 때는 A반 가볼까 하는데.

“그래서 안 그래도 부탁을, 네?”

-저도 클래스 업 시험 참가할 수 있죠?

* * *

예상 밖이었다. F반이 1년 만에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줄이야. 합숙 훈련 전후로 특성을 키워야 할 방향도 정해졌고 갈대처럼 흔들리던 멘탈도 꽤 단단하게 변했다.

지금처럼 아침저녁으로 붙어 하나하나 가르치지 않아도 성장하는 재미를 알았으니 저 스스로 커 나갈 거다.

-이대로면 겨울방학이 끝날 때쯤 지하 요새는 완공되겠어.

“자재 창고는?”

-그건 더 깊은 곳에 묻어놨고. 온도 유지 시설이 좀 필요하긴 해. 지금 방식으로는 에너지 낭비가 심해서.

“온도 유지? 그건 아티팩트로 해결하면 되니까, 괜히 돈 쓰지 마. 마나만 오갈 수 있게 환기구만 뚫어놔.”

-오케이.

지금은 겨울방학 3주 차다. 합숙 훈련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로 인해 예년보다 이르게 방학이 시작됐다.

이 한파의 원인은 인류가 특성과 과학의 도움을 받아 지구의 기후를 조작하면서 벌어진 해프닝인데, 아무튼 평균 기온을 낮추는 과정이란다.

리쳇도 위험하진 않댔고 떠오르는 사건도 딱히 없는 걸 보면 그리 큰일은 아닐 것이다.

“리쳇. 클래스 업 어떻게 생각하냐.”

어제 전화를 받았다. 교감은 늘 내가 A반으로 가는 걸 원해서 슬쩍 찔러봤더니 의외로 나를 포함한 F반 전체를 다른 학생들보다 더 엄격하게 심사하겠단다.

노인도 히스테리를 부리던가. …아직 호르몬 활동이 왕성하신가 보다.

에휴.

-보스랑 퀸, 스위프트를 제외하면 F반의 전력이 A반을 능가하긴 해.

그건 10:7인데 당연한 거 아니냐.

“나 없이도 잘하겠지?”

-괜찮대도. 나는 보스가 이쯤 해서 A반 애들 한 번 돌봐주는 게 낫다고 봐. 3학년은 실습이니 취직이니 해서 다들 바쁘니까.

리쳇의 말대로 클래스 업을 한다면 지금이 적기이긴 하다. 그렇게 내심 클래스 업 시험을 치르고 A반에 가야겠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이후 몇 주를 바쁘게 보냈다.

네크로 마탑산 노동용 언데드를 훔쳐 군사용으로 개조하려던 빌런을 심해에 굴러다니는 돌로 가공해주기도 하고, 창고 온도 유지 아티팩트 제작에 필요한 소재를 모으느라 동유럽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퀸이 아카데미 근처 한식당에서 밥 먹자길래 가볍게 운동복 입고 갔더니만 퀸네 아버님이랑 세상 어색한 인사를 해버리기도 하고.

아무튼 다사다난했던 겨울방학이 일주일 남았을 무렵.

아침 일찍 공지사항 하나가 등록됐다.

[공지 : 1학년 클래스 업에 관한 공지사항]

[글쓴이 : 프리실라 루드라]

[내용 : …일 진행되며, A2반을 신설하므로 A1반의 부족한 1명을 포함해 총 11명을 뽑습니다. 클래스 업 이후 F반은 해체됩니다.]

“야이.”

공지대로면, F반은 개인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 시험을 봐야하니까 대부분 A2에 소속될 거다.

“에라이.”

방학 동안 마운틴 짐을 비롯한 아카데미 내에서 애들을 종종 마주칠 때마다 온갖 애잔한 표정으로 봤었는데, 그게 다 뻘 짓거리였다니.

그나마 다행인 건, 속으로만 생각했기에 아무도 나의 X신스러움을 모른다는 거다.

-‘나 없이도 잘하겠지?’, 큭큭.

…쟤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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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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