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클래스 업 (2)
2052년. 현시대를 대표하는 두 가지 직업을 꼽으라면 하나는 히어로고 다른 하나는 너튜버다.
길거리를 지나면 열 명 중 하나는 전문 너튜버고 여덟은 게으른 너튜버이며 나머지 하나는 시대에 뒤처진 너튜버이다.
“오늘도 파이팅!”
나는 최미주, 21살이고 주말에만 활동하는 게으른 너튜버다.
끼릭, 끼릭.
“언니, 오늘도 나가?”
오래된 휠체어를 밀고 와 배웅하는 내 동생, 최예주.
“응, 돈 많이 벌어 올게.”
예주는 몸이 아픈 자기 때문에 내가 고생하는 줄 알고 늘 미안해한다.
“…너무 무리하지 마. 어차피. 아니야. 잘 다녀와.”
어차피 뒤에는 ‘얼마 못 살 텐데.’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치료비를 못 내면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 가족을 잃는 건 싫다.
“다녀올게.”
나는 내 장사 도구이자 사진관 사장님의 호의 덕에 빌린 오래된 바디캠을 달고 밖으로 나왔다.
“먹방은 인기가 없었지.”
저번 주엔 먹방을 찍었다. 거기에 달린 화제의 댓글이 ‘새 모이 먹는 거도 아니고 그렇게 깨작대서 누가 좋아하겠냐.’였다.
“어디서 행사 같은 거 안 하나.”
통신사 가입만 하면 공짜로 주는 스마트 폰을 켜 행사를 검색했다.
어떻게든 화제의 중심에 접근해 조회수를 얻어타려는 생각이었는데, 마침 그럴듯한 기사를 찾았다.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이례적인 공개 시험 진행!]
[중계 제한 없어. 너튜버들 몰려 인산인해. 의도적인 스타 히어로 만들기?]
[서히아 측, ‘A반도 예외 없어. 전 클래스 재정립될 것.’]
기사들은 다양한 언어 버전으로 쓰여 있었고 조회수가 예사롭지 않았다.
“와. 빅스타가 댓글을 달았네.”
[빅스타 : 끊임없는 경쟁. 이것이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의 비전이다.]
빅스타. 별처럼 생긴 부메랑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원로 히어로. 현직에서 물러난 게 얼마 전이라 그런지 대댓의 숫자가 상당하다.
“나도 되려나?”
급히 서히아 중계권 신청 페이지에 들어가 정보를 넣고 버튼을 누르자 바로 허가가 뜨면서 좌석 배치가 됐다.
“서울 올림픽 경기장? 와, 크게 하네.”
좌석 7만 개 중 절반이 중계용으로 할당했다고 한다. 나머지 반은 가족과 관계자들 용이고.
“시작 시간이, 9시?”
여긴 지방이라 기차를 타고 가도 아슬아슬하다.
어찌어찌해서 경기장에 도착하니 정말 거짓말 조금도 안 보태고 사람이 개미 떼보다 많았다.
“자리가 만 단위로 남는다는데 왜 안 들여보내 주는 겁니까!”
“죄송하지만, 그런 방침입니다.”
“에이씨! 시간만 날렸잖아!”
“죄송합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철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건장한 남자에게 중계권을 보였다.
“2층으로 올라가셔서 제일 끝 자리입니다. 다음 분.”
어수선한 복도를 지나 자리를 찾아가니 대포 카메라를 비롯해 고급 장비들이 쭉 세워져 있었다.
사진관에서 일하는지라 저 장비들이 얼마인지 잘 알기에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면서 내 자리에 도착했다.
“이봐요.”
간신히 페인트가 벗겨진 쇳빛 의자에 앉자 옆자리의 남자가 인상을 구긴 채 말을 걸어왔다.
“네?”
“여기까지는 제 자리니까, 넘어오면 안 됩니다.”
“아, 네.”
거기까지 넘어갈 장비도 없네요.
남자는 내 앞의 카메라 거치용 공간을 슥 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카메라는요? 위장 중계 안 되는 거 아시죠?”
“카메라 있거든요!”
가슴 중앙에 오게 한 바디캠을 내밀자 남자는 큭 웃더니.
“그거로 찍으시면, 여기 거치대는 내가 써도 되겠네?”
“아뇨!”
손바닥 크기의 캠을 굳이 떼서 거치대에 올려두자 남자는 눈가를 찌푸리더니 혀를 차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곧 필드 세팅이 있겠습니다. 시험을 위함이니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중계는 언제든지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같은 열에 앉은 너튜버들이 온갖 해괴한 인사말을 하며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안녕하세요, 최가네 방송입니다. 오늘은 서울 올림픽 경기장에 나와 있어요.”
드문드문 올라오는 댓글에 반응하며 얼마간 시간을 보내자 경기장의 바닥이 잔디에서 진흙으로 바뀐다.
“와! 아카짱 님, 보셨어요? 구현계 각성자님이 계신가봐요.”
아카짱은 몇 달 전부터 생방송을 켜면 들어오는 시청자로 매번 10만 원이나 쏘는 큰손이다.
“첫 시험은 구조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입니다. 규칙은 학생들이 경기장 외곽에서 진입해 제 목에 이 호루라기 목걸이를 걸면 성공입니다.”
이후 경기장의 거대 홀로 보드에 학생들이 한 명씩 입장하는 모습이 담겼다.
‘와, 개처럼 생긴 애도 있네.’
“아가씨.”
“네?”
“하, 내가 딸 같아서 하는 소린데. 댁같이 장비 딸릴 때는 사람 한 명만 포커싱하는 게 좋아.”
“그래요?”
솔직히 저게 호의인지 의심스럽다.
“안 믿는 눈친데. 댁이 저것들처럼 좋은 장비 가져왔으면 이런 거 안 알려주지. 근데 아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바디캠 달랑 들고 와서 중계한다는 게 말이 되나. …큼. 미안합니다. 내가 속에 있는 말을 못 참는 편이라. 하여튼 우리 쪽 시청자분들이 안쓰럽대서 알려주는 겁니다.”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션 완료라는 기계음이 들린다.
그럼 그렇지.
“네.”
고개만 까닥이고 말았다. 거드름을 잔뜩 피운 남자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도록 작게 말했다.
“좀 재수 없네요. 근데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요. 누굴 찍죠?”
[아카짱 : 남만혁.]
남만혁? 어디서 들어보긴 했는데.
“잠시만요, 검색해볼게요. …와, 17살 아니 이제 18살인가. 아무튼 학생 맞아요? 커리어가 엄청 화려하네요.”
전 히어로 협회장의 비리를 밝힌 주역이자 은행에서의 인질극을 원만하게 끝내고 의사를 보호하며 테러범 진압까지.
단순히 생각해도 학생이 해낼 수준의 사건이 아니었다.
‘우리 예주도 이렇게 건강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비교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이도 같고.’
경기장 대형 홀로 보드는 60명의 학생을 모두 비춘 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아, 제 소개를 잊었습니다. 저는 텅스텐 카우라는 히어로 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흡!”
사회자의 기합과 함께 입고 있던 상의가 과격하게 찢어진다. 그렇다고 완전히 넝마가 된 게 아닌 걸 보면, 원래 저렇게 만들어진 옷인가.
찢어진 셔츠 사이로 드러난 구릿빛 근육들이 아침 해를 받아 그런지 엄청 역동적이다.
이, 일단 찍어두자.
“아카데미에서는 특성 체력 강의를 맞고 있습니다.”
[시험 시작!]
텅스텐 카우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작 휘슬을 불었고 약 서른 명에 달하는 학생이 진흙밭을 질주했다.
나머지 서른은 상황을 살피거나 주변 학생들과 협력을 구하는 듯 보였다.
“와.”
개중, 날아가는 학생 둘이 눈에 띄었는데. 밝은 금발의 소녀가 독보적인 속도로 텅스텐 카우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소녀의 등에는 ‘QUEEN’이라는 이름표가, 손에는 호루라기가 달린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퀸? 아, 히어로 명인가 봐요.”
“어이, 아가씨. 다른 학생 알아보는 게 어때? 지금 전부 저 소녀 찍고 있는데 바디캠 화질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옆의 남자가 또 간섭해온다. 그런데 또 너무 맞는 이야기라 할 말이 없다.
“아, 예.”
뭐, 안 그래도 아카짱이 추천한 학생을 찍을 생각이었다.
‘남만혁이, 아! 여깄네.’
남만혁이라는 학생의 위치는 중계진 중에 내가 가장 가까웠다. 장대를 잡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를 포커스에 넣자 유일한 시청자인 아카짱이 반응했다.
[아카짱 : 시험이 치러지는 동안 계속 남만혁을 카메라에 담고 있을 것. / 상금 20만 원.]
“와! 네! 무조건 할게요!”
최선을 다해 리액션을 하고 남만혁 학생을 찍었다.
그래도 나름 사진관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게 있는지라 그의 모습을 느낌 있게 담고자 최선을 다했다.
[마를린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마를린 : 안녕하세요. 어머, 여기 구도가 제일 깔끔하네요.]
“앗, 어서 오세요. 칭찬 고맙습니다!”
조금씩 늘어나는 시청자 수를 보며 긴장하지 말자고 되뇌던 중. 특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와 이를 언급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남만혁 님은 가만히 계시네요. 무슨 작전일까요?”
말 그대로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팔짱을 낀 채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모습에 의아해하자 곧장 댓글이 올라왔다.
[마를린 : 제가 아는 만혁이라면 시험의 목적을 생각하고 있을 거 같네요.]
“목적이요? 저 사회자 아저씨의 목에 호루라기 걸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이어 마를린의 댓글이 다시 올라오기가 무섭게 남만혁 학생이 움직였다.
그는 자기 주변으로 작은 해변을 구현하더니 보관함 같은 곳에서 응급치료 키트를 다수 꺼내고는 빠른 걸음으로 진흙밭을 가로질러 텅스텐 카우를 향해 나아갔다.
“응급키트로 뭘 하려는 걸까요? 아!”
텅스텐 카우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남만혁 학생은 텅스텐 카우의 반격에 의해 쓰러지거나 부상을 입은 학생들에게 다가가 응급키트를 건넸다.
“그리고 보니 이거 구조 시험이었죠. 와, 대단하네요.”
남만혁 학생은 기절하거나 거동이 어려운 사람을 질질 끌고 진흙밭 밖으로 꺼냈다.
“네가 시선을 끌어!”
“플레임 쓰러스트!”
“와일드 크러시!”
텅스텐 카우가 자리한 진흙밭 중심은 그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기 위한 학생들로 인해 난장판이다.
화려한 광경은 모조리 저기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남만혁 학생처럼 사람을 구조하는 이는 눈에 들어오지도, 대형 홀로 보드에 잡히지도 않았다.
그러나 확신했다.
“점수 많이 받겠네요.”
[아카짱 : 남만혁 학생은 시험의 출제 의도를 잘 간파했네요. 저렇게 본질을 파악하는 눈이 히어로에게는 중요하지요.]
[마를린 : 맞는 말씀이세요. 만혁이는 저렇게 틀에 박히지 않는 사고가 디폴트거든요.]
“대단한 건 알겠어요!”
60명 중 19명 만이 텅스텐 카우의 목에 호루라기를 거는 데 성공했다. 첫 번째로 성공한 학생이 아무래도 주목을 많이 받았는데.
“보셨습니까! 여러분, 제가 찍은 학생이 퍼스트킬이었습니다. 아, 킬은 아니지만. 하여간 엄청났죠? 그 텅스텐 카우랑 힘 대결을 할 줄이야!”
1위의 주인공은 처음 그 금발 소녀였다. 옆의 저 아저씨가 말한 것처럼 잠시이긴 해도 괴력을 보유했을 것 같은 교수와의 힘 대결을 버텨내고 목에 호루라기를 걸었다.
삐삑—
“시험 종료! 15분 휴식 후 다음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예? 인사도 하라고요? 큼, 텅스텐 카우였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이후 경기장의 거대 홀로 보드에 순위가 올라왔고.
[구조 시험 점수]
[1위 : 남만혁 / 구조 - 26명 / 방울 걸기 : X / 총점 : 26점]
[2위 : 퀸 / 구조 - 5명 / 방울 걸기 : / 1위] / 총점 : 15]
[3위 : 리얼블루 / 구조 - 2명 / 방울 걸기 : 2위 / 총점 : 11]
“와, 와아!”
내가 포커싱한 학생이 독보적 1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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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