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클래스 업 (3)
구조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인데 사람 목에 목걸이를 걸라고? 말이 되나. 차라리 테러 대응이나 빌런 제압 시험이라면 이해하겠다만.
[시험 시작!]
텅스텐 카우가 호각을 불자 득달같이 달려 나가는 아이들.
저저,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놈들 좀 봐라.
본인의 특성이 이 상황에 적합한지 아닌지도 판단 못 하고 날뛰는 꼴이 가관이다.
“우승은 양보 못 한다. 그레이스.”
“아뇨. 제가 우승할 거예요.”
진흙밭을 뒹구는 아이들 대신 고고하게 하늘로 나아가는 둘.
쟤들은 인정이지. 이게 임무라면 아주 적합한 특성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둘이 텅스텐 카우와 실랑이를 벌일 무렵 올림픽 경기장 내의 학생들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직접적으로 텅스텐 카우를 노리는 이들과 나처럼 상황을 관망하는 아이들.
특히 F반과 A반은 대부분 관망하는 쪽이었는데, 눈빛부터가 다른 반 애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빠르게 연합하고 작전을 짜는 모습을 보아하니, 헬로우 아일랜드의 경험이 어디 간 건 아닌 모양.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아앗!”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니 퀸이 교수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있었다.
그 바로 옆으로 스위프트가 보인다.
경기장 홀로 보드에는 녀석의 일그러진 표정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여기서 텅스텐 카우의 반응이 중요하다.
“제법이다!”
역시. ‘성공.’, ‘합격.’이 아니다. 확신했다. 이 시험은 호루라기를 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어 다수의 학생이 텅스텐 카우에게 도전했으나 그의 반격에 당해 골골댄다.
슬슬 나서야겠다 싶어 걸음을 옮기려는 때에.
“이런.”
“큭!”
“안돼!”
“야호!”
스위프트, 안토니오 골드우드, 마가렛이 서로 먼저 호루라기를 걸기 위해 경합을 벌이는 사이 빛으로 숨어든 리얼블루가 텅스텐 카우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었다.
사각에서 나타나 무음으로 낙하한 거라 저건 나도 방법이 없다. 이어서 스위프트가 걸었고, 그다음으로는.
“흡! 음? 아. 도수정! 많이 늘었구나.”
“죄송합니다. 교수님!”
“저도 얻어 탈게요.”
리얼블루로 인해 경각심을 높인 텅스텐 카우가 마가렛을 상대하던 중 이번에도 시야 밖에서 은밀히 접근하는 도수정을 감지하고 주먹을 휘둘렀으나 단절을 발동하는 중이었기에 맞지 않았다.
주먹이 지나고 마가렛의 공격을 방어하는 틈에 단절을 풀고 목에 호루라기를 거는 도수정. 그리고 그 바로 옆에 나타나는 그웬 트레이시.
‘레드레이.’
저 두 사람의 조합은 사기지. 팀 잘 짰네. 그렇게 A반과 F반의 전투 히어로 지망생들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냈다.
“으랏차, 어우. 너는 근육 좀 적당히 키워라. 이거 뭐 무거워서 옮기겠냐.”
지금 내가 옮기는 녀석은 D반의 스테로라는 놈인데 몸집은 마가렛에 필적하면서 실제로 내는 힘은 절반도 안 된다.
지금은 반강제로 운동능력을 끌어 올려주는 약물 히어로가 각광 받고 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몰락한다. 성장 한계가 명확한 게 몇 년 내로 밝혀지거든.
지금도 실사용자들 사이에는 이야기가 돌고 있을 거다. 뭐, 얘 나름의 사정이 또 있겠지.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기절한 스테로를 진흙밭 바깥으로 끌고 나와 응급키트로 조치한 뒤 다치거나 무력화된 다른 녀석들도 죄다 경기장 외곽으로 옮겼다.
그런 나를 보고 따라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임무를 빠르게 끝내고 시간이 남은 퀸과 눈치 빠른 트레이시, 그리고 비전투 히어로 지망생들이 그러했다.
[시험 종료!]
텅스텐 카우의 인사와 함께 시험이 종료되었고 순위표 최상단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당연한 결과다. 이건 ‘구조’시험이었고 나는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빠르게 사람을 구조했으니까.
순위 알림 옆, 보조 홀로 보드에선 내 활약상이 하이라이트로 나왔다. 단시간에 한 편집치고는 꽤 볼만하네.
다만 이어지는 2위, 퀸과 텅스텐 카우의 화려한 격투씬에 비하면 밋밋하긴 했다.
와아아아!
관객들의 환호도 수준이 달랐고. 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긴 하다.
잠깐의 휴식 후, 텅스텐 카우 대신 익숙한 인물이 마이크를 잡았다.
“반갑습니다. 프로스트입니다.”
그는 인사말을 뱉자마자 남극의 빙하를 구현해 15층 빌딩 수준으로 쌓아 올린 뒤, 내부에 방을 만들었다. 외부에서 내부가 보이는 독특한 얼음 빌딩.
“두 번째 시험은 여러분의 테러 대응 능력을 검증하는 ‘예고 테러’입니다. 룰은 어렵지 않습니다. 폭탄이 든 가방을 저 빌딩 어딘가에 숨길 거고 그걸 찾아내 안전하게 해결하면 됩니다. 조교?”
“예, 교수님!”
일명 프로스트의 조교 사단이라 불리는 프로스트 추종자들이 똑같이 생긴 가방들을 양손에 든 채 튀어나와 빌딩 곳곳에 놓는다.
가방의 개수는 60개. 정확히 1학년 숫자와 동일하다.
“공개된 단서는 하나입니다. 가상의 테러범이 예고한 시간이죠.”
프로스트 교수는 홀로폰을 조작해 조교 중 한 명의 음성으로 예상되는 어색한 목소리가 들려줬다.
츠즉.
-나, 나는 테러범이다. 서울 올림픽 경기장 중앙의 남극 빌딩은 오전 11시에 폭, 폭발할 거다.
경기장을 울린 범인의 음성은 그게 끝이었다.
“모두 들었다시피 40분 뒤에 빌딩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폭탄이 터집니다. 선택할 수 있는 가방은 단 하나! 신중하게 고르세요.”
[시험 시작!]
이번 시험은 구조 때와는 달리 좀 복잡하다.
‘설마 이걸 그냥 고르는 멍청인 없겠지.’
있었다.
크르릉, 컹!
“비켜 인마 그건 내가 찍었어!”
크헝!
“이 몸이 골랐으니 네놈이 포기해라.”
자칼과 네로. 둘은 동물로 변해 신속히 1층 로비로 진입. 거의 동시에 가방을 집어 들었다.
결국 지켜보던 프로스트의 조수의 조율을 통해 조금 더 빨리 가방에 주둥이가 닿은 자칼이 우선권을 얻었다.
“으하하, 꺼져! 이 굼벵이 자식아.”
“크윽. 제길.”
자칼은 가방을 입에 물고 재빨리 건물 밖으로 튀어나와 조심스럽게 지퍼를 열었다.
펑!
“으악!”
가방 안에서 눈덩이가 튀어나와 자칼의 얼굴을 강하게 때렸다.
이후 경기장 홀로 보드에 떠 있던 자칼의 멍청한 얼굴이 회색으로 변하고 그 아래에 글씨가 쓰였다.
[자칼 : 1점]
과정도 점수에 포함되는 건가. 급하게 움직이던 아이들이 멈칫한다. 하기야 누구라도 저렇게 허무하게 탈락하고 싶진 않겠지.
‘단서가 중요하다.’
먼저 녹음기에서 들린 음성.
“더듬었지.”
그건 습관 같은 게 아니었다. 분명 공포가 깃든 음성. 이런 종류는 내가 귀신같이 구별한다. 쓰레기들이 목숨 구걸할 때면 한결같이 저러거든.
진짜와 비교하면 다소 연기라는 티가 나긴 하지만, 어쨌든.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프로스트 교수가 진짜 무서워서거나.
“테러범이 옆에서 시켰다는 컨셉이거나.”
아무래도 후자에 무게가 실린다. 프로스트 교수가 무서웠으면 저 조교 사단에 들어가지도 않았겠지.
자연스레 프로스트 교수 뒤에 대기 중인 조교들에게 시선이 갔다.
‘…찾았다.’
유독 눈알을 굴리고 손가락을 만지며 안절부절못하는 남자.
같은 행동을 고정적으로 반복하는 거로 봐선 학생의 관찰력을 시험하기 위해 심어둔 단서인 게 확실하다.
여기까지가 추측대로라면, 테러범은 이변이 없는 한 프로스트 교수라는 게 된다.
나는 해당 조교의 뒤로 접근해 조용히 물었다.
“아재, 협박받아요?”
“아. 네!”
“테러범의 요구는 뭐죠?”
“그게, 없습니다.”
없다.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자주 벌어진다. 관종 빌런이 그저 자기 과시를 위해 테러를 벌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프로스트 교수가 빌런을 자처했다면, 이렇게 단순할 리 없다.
“일단 댁 먼저 탈출합시다.”
“제가 없어진 걸 테러범이 알면 위험할 텐데요. 저 빌딩 안에 있는 사람들.”
“폭파시킬 거 같아서요?”
“네.”
“그럴 일 없어요. 걱정하지 말고 가세요.”
목적은 불분명해도 당당하게 테러를 예고했다. 본인의 범행이 들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어디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라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처리할 일만 남은 인질이 사라졌다고 자기가 짠 판을 엎을 정도로 겁쟁이였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겠지.
“저기. 남만혁 학생.”
“왜요.”
“폭탄 위치는 안 물어보세요?”
조교가 뭔가에서 해방된 듯한 밝은 낯으로 묻기에 왠지 모를 짜증이 솟아 퉁명스레 뱉었다.
“모르는 거 아니까 얼른 가세요.”
어느 테러범이 쓰고 버릴 인질 나부랭이에게 폭탄 위치를 알려주겠나. 죽이기 직전이면 몰라도.
“이야, 듣던 대로네요. 화이팅. 저 남만혁 학생 팬 됐습니다.”
홀아비 냄새나는 남정네의 응원을 필요 없수다.
곧장 프로스트를 공격해 포획하는 방법도 있으나, 그래서는 테러 자체를 막을 순 없다.
11시 폭발까지 남은 시간은 25분. 자칼이 탈락한 뒤로 아이들은 신중해졌고 가방에 손을 대는 녀석은 없었다.
인질은 찾아서 안전을 확보했으니 이쯤 해도 상위권은 보장된 셈이지만….
‘궁금하단 말이지.’
완벽주의자인 프로스트 교수 성격상 분명 어딘가에 폭탄의 위치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남겼을 거다.
주변은 다 살펴봤다. 그런데도 없으면, 남은 곳은 하나.
‘프로스트 교수 본인.’
의도적으로 눈길을 주지 않고 그의 옆을 스쳐 지났다.
‘응?’
미약한 코르크 향이 코끝을 스친다. 걸음을 느리게 해 다시 확인하니, 틀림없었다.
‘와인향도 나고.’
옆눈으로 그의 손을 확인하고자 했으나 손은 코트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쯧.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리얼블루가 왔다 갔다 하며 가방을 살피고 있길래 소리를 쳐서 녀석을 불렀다.
“나 찾았어?”
“너 프로스트 교수 손 확인하고 올 수 있냐?”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잠깐만!”
잠깐 사라졌던 리얼블루는 곧바로 내 앞에 나타나 방실방실 웃는다.
“보고 왔어.”
“어떻든?”
“흐음~, 내가 알려주면 뭐 해줄 거야?”
“테러범 검거 및 폭발물 처리에 기여했으니 점수를 좀 따겠지.”
“그런 거였어? 진작 말하지! 갈린 나뭇조각 같은 게 묻어 있었어.”
오케이.
“와인 냄새는?”
“아, 듣고 보니 포도 향도 좀 났던 거 같아.”
“빌딩 안의 가방 중에 같은 냄새 나는 거 찾아와.”
“…와! 프로스트 교수가 테러범이었어?”
잠깐 생각하던 리얼블루가 손뼉을 치며 놀란다.
“얼른, 시간 없어.”
“응!”
2층 복도에 있던 가방 하나를 들고 낑낑대며 나오는 리얼블루.
그게 트리거였는지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가방을 고르기 시작한다.
그중 몇몇은 내게 다가와 도움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약을 팔아대기에 꺼지라고 답했다.
참고로 그 몇몇 중엔 네로와 곽재우가 있었다.
“가져왔어!”
가방에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으니 코르크와 와인 향이 난다.
“열어볼까?”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일 뻔했으나 이내 가로저었다.
“여는 순간 터지는 종류일 수도 있으니까, 전문 인력을 불러야지.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고.”
10분 이상 남았다. 느긋하게 도수정을 불러 이거 단절시키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시험 내내 빌딩에 고정되어 있던 프로스트 교수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나오는 손과 그 손에 쥐어진 붉은 버튼.
빌런에 빙의한 듯한 프로스트가 시범 대련을 할 때처럼 사악하게 웃는다.
찰칵, 삐—
타이머가 시작되는 듯한 사운드와 함께 가방에서 드라이아이스처럼 차가운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에이,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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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