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클래스 업 (4)
“남만혁 님은 저 얼음 빌딩에 들어갈 생각이 없으신가 봐요.”
최미주가 바쁘게 움직이는 학생들과 달리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껴 말하자.
[루트 커토스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루트 커토스 : 안녕하십니까.]
“루트 커토스 님, 어서 오세요!”
[루트 커토스 : 미라클 남은 인질을 우선할 생각인가 보군요.]
“어, 인질이 있었나요?”
[루트 커토스 : 언급은 안 됐습니다만, 녹음기에서 들린 목소리나 예고 테러를 즐기는 빌런의 특징상…. 아. 미라클 남이 움직이는군요.]
“조수 뒤로 접근하네요. 저분에게 뭔가 있는 걸까요?”
한동안 둘이 속닥거리더니 이내 조수가 사회자의 눈치를 보며 경기장 외곽으로 빠진다.
[루트 커토스 : 저 조수가 인질이었나 봅니다. 폭탄을 제거하라는 시험에서 인질부터 구출한다라. 미라클 남은 확실히 학생 수준을 벗어났군요.]
[아카짱 : 남만혁 학생에게 그런 면모가 자주 보이지요.]
[마를린 : 저도 같은 의견이에요. 얼굴만 앳되지 하는 행동은 경험 많은 히어로랑 비슷하니까요.]
“대, 대단한 분이네요.”
최미주는 그들의 대화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평범한 히어로 지망생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나 봐요. 앗, 폭탄 가방을 가져왔네요. 저기, 가방에서 연기가 나오는데.”
찰칵.
의도적으로 마이크에 대고 붉은 버튼을 누른 사회자.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가방.
남만혁이 무어라 소리치자 푸른 머리칼의 소녀가 모습을 감췄다. 그에게 접근해 팀을 하자고 요구하던 학생들이 전부 달아나던 그때.
남만혁이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퀸—!”
부유하고 있던 금발의 소녀가 남만혁의 부름에 곁으로 내려온다.
“이거 좀 버리고 올래?”
음식 쓰레기봉투를 집듯 집게손가락으로 가방을 들어 금발의 소녀에게 건네는 남만혁.
“진심이에요?”
“응,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어.”
“윽.”
둘을 지켜보던 학생과 너튜버들은 당연히 거절할 것으로 예상했다.
누가 곧 터질 폭탄을 끌어안고 싶어 하겠는가.
탁.
그러나 모두의 생각과는 반대로 금발의 소녀는 상기된 얼굴로 남만혁에게서 가방을 낚아채듯 받아들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한 뒤 하늘로 쏘아져 올라갔다.
연속해서 소닉붐을 꼬리처럼 달고 날아오른 퀸은 가방에서 전해져오는 냉기가 자신의 내구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자 전력을 다해 위로 던졌다.
손에서 가방이 떨어지고 약 3초.
하늘을 부유하던 가방에선 엄청난 크기의 얼음기둥들이 튀어나왔고 최종적으로 꽃의 형상을 취하더니 이내 눈처럼 부서져 내렸다.
“이건 무조건 조회수 대박이다!”
최미주 옆의 남자가 고급 카메라로 해당 광경을 따내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한다.
너튜버 전원이 퀸과 얼음꽃 폭탄을 찍을 때. 최미주만은 남만혁을 찍고 있었는데.
“그런데 남만혁 님은 왜 저렇게 웃는 걸까요.”
그의 미소는 어째서인지 대학원생을 발견한 교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남은 시험 잘 치르시길 바랍니다.”
프로스트 교수답게 그의 퇴장 인사는 담백했다.
나야 이렇게 끝나도 상관없다만, 활약을 못 했던 애들은 생각이 좀 많겠어.
“그래도 자칼처럼 가방을 열진 않았으니까 1점은 아니겠지?”
네로의 떨리는 목소리에 근처 애들이 동조한다.
“그렇겠지! 프로스트 교수님, 생각보다 정이 많으시잖아.”
“맞아!”
프로스트 교수가 정이 있다고? 우리 집 백호가 웃겠다.
이후 홀로 보드에 드러난 순위는 나, 퀸, 리얼블루가 순서대로 1, 2, 3위였고 나머지는 공동 60위였다.
“으아아악!”
“안돼!”
“내가 저 멍청이랑 동급이라고?”
“크크크, 지옥에 어서 와라.”
초기 탈락 이후 낙심해있던 자칼이 웃으며 1점 동지들을 반긴다.
“만혁. 약속 지켜요.”
“그게 뭐 어렵다고. 걱정하지 마.”
퀸은 폭탄을 처리해주는 대신 다음 시험 때 자기 팀에 들어와 달라는 딜을 걸었고 나는 고민 없이 오케이했다.
퀸의 팀이라고 해봤자 마가렛이 전부였기에 사실상 마운틴 짐 식구끼리 뭉친 거다.
“근데 플라주랑 케롤라인은?”
“걔들은 저쪽 팀이에요.”
스위프트가 주축이 된 A반 전원이 퀸이 말한 ‘저쪽’팀이었다.
“너는 왜 스위프트 팀 안 들어갔냐.”
“스위프트는 저를 통제하려 하니까요.”
아하.
스위프트 입장도 이해는 간다. 퀸은 워낙 강력한 패라 아꼈다가 적절한 순간에 쓰고 싶겠지.
하지만 퀸은 그런 제약에 얽매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축구로 치면 프리롤로 뛰도록 두는 게 베스트. 그럼 알아서 골 넣고 어시스트하고 수비도 하는 만능 플레이메이커가 된다.
내가 중년의 퀸을 겪어봐서 잘 알지.
‘슬슬 본성이 나오는 것도 같고.’
이렇게 다시 보니 학년 초의 그 쭈굴하던 퀸이 아니다. 본인의 특성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뒤론 자신감이 부쩍 늘었다. 육체나 성격도 꽤 다부져졌고.
“퀸, 우리 비슷한 성격인 거 알지?”
너도 나를 통제하려 들지 말라고 돌려 언급하자 퀸이 어깨를 으쓱인다.
“글쎄요?”
“야.”
“쉿, 시작하나 봐요.”
프로스트 교수가 들어간 문으로 백발의 노인이 로브 자락을 바닥에 끌며 나타난다.
“스승님?”
“허허.”
나와 눈이 마주치자 수염을 쓸며 웃고는 경기장 중앙에 선다. 이어 진행팀 스텝이 다가와 마이크를 건네자.
“괜찮네.”
“옙!”
헛기침으로 목을 다듬은 매저드가 입을 열었다.
“반갑소. 마법질에 평생을 바친 매저드이올시다.”
마법사라는 직업은 더 이상 주류가 아니었기에 그랜드 위저드네 뭐네 떠들어봐야 감흥을 느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되려 나이 지긋한 노인, 게다가 누구보다 마법사다운 복장으로 나타난 이가 스스로 ‘마법질’이라 내리깍으면, 아무래도 정체가 궁금해지기 마련 아니겠는가.
“사제가 참 닮았네요.”
퀸이 나만 들리게끔 소곤댄다.
“어떤 부분이?”
“사람을 조종하려는 점?”
오. 예리한데. 퀸의 말이 맞다. 빌런으로 활동할 때는 그래야만 아귀 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거든.
“그게 매력 포인트라는 거지?”
“…무슨 말을 못 하겠네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돌리는 퀸.
중년 퀸에게 이런 멘트를 하면 가볍게 웃고 넘겼는데, 눈앞의 어린 퀸은 리액션이 훌륭하다. 세계 제일의 히어로가 될 여자를 놀리는 맛이란, 크.
“—자네들은 지금부터 오지에 떨어질 걸세.”
이런, 퀸이랑 대화한다고 설명을 못 들었다.
“다시 말함세, 10일간 생존 또는 해당 지역 탈출이 이번 시험의 목표이니 본인이 상황을 잘 판단해서 결정하게.”
매저드 교수가 우리 쪽을 보며 인자한 미소를 머금는다.
역시 스승님.
“지역은 여럿이네만, 손을 잡고 있으면 같은 지역으로 떨어지게 해줌세.”
퀸이 내 손을 힐끔 보더니 고개를 홱 돌린다.
아이고 이 숙맥아. 여기서 또 내가 덥석 녀석의 손을 잡으면 놀란 퀸이 펀치를 날릴지도 몰랐기에 마가렛에게 눈짓을 보냈다.
“나? 어…. 그레이스.”
“네?”
“그, 가위바위보로 진 사람이 손잡는 건 어때?”
기껏 생각한다는 게 그거냐.
“그래요. 게임이니까. 어쩔 수 없죠.”
“난 주먹 낼 거다.”
“심리전인가요? 안 속아요.”
“아니, 남산 걸고 진짜 주먹 낸다.”
우리가 실랑이하는 사이 팀이 다 정해졌는지 다른 아이들이 이쪽만 보고 있었다.
퀸은 그들의 시선을 느끼곤 입술을 깨물더니.
“좋아요. 해요.”
마가렛이 가위바위보를 외쳤고, 나는 주먹. 들은 보를 냈다.
“내가 졌네.”
“…예.”
우선 마가렛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순간 한걸음 나오는 퀸.
어이구야, 표정 봐라. 사람 치겠네.
나는 보자기를 낸 퀸의 손을 깍지를 꼈다.
“흐익!”
퀸의 전신에서 놀란 게 느껴졌으나 손을 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바르르 떨 뿐. 귀엽긴.
“준비가 된 듯하니 보내줌세. 잘들 해내시게나. 아, 참고로 자네들이 가는 오지는 히어로 ‘드림 드러머’의 도움을 받았다네.”
그 설명을 마지막으로 빛과 함께 시야가 뒤바뀌었다.
* * *
어둡다. 빛 한 점 없는 공간.
꾸물.
품속의 위즈가 평소보다 활달하게 움직이며 사념을 보내온다. 당장 녀석의 힘이 필요하진 않기에 잘 다독여 흥분을 진정시켰다.
“저기, 손 좀….”
옆에서 들려오는 퀸의 목소리. 나는 못 들은 척하며 마가렛의 손만 놨다.
“응?”
“손, 놔달라고요.”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어둠 속에서 오롯이 퀸의 푸른 눈동자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특성 발동 전조였기에 나는 황급히 손을 놓고는.
“크게 이야기하지. 못 들었어.”
“흥.”
에휴.
뒤에서 들리는 한숨에 고개를 돌리자. 거대화를 푼 마가렛이 가까이 다가와 말한다.
“사랑싸움은 그쯤하고, 매저드 교수님의 마지막 말. 어떻게 생각해?”
“드림 드러머?”
“응. 너는 매저드 교수님 정식 제자니까, 어떤 의중으로 말씀하셨는지 짐작이 갈 거 같아서.”
일리가 있다. 굳이 정보를 전달했다는 건, 분명 의미가 있을 테니까.
“일단 네가 아는 드림 드러머의 특징을 말해봐.”
“상대에게 꿈을 강제하는 특성이랑 모습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정도? 아, 예전에는 아무에게나 꿈을 꾸게 해서 빌런 취급당했다고 들었어. 지금은 아니지만.”
“여기가 꿈속이라는 거네.”
“그렇겠지? 아니면 시험 기간이 10일이나 늘어날 테니까.”
당장 다음 주엔 신입생 입학시험이 있으니 리얼타임 10일은 아니겠네.
“그것만 듣고는 모르겠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드림 드러머에 대한 정보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랑 활동하던 시기가 달랐던 모양이다.
“그런 것보다 여기서 어떻게 나갈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퀸의 말도 맞다. 나야 이런 어둠이 익숙한 걸 넘어 포근하기까지 하지만, 저 둘에겐 꽤 답답한 공간일 테니.
“손전등 있는 사람?”
둘 다 고개를 젓는다. 기초적인 도구도 없이 보내진 건가.
두 사람과 함께 주변을 더듬으며 탐색해 봤으나 걸리는 거라곤 흙과 돌멩이뿐이었다.
“어쩔 수 없나.”
어지간하면 시험에서 마법은 쓰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라이트.”
내가 마법으로 빛의 구체를 불러내 주변을 밝히자 두 사람이 크게 안도한다.
‘이거, 의도된 걸 수도 있겠어.’
현대 문물이 없을 때. 당신에게 마법이 있다면?
같은 광고 문구를 걸어도 이상하지 않은 장면이다.
‘하여튼 누가 천재 아니랄까봐.’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스승님의 의도에 맞춰줬다.
“이 정도 마법은 쉬우니까 시간 날 때 배워 봐.”
“정말?”
마가렛의 반응이 찰지다. 아마 여기를 찍고 있으면 홀로 보드에 마가렛의 얼굴만 대문짝만하게 박히겠지.
“그럼. 지금 내가 가르쳐줄 수도—”
사람 세 명이 간신히 서서 지나갈 정도의 좁은 외길을 걷던 중. 퀸이 갑작스레 내 앞을 막아선다.
마가렛도 뭔갈 느꼈는지 표정을 굳히고는.
사각, 사각.
“물러나, …온다!”
고기 가위를 접었다 폈다 하는 소리가 통로를 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빛에 의해 그 정체가 드러났다.
“개미?”
캬하아아악!
개미는 개민데 그 크기가 사람 두셋은 한 번에 삼키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덩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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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