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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09화 (109/201)

<109화>

클래스 업 (5)

[샤아 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샤아 : 안녕하세요.]

[마를린 : 어서 와요.]

[루트 커토스 : 반갑습니다.]

경기장 잔디밭 위에 누운 60명의 학생. 그들의 머리맡에는 너튜버라면 누구나 접속 가능한 홀로 보드가 놓여 있었다.

“학생마다 접속자 수가 나오네요. 0명…. 그, 남만혁 님 쪽 화면은 너무 어두운데. 다른 분들 잠깐 살펴볼까요?”

화면이 너무 어둡다. 앞선 시험들에서 1위를 했음에도 너튜버가 붙지 않는 이유는 그런 이유였다.

‘뭐가 나와야 방송을 하지!’

[아카짱 : 남만혁. / 10만 원]

“핫, 넵!”

그러나 돈이 걸리자 얼른 말을 바꾸는 최미주였다.

어두운 공간에서 저들끼리 쑥덕거리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그녀는 경기장 전용 대형 홀로 보드로 시선을 돌렸다.

사 분할 된 화면에는 네 팀이 비치고 있었고. 각각 화산, 밀림, 바다, 설원 지형이었다.

극단적인 환경에 놓인 학생들은 각자의 특성을 이용해 환경에 적응했는데, 그중 스위프트 팀의 활약이 단연 독보적이었다.

연결을 하지 않아 소리는 들을 수 없었으나 팀의 대장, 아마도 스위프트로 보이는 학생이 화산재를 바람으로 밀어내고 청백색 머리칼의 소년 소녀가 물과 빙판을 생성해 주변 온도를 내린다.

아직 쩔쩔매는 다른 세 팀에 비하면 훌륭히 현지에 적응했다 생각되는 모습이었다.

번쩍.

“앗!”

그때 남만혁 학생에게 연결해둔 바디캠이 밝아졌다.

“와, 저 하얀 구슬이 그 말로만 듣던 마법인 걸까요.”

사실 최미주는 너튜브 영상 등을 통해 마법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으나 시청자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과장된 리액션을 취했다.

[샤아 : 네, 라이트네요.]

“저기, 여러분. 그런데 저기서 마법도 사용할 수 있는 건가요?”

[아카짱 : 드림 드러머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요. 그래서 당사자의 무의식에 어느 정도 의지하는 편입니다.]

[루트 커토스 : 음. 미라클 남이 본인의 무의식을 제어했다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아카짱 : 깊게 들어가면 좀 더 복잡합니다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요.]

[마를린 : 어머, 그럼 만혁이는 무의식이 없다는 거네요?]

[샤아 : 그 부분은 마법 학계에서도 연구가 활발해요. 자기 확립이 끝나 영역을 전개할 수 있는 마법사는 무의식에 관여를—]

최미주는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보며 생각했다.

‘내 방만 이런가?’

뭔가 고학력자들의 토론을 보는 느낌. 저들 외에 열이 넘는 사람이 채팅방에 있음에도 누구 하나 채팅을 치지 않는다. 모두 저들의 말을 경청하는 분위기.

흘낏 옆의 재수 없는 남자 쪽 채팅을 훔쳐보니, 이쪽과는 완전 딴판이다.

욕은 물론이고 생각 없이 뱉은 말과 재미없는 드립들이 난무하는, 일반적인 채팅창.

‘그래. 저거보단 우리 시청자분들이 낫지. 분탕치는 사람도 없고.’

[아카짱 : 이동하는군요. 집중하세요. 최미주 학생.]

“앗, 넵. 죄송합니다.”

라이트 마법에 의지해 외길을 나아가던 그들은 이내 날카로운 집게 턱을 가진 거대 개미와 마주했다.

“저, 저게 뭐죠?”

[아카짱 : 드림 드러머가 출간한 ‘나의 꿈속 백과사전’에 의하면 ‘땅굴 앤트’라는군요.]

‘책도 냈구나…. 어, 잠깐만.’

“개미라고요? 그러면 저기가 개미굴일 수도 있겠네요?”

[아카짱 : 그럴 가능성이 크지요.]

쾅!

개미의 머리 갑각에 금발 소녀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키에에엑!

바닥에 턱을 찧고 다시 자세를 잡은 개미는 귀를 괴롭게 하는 비명을 지르며 더듬이를 현란하게 흔들어 댔다.

[마를린 : 동족을 부르는 거 같네요.]

[루트 커토스 : 위험하겠습니다.]

그들의 예상대로 사각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의 모든 공간이 검은 개미들로 메워졌다.

후방은 마가렛, 전방은 퀸이 막아섰으나 아무래도 숫자가 많다 보니 둘로는 역부족이었다.

“남만혁! 아직이야?”

마가렛의 비명과도 같은 물음에 중앙에서 눈을 감고 집중하던 남만혁이 입가를 끌어당겼다.

“됐다. 삼식아, 일하자.”

남만혁의 발치에 검은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올라오는 작은 해골.

돌곡.

어깨에 웬 치즈냥이를 얹은 해골의 모습에 최미주는 스마트 폰의 카메라로 바디캠 화면을 찍어댔다.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귀여울 수 있죠?”

[마를린 : 호호, 우리 큐링이처럼 귀엽네요.]

개미들이 들이닥치는 상황에서도 저 혼자 고고하게 그루밍을 하는 치즈냥이의 모습에 침을 삼키며 셔터 눌러대는 최미주.

[루트 커토스 : 그 언데드로군요.]

[샤아 : 저 언데드를 아시나요?]

[루트 커토스 : 미라클 남이 격전을 치를 때면 늘 등장해 해결사 역할을 하는 해골입니다. 제가 아는 마법사들 사이에선 ‘대마법사’로 불리기도 합니다.]

[아카짱 : 대마법사는 하나의 마법에 통달한 마법사가 받는 명예로운 칭호지요.]

최미주는 믿지 않았다. 이분들이 내가 잘 모르니까 가볍게 놀리는 거라 여기고 대충 그렇구나, 하는 식으로 넘기는 순간.

백색과 흑색만이 자리하던 화면이 보랏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흐익. 저, 저게 다 마법인가요?”

[루트 커토스 : 허. 정말 장관입니다. 제가 아는 매직 미사일이 아니군요.]

루트 커토스는 마법사가 저지른 살인 사건을 한두 번 맡아본 게 아니었기에 그들의 수준과 마법 체계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샤아 : 평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느낌이네요.]

[마를린 : 어떤 부분이요?]

[샤아 : 진지해요.]

[아카짱 : ?]

[루트 커토스 :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샤아 : 아.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마법계에 종사하고 있어요. 예전에 ‘언데드의 안광에 따른 심리 변화’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었죠. 지금 저 한 점에 뭉쳐서 일렁이는 듯한 안광은 증오와 유사한 감정 상태예요.]

[아카짱 : 흥미롭네요.]

또 기반 지식이 필요한 대화를 나누기에 최미주는 채팅에 신경 끄고 바디캠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미궁이랑 비슷하다고?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남만혁 학생이 작은 해골과 대화를 나눈 직후 보랏빛 화살들이 개미들을 향해 쇄도했다. 아쉽게도 개미의 갑각을 뚫진 못했으나 더듬이를 전부 부수는 데는 성공!

그러자 세 사람에게 달려들던 개미들이 일제히 공격을 멈추고 우왕좌왕한다.

-잘했다.

-돌곡.

그런 개미들의 머리와 등을 디딤돌로 삼아 나아가는 남만혁. 처음에는 개미를 밟는 것을 꺼리던 두 소녀는 서로를 바라보다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아카짱 : 샤아 님 식견이 대단하시네요. 언제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어요.]

[샤아 : 어머, 좋죠. 이렇게 된 김에 다 같이 볼까요? 다들 남만혁 님을 알고 계신 거 같은데.]

[루트 커토스 : 저는 찬성입니다.]

[마를린 : 저도 좋아요. 그런데 지금은 좀 바빠서 다음 달은 되어야 할 거 같아요.]

자기들끼리 오프라인 약속을 잡는 광경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최미주가 정신을 차리고 오디오를 채웠다.

“이대로라면 시험 점수는 큰 문제가 없겠네요!”

개미와 교전하며 다수의 방을 통과한 남만혁 팀은 거대한 공동에 도착했고 방의 중앙에서 알을 낳고 있는 여왕과 조우했다.

“이번에도 저 삼식이라는 언데드를 이용해서 다 쓸어버리겠죠?”

중간에 병정개미고 뭐고 그냥 더듬이만 파괴하니 하나같이 바보가 됐었다.

여왕개미라고 더듬이가 없는 건 아니었기에 당연히 그리할 거라 예상한 최미주였으나, 남만혁은 의외로 여왕개미를 공격하지 않았다.

-저 등신들.

남만혁의 입에서 나온 욕설에 놀란 최미주. 반면 그 옆에 있던 두 사람은 익숙한 듯 담담하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쳐다본다.

-B반이야.

…저 여자애 이름이 마가렛이었던가. 아무튼 덩치 큰 소녀가 머리만 내놓은 채 고치가 된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남만혁에게 어떻게 할지 묻는다.

-구해줘.

한숨과 함께 남만혁이 답하자 소녀가 그들을 녹이려던 일개미의 더듬이를 뽑아버렸다.

이어 공동의 천장을 돌며 속도를 붙인 퀸이 여왕개미의 머리를 부쉈고 일대 개미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끼이이익….

조금만 늦었어도 고기 완자가 될 뻔했던 세 사람이 엉금엉금 기어와 울고불고 난리를 피운다.

-흐어어엉.

-죽는 줄 알았어.

-고마워. 크흥.

B반 삼인방은 살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바로 곯아떨어졌다.

잠시 그 자리에서 고민하는 듯하던 남만혁 학생은 신기하게도 품에서 3인용 정도 되는 텐트를 꺼냈다.

최미주는 저게 어떻게 안 주머니에서 나오는지 채팅창에 물었으나 명쾌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만혁은 텐트도 가지고 다니는군요.

-너도 산에 혼자 살아봐라. 싫어도 이것저것 다 챙기게 돼.

-…그런데 하나뿐인가요?

-당연하지. 내가 동거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물쭈물하던 퀸은 결국 마가렛에 의해 등을 떠밀려 텐트 안으로 들어갔고 남만혁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가려다 흠칫하더니.

입맛을 다시며 텐트를 보다 B반 3인방이 있는 곳 근처로 가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다.

남만혁 학생이 혼잣말로 무어라 꿍얼댔으나, 최미주를 비롯해 들은 사람은 없었다.

* * *

시험 2일 차.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네요.”

화면 안쪽의 시간은 현실 시간보다 빠르게 흐른다. 이쪽의 1시간이 저쪽의 48시간.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화면이 아니면 기본적으로 수십 배속으로 진행되고 해당 학생의 홀로 보드에 접속해 관찰하는 이는 언제든 처음부터 최신 진행된 순간까지 시간을 조절해 영상을 볼 수 있다.

[아카짱 : 꿈의 특징이지요. 드림 드러머와 매저드 교수님과의 협업이 잘 이뤄진 듯합니다.]

현실 시간 30분. 꿈속은 하루의 시간이 흘렀다. 잠에서 깨어난 남만혁 팀은 느긋하게 씻고 먹고 스트레칭하며 출발할 준비를 하는 반면.

경기장 홀로 보드에 떠 있는 네 개의 팀은 진입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쉬지 못한 채 특성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니, 여러분. 이거 너무 편파적인 거 아닙니까?”

옆자리의 남자가 대뜸 최미주 쪽으로 걸어가며 자기 카메라에 대고 윽박지른다.

“보세요. 저쪽 팀은 썸남썸녀끼리 캠핑이라도 온 것처럼 노닥거리는데, 우리 애들은 얼마나 고생 중입니까!”

남자는 어느새 집중할 학생을 스위프트로 갈아탔는지 채팅방에 ‘스위프트 팀 1등 기원 모금함’이라는 역겨운 도네이션 유도 공지를 띄워 놓고 있었다.

“안 그래요? 아가씨? 말 좀 해봐요. 아까부터 저 학생만 찍고 있던데. 이거 차별 아니냐고!”

“아저씨.”

“아, 아저씨? 나 아직 26살밖에—”

“유난 떨지 말고 남만혁 학생 영상 앞부분 돌려 보고 오세요. …전요, 저 학생들이 충분히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최미주가 생각보다 세게 나와서인지 뭐라 대답을 못 하고 버벅대던 남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 구시렁댔다.

“아주 성격이 이상한 여자네요. 아저씨라니. 참나. 예? 아니, 형님. 머리 벗겨지면 아저씨가 맞다뇨!”

최미주는 남자에게 관심을 끊고 남만혁 팀을 살폈다.

여왕의 방을 벗어나는가 싶었던 남만혁이 여왕개미 사체 주변을 둘러보다 대뜸 꽁무니에 달라붙어 있는 알을 집어 든다.

“어, 저 알. 색깔이 좀 다르네요?”

[드럼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드럼 : 안녕하세요.]

[샤아 : 드럼 님 어서 오세요. 음, 그런데 저 알은 부패한 걸까요. 최미주 님 말씀대로 색이 좀 이상하네요.]

[드럼 : 아, 저건 공주의 알이네요.]

“공, 공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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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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