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핑키 (2)
“개미핥기.”
핑키가 말한 긴 혀라는 별칭에서 짐작은 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체격 차였을 줄이야.
‘아니지, 실제 비율은 비슷한가?’
지구 기준으로 길이가 200cm에 달하는 개미핥기와 커 봤자 5cm가 고작인 개미. 단순하게 계산해도 40배가 넘는다.
이건 핑키와 경쟁한 여왕들처럼 숫자로 압살할 수 있는 규격이 아니다.
다행히 일개미의 특징이라고 해야 하나. 핑키가 우리에게 붙여준 일개미와 병정개미들은 동족이 잡혀가거나 말거나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으, 어서 가자.”
마가렛이 퀸의 등을 밀며 일개미들의 뒤를 쫓았다.
“먼저 가. 나도 금방 따라갈게.”
퀸이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으나 얼른 가라는 내 손짓에 입을 슬쩍 내밀고는 통로로 들어간다.
쒜에엑.
‘온다.’
지금부터 할 행동은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된다. 시험 감독관들이 어디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 몰라 우선 라이트 마법을 해제해 빛을 사라지게 한 뒤.
“다크 클라우드.”
대단한 마법은 아니다. 주변에 검은 구름을 불러내 시야를 차단하는 네크로 학파의 최하급 주문.
내가 정상적으로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마법 중 하나다. 샤아는 그 이유가 심계라는 세상의 구름을 불러오는 소환술이어서 그렇단다.
내 몸을 중심으로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검은 연기.
‘전에 썼을 때랑은 좀 다르네.’
아무래도 마법이 위즈의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블랙 위치랑 대면한 이후 음차원 마나가 한층 뚜렷해지기도 했고.
공동 전체를 넘어 구멍 쪽으로도 연기가 뻗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포이즌을 매개로 한 영역을 전개했다.
공기 가르는 소리가 가까워졌고 천장에서 촉수가 튀어나오는 걸 다크 클라우드에 담긴 마나로 감지한 나는 재빨리 촉수가 노리는 개미의 몸에 복어독, 테트로도톡신을 대량으로 주입했다.
개미가 촉수에 붙잡혀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다음에야 옆을 지나는 개미의 등에 올라탔다.
내 무게에 놀란 개미가 두리번거렸으나 이내 핑키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다시 이동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미 행렬 옆으로 걸어가는 퀸과 마가렛을 만났다.
“뭐하냐, 너네.”
편하게 드러누운 자세로 한마디 툭 던지자 마가렛이 씩씩대며 내 뒤의 개미에 올라탄다.
“남 교수!”
“왜.”
“이런 게 있으면 진작 알려줬어야지!”
차마 ‘너희 무게를 개미가 버틸 수 없을까봐 말하지 않았다.’라는 속내를 입에 담을 수는 없었기에 대충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잘 버티네. 병정개미라 그런가.’
저 개미 다리가 좀 떨리는 거 같긴 하지만.
“밖이에요.”
퀸의 말에 전방을 보자 자연의 빛이 통로 안을 비추고 있었다. 일개미 백여 마리가 먼저 밖으로 나간 다음에야 우리를 태운 개미가 움직였다.
이제까지 이동한 속도의 족히 세 배는 되는 움직임으로 신속히 바깥으로 나왔고 곧장 저 앞에 보이는 풀숲을 향해 달렸다.
봉분처럼 튀어나와 있는 개미굴 입구 주변은 삭막했다. 아마 개미핥기 때문이겠지.
“남 교수, 저기!”
마가렛이 놀란 목소리로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생물이 빛을 등지고 서 있었다. 긴 주둥이에서 쉴 새 없이 날름거리는 혀, 식탐으로 번들거리는 눈, 날카로운 발톱.
저 두 눈은 명백히 나를 담고 있는 듯했다. 나를 태운 일개미도 이 불길함을 느꼈는지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러나 개미핥기의 뜀박질 두어 번 만에 허무하게 따라잡혔고.
쒜엑.
“남 교수!”
마가렛과 퀸이 동시에 개미의 등에서 뛰어내리며 내게 몸을 던진다. 순식간에 가속한 퀸이 나와 마가렛을 붙잡고 부상하자 간발의 차이로 개미핥기의 혀가 등 뒤를 스친다.
‘독이 소용없는 건가. 마비 증상 정도는 보일 법도 한데. …아.’
사람은 복어독을 먹으면 뒷목이 뻐근해지면서 전신의 근육이 마비되고 호흡 부전으로 질식사하게 되는데, 저 야생의 개미핥기는 왼쪽 앞발이 축 늘어지는 거로 끝난 모양이다.
쉐에엑!
“크윽.”
“그레이스!”
놈의 주둥이에서 튀어나온 혀가 거리를 벌리던 퀸의 다리를 휘감았다. 이를 본 마가렛이 주먹으로 혀를 내리쳤으나.
“윽! 이게!”
되려 손이 개미핥기의 혀에 들러붙었다. 퀸은 이를 악물고 끌려가지 않기 위해 버텼으나 팽팽하던 혀는 서서히 놈의 주둥이 쪽으로 움직였다.
“끄으읍! 꺄악!”
개미핥기는 영리하게도 일순 혀에 힘을 풀어 퀸의 힘의 방향을 흐트러트린 다음 신속히 혀를 빨아들였다.
우리는 단번에 놈의 주둥이 안으로 들어와 버렸고 곧 저 단단한 땅굴 앤트마저 갈아버리는 개미핥기의 강력한 위장에 도달하게 될 거다.
힐끔 홀로폰을 살피니 시험이 끝나려면 한참 남았다.
이쯤에서 리타이어 해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겠지만…. 앞선 두 시험에서 얘들이 활약한 게 많지 않은지라 여기서 확실히 점수를 벌어놓고 싶다.
해서.
“위즈, 융합해.”
꾸물?
“아니, 나 말고.”
꾸물…. 꾸물럭!
아쉽지만, 알겠다며 퀸에게 쏘아져 가는 위즈.
“만혁, 이건 뭔가요? 읏!”
묘한 콧소리를 낸 퀸은 마법 소년, 아니 소녀로 변했다.
깔끔한 핏으로 떨어지는 슈트와 중간부터 비스듬하게 찢어진 듯한 망토.
“육체 강화.”
“예? 앗. 마법 소녀 강! 림! 아하핫!”
이게 되네.
위즈 특유의 발랄한 어투를 퀸의 목소리로 들으니 꽤…. 녹음해둬야지.
퀸의 입은 멋대로 움직이는 반면 눈 만큼은 나를 직시하며 지금의 당혹스러운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생각할 시간이 있냐. 탈출부터 하자.”
혀는 위에 우리를 던져 넣고는 볼일 다 봤다는 듯이 다시 주둥이 쪽으로 나간다.
위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개미핥기의 위장벽.
“세상의 어둠을 모아 악을 박멸하겠어요! 와하핫!”
저거 블랙 위치의 대사 중 하나다. 설마 본인이 직접 가르친 건가.
듣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대사와는 별개로 위즈의 육체 강화를 받은 퀸은 놀랍게도 내려오는 위장벽을 한 손으로 지탱하고 다른 손으로는 주먹을 말아 쥐더니.
퍽!
그대로 강철보다 단단한 위장근을 뚫어버렸다.
본인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나와 마가렛을 번갈아 본다.
“글로리 다크 피스트!”
어우…. 저게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직후 위에 경련이 왔는지 공간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고 퀸은 개미의 사체 위에 올라타 위액으로부터 피신해 있던 우리를 다리에 한 명씩 매달고는 개미핥기의 위장, 근육, 가죽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좋아, 잘했—”
피 칠갑을 한 퀸의 모습에서 회귀전 마지막 모습이 겹쳐 순간 앞이 빙글 돌았다.
빌어먹을 트라우마.
“남 교수!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퀸. 끝났으면 내려줘. 위즈, 너도 돌아와.”
널브러진 개미핥기는 이제야 독이 제대로 돌기 시작하는지 호흡조차 멈춘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놈의 눈은 어느새 다가온 일개미 군세에 의해 가려졌다.
“핑키가 좋아하겠네요.”
“그러게.”
개미핥기의 죽음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안전의 확보도 물론 중요하지만, 천적 살해라는 업적이 핑키의 DNA에 각인될 거라는 게 핵심이다.
조만간 핑키가 공주를 낳을 텐데, 후일 저 업적이 자식들에게 자기 영역을 빼앗기지 않을 보험 역할을 할 거다.
땅굴 앤트는 본인이 부모를 재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거나 세력을 거느리지 않으면 둥지를 떠나는 게 본능이라고 하니까.
[환경 적응 시험 종료]
응? 아직 끝나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멀리서 핑거 스냅 소리가 들렸다 싶은 순간. 우리는 어느새 서울 올림픽 경기장에 돌아와 있었다.
“허허, 고생들 했네.”
인자하게 웃으며 수염을 쓸어내리는 매저드 교수가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겼다.
내가 누워있다는 걸 깨닫고 상체를 일으켰다.
오.
신기하게도 방금까지 그 난리를 피웠는데, 몸은 막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했다.
“성적은 나중에 확인하고 진료부터 받고 오게.”
“알겠습니다.”
충분히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우리는 군말 없이 매저드 교수의 지시를 따랐다.
“당분간 약을 드셔야겠네요. 토요일에 시간 비시죠? 1시간 정도 시간 내세요.”
“…예.”
B반 세 명은 전원 약물과 주기적인 상담이 필요하다는 처방을 받았다.
“남만혁 님, 그레이스 멜론 님, 마가렛 예프소비치 님은 스트레스 수치가 10 미만이라 가셔도 좋습니다.”
마운틴 짐 멤버에게는 항상 멘탈 훈련을 강조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다.
…사실 개미를 징그러워하던 마가렛이 살짝 걱정되긴 했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진료 끝나셨죠?”
그대로 의료 천막을 나가려는데, 시험 진행팀이라는 사람이 다가와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했다.
“드림 드러머요?”
“네, 그분이 매저드 교수님과 합작해 만든 시험이에요. 올해 반응이 괜찮으면 내년부터 각종 시험에 정식 도입할 거라고 하세요. 그래서 설문 조사를 하는 중인데, 직접 체험해보니 어떠세요? 후배에게 권장할만한가요?”
“네! 무조건 하게 해요. 무조건!”
누가 봐도 나만 당할 수 없어 후배에게 똥을 뿌리는 마가렛의 모습이었으나 나는 말리지 않았다.
‘고통은 나눠야지.’
“실제 상황에서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제가 보장할게요!”
드물게 흥분하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퀸을 잠시 바라보다 먼저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잠깐.”
내 가슴께까지 오는 작은 키에 토끼 귀가 달린 후드를 쓴 소녀가 나를 막아섰다.
“누구?”
“드림 드러머. 핑키 일로 할 말이 있어. 따라와.”
그러고는 의료 천막의 뒷문을 열고 나가는 드림 드러머. 그녀는 의료 용품이 담긴 상자 중 하나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뭘 봐.”
“말이 짧네?”
“너도.”
“…나 30살인데?”
“그럼 나는 55살이다.”
“쿡, 능글맞다더니. 뭐, 좋아. 너를 불러낸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고, 핑키가 이거 전해달래서.”
“뭐?”
“휴, 한 번만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너희가 꾼 꿈은 실재하는 곳이야. 이 세상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다른 우주의 어떤 곳이지. 미리 말하는데, 묻지 마. 나도 모르니까.”
“알았으니까 묻지도 않은 거 나불대지 말고 핑키가 맡긴 거나 내놔봐.”
흥미로운 특성이긴 한데, 지금은 핑키가 맡겼다는 물건이 더 궁금하다.
“흐흥. 너, 마음에 든다?”
드림 드러머는 품에서 진공 밀봉된 투명한 비닐 팩을 꺼냈고 나는 보자마자 저게 뭔지 알아차렸다.
고사리처럼 말린 분홍색 줄기 두 가닥.
“핑키 더듬이?”
“한 쌍을 내게 맡겼는데. 하나는 마가렛, 다른 하나는 퀸에게 주래. 내가 또 설명하긴 싫으니까 나중에 네가 전해줘. 아, 어떤 방식으로든 섭취하면 인간의 몸에 좋을 거라네. 그리고 잠깐만. 네 거는 좀 커서, …자.”
“장난치지 말고.”
드림 드러머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웬 똥 덩어리 같은 흑갈색 덩어리를 내게 내밀었다.
“장난 아닌데? 이거 이래 보여도 핑키 심장이야.”
“…핑키는 죽었나?”
“거긴 지금 3만 년이 이상 지났거든. 그래도 네 덕에 더듬이라는 약점을 극복한 자식들이 우리처럼 행성 지배종이 돼서 항성계를 통치하는 중이니까 딱히 울지 않아도 돼.”
“누가 운다고. 그런데 지배종?”
“응. 기세를 보면 조만간 타 은하에 진출도 하겠던데?”
그러고는 저쪽에서 받은 영상이라며 박물관 비슷한 곳을 촬영한 동영상을 틀었다.
-이분은 최초의 천적 살해를 통해 종의 한계를 뛰어넘은, 우리 앤트의 기원! 핑키 여왕님입니다.
와아아!
늙은 핑키가 독특한 포즈를 취하는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었고 그걸 공손히 여섯 개의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하는 이족보행 개미. 그리고 손뼉을 치는 어린 개미들.
유사하지만 다른 형태를 띤 문명도 놀랍지만, 그보다 저 사진 속 핑키의 자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머, 나를 따라 하는 거니? 만혁, 핑키 좀 봐요!’
퀸의 날아가는 자세를 두 개의 앞다리로 흉내 낸 핑키의 모습.
“아무튼 난 전달했다.”
“…이거 영상 좀 받을 수 있냐?”
보면 좋아할 사람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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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