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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12화 (112/201)

<112화>

Wanted! (1)

환경 적응 시험 5일 차.

시험이 시작되고 한참 지났음에도 말 한마디 없이 자기 제자만 흐뭇하게 보는 매저드 교수의 모습에 교감은 한숨을 쉬며 데커드를 사회자로 투입했다.

“스위프트 팀 탈출 성공! 역시 미라클 차일드답다고 해야 할까요. 살아남는 게 고작인 다른 팀에 비해 압도적인 속도로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매저드 교수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개인의 역량이 받쳐주었기에 가능한 퍼포먼스였네. 지금도 매우 훌륭하나 조금만 더 팀원을 믿었으면 어땠을까 싶구먼.”

첫날. 스위프트는 칠링 남매와 함께 특성으로 돔 형태의 안전지대를 구축해 용암비를 막아내었으나 도슨이 한 번 실수하자 그들을 작전에서 제외하고 본인의 힘만으로 안전지대를 유지하였다.

이 부분을 매저드가 언급하자 데커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매저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단체 임무인 이상 스위프트 학생의 독단적인 행동 또한 점수에 반영이 될 듯합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깨어나는군요. 인터뷰를 해보겠습니다. 스위프트 학생, 소감이 어땠습니까?”

대뜸 마이크를 들이대는 데커드에 잠시 당황한 스위프트였으나 금방 현 상황을 인지하고 입을 열었다.

“쉽지 않은 시험이었습니다.”

“어떤 부분이요?”

“끊임없이 쏟아지는 용암 덩어리를 막아내는 것도 난관이었습니다만, 무엇보다 제 목숨을 타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문제를 혼자 극복해온 스위프트였기에 타인을 믿어야 하는 이번 시험은 무척 생소한 경험이었다.

“팀원을 신뢰하지 못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그랬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인터뷰 또한 시험의 일부. 이를 모를 스위프트가 아니었으나 그는 점수를 따는 발언 대신 자신의 소신을 말했다.

“지금과 똑같이 하겠습니다.”

“어째서죠?”

“만에 하나라도 생길 수 있는 변수를 제가 조금 무리하는 것으로 차단할 수 있다면. 백 번이든 천 번이든 그렇게 할 겁니다.”

와아아!

그의 발언에 감화된 관중들이 박수를 보내자 데커드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연스럽게 다른 학생의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스위프트는 관중들의 환호에 깍듯한 인사로 답하곤 다른 팀들은 어떻게 시험을 치르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형 홀로보드로 시선을 옮겼다.

“…하.”

분할된 화면 중 마지막 칸. 개미굴 지대를 보곤 헛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전통의 복층 기와집 지붕에 양반다리로 앉아 거대한 분홍색 개미에게 지시를 내리는 남만혁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개미들.

저곳 어디에도 긴장감은 없었다. 가끔 그레이스 멜론과 마가렛 예프로비치가 다른 소속으로 예상되는 개미들을 사냥할 때 말고는 그야말로 평화 그 자체.

“큭.”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던 자신이 어쩐지 서글퍼진 스위프트였다.

* * *

시험이 몇 시간 남았음에도 종료되었던 이유는 우리가 마지막 팀이어서였다.

개미핥기를 처리하는 것으로 안배되어 있던 시험 항목을 모두 채웠으니 더 할 필요가 없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우리가 10일을 버티는 바람에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 마지막 시험은 관중들과 학생의 피로도를 고려해 다음 날로 미뤄졌다.

아카데미로 돌아와 하루를 휴식한 우리는 올림픽 경기장 대신 대강당에 모였다.

“갑작스럽게 국제 경기가 잡히는 바람에 경기장을 빌릴 수 없게 됐습니다. 대신, 여러분이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중계해 줄 분들을 모셨습니다.”

대강당 뒷문이 열리고 무대 위로 스무 명 남짓한 인파가 올라온다.

‘이야, 비싼 거 쓰네. 응?’

하나같이 고급 드론 카메라를 제 몸 주변에 띄우고 있었는데, 끄트머리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선 여자는 어째 바디캠 하나만 달랑 들고 있다.

“히어로 전문 스트리머분들입니다. 한 분 한 분 소개할 시간은 없으니 나중에 따로 인사를 나누세요. 자, 그럼 지금부터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마지막 시험의 팀장입니다.”

성적순으로 팀장을 정했다는 말을 덧붙이며 이름을 부르는 데커드.

“스위프트, 마가렛 예프소비치, 그레이스 멜론, 안토니오 골드우드, 호밍 보우, 트레이시 그웬, 도수정.”

사방에서 웅성거리더니 아이들의 눈이 내게 향한다.

전날 밤에 공개된 환경 적응 시험에서 내가 받은 점수는 그야말로 독보적. 앞선 시험들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으니 데커드의 말대로 성적순으로 팀장을 뽑았다면 저기에 내가 없는 건 이상한 일이다.

나야 팀장 같은 귀찮은 직책을 맡지 않아서 좋지만.

스트리머들은 맡을 학생을 미리 정해놨던 건지 아이들이 올라가자 자연스레 곁에 가서 선다.

특히 머리가 듬성듬성한 중년은 스위프트 옆에 붙어서 온갖 알랑방귀를 뀌어댄다.

쯔쯔, 스위프트는 저런 거 싫어할 텐데.

워낙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살아온 녀석이라 본인의 이득을 위해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아니나 다를까 그를 노려보며 한 발 멀어지는 스위프트. 탈모 중년인은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벌린다.

“데커드 교수님. 이거 성적순으로 팀장 뽑는 거 맞나요?”

트레이시 그웬이 고갯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당돌하게 묻자 데커드는 뒷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교감 선생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남만혁 학생과 함께하는 팀원은 점수 매기기가 애매해서요. 마지막 시험은 혼자 수행하게 될 겁니다.”

개미굴에서 열일한 퀸이나 마가렛을 보고 하는 말은 아닐 테고, B반 삼인방 때문인가.

다른 애들도 납득했는지 나에 관한 이야기보단 누구 팀에 들어가느냐로 화두가 바뀌었다.

“혼자 시험을 치른다고?”

“쓰읍, 그러면 상대적으로 쉽다는 건데. 흡!”

“경쟁 좀 하더라도 확실히 메이저 히어로가 될 학생을 찍는 게 낫겠어. 엇!”

대강당 무대에 음성 증폭 마법이 걸린 걸 모르는 스트리머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굴이 붉게 변한 그들은 스위프트 주변에 몰려 있는 인파에 몸을 숨겼다.

정리된 장내를 슥 둘러본 데커드는 혼자 동떨어져 있는 여성을 발견하고 다가가 물었다.

“최미주 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저는 하던 분 계속하려고요. 괜찮죠?”

“네, 상관없습니다.”

최미주라 불린 너튜버가 단상에서 내려와 내 옆으로 온다.

“잘 부탁해요.”

악수를 청하는 손은 나이에 비해 굳은살이 많았고 입고 있는 정장은 본인의 체격보다 한 사이즈 컸으며 소매의 버튼 두 개는 각각 다른 디자인이었다.

“그래.”

반말을 했음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느낌. 그녀는 채팅이라도 하는 건지 연신 스마트폰을 살피… 아니, 스마트폰? 시대가 어느 시댄데 저런 유물을 써.

“시험 내용 공지하겠습니다. 집중해주세요.”

소란스럽던 대강당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마지막 시험은 실습입니다.”

데커드가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누르자 대강당 홀로 보드에 교수 8명의 얼굴이 뜬다.

[현상수배]

[게타]

[프로스트]

[텅스텐 카우]

.

.

.

[홀런]

“이분들 중 한 명을 붙잡아 복귀하면 성공입니다. 네, 도수정 학생. 말씀하세요.”

도수정이 손을 들기도 전에 질문을 받는 데커드. 놀란 표정을 짓던 도수정이 입을 열었다.

“대강당에 복귀하는 것까지 시험인가요?”

“예. 수배범은 탈출할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도망칠 겁니다.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다른 질문은 팀 구성이 끝나면 받겠습니다. 자, 학생분들은 자유롭게 팀장을 선택해주세요. 인원수 제한은 없습니다.”

A반 출신 팀장에 다수의 아이가 몰렸고 호밍 보우는 B반 아이들 전원을 데려갔으며 F반 출신은 각기 3~5명 사이의 팀을 구성했다.

“팀이 정해졌으니 수배범을 고를 차례군요. 인원이 적은 순서대로 선택하세요.”

“아싸!”

팀원이 적어 낙담해있던 도수정이 환호하며 앞으로 나섰고 고민 없이 한 남자의 수배지를 뽑아 들었다.

“고른 이유가 있을까요?”

[현상수배]

[이름 : 데커드]

[특성 : 강화계]

[주의사항 : 탈출의 귀재]

[현재 위치 :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교내 어딘가]

데커드 교수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저희 인원수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합리적이군요. 알겠습니다. 다음은, 트레이시 그웬 학생?”

대답 대신 게타 교수 수배지를 뽑는 트레이시.

“이유는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렇군요.”

각종 더러운 스캔들로 유명한 게타에게 배울 거라. 하긴, 그러고도 아직 안 잘린 데는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소리니까, 잘 찾아보면 배울 점도 존재하겠지.

모든 팀의 결정이 끝나자 데커드는 마지막 남은 수배지를 내게 넘겼다.

회백색 머리칼에 눈물점. 약간 내려쓴 안경과 굳게 다문 입술.

[현상수배]

[이름 : 프리실라 루드라]

[특성 : 간섭계]

[주의사항 : 정신 지배 조심]

[현재 위치 :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교감.

“수배범은 모두 빌런으로 가정합니다.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이면 주저하지 마세요. 이상입니다.”

삐익—

데커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각 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은 교수를 찾아 흩어졌다.

‘귀찮네.’

교문에 얼씬도 안 하는 사람이 국회는 왜 간 거야.

“저는 없는 사람으로 생각해주세요!”

의욕 충만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최미주. 나는 그녀의 요청대로 아예 무시하고 대강당을 나섰다.

“잠시만요, 같이 가요!”

* * *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아무리 세계적인 히어로 아카데미라 해도 엄연히 한국에 존재하는 땅입니다!”

“치외법권? 누가 들으면 지금이 제국주의 시대인 줄 알겠네. 이봐요, 헛소리하지 말고 여자면 여자답게 집에서 밥이나 해!”

올해 선출된 국회의원 둘이 목소리를 높이자 노회한 의원들은 필사적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그들과 거리를 뒀다.

“전경철 의원.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요. 대한민국 땅에 아카데미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주변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있는 겁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당신 미쳤어?”

두 의원의 격한 반응에도 프리실라 루드라는 동요 없이 발언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배출한 히어로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지금까지 사용할 수 있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카모토 상.”

아니었다면 당신은 지금쯤 일본인일 거라는 교감의 돌려까기에 당황하는 의원.

“애초에 우리는 치외법권을 행사하고 있었지요. 지금 와서 종이에 문장 한 줄 추가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여전히 아카데미는 아카데미고. 한국은 한국인 거지요.”

프리실라 루드라의 특성을 모르는 의원은 저 신입 둘 말고는 없다. 특히 교감과 연배가 비슷한, 그녀가 암약했던 시절을 아는 이들은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

아카데미가 자리만 지켜준다면 문제가 생기는 안건도 아니었기에 대다수 의원이 찬성을 누르려는 찰나.

쾅!

비교적 젊은 의원 한 명이 책상을 치며 일어났다.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것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건 다릅니다. 선배님들, 이 안건. 절대 찬성해서는 안 됩니다.”

빌런 잡는 정치인으로 유명한 양효민 의원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뭐가 다르다는 건가요?”

“학생들이 어떤 대우를 받을 줄 알고 치외법권을 승인해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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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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