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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13화 (113/201)

<113화>

Wanted! (2)

양효민은 몹시 신중한 인물이다. 서히아 교감의 제안에 정면으로 반박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딴 법은 절대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강경하게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사전에 교감으로부터 그렇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

국회 소집 2시간 전, 양효민 사무실로 걸려 온 전화 한 통.

-양효민 의원.

국내외 주요 인사들의 목소리를 모조리 기억해둔 양효민 의원은 전화를 한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아차렸다.

“총장님.”

-총장이라니요. 교감입니다.

“죄송합니다. 평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는지?”

-오늘 제가 국회에서 법안을 하나 발의할 텐데, 반대하세요.

양효민은 이유가 몹시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프리실라 루드라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전화를 끊었다.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 양효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홀쭉한 모습이 되어 비서를 호출했다.

“저와 총장의 대치를 잘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미리 국회에 설치해두세요. 기자도 몇 명 준비시키고요.”

“예.”

대한민국 대통령조차 사석에선 굽신거려야 하는 인물에게 정면으로 반박하는 바른 정치인.

양효민이 이번 국회 소집에서 얻고자 하는 이미지였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국회.

“양효민 의원께서 말씀 잘하셨습니다. 저도 반대합니다. 대한민국 국회를 물로 보나!”

“어디 말 같지도 않은 의안을 들이대고 있어. 할망구는 손자나 보러 가!”

젊은 두 정치인이 양효민을 따라 고함을 지르고 나서자 노회한 정치인들은 잠시 찬성 버튼에서 손을 떼고 상황을 관망했다.

“여러분이 이렇게 나오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흠칫.

그녀의 능력을 아는 모든 이들이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 했으나 이미 간섭파가 국회를 휩쓴 뒤였다.

참석한 253명의 국회의원 중 단 한 명만 제외하고 전원 멍청한 얼굴이 되어 아기처럼 엄마를 찾아댄다.

정치인들이 평생을 쌓아온 위엄과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광경을 목도한 양효민은 침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올 때가 됐군요.”

프리실라 루드라가 국회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직후, 문밖에서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쿵!

사람이 쓰러지는 충격음이 나더니 문이 거칠게 열렸고 주머니 손을 꽂은 소년이 들어와 주변을 살핀다.

양효민은 무어라 하려다 그의 정체를 알아보곤 급히 말을 삼켰다.

‘남만혁!’

* * *

“이야, 장관이네.”

의원들의 돌아간 눈과 헤실거리는 얼굴. 작정하고 정신 지배를 건 게 분명하다.

현재 위치가 국회 의사당이라고 할 때부터 찜찜하더라니.

우선 퇴로부터 머릿속에 그렸다. 출입구는 지금 내가 박차고 들어온 정문과 의장석 좌측의 옆문.

‘옆문은 포기하자.’

교감의 자리와 너무 가깝다. 학생에게 설마 정신 지배를 쓰겠냐마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어서 와요. 히어로.”

썩을. ‘히어로’란다. 교감이 이 시험을 어떻게 여기는지 저 한마디로 알 수 있다.

“원하는 게 뭐지? 빌런.”

“글쎄요.”

희미한 미소를 매단 채 애매한 대답을 하는 교감.

“단순히 재미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거 같진 않은데.”

“맞아요.”

“뭐?”

“재미있지 않나요? 평소에 시민을 얕잡아보고 선거철에만 고개를 숙이는 이들이 유아기로 돌아간 것처럼 옹알대는 꼴이.”

“재밌는 건 모르겠고 추접스럽긴 하네.”

“그러면 이건 어떤가요.”

교감이 뒷굽으로 가볍게 바닥을 치자 가장 앞줄 왼쪽에 앉은 의원이 대뜸 벌떡 일어나더니.

“저 고인수는 애인이 다섯 명입니다. 대한일보 정치부 부장, 우창석에게 돈을 주고 기사를 쓰게 했습니다. 건설 비리를 덮어주는 대가로 뇌물 35억을 받았습니다.”

“나 유무언은 해외 비자금으로 도박을—”

그렇게 의원들의 고해성사가 이어졌고 이는 내 뒤에서 바디캠으로 촬영하는 최미주의 카메라에 온전히 찍혔다.

“빌런아, 이건 대한민국에 타격이 크지 않을까?”

시험으로 끝날 수준이 아닌데.

“슬프게도 헌법상 정신 지배 상태에서 한 발언은 전부 무효로 처리된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믿겠지.”

이미지가 나락으로 가면 그를 찾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정치인도 연예인과 다를 바가 없다.

범행은 이미 벌어졌다. 이걸 막으려면 같은 정신계 각성자가 맞불을 놓던지 물리적으로 더 이상 특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던지 해야 하는데. 나는 딱히 그럴 생각이 없다.

“도와줄까?”

“…뭐라고요?”

“도움이 필요하냐고. 사실 나도 여기 인간들 별로 마음에 안 들거든.”

정신 지배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상의 뇌는 망가진다. 30분이 넘어가면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태, 즉 식물인간까지도 될 수 있다.

그건 대한민국 수뇌부의 공백을 의미하는 거고, 한순간이나마 국가 행정이 마비될 거다.

그럼 호시탐탐 한국을 노리는 주변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겠지. 재수 없으면 그 과정에서 망할 수도 있고.

뭐, 어차피 그블린이 침공하면 모든 국가는 해체되고 ‘지구방위군’이라는 깃발 아래 집결하게 된다.

내가 아무리 대비를 잘하더라도 이 흐름은 바꾸기 어렵다. 필요하기도 하고.

고로, 나는 딱히 교감을 막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오히려 쓰레기들을 일거에 청소할 수 있는 기회다 싶기도 하고.

“남만혁 학생.”

교감의 미간이 좁혀진다. 큼, 너무 막 나갔나.

“예, 교감님.”

“시험 중이지요?”

“그렇죠?”

“그러면 히어로답게 행동해야죠?”

왜 빌런인 나를 도우려고 하냐는 교감의 물음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 태도를 달리했다.

“이 빌런 자식! 당장 사람들을 풀어줘!”

어떠냐 나의 혼신이 담긴 히어로 연기가!

“…후. 여러분, 공격하세요.”

관자놀이를 누르며 귀찮다는 듯이 손짓해 유도와 가라테로 다져진 의원들을 내게로 밀어 넣는 교감.

300명이 넘으나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길은 고작 세 갈래. 좁은 길목을 차지하고 한 명씩 상대하면 이기지 못할 것도 없으나 저들 대다수는 일반인. 괜히 건드렸다가 다치면 나만 손해다.

그래서 어젯밤에 핑키의 심장을 먹고 얻은 능력을 써볼 생각이다.

당시 조잡한 성분 분석 키트로 똥색 덩어리의 조사를 마친 리쳇은 차로 달여 먹는 것을 권장했으나 나는 상남자였기에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역한 향과 맛 때문에 바로 후회했으나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내심 낭만주의자 특성의 다음 슬롯이 열리길 바랐으나 아쉽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우연인지 운명인지. 낯설지 않은 특성을 각성했다.

【상태창】

【1. 낭만주의자】

【2. 군단의 심장】

복수 특성 보유자가 된 것이다. 낭만주의자에 의식을 집중하면 미르토스 해변과 리쳇을 비롯한 내 기존의 구현계 능력들이 보인다.

그리고 군단의 심장을 의식하면 한 줄의 설명이 떠오르는데.

【군단의 심장】

【지성이 낮은 생명체의 정신과 육체를 장악한다.】

놀랍게도 간섭계였다. 이 특성이 내 깊숙한 곳에 내재하여 있었던 건지, 아니면 핑키의 심장이 부여한 힘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내 앞으로의 계획에 몹시 유용하다는 점은 확실했다.

이렇게 직관적인 간섭 능력은 참 드문데, 조건이 좀 아쉽다.

저기서 말하는 지성은 나를 기준으로 하기에 인간과 인간에 준하는 지각 능력을 지닌 생물은 컨트롤을 못 한다.

그러나 지금 의원들은 온전한 지성을 가진 상태로는 볼 수 없으므로 장악이 가능할 것이다.

‘군단의 심장.’

두근.

속으로 특성 명을 읊자 아무것도 없는 오른쪽 가슴 부근에 심장이 뛰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후 이마에 새까만 더듬이가 돋아났다. 고사리처럼 돌돌 말려 있던 핑키와는 달리 산양의 뿔을 연상케 하는 모습.

“으어어, 억!”

“으으?”

“그륵!”

좀비처럼 양손을 앞으로 내민 채 내게 달려들던 의원들이 코를 킁킁대며 제자리에서 멈추고 혼란스러운 듯 좌우를 돌아보다 내가 재차 군단의 심장을 되뇌자 일제히 고개가 나에게 향한다.

됐네.

“꿇어.”

풀썩.

양효민을 제외한 352명 전원이 판사 앞에서 형량 감소를 구걸하는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나는 그들의 등을 밟고 빌런 역할을 맡은 교감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는 잠깐 당황하는 듯했으나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는 웃었다.

“항복이에요. 히어로.”

순순히 내가 내미는 빌런 포박용 구속구를 차는 교감. 물론 이름만 구속구인 수갑은 어떤 효과도 없다.

“으…, 대체. 무슨 일이. 헉?”

“아, 아니. 당장 카메라 꺼!”

“유 비서! 국회 CCTV 하드 모두 회수해!”

정신을 차린 의원들은 자기 입으로 떠들어댄 말을 모두 기억하는지 사색이 된 얼굴로 흩어졌다.

내 눈에는 수습을 명분으로 교감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주기적인 행사지요.”

교감은 바퀴벌레처럼 흩어지는 의원들을 보며 말했다.

“이 시험이요?”

“정치인들에게 현실을 주입하는 일 말입니다.”

이런 걸 주기적으로 했다고? 전혀 몰랐다.

“평화에 찌든 돼지는 가끔 목을 조여줘야 운동을 하는 법이니까요.”

나태해진 정치인들의 작태를 잘 아는 내가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지금껏 바디캠만 들고 있던 최미주가 소심하게 손을 들고 교감을 바라본다.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봐도 좋아요. 최미주 씨.”

“엇, 제 이름은 어떻게….”

미소를 지은 채 답이 없는 교감의 모습에 최미주는 어색하게 아하하 웃었다.

“이러면 저 안건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홀로 보드에 떠 있는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치외법권 의안’을 가리킨다.

“이 난리가 났으니 부결되겠지요.”

교감은 묶인 손을 뻗어 바디캠의 마이크를 덮고 말을 이었다.

“그러고 합리화할 겁니다. 그래도 우리가 노망난 여인네의 의지를 꺾었다면서요.”

“아.”

“돼지들에게도 도망칠 구멍은 만들어줘야지요.”

대단하네.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렇게 느끼는 건 매저드 교수 이후로 처음이다.

테러나 다름없는 행위를 하고도 ‘아카데미의 시험’이라는 명분으로 빠져나갔다. 최미주의 방송이 그 증거가 될 거고.

나중에 법적인 문제를 제기하면, 그들이 본인의 입으로 떠벌린 죄들을 들이대면 그만.

그 이전에 곧 닥칠 행정 공백에 대처하기에도 급급할 거다. 순 악질 정치인만 서른이 넘었으니.

이후, 아카데미 대강당까지 이동하는 동안 탈출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으나 교감은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남만혁 학생, 조금 늦었군요.”

강당 안은 부서진 잔해들로 가득했다. 데커드의 손목에 채워진 구속구와 몸에 묻은 흙먼지로 보아 여기서 한바탕 한 모양.

“우리가 이겼어!”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도수정은 팀원인 블리딩블러드와 클린에어를 끌어안으며 자축한다.

나보다 빨리 수배자를 잡은 게 그렇게 좋을까.

뚜둑.

데커드가 개인 홀로 보드에 무언가 체크를 하자 교감은 구속구를 벗고는 나를 불렀다.

“데커드 교수, 제 역할은 끝이지요?”

“아, 예. 교감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남만혁 학생?”

막 부서진 의자 세 개를 겹쳐 침대 비슷하게 만들어 누우려던 나를 부르는 교감.

“네?”

“교감실로 따라오세요.”

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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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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