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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14화 (114/201)

<114화>

2학년

교감은 내게 새로운 특성을 각성한 것을 축하하며 그 능력이 최미주의 채널을 통해 공개됐으니 곧 많은 이들이 접근해올 것이라 경고했다.

이어서 그녀는 본인이 간섭계로 각성한 뒤 겪은 일들을 예로 들며 각종 인재(人災)에 대처하는 법을 내게 가르쳤고 나는 내 힘만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에도 잠자코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니 당분간은 외부 활동을 자제…, 듣고 있나요?”

저 눈. 소민 누나를 연상케 하는 눈 때문에 도저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질 못하겠다.

“그럼요, 누구 말씀인데 흘려듣겠습니까.”

게슴츠레하게 변한 교감의 눈매에 나는 과장된 동작과 어투로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받아요.”

[학생증]

[이름 : 남만혁]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Class : 2-A2]

교감의 인장이 각인된 학생증.

“아직 시험 중일 텐데요.”

“마지막 실습 시험은 제 변덕으로 생긴 과정이에요. 환경 적응 시험이 끝났을 때 이미 결과가 나왔지요.”

“그렇군요.”

나는 학생증을 대수롭지 않게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재학 중에는 물론이고 졸업 후에도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될 텐데, 기쁘지 않나요?”

교감이 말한 막대한 지원 중 큰 것만 추리면. 사무소 설립 비용, 첫 사이드킥 고용비, 주거지 대여가 있다.

어지간한 부잣집 자식도 군침 흘릴만한 조건이었으나 밀키 마이닝으로 떼돈을 벌고 있는 나로선 하품이 나올 뿐이다.

“흐아암, 그다지?”

“후후. 알겠습니다. 가보세요.”

드디어 나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일어나 문고리를 잡아 비틀었다.

“참, 오늘부터 남 마운틴 지하에 건축 중인 벙커는 공개적으로 지어도 좋습니다.”

문을 반쯤 연 자세로 뒤를 돌아보자 교감은 시선을 개인 홀로 보드에 둔 채 업무를 보고 있었다.

탁.

문을 닫고 나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기적으로 한다는 정치인 압박이, 어쩌면 이번만큼은 요새 건설에 누구도 손을 댈 수 없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남만혁 학생, 문 앞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어서 강당으로 돌아가세요.”

‘그럴 리가 없지.’

* * *

학년 진급 이후 첫 등교. 당연하게도 아카데미는 시끄러웠다. 평소에도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려오는 곳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유독 심하다.

“으아아! 내가 왜 B반이야아!”

A반이었던 자칼은 2학년엔 B반이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게 시험 성적 저조.

평소의 태도와 행실도 그리 좋지 못한데다 매달 치러지는 평가전에서도 네로와 달리 두드러진 성장을 보이지 못했다. 마지막 기회였던 클래스 업 시험에서는 아주 죽을 쒔고.

내가 평가단이었으면, E반에 처박았을 텐데. 역시 이 아카데미는 전투계 각성자를 너무 후대한다.

“스위프트, 그레이스! 너희가 말 좀 해줘!”

“그게 네 실력이다. 자칼.”

“미안해요.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겠네요. 평소 노력을 게을리한 자신을 원망하세요.”

“너희까지…. 마, 마가렛! 제발, 이제 부탁할 사람은 너밖에 없어!”

“싫어. 그러게, 내가 마운틴 짐에 가자고 할 때 따라왔어야지.”

저 셋은 당연하게도 A1 반이다. 환경 적응 시험에서 신속한 탈출로 높은 점수를 받은 스위프트가 클래스 업 시험에서 전체 수석을 받았다.

“남만혁, 아쉽지 않나?”

호리호리한 체형, 녹발녹안, 등 뒤에는 크로스보우, 허리에는 조립식 컴포짓 보우를 매단 남자가 내 옆으로 다가와 묻는다.

“누구냐, 너.”

“큭, 호밍보우라고 세 번째 말한다.”

아. 기억났다. 파이브 파이트 리그 강의에서 적으로 만났었지. 소구경이 가장 싫어하면서도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녀석이자.

“아, 그 맥주병이네?”

“맥주병이라고 하지 마라!”

이놈. 살은 귀신같이 쏘는데, 물 공포증 비슷한 게 있는지 물 근처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그래서 나는 B반과의 경기 중에는 항상 미르토스 해변을 깔면서 다녔고 그 덕에 녀석을 상대할 일은 거의 없었다.

“후, 수석 말이다. 수석. 점수는 네가 압도적으로 높았잖아.”

저 말이 맞다. 수석 자리를 내어준 건 정치인을 정신 조작했다는 이유로 받은 일종의 징계다.

당시에 내가 몰랐던 일을 좀 언급하자면, 국회에서 일이 벌어졌을 때 최미주의 시청자 수는 열 명이 넘지 않았다.

그 덕에 교감은 영상의 노출을 최소화한 채 최미주에게서 영상의 모든 권리를 사들일 수 있었고 이후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편집해 정재계 유력 인사들에게 뿌렸다.

놀랍게도 이건 하루. 아니 정치인 정신 지배로부터 단 9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국회의사당에 있던 의원 중 몇 명이 내 이름을 거론하며 여론을 움직이려다 교감의 전화 한 통에 아무것도 못 하고 손발이 잘려 거꾸러졌다는 이야기를 양효민을 통해 들었을 때는 뒷목이 서늘하더라.

이 정도 추진력이면 나보고 얼쩡거리지 말고 꺼지라고 한 것도 이해가 된다. 편집하랴 협박하랴 얼마나 바빴겠나.

하지만 저런 놈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청렴결백한 사람들도 존재했고, 이들은 입을 모아 ‘유사 테러 행위에 대한 징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감은 그에 대한 답변으로 본인은 아카데미 유폐를, 나는 수석 반납이라는 수를 내놓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데커드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전해 듣고 딱 한 단어가 떠올랐다.

치외법권.

그렇지 않은가. 한 국가의 수뇌부를 장악하고 몰살시킬 뻔한 범죄 행위가 고작 유폐와 수석 반납으로 끝나다니.

게다가 교감의 경우 원래 아카데미 밖으로 잘 안 나가니까 사실상 벌도 아닌 셈이다. 나야 말할 것도 없고.

“묻잖나. 수석 뺏긴 거 안 억울하냐고!”

호밍보우가 들으라는 듯이 크게 외치자 애들이 전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는 호밍보우의 이글거리는 초록색 눈을 보며 답했다.

“별로. 수석이 뭐 대단한 거라고.”

녀석은 이런 내 반응을 예상 못 했는지 한참을 멍하게 쳐다보다 입을 벙긋대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럴 줄 알았다.”

스위프트.

“너희도 슬슬 가라. 곧 조회 시간인데.”

스위프트, 퀸, 마가렛은 나를 보러 잠깐 왔다가 애들에게 붙잡혀 대화를 나누던 중이다.

“남만혁. 곽재우는 어떻지?”

“…아하, 이 자식.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구만.”

2학년 강의는 대부분 팀 단위로 돌아간다. 스위프트는 당연히 리더가 될 테니 괜찮은 팀원을 찾는 중인 거고.

“겸사겸사다.”

“그렇다 치자. 곽재우라. 하이템플러에 다크 아칸을 섞은 느낌?”

본인은 근접전 능력이 빼어나다고 생각하고 있던데, 사실 실전에서 주력으로 써먹기에는 애매하다.

아, 내가 말하는 실전은 그블린전이 기준이다. 일반적인 히어로 활동 중에는 문제없다.

“그게 뭐지?”

그래, 이 수련밖에 모르는 놈이 알아들을 리 없지.

“분신, 묶기, 창술.”

“이해했다. 괜찮군. 고맙다.”

“오냐.”

스위프트가 교실 뒷문으로 나가자 이번에는 마가렛이 다가온다.

“헤헤.”

“넌 또 왜.”

“수정이는 어때?”

“본인에게 물어보면 빠른 걸 왜 그걸 나한테 물어.”

“네가 수정이 본인보다 단절에 대해 더 객관적이고 자세히 알 거 같아서.”

그건 맞지.

“내가 만약 누구를 보호해야 할 상황이라면 다 젖혀두고 도수정부터 데려올 거다.”

“역시! 수정아아!”

괴성을 지르며 맞은편 교실로 들어가 도수정을 부둥켜안는 마가렛.

“읏흠.”

헛기침을 하며 내 앞에 선 퀸이 슬쩍 눈치를 보며 묻는다.

“저에게는 해줄 조언이 없나요?”

“트레이시 그웬이랑은 이미 팀을 하기로 했지?”

“어떻게 아셨나요?”

둘이 친한 거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녀석아.

“뻔하지. 칸탄테 데려가.”

“소구경은요?”

“걔는 안돼.”

“왜요?”

퀸, 트레이시 그웬, 칸탄테의 조합에 소구경은 안 어울린다. 정확히는 어지간한 전투계 특성 보유자는 퀸의 하위호환이라 가능하면 따로 행동했으면 한다. 업혀 가면 실력이 안 늘거든. 이미 저 세 명으로 팀 밸런스가 잡히기도 했고.

“있어 그런 게.”

“알겠어요.”

웃음을 억지로 감추듯 입가를 손으로 꾹 누르며 A1 반 교실로 돌아가는 퀸.

“왜 저래.”

뒷모습을 보고 중얼거리자 케롤라인 칠링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진짜 몰라? 네가 추천한 애들. 전부 여자잖아.”

“그게 왜.”

“그야 팀에 남자가 있으면 네가, 질—”

드륵.

케롤라인이 살짝 망설이며 입을 오므리는 그때, 앞문이 열리고 데커드 교수가 들어왔다.

“앉으세요.”

그러고는 옆구리에 끼고 온 돌돌 말린 종이를 펴서 정면 홀로 보드에 붙인다.

[반 배정표]

[2-A1]

[스위프트, 그레이스 멜론, 마가렛 예프소비치, 도수정, 트레이시 그웬, 소구경, 곽재우, 리얼블루, 네로, 칸탄테]

[2-A2]

[호밍보우, 블리딩블러드, 버추얼박스, 도슨 칠링, 케롤라인 칠링, 플라주, 안토니오 골든우드, 작센, 안나벨, 남만혁]

역시 클린에어는 없나. 종이에 적힌 반 배정표는 전날 온라인으로 공지한 그대로다.

녀석은 B반에 배정됐다. 듣기로 본인이 원했다고 한다. 1학년 과정에서 자기는 전투에 재능도 흥미도 관심도 없음을 확인했다던가.

뭐, 걱정은 안 된다. 워낙 똑 부러지는 녀석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데커드 교수님!”

손을 번쩍 드는 케롤라인 칠링. 저 녀석이 A반의 도수정인가.

“질문인가요?”

“넵! 작센이랑 안나벨은 누구예요?”

“안 그래도 소개할 참이었습니다. 들어오세요.”

더벅머리에 대검을 등에 찬 소년과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들어왔다.

“이쪽이 작센입니다. 자기소개하시겠어요?”

“예, 교수님. 반갑다! 나는 작센. 소드마스터다!”

소드마스터. 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특성이고 아시아권에서는 보통 검의 달인이라 칭한다.

“다음은 안나벨?”

“저는…. 안나벨입니다.”

앞머리로 얼굴을 반쯤 덮은 소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어째서인지 교실 전체의 온도가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늘 정도가 아닌데 이거.

홀로폰에 탑재된 현재 온도를 보니 기존보다 2도나 떨어졌다.

“안나벨, 특성은 뭐야?”

케롤라인이 묻자 손가락을 꼬물대며 머뭇대던 안나벨이 데커드를 슥 올려다본다.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제 능력은 스펙터…예요. 유령이 하는 일은 다 할 수 있어요.”

유령? 이거 봐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이지.

“안나벨, 너 그 능력 어디 계열이냐.”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주춤 뒤로 물러서는 안나벨.

“네? 어, 저는. 그….”

“구현이지?”

“……네.”

보통 저런 종류는 변신이나 빙의, 소환 쪽이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구현계인 내 본능이 속삭인다. 저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 의해 ‘구현’된 생명체라고.

덜컹, 끼이익!

“말도 안 돼!”

버추얼박스가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며 경악한다.

나야 안나벨 같은 존재를 구현할 수도, 그럴 생각도 없다. 그러나 환상 구현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버추얼박스는 이야기가 다르다.

안나벨이야말로 본인이 갈구하던 이상적인 형태일 테니까.

“버추얼박스 학생? 앉으세요. 지금은 제 시간입니다. 사담은 조례가 끝난 뒤에 하세요.”

안나벨과 작센이 자리에 앉고 소란스럽던 교실이 조용해지자 데커드가 재차 입을 열었다.

“수강 신청은 1학년 때 해보셨을 테니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괜찮죠?”

“네~”

“다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요?”

“입학시험요!”

“맞습니다. 시간이 되는 학생은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시험을요?”

케롤라인이 놀라 묻자 데커드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여러분은 떨어진 학생을 안전하게 아카데미 입구까지 옮기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봉사 시간도 채울 수 있으니 생각해보세요.”

나랑은 관계없는 이야기네. 봉사야 뭐 마를린네 한 번 다녀오면 될 일이다.

“아, 남만혁 학생은 필참입니다. 교감 선생님 지시예요.”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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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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