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16화 (116/201)

<116화>

판타스틱 듀오 (1)

[입학시험 순위]

[1위 : FF]

[2위 : 플라밍고대시]

[3위 : 기가라이트닝]

….

….

….

[76위 : 레드립마스크]

FF는 압도적인 전투 능력으로 본인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타 학생과의 경쟁 과정에서 다소 과격한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규칙을 어기진 않았다.

“너무 폭력적이지 않습니까.”

“게타 교수. 르엘리트 맥그레이와 가까운 관계지요?”

FF뿐만 아니라 순위권에 든 학생 다수를 깎아내리며 탈락시켜야 한다고 쉴 새 없이 떠들던 게타의 입이 교감의 한마디에 다물어졌다.

“…가깝다니요? 오해십니다. 저는 그 학생 얼굴 한 번 본 적 없습니다.”

교감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여유롭게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테이블을 검지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회의실의 홀로 보드에 영상이 하나 재생되었는데, 맥그레이 가문의 저택에서 웃는 낯으로 쇼핑백 두 개를 들고나오는 게타 교수가 찍혀 있었다.

“저, 저게 왜. 교감 선생님, 오해입니다! 맥그레이 가문이 화장품으로 유명하니까. 샘플이나 좀 얻어볼까 싶어서, …나가 있을까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던 게타는 변명할 수 없는 증거에 자진해서 죄를 고했다.

“입 다물고 계세요. 후우, 논의를 이어가지요. FF의 폭력성을 억제할 방안이 있는 교수분은 자유롭게 발언해주세요.”

게타의 주장이 마냥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FF의 폭력적인 모습은 이곳에 있는 심사단 전원이 목격했다.

다른 교수들이 침음을 흘리며 말을 아끼는 동안 프로스트 교수는 입학시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남만혁 학생에게 맡기는 건 어떻습니까. 그 녀석의 말은 들었지 않습니까.”

기가라이트닝의 목에 얼음송곳을 찔러넣으려던 FF는 당시 감독관이었던 남만혁의 만류로 잠시 망설이다 송곳을 버렸었다.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교감 선생님.”

“동의합니다.”

챙!

교수들의 의견을 듣던 교감은 찻잔을 강하게 내려놨다.

“다들 착각하고 계시는 거 같군요. 남만혁은 교수가 아니라 학생입니다. 어느 아카데미가 학생에게 학생을 맡기는지요?”

게타가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입을 연다.

“타 아카데미에는 멘토링 시스템이—”

“닥치세요.”

간섭파를 날려 게타의 입을 봉한 교감은 자신과 가장 먼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신문을 보는 교수를 불렀다.

“매저드 교수님.”

“음?”

중앙 마도 협회에서 발간한 마법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하는 매저드. 그는 ‘올해의 마탑 별 수석 목록’을 흥미롭게 살피고 있었다.

“FF를 맡아주시겠어요?”

“좋네, 대신 내 강의를 학년 제한 없이 들을 수 있게 해주게.”

교감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내가 받고 싶은 학생만 받을 걸세.”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허허, 노력해봄세.”

이후 교수들은 학생들과의 면담을 통해 18명을 탈락시켰고. 결과, 올해도 합격자 수는 정확히 60명이었다.

* * *

“뭐 듣지.”

나는 지금 컨테이너 인근 공터에 드러누워 어떤 강의를 들을지 고민 중이다.

달각.

근처에서 이고강을 따라 검을 휘두르던 일식이가 고개를 기울이더니 올해도 마법 강의를 들을 거냐는 사념을 보내왔다.

“어. 그건 확정이고.”

아카데미 내의 유일한 마법사. 심지어 마법 학계에서 성인이라 불리는 스승님을 두고 내가 어딜 가겠는가.

“오전 강의가 문젠데. 어디 보자.”

[강의 목록]

[38개 학파의 마법들(4/5) - 매저드]

└[남만혁, 안토니오 골든우드, FF, 기가라이트닝. 트레이시 그웬(교수 거부), 그레이스 멜론(교수 거부)]

[특성 가꾸기(6/10) - 홀른]

[은신과 잠입의 이해(8/10) - 고스트 핸드]

[파이브 파이트 리그(19/20) - 프로스트]

[*신설, VZ란 무엇인가(4/5)]

이 뒤로도 다수의 강의가 있었으나 딱히 눈이 가는 게 없다. 신설된 VZ 관련 강의를 들을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VZ를 개발한 박사가 내 회사에 있다는 걸 떠올라 관뒀다.

“여차하면 리쳇에게 물어보면 그만이고. 그나저나 강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었네.”

F반일 때는 10개 전후였으나 40개가 넘는다. 많아서 좋기는 한데, 그만큼 고민도 늘었다. 하여튼 대충 살피며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묘한 제목의 강의를 발견하고 눌렀다.

[*신설, 판타스틱 듀오(1/2) - 데커드 루드라]

[그레이스 멜론, 호밍보우(교수 거부), 소구경(교수 거부), 마가렛 예프소비치(교수 거부)……]

거의 20명에 달하는 학생이 교수 거부를 당한 강의.

아, 올해부터 교수도 교감의 승인을 받으면 학생을 거절할 수 있다는 공지가 올라오긴 했었다.

그러나 교감의 승인 때문인지 신설 강의와 매저드 교수의 강의를 제외하면 교수 거부를 당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뭐길래.”

[판타스틱 듀오]

[강의 내용 : 타 아카데미 2학년과 대련을 통해 실전 감각을 익힌다. 외부 활동을 주로 함.]

[교수의 한마디 : 한 번이라도 패배할 시 강의는 즉시 종료되고 텅스텐카우 교수의 ‘인체 한계 극복’ 강의로 편입됩니다.]

“아카데미 밖으로 나간다는 거네.”

사람이 몰린 이유를 알겠다. 합법적으로 매일 외출한다는 거니까.

나야 그런 이유보다 다른 아카데미의 학생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끌려 고민 없이 수강 신청을 눌렀다.

* * *

며칠 후, 오전. 서히아 동상문 앞.

“침투경을 배웠어요?”

방학에 뭐 했냐길래 합숙 훈련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됐다. 너는?”

“저도—”

밝은 표정의 퀸이 무어라 하려는 찰나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찍 왔군요.”

새까만 선글라스, 손바닥 크기의 마스크, 목과 상반신을 가리는 머플러. 정체를 숨긴 연예인처럼 등장한 사람은 교감이었다.

“왜 여기 계세요?”

“이 강의를 맡았으니까요.”

“데커드 교수는요?”

“제가 데커드입니다. 아시겠지요?”

선글라스 뒤로 보이는 눈웃음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모종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퀸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웃음을 삼키며 수긍했다.

‘유폐는 개뿔.’

교감은 우리를 데리고 동상문 인근의 헬기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헬기 한 대가 대기 중이었고 우리는 교감을 따라 올라탔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퀸이 불안한 음색으로 묻자 교감은 마스크를 벗고 인자하게 웃으며 답했다.

“북한이요.”

북한.

개인이 단체를 짓누르는 각성자의 존재가 전면에 드러나자 그들이 추구하던 통치체제는 삽시간에 붕괴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척, 국가 개방 정책을 펼쳤으나 기대와는 달리 풍족한 지갑을 가진 관광객 대신 굶주린 빌런들이 몰려들었다.

군대를 믿고 각성자를 등한시했던 북한은 그제야 부랴부랴 ‘평양 용사 학교’를 설립해 히어로를 양성하기에 이른다.

“그곳의 학생은 철저히 빌런을 죽이기 위한 기술을 배우고 있지요. …다 왔군요.”

헬기에서 내리자 색이 들어간 무테안경을 낀 뚱뚱한 체구의 남자가 다가와 교감과 악수를 한다.

“우리 용사 학교에 어서 오시오. 총장 김대성이올시다.”

“루드라입니다.”

“루드라 동무에게 무리한 부탁을 한 게 아닌지 모르겠소.”

“산책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온 거라 그리 여기실 필요는 없어요.”

일순 김대성이라는 남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사라졌다.

“…그렇소? 역시 루드라 동무도 교장 동무처럼 마음이 넓으시구려. 하하하!”

교장이라는 말에 교감의 표정이 굳었다.

“교장이 자주 방문합니까?”

“그렇진 않소. 그리고 보니 교장 동무를 못 본 지 꽤 됐구려.”

“워낙 바쁜 분이니까요. 그보다 우리 아이들의 상대는 어디에 있습니까?”

“흐음, 따라오시오.”

남자는 20세기 후반에나 봤을 법한 모래 운동장으로 우리를 데려왔다. 그곳의 중앙에는 군복과 흡사한 교복을 입은 사내 둘이 각 잡힌 자세로 서 있었다.

“우리 학교의 최고 용사들이라오. 배춘석, 이단결 앞으로!”

“예!”

두 학생이 절도있게 나서자 교감은 그들을 슬쩍 살피고는 우리에게 다가와 저쪽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배춘석은 강화계, 이단결은 구현계입니다. 남만혁 학생이 이단결을 맡아주세요.”

“저, 교감 선생님. 제가 이단결과 싸우고 싶어요.”

교감이 입을 다물고 고민하자 퀸이 서둘러 말을 덧붙인다.

“구현계와의 전투 경험을 쌓고 싶어요.”

“제가 남만혁 학생을 상대로 지정한 이유는 이단결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레이스 학생.”

“네?”

“자신 있나요?”

이단결을 살핀 퀸은 결의에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좋습니다. 남만혁 학생이 배춘석을 맡는 거로 하지요.”

나야 쓸만한 녀석이 보이면 꼬시려고 이 강의에 지원한지라 상대가 누구든 크게 상관없다.

“그러죠.”

대전 상대가 결정되자 교감은 김대성에게 가 우리 쪽 의사를 전했고, 바로 대련이 시작되었다.

“그레이스 멜론입니다.”

“이단결입네다. 잘 부탁드립네다.”

삑—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김대성의 입에 물린 호각이 불렸고 이단결은 곧장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퀸은 그런 이단결을 주시하며 하늘로 쏘아져 올라가며 속도를 붙인다.

인간이 하늘을 난다.

각성자가 흔해진 뒤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긴 하나 코앞에서 목도하면 그래도 놀라기 마련이다.

그런데 저 단결이라는 놈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거리를 벌리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남만혁 학생. 이단결이 뭘 하는 건지 알겠습니까?”

“전혀요.”

퀸의 가속이 최대치의 절반 정도쯤 되는 순간, 이단결이 멈추고 퀸을 쳐다본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녀석은 대뜸 왔던 길을 되돌아 달린다.

각 학교의 명예를 건 대련에서 강화계인 퀸을 상대로 구현계가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을 할 리는 없다.

‘특성 발동에 조건 같은 게 있나.’

그런 종류는 대체로 강하다.

“오?”

퀸의 다이브가 시작되기 직전. 이은결이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무언가를 잡고 끌어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으랏차!”

모래가 휘날리며 무언가가 치솟았는데 눈에 보이는 건 없었다.

투명한 건가?

퀸의 부유와 가속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모습과 의기양양한 이단결의 웃음에서 한 가지 가설이 머리를 스쳐 급히 퀸을 부르려 했으나 교감이 내 입을 집게 손으로 붙잡는다.

“읍?”

“그레이스 멜론 학생이 항상 당신의 도움을 받을 순 없어요.”

“읍읍읍.”

알았다고 하자 손을 놓는 교감. 하늘의 점이 되었던 퀸이 사선으로 이단결을 향해 내려꽂히는 순간.

뻐어억!

엄청난 충돌음과 바람이 학교를 덮쳤다. 부서지는 창문들과 뽑혀 나가는 나무들.

잘 정돈되어 있던 교정은 한순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모래 연기가 걷히자 퀸은 쓰러진 상태였고 이단결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런 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승부가 너무 일찍 끝났구먼. 그쪽 용사 학교 학생이 조금이라도 얻는 게 있었으면 좋겠구려.”

김대성이 뒷짐을 진 채 으스대며 다가온다.

“당연히 그럴 겁니다. 아직 끝나지도 않았고요.”

“끝나지 않았다? 자기 학생을 믿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오만, 결과는 보는 대로요. 대범하게 받아들일 줄도 아셔야지. 크흠. 내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 했소만, 우리 이단결 소위의 ‘충격반사’를 당하고도 그쪽 학생이 살아 있는 건 천운이오. 학생을 생각해서라도 패배를 인정하시오. 만에 하나 다시 일어난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소?”

교감은 쓰러져서 꿈틀대는 퀸을 바라보며 말을 뱉었다.

“안되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을 무어라 부르는지 아십니까.”

교감의 물음에 김대성은 조소를 머금었다.

“미련한 멍청이?”

“포기한다면 그리 불려도 할 말이 없겠지요. 하지만 극복한다면, 시대에 이름을 새기는 위인이 됩니다. 저는 제 학생이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고요.”

김대성을 지긋이 쳐다보는 교감. 그 시선은 마치, 당신은 어떤 신념으로 학생을 가르치냐고 묻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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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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