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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17화 (117/201)

<117화>

판타스틱 듀오 (2)

“의외구려. 남조선 동무들은 아직도 하찮은 정신론에 기대어 학생들을 가르친단 말이오? 우리 선진 용사 학교는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개인의 근성 따위는 내다 버린 지 오래요.”

일견. 김대성의 주장은 맞는 것처럼 들린다.

‘시대에 뒤처진 것도 정도가 있지.’

하지만 저건 과학만을 신봉하던 구시대의 이야기다. 각성자의 특성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가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하다.

과학이 이미 절반 이상 깔아둔 선로에 간섭계 각성자가 손을 조금 보태면 멘탈리티 수치화는 일도 아니다.

출국만 해도 각국의 수뇌부에 경고가 떨어지는 계통 최고 권위자인 교감 앞에서 저런 오만이라.

우스운 이야기다.

교감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김대성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가소롭다는 태도였다.

“할 말이 없나 보오? 허허허!”

스륵.

교감은 그의 도발에 응하는 대신 비틀대며 일어서는 퀸에게 시선을 뒀다.

“멘탈리티라는 게 있습니다. 방금 김대성 총장이 말한 정신력이지요.”

“알고 있소.”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의 멘탈리티가 1이라면, 그레이스 멜론 학생의 멘탈리티는 15가 넘지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저 수치는 고통을 가했을 때 인내할 수 있는 강도라 생각해도 된다.

강화계 기준으로 15면 준프로에서도 보기 힘든 수치다.

김대성의 입이 다물어진다. 흔들리는 동공을 보아 당황한 게 분명하다. 하기야 그렇겠지, 자기네들이 버린 정신론을 수치화는 물론이고 따로 훈련까지 시키는 것처럼 들렸을 테니까.

인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세계에서 톱 자리를 다투는 서히아와 최하위권에 머무는 이딴 학교가 교류를 한다는 건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뛰어난 교육 환경과 양질의 커리큘럼, 온갖 학위를 두른 교수진, 우수한 학생. 모든 것이 서히아가 압도한다. 결과는 사실 시작하기 전부터 나온 셈이다.

다만, 특성의 상성이 좋지 않으면 지금처럼 밀리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 퀸이라면 극복할 거라 믿는다.

쾅!

내구와 가속으로 강화된 퀸의 주먹이 투명한 벽을 때리자 그녀의 전신에서 흐르던 피와 땀이 거칠게 터져나간다.

김대성과 마찬가지로 조소를 머금고 그 광경을 감상하던 이단결은 퀸이 내지르는 주먹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서서히 표정이 굳었다.

아무리 특수한 특성이라도 한계는 존재한다. 그 한계를 늘리는 것이 숙련도이고, 내가 알기로 퀸은 누구보다 노력하는 녀석이다.

스위프트 같은 미라클 칠드런을 제외하면 교내에서 가장 높은 숙련도를 가지고 있을 터다.

쩍!

무한대로 충격을 반사할 것 같던 투명한 벽에 균열이 일었고 동시에 이단결의 몸이 부자연스럽게 흔들렸다.

“이봐, 그만해. 너 그러다 죽어!”

저 녀석이 저리 외치는 심정도 이해는 간다. 여기서 봐도 퀸의 모습은 굉장히 처절하거든. 정면에서 그런 퀸을 직관하는 이단결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스러울 거다.

본인의 몸이 어떻게 되건 말건 네놈을 때려눕히겠다는 의지를 전신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건 정제되지 않은 광기에 가까웠고 저런 종류의 기세를 평소 겪지 못한 사람이라면, 버티기 쉽지 않을 거다.

쾅!

“윽!”

다시 한번 퀸의 피로 범벅된 주먹이 벽에 닿자 이단결이 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다음 주먹질에 벽은 부서졌고.

“항, 항복.”

이단결은 총장의 눈치를 보며 항복을 외쳤다. 느긋한 표정이었던 김대성은 벽이 부서지자 얼굴에 무수한 주름을 만들며 턱을 부들부들 떨었다.

교감은 그러거나 말거나 응급키트를 꺼내 퀸을 치료했다.

“전부 타박상이네요.”

“너무 꼴사나웠을까요?”

“예.”

“치.”

교감은 흙먼지로 엉망이 된 퀸의 몸을 털어주며 웃었다. 퀸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여기서 보고 있자니 꼭 할머니와 손녀 같은 느낌이다. 언제 저렇게 친해졌지? ‘첫 월말 평가전 이후 자주 본다고 했던 거 같기는 한데.’

“더 노력하세요.”

“그럴 거예요. 저만 뒤처지긴 싫으니까요.”

교감은 김대성을 조롱하지 않았다. 눈앞의 결과가 전부라는 듯이 담담하게 다음 경기를 진행시킬 뿐.

“남만혁 학생, 준비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퀸이 다이브로 만든 크레이터 중심에 들어왔다.

“시작하죠.”

“배춘석 소위.”

“소위 배춘석!”

“반드시 이기게. 자네의 어깨에 조국의 영광이 달렸어.”

애한테 압박 주는 꼴이 가관이다. 크레이터로 들어와 내 앞에 서는 배춘석.

‘뭐지?’

배춘석의 눈이 기이할 정도로 빨갛다.

“시작!”

“흐아아압!”

제자리에서 통통 뛰던 녀석은 시작 구령이 울리자 기합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고 나는 준비하고 있던 미르토스 해변을 구현했다.

한순간에 해수로 메워지는 크레이터. 기관지를 덮치는 짠물에 허둥댈 법도 하건만, 배춘석의 눈은 담담하게 나만을 비추고 있었다.

내가 유려한 수영으로 거리를 벌리자 녀석은 허공에 정권 지르기와 돌려차기를 해댄다.

저게 뭐 하는 짓인지 멀리서 지켜보는 와중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 급히 몸을 틀자 기포로 이루어진 덩어리가 얼굴 옆을 지나간다.

‘공기포?’

단순히 육체 능력을 강화하는 거로는 저런 게 가능할 리 없다.

‘총장 놈 짓인가.’

배춘석의 어깨를 잡으며 명예를 운운할 때, 뭔가 한 게 분명하다.

‘부여계였나. 좀생이처럼 굴긴.’

기포로 이루어진 원거리 공격이 이어졌다. 숫자가 많기는 해도 못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금이현이 무인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초라며 가르쳐준 금나수 파훼법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 수준.

공기포를 회피하며 수면으로 올라와 숨을 쉰 나와 달리 배춘석은 눈가에 피를 흘리면서까지 공기포를 쏴댔다.

‘저거, 정상은 아니네.’

온전한 정신이라면 저 행위가 제살깎아먹기라는 것 정도는 알 텐데.

수생생물 쪽 변이계가 아닌 이상 맨몸으로 물속에서 버티는 건 한계가 명확하다.

아니나 다를까, 공기포의 숫자가 줄더니 이내 놈의 몸이 축 늘어진다.

대련 중에 학생이 죽는 건 찜찜한 일인지라 녀석을 구하기 위해 다가가니 검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붉게 변해 있었다.

물 밖에서 무어라 호통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김대성이겠지.

내가 배춘석의 팔을 잡는 순간, 녀석의 다른 손이 내 목을 움켜쥔다.

끄르륵, 커헉!

그대로 붙잡혀 물 밖으로 튀어나오자 김대성이 크게 웃어댄다.

“으하하, 그쯤 하면 됐다. 배춘석 소위!”

“아직 안 끝났습니다.”

“죽을지도 모르오. 그래도 괜찮소?”

교감은 침묵으로 긍정하고 감정의 동요 없이 괴로움을 연기하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던 나는 교감과 퀸의 반응을 보고 한숨을 뱉으며 일어섰다.

“에이, 재미없게.”

목을 움켜쥐었던 배춘석의 손이 떨어져 나간다.

“티 났어요?”

“저 말고는 알아챌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레이스 멜론 학생. 진정하세요. 남만혁 학생의 장난입니다.”

“알, 알고 있었어요.”

그제야 푸른 장갑이 찢어질 정도로 움켜쥐고 있던 퀸의 주먹이 스르르 풀린다.

원래 좀 더 놀라게 할 생각이었는데, 당장에라도 폭발할 거 같은 퀸의 모습에 빨리 끝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무슨! 배춘석, 배춘석 소위!”

바닷물을 토하며 꺽꺽대는 배춘석. 뭐, 보다시피 내가 이겼다.

저 녀석이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기에 ‘군단의 심장’을 걸었고, 곧장 내게 무조건 충성하는 일개미가 됐다.

“끝났군요.”

“인정할 수 없소!”

김대성은 본인의 눈을 붉게 물들이며 교감에게 반박하고 나섰다. 이 대련의 불공정함을 열정적으로 설파하던 놈은 교감의 이어지는 한마디에 의해 침묵했다.

“저를 적으로 돌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볼살을 푸들푸들 떨던 김대성은 이내 용사 학교의 패배를 시인했다.

“그럼 약조한 대로 향후 50년간 귀 아카데미의 인적, 물적, 지적 자원은 본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에 귀속됩니다.”

“…평시에 개입은 없다 들었소.”

“물론이지요. 어디까지나 재난 상황에 대한 보험이니까요.”

귀속?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나는 돌아오는 헬기 안에서 교감에게 이번 대련에 대한 피드백을 받다 대뜸 물었다.

“교감님.”

“말씀하세요.”

“방금, 우리 아카데미빵 한 겁니까?”

살짝 웃은 교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한 학기 동안 지금과 같은 대련을 매일 하게 될 겁니다. 끝나고 나면 여러분의 대련행은 전설이 되어 있겠지요.”

전부 이긴다면 그렇겠지. 한 번이라도 지면 공인 매국노가 될 테고.

아무튼 판타스틱 듀오 강의의 정체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원정 도박이었다.

* * *

“기가라이트닝입니다. 히어로 명처럼 번개를 다룹니다. 독학으로 마법을 배우는 데 한계를 느껴 강의를 신청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38개의 마법 학파들에 대하여 강의는 신입생 세 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매저드 교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정면 홀로 보드에 세 줄의 문장만 적혀 있었다.

[1. 자기소개]

[2. 신입생에게 기초를 가르칠 것.]

[3. 서로의 마법 또는 특성을 견식 할 것.]

“저는 안나벨이고요. 프리실라 언니, 아니. 교감 선생님이 추천해주셔서 왔어요.”

유령이 마법이라. 흥미롭긴 하다. 영적인 마법사들, 특히 내 본진 네크로 학파에서 아주 환장할만한 연구 소재다.

‘샤아에게 소개해주면 좋아하겠어.’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의 시선이 푸른 머리칼을 한 1학년 소녀에게 향한다.

소녀는 못 이기는 척 의자로 바닥을 긁으며 일어나더니.

“FF.”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한 마디 뱉고는 다시 앉는다.

“안토니오 골든우드다. 매저드 교수님의 정식 제자이고 일단은 소환 학파 소속이다. 그런데 FF. 네 자기소개는 그게 끝인가?”

“응.”

“건방진! 후, 기회를 주마. 다시 제대로 소개하도록.”

안토니오. 너 언제 이렇게 꼰대가 됐냐. 한국인으로서 정말 자랑스럽구나.

“내게 명령하지 마.”

“이!”

단박에 강의실 전체를 덮는 영역을 전개한 안토니오. FF도 뭔가를 느꼈는지 급하게 얼음꽃을 구현했으나 사방에서 집약되는 번개에 의해 수증기조차 남기지 못하고 증발한다.

상극.

막대한 열을 품은 번개에 얼음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녀석, 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영역의 완성도가 상당하다.

‘속성 부여가 능숙해졌다.’

안토니오의 영역은 번개 속성이다. 이 정도 농도로 영역을 유지하려면 소모하는 마나가 상당할 텐데도 멀쩡한 거로 보아 전체 마나량도 꽤 늘린 모양이다.

알아서 무럭무럭 잘 커 주는구나. 기특한 것.

녀석의 짙은 금발을 툭툭 두드리자 인상을 쓰며 내 손을 쳐낸다.

“네놈도 건방져!”

“알았으니까 그만해라. 얘 울겠다.”

“누가 울어!”

빽 소리치는 FF.

“저 봐라. 애잖아. 어른인 네가 참아.”

FF는 이를 악물었고 안토니오는 헛기침하며 영역을 거둬들였다.

“남만혁이다. 다들 안면은 있으니 장황한 소개는 필요 없을 테고. 이거 하나만 기억해.”

눈을 반짝이는 기가라이트닝,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안나벨, 찡그린 얼굴의 FF.

“내가 이놈보다 세다.”

그리 말하며 안토니오 골든우드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녀석이 부엉이처럼 고개를 홱 돌리고는 험한 말을 쏟아냈다.

“—끼가! 좋다, 오늘에야말로 결판을 내자. 지하로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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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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