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18화 (118/201)

<118화>

38개의 마법 학파에 대하여 (1)

안토니오를 도발한 이유는 별거 없다. 매저드 교수가 적어둔 ‘서로의 특성과 마법을 견식 할 것’ 때문. 말로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보단 그냥 한 판 붙어보는 게 빠르지 않겠는가.

강의동 지하의 가장 구석 대련장. 이곳은 어느새 우리 강의 전용 공간이 되어 있었다. 1학년 내내 지지고 볶다 보니 애들이 알아서 피하더라.

“준비됐나?”

안토니오 골든우드. 방금 버럭할 때는 여전하구나 싶었는데, 마주하고 보니 묘하게 분위기가 변한 느낌이다.

“겨울 방학 때 본가에 갔다 왔냐?”

“네가 그걸 어떻게? 또 스승님이랑 훔, 지켜본 거냐.”

나도 합숙이다 뭐다 바빠서 그럴 여유는 없었다. 애초에 스승님이 제안하지도 않았고.

“가문에서 뭔 소리 듣긴 들었나 보네. 지금이라도 마탑으로 적을 옮기는 게 어떻겠냐, 사실 너를 배척한 게 아니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일부러 외면한 거다. 라던가?”

입 닫고 노려보는 꼴을 보니 비슷한 말을 듣긴 했네.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마법이나 연습해.”

“다 안다는 듯이 지껄이지 마.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얼마 전, 리쳇은 내 주변인 호구조사를 끝마쳤다는 보고를 올렸었고 거기엔 안토니오 골드우드에 대한 것도 적혀 있었다.

안토니오가 태어나는 날부터 지금까지의 생애를 읊어 녀석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도 성장의 동력이 되겠으나 지금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매운맛만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니.

“증명해.”

“뭐?”

“네가 누군지 증명하라고. 나는 네가 왜 아카데미로 돌아왔는지, 가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관심 없어. 그냥 장래가 기대되는 히어로 하나가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보낸 거 같아 짜증이 난 거지. 뭐, 안 봐도 알 거 같긴 하네.”

“…지금 그 말. 후회하게 될 거다. 하늘을 지탱하는 찬란한 금빛 나무여 나의 부름에 응하라!”

마법봉 형태의 정령을 꺼내 허공에 휘저으며 주문을 외우는 안토니오. 확실히 1학년 때에 비하면 영창의 길이가 상당히 단축됐다.

여기서 포인트는 주문 중 금빛 나무라는 단어. 저거 가문 마법이다. 직계만 배울 수 있다는 마법인 거 같은데. 그런 걸 녀석이 쓴다는 건, 어찌 되었든 가문의 장로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는 거다.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녀석의 영창이 끝났다.

“격살!”

마법봉 끝으로 나를 가리키며 흉흉한 단어를 뱉는 녀석.

딴 애들한테는 말로 틱틱대긴 해도 대련에선 나름 신사적인 녀석인데, 유독 나한테는 힘 조절 없이 저런다.

나는 대련실 천장이 샛노랗게 물드는 광경을 눈에 담으며 입을 열었다.

“위즈, 블랙 위치.”

꾸물럭.

행동과 대화를 넘겨주지 않는, 코스튬 상태로만 변한 위즈가 사념을 전해온다.

불만이 담긴 의사였는데, 당장은 저 번개 다발을 막아야 해서 답할 시간이 없다.

영역, 전개.

포이즌 에어리어.

영역을 펼친 덕에 벼락의 위력과 속도가 느려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인간의 몸으로 피할 수 있는 속도는 아니었다.

‘위즈, 신체 강화.’

영역을 압축하고 팔로 급소를 가리는 순간, 내게 수십 개의 번개 줄기가 작렬했다.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휩쓸었고 나는 대련장 구석으로 꼴사납게 튕겨 나갔다.

바닥을 구르다 고통이 없음을 인지하고 팔을 살피니, 검은 연기가 내 몸에 잔류하고 있는 스파크를 밀쳐내고 있었다.

‘어비스 포그?’

게임에 등장했던 블랙 위치의 호신용 마법이 위즈의 사념을 통해 내게 전달되었다.

최대 마나량에 비례한 방어 마법으로, 자랑할 거라곤 마나량밖에 없는 내게 최적의 호신 주문이라 하겠다.

그을음 하나 묻지 않은 옷자락을 툭툭 털며 일어나자 안토니오가 방금의 기세는 어디 갔는지 주춤, 뒤로 물러난다.

“얏하! 이제 제—”

내 입을 움직이는 위즈에게 신체 강화를 급히 반납하고 대화의 권한을 되찾아왔다.

“—내 차례다. 삼식아. …응?”

돌고곡.

고대 시대 바이킹이나 쓸 법한 뿔 투구를 착용한 채 나타난 삼식이.

‘삼식이 안광이 원래 이렇게 짙었던가?’

그뿐만 아니라 뼈 곳곳에 묻은 걸쭉한 녹색 액체. 어디 늪지에서라도 놀고 온 건가. 나중에 물어봐야겠네.

“삼식아, 저거 치우자.”

돌곡.

나는 녀석이 곧장 매직 미사일을 뿌릴 줄 알고 느긋하게 한발 뒤로 물러나 팔짱을 꼈다.

그러나 삼식이는 투구를 벗고 바닥에 양손을 댄 채 안광을 꺼트린다. 처음 보는 행동인지라 놀랐으나 녀석은 항상 내 기대에 부응해왔으므로 일단 믿고 기다렸다.

안토니오가 나와 삼식이를 번갈아 보다 기회를 잡았다고 여겼는지,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저놈 저거, 진짜 이길 생각밖에 없네.

녀석의 주문은 번개의 창을 불러냈고 이번에도 내 영역을 관통해 쏘아져 왔다.

아까도 그렇고 내 영역이 이리 쉽게 뚫리는 거 보면, 나를 겨냥해서 연습한 주문들이 분명하다.

하는 수 없이 위즈에게 다시 검은 연기를 불러내 달라고 요청하려는 찰나.

뿅.

삼식이의 두개골에 고양이 귀가 돋아났다.

저게 뭔, 윽.

삼식이가 앞으로 손을 뻗자 막대한 양의 마나가 빨려 나간다. 위즈가 내 몸을 떠받치지 않았으면 쓰러졌을 정도의 현기증이 일었다.

마나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간 삼식이의 손끝에선 새까만 구슬이 응집되고 있었다.

사방에서 그림자를 빨아들이는 듯한 광경. 이어 나를 향해 쇄도하던 번개의 창이 구체에 적중하였으나 어떤 현상도 일으키지 못한 채 사라졌다.

신기하네, 원리가 뭐지 이거. 그나저나.

“삼식아, 죽이지 마.”

돌, 돌곡.

어깨를 움찔하며 긍정하는 삼식이.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는 사념이 돌아왔으나. 글쎄, 내 눈에는 아니었다.

토끼를 사냥하는 호랑이의 모습이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내 경고 이후 검은 구체가 흡수를 멈췄고, 그곳에서 검은 매직 미사일이 대량으로 튀어나왔다.

캉!

안토니오가 다급히 실드를 중첩해 쌓아 막으려 했으나 단 하나의 검은 매직 미사일에 의해 모조리 파괴되었다.

안토니오의 코앞에서 멈춘 채 회전하는 검은 미사일.

“…졌다.”

토하듯 나온 녀석의 패배 선언.

돌고오오옥!

전투가 끝나기가 무섭게 내게 달려들어 품에 안기는 삼식이.

“왜 그래, 힘들었어?”

안광이 흐물흐물하게 변하는 삼식이. 전해오는 사념은 놀라운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선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선배님들. 존경합니다!”

우리 대련을 지켜보던 기가라이트닝이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인사를 박는다.

“지금 날 놀리는 거냐?”

저거 또 삐딱선 타네.

중재를 위해 걸음을 옮기기 직전, 기가라이트닝이 먼저 안토니오 앞에 섰다.

“절대 아닙니다! 저는 안토니오 골든우드 선배님처럼 되고 싶은걸요. 방금 보여주신 그 천재적인 번개 주문 운용은 정말…, 제가 꿈에서나 그리던 모습이었습니다. 날뛰는 강아지 같은 번개 속성 마나를 어떻게 그렇게 잘 다루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큼! 나는 번개 소환 주문을 쓴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번개 그 자체를 다루는 게 아니라 중간에 소환이라는 메커니즘을 한 번 거치기 때문에—”

안토니오. 스트레이트 타입에 약하구나.

저쪽에서 번개 마법에 관한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안나벨과 FF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너희는 어쩔래.”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는 두 소녀. 이렇게 보니 둘 다 냉기를 다뤄서 그런지 은근히 분위기가 비슷하다.

“할게요. 대련.”

대련장 중심으로 걸어간 FF가 자기 상반신만 한 얼음꽃을 구현한다. 외형은 영락없이 장미인데 줄기 아래로 이어지는 얼음 덩굴이 끝도 없이 자라난다.

FF는 얼음 덩굴이 대련장 절반을 덮고 나서야 준비됐다는 신호를 보냈고 나는 미르토스 해변을 구현했다.

“아.”

허무하게 가라앉는 얼음 덩굴들. 아직 적도를 얼렸을 때처럼 해수를 빙하로 만들 만큼의 숙련도는 쌓지 못한 모양이다.

“치사하네, 그거. 만능이잖아.”

불퉁한 얼굴의 FF. 구현계 특성은 각성자의 상상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만약 내가 바다와 해안을 분리해서 구현한다는 발상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상대나 상대의 능력을 물속에 빠트려 무효화시키는 건 어려웠을 거다.

그리고 실제 구현의 경우 본인의 의지력에 비례해 지형 변화도 가져올 수 있기에 개인의 역량에 따라 활용도가 큰 폭으로 차이가 날 수 있다.

이를 잘 풀어서 설명하자 FF가 본인이 구현한 얼음꽃을 움켜쥐며 말했다.

“나도.”

“응?”

“나도 도와줘.”

“갑자기?”

“그레이스 멜론, 마가렛 예프소비치, 도수정, 소구경. 전부 당신과 만난 뒤로 강해졌어. 특히 스위프트는 당신을 은사처럼 여기고 있던데.”

스위프트는 아직도 나를 아카데미에서 고용한 외부인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반응했겠지. FF는 그걸 은사에 대한 예의로 여긴 걸 테고.

‘자식들, 잘해줬구만.’

FF가 내 소문을 수집할 거라는 건 예상했다. 나 같아도 학생이 감독관을 맡은 데다 꼰대처럼 이래라저래라해대면 욕을 하기 위해서라도 알아봤을 테니까.

“내가 아니었어도 강해졌을 거다.”

아, 한 명만 빼고. 본인은 부인하겠으나 도수정은 내 덕이 맞다. 그 사기적인 단절 특성을 무의식적으로 안 좋다 여기고 있어서, 정신 상태 뜯어고치느라 학년 초에 좀 괴롭혔었다.

“그래도!”

“너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안달복달 안 해도 아카데미 커리큘럼만 잘 따라가면 강해지게 되어 있어.”

턱을 내리고 나를 노려보는 FF. 눈깔 무섭네 저거. 미래의 슈퍼빌런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괜히 주춤하게 된다.

“어휴, 그러면 너도 마운틴 짐에 오던가.”

“그래도 돼?”

얼음장 같던 얼굴이 밝게 변한다. 나는 귀찮음을 한껏 연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답이 떨어지자 주먹을 가볍게 흔들며 기뻐한 FF는 알았다는 말과 함께 본인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좋아. 마운틴 짐 클럽에 FF를 소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중에 저 녀석이 빌런이 되더라도 지금의 인연을 생각해서 한 번은 살려주겠지. 최소한의 안전 확보. 지금은 그거면 됐다.

“안나벨.”

“꼭, 대련을 해야 하나요? 능력을 보여주는 거라면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되잖아요.”

내가 대련장을 끌고 온 이유를 알아챘나 보다.

“그러던가, 대신 전력으로 해.”

“전력이요? …잠시만요, 전부 방출하는 건 오랜만이라.”

한동안 혼자 끙끙대던 안나벨이 얍! 하는 가벼운 기합과 함께 전신에 힘을 주자 그녀를 기준으로 내뿜어지던 한기가 일시에 팔방으로 방출되었다.

대련장 구석에서 기가라이트닝과 대화를 나누던 안토니오 골드우드가 당황하며 영역을 전개한다.

“썬더 콜 에어리어!”

나 역시 급속도로 떨어지는 온도를 감지하고 영역을 구현해 FF를 보호했다.

“미, 미안해요. 너무 오랜만이라…. 다들 죽은 거 아니죠?”

영역 밖으로 블리자드를 방불케 하는 혹한의 추위가 불어닥치고 있었다.

“안 괜찮으니까 빨리 어떻게 해봐.”

“앗, 살아계셔서 다행이에요. 당장 흡수할게요!”

대련실 전체에 휘몰아치던 냉기 폭풍이 안나벨의 어깨 뒤로 빨려 들어간다. 여기서 보면 꼭 얼음과 눈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펄럭이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어떤가요?”

눈치를 보며 물어오는 안나벨.

“애들 얼굴 보면 알잖아.”

턱이 빠질 듯이 입을 벌리고 안나벨을 바라보는 삼인방.

“괴물…. 같죠?”

녀석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