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38개의 마법 학파에 대하여 (2)
그 사람의 입에서 평소 언행과 어울리지 않은 단어가 나왔다면, 누군가에게 그 말을 들어 상처로 남은 단어일 가능성이 크다.
괴물이라, 우습다.
“고작?”
“네?”
“요즘 세상에 고작 그 정도로 괴물이라 자칭하면 비웃음 받아. 막말로 네가 괴물이면 냉동창고는 괴물의 신이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됐고 다른 거 해봐.”
인간 운석이 바로 위층에 살아 숨 쉬고 있는데 괴물은 무슨.
“어…, 다른 거요?”
바닥을 보던 안나벨의 고개가 다시 들린다.
“유령 같은 건 다 할 수 있다며.”
“아, 네. 벽 통과할 수 있어요.”
“그게 다야?”
“그런…데요?”
“에이.”
“…에이?”
살짝 흔들리는 눈썹.
“됐어.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다음. 기가라이트닝. 나와.”
부들부들 떠는 안나벨이 대련실 벽에 기대자 FF가 다가가 어깨를 두드린다. 둘이 뭐라 대화를 나누는데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한차례 쏘아본다.
왜 저래.
“예, 선배님. 부르셨습니까.”
“너는 어떻게 할래, 대련? 시연?”
“대련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냐. 해 봐.”
“시작하기 전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제 특성은 두 개입니다.”
내가 됐다고 말하기도 전에 기마자세를 취한 기가라이트닝이 우오오, 하며 기를 모으는 시늉을 하자 전신에 스파크가 일기 시작한다.
“하나는 ‘초전도’. 특성 명 그대로 제 몸을 초전도체로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옷 위로만 굴러다니던 스파크들이 놈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흡! ‘밀폐’로 이렇게 제 몸에 들어온 스파크를 가둘 수 있습니다.”
기가라이트닝의 몸이 번갯불처럼 번쩍거린다. 특히 동공이 사라진 눈과 청백색을 띠는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이 스파크들이 제가 익힌 유일한 마법입니다.”
그렇게 자기소개를 마친 기가라이트닝은 파이트 자세를 취하더니 대뜸 의미심장한 어투로 경고를 날렸다.
“아까처럼 바다는 구현하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왜?”
“소금물은 전도체니까!”
빠르다.
눈꺼풀이 한 번 오르내리는 찰나에 녀석은 이미 내 눈앞에 있었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얼굴에 주먹이 닿았다.
퍽!
상당한 충격이었으나 순간적으로 위즈에게 신체 강화를 받아왔기에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선배님, 조심하십시오. 제 번개는 두 번 칩니다.”
왜 멀리서 쪼개고 있나 했더니, 저 경고를 하고 싶었나 보다.
콰쾅!
녀석의 주먹을 통해 건너온 스파크가 내 얼굴에서 폭발한다. 귀가 먹먹해지고 시야가 흔들렸다.
강하긴 한데, 블랙 위치의 슈트로 버틸만한 수준.
“괜찮네. 너 강의 뭐 듣냐.”
“파이브 파이트 리그랑 텅스텐카우 교수님의 인체 한계 극복 강의 듣습니다!”
그 체력 마초의 강의를 자진해서 듣는 인간이 있다니.
“잘하고 있네. 그거 다 듣고 여유 있으면 마운틴 짐에 와라.”
“헉, 고맙습니다! 꼭 가고 싶습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한 기가라이트닝이 안토니오에게 돌아가려 하기에 멈춰 세웠다.
“야, 어디가.”
“예?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너는 대련을 골랐고. 아직 승부는 안 났잖아?”
나만 처맞다 끝나면 대련이 아니지?
“그건…, 그렇습니다.”
의아해하며 자세를 잡는 기가라이트닝.
“두식아.”
덜걱.
내 주변으로 열리는 검은 구멍들.
응? 이거 왜 이렇게 커. 크기뿐만 아니라 구멍의 숫자도 두어 달 전에 비해 몇 배나 많다.
비교적 작은 구멍들에선 낯선 해골들이 우르르 튀어나왔고 그 뒤의 큰 구멍에선 블랙 팽이. 마지막으로 천장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곳에서 두식이가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다.”
덜거걱, 덜걱.
두식이는 인사와 함께 그간 유황 지대에서 벌어진 일들을 사념으로 보내왔다. 긴 이야기를 요약하면, 유황 지대에 존재하는 세 개의 성을 차지해 진정한 영주가 됐단다.
“축하한다. 너도 고생 많았네. 온 김에 좀 쉬었다 가.”
별것 아닌 인사치레에 불과함에도 안광이 거세게 흔들리는 두식이. 내 목소리를 듣고 싶었단다.
“아, 그전에 저거 겉멋 좀 빼주고.”
사색이 된 기가라이트닝을 가리키자 두식이가 전신에서 녹연을 피워올리며 팔목에 걸고 있던 뾰족한 쇠고리를 주먹에 끼운다.
팔찌가 아니라 너클이었구나.
뻐억—
두식이는 한 번의 걸음으로 기가라이트닝의 도주를 따라잡고는 주먹을 휘둘러 녀석의 정수리를 강타.
마지막 순간 죽이진 말라는 내 의사를 감지해 뾰족한 부분으로 가격하진 않았다.
털썩.
기가라이트닝이 기절하자 그의 몸에 갇혀 있던 스파크들이 풀려나며 바닥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다 사라졌다.
두식이에게 들어가는 마나가 점점 늘어날 때 뭔 일이 생긴 거 같긴 했지만, 이 정도로 강해졌을 줄이야.
“잘했어. 언데드 클럽에 가서 쉬어. 때 되면 알아서 돌아가고.”
덜걱.
다른 해골들은 돌려보낸 채 블랙 팽만 데리고 대련실을 나가는 두식이. 내가 이동시켜줘도 되지만, 바깥 구경도 시킬 겸 내버려 뒀다.
시간을 보니 아직 강의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올라가자. 안토니오, 네가 후배 챙겨.”
“언데드 조련사 주제에 명령하지 마라.”
나는 녀석에게 대꾸하는 대신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 쳐다보고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철이 없는 동생이 기어올라도 받아주는 마음 넓은 형처럼 말이다.
“이, 이!”
* * *
강의실로 돌아오자 거기엔 매저드 교수와 그 주변으로 떠 있는 책들이 보였다.
또 신기한 거 하고 계시네.
“자네들 왔는가.”
“예.”
“스승님. 격조하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기가라이트닝입니다!”
“…안나벨이에요.”
“허허, 자습을 잘 수행한 듯하구먼. 앉게나.”
매저드는 나를 비롯한 학생들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보더니 대뜸 공중에 띄워둔 책을 가리켰다.
“보이는가?”
“이, 이건 신비 학파의 마법서가 아닙니까!”
네 권 중 하나에만 신비 학파의 문양이 박혀 있었다. 저놈 기준으로 다른 마법서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건가?
“자네가 갖게.”
“허억! 스승님!”
매저드 교수의 소매를 붙잡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안토니오.
“교수님, 이 마법서는 무엇입니까?”
기가라이트닝이 가장 왼쪽에 있는 마법서를 가리킨다.
그런데 매저드가 답하기 전에 안토니오가 눈을 부릅뜨며 기가라이트닝의 팔을 움켜쥔다.
“무슨 소리지?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장난이라면 당장 그만둬라. 귀한 마법서를 구해오느라 피곤하신 스승님 앞에서 할 짓이 아니다.”
“예? 이거 안 보이십니까?”
…아하. 지금 보니 애들의 시선이 전부 제각각이다. 보이는 책이 다 다른 거지.
“내가 설명을 잊었구먼. 지금 이 강의실에는 38권의 책이 존재한다네. 우선 이리 와서 보이는 마법서를 가져가시게. 설명은 그 뒤에 하겠네.”
FF, 안나벨, 기가라이트닝은 전부 파란색 띠가 둘린 마법서를 쥐었다.
“색깔 띠는 내가 임의로 붙여둔 걸세. 파란색은 어린 마법사가 익히기에 적합한 기초 마법이지. 무얼, 실망하지 말게나. 그 마법을 익히면 다음 단계는 내가 가르쳐 줄 터이니.”
기가라이트닝은 환호했고 다른 둘도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스승님, 저는 붉은 띠입니다.”
“음, 그건 ‘번개의 길’이라는 마법일세. 적의 몸속에 전격 유도체를 심는 신비 학파의 주문이지. 자네랑 잘 어울리는구먼.”
“아아! 제자, 최대한 빨리 익혀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기대하겠네.”
“예!”
나를 제외하고는 한 권씩만 보였는지 고민 없이 골라간다.
“살펴봐도 되죠?”
“그러게나.”
내게 보이는 책은 파란 띠, 붉은 띠, 검은 띠 하나씩이다. 먼저 파란 띠 책을 잡아 펼쳤다.
[염동 학파]
[손 안 대고 양말 벗기]
염력으로 물건을 옮기는 마법이었는데, 일정 이상의 마나를 투자하면 폭발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문구를 보고 덮었다.
[신비 학파]
[한 평 기우제]
붉은 띠의 책. 1L의 물을 소모해 한 평 크기의 범위에 비를 내리게 하는 마법이었다. 그냥 물뿌리개 쓰기로 하고 덮었다.
[악마 학파]
[마왕 소환]
검은 띠의 책에는 다른 세상에서 마왕이라 칭해지는 생명체와 계약을 통해 일정 시간 지구에 머무르게 하는 마법이었다.
이것도 그냥 덮으려다가 문득 이고강이 떠올라 일단 킵해두기로 결정.
“…소환이라, 자네답구먼.”
앞의 두 글자를 말하지 않은 매저드가 턱수염을 쓸며 나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본다.
“이거로 하죠.”
“괜찮겠나? 미리 말하네만, 나는 도울 수 없네.”
책 내용을 살피니 마법진에 관한 지식과 재료들만 있으면, 마법 자체의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예, 뭐…. 다른 두 마법보다는 이게 낫네요.”
매저드 교수는 내게 가까이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식적으로는 아직 성공 사례가 없네만, 금서일세.”
매저드 교수의 말에서 묘한 뉘앙스를 느껴 되물었다.
“소환했군요?”
“비공식적으로는 그렇지. 마왕이 소환된 해에 인류의 3할이 기아로 죽었다네.”
저게 사실이면 무서운데.
“안 할랍니다. 그냥 돌려드릴게요.”
안 그래도 그블린 때문에 골치 아픈데, 괜한 호기심으로 마왕 소환했다가 재난이 일어나면 나만 귀찮아진다.
“걱정하지 말게나. 당시에는 마왕과 대적할 만한 히어로도 없었을뿐더러 지금처럼 문명이 발전하지 못한 시대였기에 일방적으로 당한 걸세. 현 인류는 재난을 정복했지 않은가.”
하기야 히어로 시대 다음은 불사의 시대가 도래할 거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만큼 인간에게 최적화된 문명을 짜 올렸다는 이야기겠지.
뭐, 그블린에 쓸려나가는 꼴을 봐서 그런지 큰 신뢰는 안 간다만.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자네가 위태로울 일은 없을 테니,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게.”
오…. 이건 약간, 큼. 그블린 침공 때는 이 사람이 없긴 했다.
“그럼 스승님만 믿고 지릅니다?”
“허허.”
* * *
야심한 새벽. 나는 지금 남산의 깊은 곳에서 언데드들을 불러 마왕 소환 마법진을 그리고 그 위에 간이 제단을 설치한 뒤 필요 재료들을 올리는 중이다.
“두식아, 네가 진짜 복덩이다.”
덜걱.
쑥스러워하는 두식이. 그런 두식이를 놀란 듯 바라보는 부하들.
“이 정도면 됐겠지.”
놀랍게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악마의 뿔과 유황의 정수가 두식이네 성 창고에 산처럼 쌓여 있다길래 그거 싹 가져와서 마법진에 올려놨다.
마법진 위로 탑처럼 쌓인 악마의 뿔들. 내가 만들고도 꽤 예술작품처럼 보여서 배경으로 두고 셀카를 좀 찍은 뒤, 마나를 불어 넣었다.
“삼식아.”
돌곡!
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삼식이가 내 다리를 부둥켜안고 내가 밀어 넣는 마나를 증폭시킨다. 원리는 매직 미사일이랑 유사하다. 수백 배로 불어난 내 마나가 마법진을 가득 채우다 못해 빛기둥을 쏘아 올릴 때쯤 되자, 신호가 왔다.
요동치는 음차원 마나,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회색 안개, 옅은 혈향. 여기까지는 꽤 분위기 있는 등장이었으나.
“이 몸을 부른 자여 이름을— 억, 컥! 뭐, 뭐야. 아악!”
비쩍 곯은 놈이 튀어나왔다. 느껴지는 마나도 형편없는 데다 못 생겨서 두식이에게 미리 약속했던 신호를 보냈다.
“뛰어.”
두식이는 아직 1할도 채 들어가지 않은 뿔 산의 정상에서 부하들과 함께 점프를 해댔고 그때마다 저 소환된 마른 오이 같은 놈은 비명을 질러대다 결국, 사라졌다.
그렇게 별 같잖은 놈들이 마왕이랍시고 으스대며 튀어나올 때마다 이고강과 두식이를 동원해 돌려보냈다.
그러다 뿔 산의 9할이 들어갔을 때쯤.
챙.
이고강이 처음으로 검을 뽑아 마법진을 겨눈다. 흘러나오는 마나도 예사롭지 않고, 이번에는 진짜 마왕인가?
“본마는 인큐버스의 왕, 가이게이다. 네놈이—”
“처넣어.”
이름부터 X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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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