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21화 (121/201)

<121화>

마왕 소환 (2)

지구,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남산 깊숙한 곳.

“너는 검을 잘 쓴다고? 고강아.”

챙!

이고강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검을 놓친 마족이 마법진 위에 숙녀처럼 주저앉았다.

“이놈도 꽝이네. 두식아, 돌려보내.”

짜악!

사정없이 마족의 뺨을 치는 두식이.

“아악!”

처음에는 마법진에 다시 구겨 넣으면 돌아가는 줄 알았으나 저쪽에서 넘어온 쪽지에 의하면 죽는다더라.

계속 죽으면 소환에 응할 마족이 없겠다 싶어 살려 보낼 방법을 궁리하던 중, 두식이가 내게 조언했다.

심계의 영주인 자신에게 ‘졌다.’ 판정을 받으면 강제로 돌려보낼 수 있단다. 그렇게 침입한 귀족 놈들을 많이 처리했다고. 내가 신기해서 원리를 물으니 모른단다. 심계의 법칙이라나 뭐라나.

“점점 질이 떨어지네.”

마법진에서 나타나는 마족을 일일이 시험하는 중인데, 마음에 드는 놈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초반에 소환된 용 대가리가 좀 쓸만했었다. 건방지게 굴다가 일식이 선에서 처리돼서 그렇지.

이래서야 밤을 새운 보람이 없다.

“얌마.”

널브러진 마족을 부르자 녀석은 급히 바로 서며 차려 자세를 취한다.

“예, 위대하신 분이시여.”

“위대는 지랄. 됐고, 열 명씩 올려보내.”

“예?”

“한 번에 오라고. 못 올려보내면 네가 죽어.”

“반, 반드시 보내겠습니다!”

직후 두식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족이 사라졌고 이후 같은 제복을 입은 열 명이 긴장한 기색으로 나타났다.

“자기소개.”

두식이가 가져온 의자에 앉은 내가 한마디 하자 그들은 들은 게 있었는지 잠시 당황하다가도 이내 한 명씩 본인의 프로필을 읊었다.

“다 비슷하네?”

“예! 저희는 같은 기사단입니다.”

그러고는 내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든다. 방금 돌아간 놈이 아무래도 설명을 잘한 모양이다.

“일식아, 네가 수고 좀 해라.”

달각.

냉병기가 절반, 나머지는 정령과 마법을 다뤘다. 시험 결과, 전과 마찬가지로 내 눈에 차지 않았다.

“탈락.”

짜자작!

이젠 알아서 두식이가 뺨을 올려붙인다.

다음엔 노래의 기사단이라는 마족들이 소환됐고, 특이하게 칸탄테처럼 노래에 힘을 담는 기술을 써댔으나. 대단치 않았다.

이런 식으로 다시 하루가 지날 동안 온갖 마족들을 만났다.

“저를 호위해주시면 수익의 3할, 아니 5할을 드리겠습니다!”

상인.

“그대의 뒤를 봐주마. 속에 품고 있는 웅대한 꿈이 있을 테지? 심계에서 마음껏 펼쳐보게.”

귀족.

“떠밀려서 올라왔어요…. 근데 진짜 위대하신 분이세요?”

시민.

어느 순간부터 전투와 관계없는 마족들이 소환되기에 이유를 물으니.

“마왕님이 죽어서 다들 떠났어요. …그게 아니어도 마왕님보다 강한 사람은 없으니까, 위대하신 분이 만족하실 리가 없대요.”

맞는 말이다. 당장의 능력만 봤으면 께름칙하긴 해도 자기를 마왕이라 소개하던 놈과 계약했겠지.

하지만 내 기준은 ‘수십 년 뒤에 벌어질 그블린 전에 이놈을 써먹을 수 있는가.’였고. 소환된 마왕은 이에 부합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를 ‘노예’라고 부르길래 고강이에게 처리하라는 신호를 줬었다.

“너희 성에 몇 명 사냐.”

“잘은 모르지만…. 한 2천 명?”

두식이에게 사념으로 2천 명이면 어느 정도 규모냐고 물으니 ‘시골’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시 말하면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을 제외한 이들은 내가 거의 다 봤다는 소리가 된다.

‘음.’

심계는 성마다 다른 문화가 존재하고 사가의 성은 마왕 자리를 제외하면 모든 것을 무력으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이가 있는 이들 대다수는 싸움을 배웠을 테고, 성장함에 따라 도태된 자와 두각을 드러낸 자가 갈렸겠지.

지금까지 소환에 응한 인들은 전원 두각을 드러낸 성인이었을 테고.

“어른은 됐고. 애들 보내봐.”

“어린애요?”

혐오가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이름 모를 마족.

“눈깔 확. 어떤 분야든 재능 있는 애들 마법진에 올려. 불안하면 부모가 같이 와도 좋고. 합격하면 내가 키워준다고 해.”

“아! 예. 아악!”

녀석이 두식이에게 맞고 돌아간 뒤로 약 1시간. 어른 다섯과 아이 다섯이 소환됐다.

‘오.’

구름에 닿을 것처럼 치솟았던 빛기둥이 방금 확 줄어들었다.

‘마왕이 나타났을 때도 잠깐 넘실거리는 게 전부였었지.’

이 중에 마나를 잡아먹은 녀석이 있다.

“소개.”

“숲지기 겸 나무꾼 마를첸코입니다. 제 아들은 13살임에도 불구하고 마수목을 사냥할 수 있습니다.”

마수목이 뭐냐고 묻자 나뭇가지를 촉수처럼 사용해 생물의 정기를 빨아 흡수하는 괴물이란다.

입가를 씰룩이는 꼬마와 다른 부모들의 놀란 얼굴을 보니 꽤 대단한 일인듯하다.

“다음.”

“사가의 성에서 점술사를 하고 있는 뢰드로입니다. 제 딸이 가끔 예지몽을 꿉니다.”

“그럼 마왕이 죽는 것도 알았겠네?”

보랏빛 얼굴이 검게 변하는 점술사. 무어라 변명하려 하기에 내가 아이가 듣는데 거짓말을 할 셈이냐고 다그치자 입을 다물었다.

“무두 공방의 장인 올체요. 내 아들이 수사슴 가죽을 기가 막히게 벗깁니다. 허허허.”

거칠게 자란 수염을 긁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중년.

그냥 아들 자랑하러 온 아저씨였다.

“안녕하십니까, 마왕님의 집사였던 벨리카입니다. 제가 평생에 걸쳐 체득한 보좌법을 아들에게 모두 전수했습니다.”

벨리카는 귀족이었다. 반개해 내리깐 눈이나 행실에서 앞선 이들과는 다르게 기품이 엿보였다.

그가 등을 떠민 어린 마족 역시 다른 꼬마들과는 달리 제 아비처럼 가만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태도에서 상당히 고득점이기는 하나…. 집사는 필요가 없는지라.

“저, 저는.”

이쪽으로 치면 중학생이나 됐을까. 볼이 통통한 소녀가 등에 업고 있는 아기를 내게 보이며 입술을 한참이나 오물거리다 말했다.

“동생이 아파요…. 살려주세요.”

아마 내 유일한 약점이 아닐까 싶다. 일찍 어른이 된 여성과 그 여성이 돌보는 동생들.

아무래도 회귀 전의 소민 누나가 떠오르는 바람에 도저히 모른 체할 수가 없다.

의자에서 일어나 소녀에게 다가가자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물러진 않는다.

역시,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여성은 강하다.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 보니 열이 제법 높다.

이럴 때 반쯤 내 사람인 큐링 힐이 있으면 비밀리에 처리하기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지금 마를린에게 가 있는 상황.

어쩔 수 없나.

뚜르르.

“여보세요, 교수님. 아, 예. 스승님. 다름이 아니라 자문을 좀 구하고 싶어서요. 예, 소환 관련 맞습니다. 이쪽으로 오시겠다고요? 감사합니다.”

얼마 후 매저드 교수가 날아와 슥 훑어보더니.

“저 아이 때문에 부른 겐가?”

“맞습니다.”

“허허, 알겠네. 내 간만에 솜씨를 부려봄세.”

품에서 스포이드와 닮은 도구를 꺼낸 매저드가 고열에 시달리는 아기의 입에 그걸 넣었다.

잠시 후 스포이드를 꺼내 표면을 확인한 매저드는.

“시커로구먼.”

“시, 시커!”

마족들이 동시에 소녀와 아기에게서 멀어진다.

“시커면 치사율이 5할이 넘는 전염병 아닙니까!”

갖은 욕설이 부모들 입에서 튀어나왔고 소녀는 그럴 때마다 움츠러들었다.

“이미 중증일세. 퍼질 거면 진작 퍼졌겠지.”

안도와 불안이 섞인 얼굴의 마족들. 매저드는 그런 그들을 보며 혀를 차곤 품에서 분홍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자네들 변방 출신이구먼? 시커 특효약이 나온 지가 언젠데 그리 겁을 먹나. 자, 한 번에 들이키거라.”

아기에게 몇 가지 보조 마법을 걸어 액체를 부드럽게 삼킬 수 있게 한 뒤 분홍색 액체가 든 병을 입에 물리는 매저드.

아기의 열은 금방 가라앉았고 불규칙적이던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고맙습니다. 흑, 정말 고맙습니다.”

“내게 감사할 거 없네. 제자의 부탁에 온 것뿐이니. 그러면 나는 하던 연구가 있어서, 먼저 가네.”

“감사합니다. 스승님.”

매저드 교수가 등을 돌리기가 무섭게 메시지 마법이 날아와 내 귓가에 꽂혔다.

-여아는 전염병을 뿌리고 남아는 인근의 병을 흡수하는 특이 체질들이야. 둘을 어찌할지는 자네가 판단하게.

특이 체질? 이쪽의 특성이랑 비슷한 개념인가.

‘…치명적이었으면 스승님이 처리하셨겠지.’

“두식아, 이야기 좀 하자.”

덜걱.

저 둘의 체질에 관해 설명하자 두식이는 안광을 두개골 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다 대뜸 손뼉을 친다.

“여자는 역병술사, 아기는 성자로 키우자?”

두식이의 이야기에 따르면, 심계 영지전은 모든 수단이 허용되며 생화학 병기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쓴다고 한다.

이걸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군을 역병술사라 하는데, 살상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그런 면에서 저 소녀는 살아남기만 하면 성공이 보장된 역병술사인 셈.

바이러스라는 것이 본디 조금만 변형을 가해도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야 하니, 자기 체질을 제어하는 법만 익히면 걸어 다니는 병기가 되겠지.

반면, 병을 흡수하는 아기는 그걸 치료할 의학지식을 이쪽에서 가르치면 그야말로 성자가 될 거라는 의견이었다.

“그럴듯해.”

다만, 아기는 몰라도 소녀의 경우 당장 지구에서 육성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어설프게 실습하다간 바로 빌런 낙인이 찍힐 테니.

내가 고민을 거듭하자 두식이가 어째 기대하는 안광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하.

“이 자식. 꿍꿍이가 있었구만.”

덜걱, 덜걱!

절대 아니란다. 무조건 내 결정을 따를 거라는 두식이.

“됐어. 나도 그쪽이 맞는 거 같으니까.”

이 소녀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그블린의 전력을 대규모로 깎아낼지도 모른다. 그때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자.

나는 언데드 클럽 애들을 불러 모은 뒤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사가의 성. 우리가 먹는다.”

* * *

심계, 백수(白獸)의 성.

“마왕님, 그린시즈가 전 병력을 데리고 남하하고 있습니다!”

“전 병력? 모노이글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을 텐데?”

“이미 성은 모노이글에게 점령됐고 성에 남은 건 일반 시민 뿐이라 합니다.”

그린시즈가 차지한 유황 지대는 3개의 성이 서로를 보호하는 형태라 동시에 치지 않는 이상 공략이 불가능한 요충지다.

그런 알짜배기 성을 판 것도 아니고 버린 이유가 궁금해진 백수의 성 마왕은 특사를 파견하기로 결정.

“네가 가서—”

그러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성에 상주하는 마법사가 통신구를 들고 다급히 집무실로 들어왔다.

“마왕님, 그린시즈의 통신입니다.”

“직접?”

“예.”

마법사가 통신을 연결하자 구슬 속엔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머리를 조아리고 항복하라.]

백수의 성 마왕은 그린시즈의 오만한 선전포고에 분개하며 공성전을 준비하라 일렀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통신용 수정구를 성벽 위에서 떨어트리게끔 명령했다.

이는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는 심계식 퍼포먼스였다.

그것을 본 그린시즈, 두식이는 자신의 어깨 위에 앉은 여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진, 진짜 해요?”

덜걱.

소녀가 자그마한 손을 움켜쥐고 바르르 떨자 그녀의 머리칼 끝에서 백은 색의 실들이 튀어나와 백수의 성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소녀의 형편없는 제어력에 의해 실들은 민가 쪽으로 향했고 이에 두식은 역정을 냈다.

덜걱!

저 사람들을 전부 네 동생처럼 아프게 만들 생각이냐는 질타에 소녀는 고개를 흔들며 필사적으로 백은의 선들을 잡아끌었다.

“으으!”

내성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시종의 몸에 간신히 선을 안착시킨 소녀는 기진맥진해 늘어졌고 두식은 잠시 기다린 후 마왕의 죽음에 소란이 이는 모습을 마이크로 드론에 달린 카메라로 확인한 뒤 성을 향해 단신으로 돌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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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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