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진영웅
보글보글.
“역시 라면은 신라면이지.”
선선한 봄바람이 부는 토요일 오후. 나는 컨테이너 앞에서 라면을 끓이는 중이다.
“됐겠지?”
뚜껑을 열자 올라오는 매콤한 향. 군침을 삼키는 것도 잠시, 바로 젓가락을 꽂아 탱글탱글한 면발을 흡입했다.
후르릅, 후릅!
주변은 흙이고 상의는 벗고 있는지라 힘껏 면치기로 빨아올려 밀면 고유의 식감을 혀와 안면으로 느끼는 그때, 품에 넣어둔 홀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보스 : 남만혁 학생 덕에 일이 쉽게 풀렸습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보세요.]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보스라고 저장된 사람은 교감이다. 일이라는 건 몽골의 히어로 아카데미들을 순방하며 반강제로 계약서를 쓰게 한 건을 말하는 거고.
5번의 내기 대련이 있었고 우리는 완승했다.
특히 마지막 두 곳은 팀 대전을 제의했었는데 내가 작정하고 퀸을 보조하니 상대 팀은 뭘 해보기도 전에 무력화됐다.
뭐, 사실 보조라고는 해도 그냥 입 털어서 도발한 거랑 결정적인 타이밍에 미르토스 해변을 구현해 상대가 유리했던 지형을 빼앗는 게 전부였지만.
어찌 되었든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면 퀸의 활약과 임팩트가 압도적이었다. 굳이 나에게까지 포상 같은 걸 할 필요는 없단 거지.
[나 : 사람 하나 찾아주세요.]
[보스 : 남만혁 학생은 겸양이 없어서 좋군요. 말해보세요.]
[나 : 나이 32~36, 키 170대 후반, 체중 80kg쯤. 전직 체조선수였고 현재는 평범한 영업사원일 겁니다. 한국인이고요.]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메일이 도착했고 거기엔 억지웃음을 지은 남자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보스 : 찾는 사람이 맞나요?]
[나 : 네.]
이야, 리쳇도 포기한 걸 어떻게 찾았데. 정부 기관 중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기록해두는 곳이 있다더니, 사실일지도.
[보스 : 남만혁 학생, 납치나 살해는 범죄예요.]
[나 : 잘 압니다.]
[보스 : 믿겠습니다.]
교감은 문제 생기지 않게 처신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톡을 끝냈다.
“참나. 사람을 뭐로 보고.”
마왕 소환 마법진을 그린지 일주일이 흘렀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심계 남부로 쾌진격 중인 두식이와 여정을 함께하고 싶었으나 곧 서울을 강타할 재난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강동의 절반을 날려버린 자식이 어떤 놈인가 한번 보자.”
교감이 보낸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누르자 프로필 한 장이 떠오른다.
[이름 : 진영웅]
[생년월일 : 2017 - 08 - 19]
[각성 여부 : X]
[직업 : 체조선수->회사원]
[배우자 : 서미려]
이 아래로는 그의 가족과 생애 이룬 업적들이 생활기록부 느낌으로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이런 거 말고, …여깄네.”
[실종 신고 일시 : 2052 - 04 - 01]
[실종 위치 :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동 xx길 인근으로 추정]
[그 외 : 신고를 받은 길동지구대는 인력 부족을 호소하며 실종자 탐색을 후순위로 미룸.]
길동지구대의 대처가 바로 얼마 뒤 벌어질 재앙의 원인이다.
나는 오랜만에 남산 지하로 내려가 창고에 박혀 있는 오래된 포터에 시동을 걸었다.
교감에게 잠깐 나갔다 온다는 톡을 보낸 뒤, 진영웅이 실종된 강동으로 직행.
CCTV가 없는 산길에 포터를 숨기고 화장실로 들어가 다크 넥서스로 변장했다.
“아, 아. 큼.”
목소리까지 조율을 마치고 실종된 장소로 가자 4살짜리 아이의 손을 잡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여성이 보였다.
“부탁드립니다. 제 남편이에요. 보시면 꼭 전화주세요.”
나는 인근 보도블록 위에 발자국이 찍힌 전단지를 주워 들어 살폈다.
방금 메일에서 본 어색하게 웃는 남자의 얼굴.
[실종된 남편을 찾습니다.]
[이름 : 진영웅]
[연락해주실 번호 : xxx-xxxx]
[사진]
전단지를 들고 진영웅의 아내에게 걸어가 물었다.
“도움이 필요한가?”
“…네? 아,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아해하던 그녀는 나를 히어로로 착각했는지 허리를 굽히며 감사 인사를 한다.
“일단 여기서 지켜보지.”
여자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준다.
‘슬슬 나타날 텐데.’
서미려와 4살 꼬마는 곧 죽는다. 그게 돌아온 진영웅이 타락한 이유고.
빠아아앙!
왔다.
8톤 트럭 운전사의 경악한 얼굴. 방금까지 졸았던 모양인지 입가에 침이 그대로 있다.
여자와 아이를 향해 나아가는 차의 진행 방향에 준비하고 있던 넥서스를 구현, 부상시켜 트럭을 막았다.
엄청난 충돌음이 울렸고 트럭의 기사는 그대로 사망.
넥서스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난간에 걸쳐져 있던 트럭이 장난감처럼 도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제독님을 뵙습니다!”
경례를 올려붙이는 기드빈과 이지욱, 마이클. 손짓으로 그들의 인사를 받고 나와 함께 갑판 위에 올라탄 서미려에게 다가갔다.
바들바들 떠는 모자.
그들이 진정되길 기다릴 셈으로 말없이 서 있자 서미려가 대뜸 눈물을 흘리며 내 바짓단을 붙잡고 늘어진다.
“아이만큼은 살려주세요!”
뭔 소리야.
“오해가 있는 듯하군.”
“다크 넥서스님. 제발….”
나를 아는 건가. 하기야 외관은 몰라도 부유하는 선박을 불러내는 건 내가 유일하니.
“말했다시피 오해다. 내가 다크 넥서스인 건 맞다만, 민간인을 공격하지는 않아. 큼, 이지욱!”
뒤에서 열중쉬어 자세로 대기 중이던 신입을 불렀다.
“…네.”
“이지욱 일병, 대답은 크고 빠릿빠릿하게 합니다.”
기드빈이 낮은 목소리로 채근하자 그 반항적이던 이지욱이 긴장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예, 써!”
오, 훈련 빡세게 시켰나 본데. 슬쩍 기드빈만 보이게끔 엄지를 세워주자 녀석이 씩 웃는다.
“무슨 일이십니까, 제독님.”
“가서 저 두 사람이 쉴 만한 선실로 안내하도록.”
“예, 써.”
걸어가는 그에게 기드빈이 안 뛰냐고 엄포를 놓자 부리나케 달려가는 이지욱.
얼떨떨해하는 서미려를 선실로 들여보내자 사방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웨에에에엥!
“다크 넥서스는 양손을 들고 투항하라! 저항하면 발포하겠다!”
경찰과 히어로들. 그들의 인상착의를 보니 길동지구대에서 나온 인사들이다.
재밌네.
나는 선원들에게 전투 준비 명령을 내린 뒤, 경찰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실종자 찾기를 대신해주는 것도 불만인가?”
“무슨 소리지?”
품에 넣어뒀던 전단지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경찰이 몰려있는 곳을 향해 날렸다.
정확하게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에게로 향하는 종이비행기.
“누구지?”
거칠게 전단지를 잡아 펼친 그는 옆의 경찰에게 보이며 묻는다.
“그제 실종 신고 들어온 실종자입니다. 지구대장님께서 골프 치러 가야 한다고 패스한 그 건이요.”
부하 경찰을 노려보는 지구대장. 저렇게 사람이 몰려있는데 큰 목소리를 낸 걸 보면, 저 경찰도 지구대장이 싫었던 모양이다.
“쓰읍, 내가 언제 패스라고 했나. 인력이 부족하니 며칠만 뒤로 미루자고 했지. …여하튼 다크 넥서스! 더 이상 시민을 학살하지 말고 투항해라!”
“학살? 내가?”
지구대장은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지는 고깃덩어리를 가리켰다.
“저걸 보고도 변명할 건가!”
“저놈의 졸음운전 때문에 여자와 아이가 죽을 뻔했다. 아니, 내가 없었다면 반드시 죽었겠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내게 죄를 묻기 전에 경찰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음에 사과를 하는 것이 순리에 맞지 않겠나.”
공권력이 적색수배자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저렇게 자존심만 비대하게 높은 놈은 더더욱 못하겠지.
하지만 해야 할 것이다. 알량한 권력이라도 쥐고 흔들려면 말이다.
“안녕하세요! 최미주입니다. 오늘은 익명의 구독자님께서 특종 제보를 해주셔서 이렇게 나와봤는데요. 와, 다크넥서스가 눈앞에 있네요! 그리고 제가 놀라운 광경을 찍었답니다. 바로 보시죠!”
최미주. 내가 익명으로 이곳에 오면 좋은 장면을 담을 수 있을 거라는 DM을 보냈다.
말하는 투로 봐선 서미려를 구하고 넥서스가 부상하는 장면을 제대로 찍은 듯하다.
최미주 같은 너튜버가 아니더라도 지나가던 사람들 대다수가 멈춰서서 홀로폰을 나와 지구대장을 향해 들이밀고 있는 상황.
우물쭈물하던 지구대장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쯧.
나의 정당성을 증명할 증거를 만들었으니 자리를 떠도 그만이겠으나. 내 기억이 맞으면 곧 진영웅이 도착한다.
‘불쌍한 놈이지.’
돌아오자마자 본 게 아내와 자식의 시신이라니. 나 같아도 다 뒤집어엎었겠다.
“투항하라고!”
지구대장의 결정은 권총으로 나를 겨누는 것이었고 그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우우—
시민들의 야유. 지구대장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나 총을 내리진 않았다.
파즉!
그때 넓게 펼쳐둔 내 영역 안에서 마나가 격동하는 것을 느꼈다.
‘왔나.’
“전원 트럭 근처에서 물러나라!”
내가 큰 목소리로 경고하자 어어 하면서도 거리를 벌리는 시민들.
반파된 트럭 바로 위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집약되었고.
쾅!
강렬한 빛무리와 함께 허공이 갈라지며 고대 중국의 복장을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발치에는 구름이, 어깨에는 백은으로 치장된 봉이 걸려 있었고 좌중을 둘러보는 눈은 안토니오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짙은 금색이었다.
“진짜 돌아왔구나.”
사람들의 비명 사이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
“정체를 밝혀라! 다크 넥서스와 한 패냐?”
권총을 내게서 금안의 남자에게로 옮기는 지구대장.
“다크 넥서스? 아, 적색수배자였던가? 저랑 관계없습니다. 그보다 집에 가고 싶은데, 길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아내랑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거든요.”
지구대장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옆에 있던 경찰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진영웅 씨 맞습니까?”
“맞습니다만, 저를 아십니까?”
“이틀 전에 부인께서 실종 신고를 하셨습니다.”
“하하. 잘 있나 보군요. 다행입니다.”
“그, 사실은. …휴. 영상을 보시는 게 빠르겠습니다.”
최미주의 영상이라도 보여주는 건가.
홱.
잠시 후 진영웅의 고개가 이쪽을 향한다. 단번에 뛰어올라 넥서스에 올라탄 그는 나를 쳐다보더니.
“검선(劍仙) 진영웅. 은인께 절을 올립니다.”
봉을 놓고 정중하게 절을 하는 진영웅. 검선? 신선 중 최하등급인가 그랬던 거 같은데.
‘넘어간 세상이 신선계였나.’
신선계. 매저드 교수에게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자기 같은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유유자적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기드빈, 두 사람을 데려와라.”
“예, 써!”
서미려와 아이가 손을 잡고 나오자 진영웅이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을 부둥켜안는다.
“여보! 다현아!”
“당신!”
잠시 후. 진영웅은 서미려에게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녀서 걱정시키냐고 등짝을 수차례 맞았다.
셋의 감정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무렵, 넥서스 주변은 강동 전체의 경찰과 히어로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은인께선 제게 바라시는 것이 있습니까?”
어떤 내색도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내게 바라는 것이 있을 거라 확신하는 듯한 어투.
“그래.”
“말씀하시지요.”
“그곳에선 어땠을지 몰라도 돌아온 이상 직업이 필요할 테지?”
“…옳은 말씀입니다.”
“내가 회사를 하나 운영 중인데 말이야. 같이 일해볼 생각 없나?”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