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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30화 (130/201)

<130화>

카오스믹서 (1)

-헉, 헉. 쿠아! 빨리 와!

“이게 전속력입니다, 주인님.”

-칫, 하필이면 폭풍 숲이 걸려서는.

안개 형태의 몸을 가진 녜블라와 그의 소환수 물레방아, 루아다데아구아는 누군가로부터 쫓기고 있었다.

“거기 서라!”

“야 인마, 저리 안 꺼져? 내 사냥감이라니까.”

사지가 도끼의 날로만 이루어진 사내와 얼굴이 화염으로 뒤덮인 여성이 서로를 밀치며 녜블라를 향해 달린다.

“네가 번헤드로군, 소문은 들었다. 너도 현상금 사냥꾼이라면 규칙을 지켜라!”

“규칙? 설마 발견자가 우선권을 가진다는 그 헛소리를 말하는 거냐? 그건 길드에서 권유하는 일종의 지침이지 절대 준수 사항이 아닌데?”

“이, 못 배워먹은 년이!”

“와, 여러분. 할 말 없으니까 바로 욕 박는 것 좀 보세요. 요즘 뉴비들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번헤드가 허공에 대고 소리치자 그녀의 시청자들이 도끼날남의 채널로 넘어가 욕을 쏟아냈다.

[익명983249-1231 : 너 뭐가 그렇게 잘나서 우리 누님을 욕해!]

[익명512783-23908 : 너는 어지간히 많이 배워서 목숨으로 밥 벌어먹냐?]

[익명9233-239 : 너 얼굴 봐뒀다. 누님에게 한 번만 더 욕하면 찾아가서 날붙이 다 뽑아버린다. 이 바닥 좁은 거 알지?]

“크윽.”

“그러게 왜 깝죽대세요. 하늘 같은 선배에게 비비다 초상 치르지 말고 알아서 짜져.”

그래도 도끼날남이 포기하지 않자 번헤드의 추종자들이 그의 채팅창에 개인 신상을 털어서 뿌렸다.

그제야 멈춰서는 도끼날남.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퉤!”

“진작 그럴 것이지. 어디 짬찌 나부랭이가 들이대.”

콰르릉!

폭우가 쏟아지는 숲. 당연하게도 이런 상황에선 추적이 쉽지 않다.

하물며 상대가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기로 유명한 노보소 출신이라면 난이도는 급격히 상승한다.

“에이 씨, X 같은 지형 진짜.”

그러나 번헤드는 닳고 닳은 현상금 사냥꾼. 저 앞에 있는 30억 크레딧을 얌전히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소환수를 쫓으면 되겠지.”

사냥꾼으로서의 경험과 개인의 능력으로 녜블라를 막다른 길까지 몰아넣은 번헤드.

“후우, 프! 에이 빗물 씹. 야,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냐.”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던 불꽃이 빗물에 의해 걷히자 적발적안의 수려한 외모가 드러났다.

-살려주세요.

로아다데아구아의 뒤에 숨은 녜블라가 간절한 사념을 번헤드에게 보냈으나.

“빨리 끝내자.”

-제발….

“어차피 다시 살아날 놈이 엄살은. 이리와 인마. 너 하나 잡으려고 이딴 행사에 참가한 내가 레전드다 진짜. 어휴.”

-쿠아, 몇 시야?

“곧 정각입니다. 주인님.”

“정각?”

로아다데아구아의 말을 들은 번헤드가 급히 시간을 확인했고.

【알림】

【하루가 지났습니다. 무작위 지형으로 이동됩니다.】

“어?”

비 맞은 개처럼 형상을 웅크리고 있던 녜블라가 알림을 확인하곤 천천히 일어나 로아데아구아에 몸을 기댄다.

그리곤 체내의 부유하는 구슬 두 개를 딱딱 부딪치며 웃었다.

황급히 팔을 뻗은 번헤드였으나 두 사람 모두 이미 지형 이동을 위한 빛무리에 휩싸인 뒤였다.

“이런 X발!”

-바보들이라니까, 정말.

* * *

-실패했다?

“그렇게 됐수다.”

-네 명성을 믿었건만.

“행사 기간 남았으니까, 아직 몰라.”

-최후의 결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못 만나겠군. 물론, 그전에 내가 고용한 다른 사냥꾼들에게 붙잡힐 테지.

“아닐걸? 댁 아들, 보기보다 유능해.”

번헤드와 같은 현상금 전문 사냥꾼에게서 도망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흥, 제 잘난 맛에 사는 놈이다. 그 정도는 해야지. …쯧,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상한 것만 배워선.

“그래도 그쪽이 준 쪽지는 제대로 전했어. 하나는 의뢰 완료 맞지?”

-허, 이래서 따로 의뢰받은 거였나. 사냥꾼들은 전부 약삭빠르다더니.

“…오케이, 계좌 확인했어. 참, 그 쪽지에는 뭐라고 쓴 거야? 급하게 쫓느라 못 봤네.”

-…네가 알 필요 없다.

* * *

녜블라의 부모와 번헤드가 대화를 나누던 때에, 다섯 공동에선 누군가는 원치 않았을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긴, 아!

“오, 이게 누구야.”

남만혁은 일주일 전, 녜블라와의 만남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바보들아!’라고 외치며 도망간 것까지 말이다.

녜블라는 주변을 돌아봤다. 공동의 벽을 따라 다수의 참가자와 소환수들이 피칠갑을 한 채 쓰러져 있었다.

어느 살인마의 예술 행위라 해도 믿을 정도로 잔혹하고도 이질적인 광경이었기에 녜블라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제블이라고 해.

그래서 급조한 가명을 댔고 어리둥절하는 로아데아구아에게 얼른 사념을 전했다.

-다른 사람인 척해!

“로이드데구르라고합니다.”

거의 똑같잖아! 라고 속으로 절규한 녜블라가 안절부절못하며 남만혁을 올려다보자 예상대로 그는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는 그쯤하고 어떻게 덜 아프게 맞을지나 고민해.”

-맞, 맞다뇨?

공동의 중앙을 엄지로 가리키는 남만혁. 그곳에는 육각형 형태의 탈출구가 없는 철조망 경기장이 있었다.

쉭쉭, 쉭.

링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그레이스 멜론.

그녀의 주먹과 경기장 바닥엔 저 시체처럼 늘어진 참가자들의 피들이 저주처럼 엉겨 붙은 채였다.

-항복!

남만혁은 눈은 웃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녜블라의 구슬 두 개를 움켜쥐곤 얼굴 가까이 끌고 와 속삭였다.

“그런 젠틀한 규칙은 없단다.”

쟤들이 왜 다 실신해있게? 라고 뒷말을 잇는 남만혁에 녜블라는 절규했다.

-안돼에!

링 위로 끌려 올라간 녜블라는 그레이스 멜론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흐어엉, 그만. 그마안!

경기장에 올려보낼 때까지만 해도 안개 덩어리를 때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던 남만혁이었으나 의외로 고통을 느끼는 듯하자 꽤 고소했다.

“어른을 욕하고 튀면 이렇게 되는 거다.”

-으응.

“욕해서 죄송합니다, 해.”

-욕해서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흑.

“옳지.”

한 번 혼내자 또 순한 양처럼 말을 잘 듣는 녜블라의 모습에 남만혁은 하나 보육원의 김태양이 떠올라 더 모질게 대하진 못했다.

“머리 박, 음. 앞으로 주의해라.”

-네.

덜컹, 덜컹.

녜블라가 혼나는 동안 멀찍이 떨어져 있던 로아데아구아가 눈치를 보며 굴러온다.

-쿠아! 혼자 도망쳐? 주인인 나를 버렸어?

“그, 그것이 아니라. 이걸 발견해서.”

자기 몸을 탈탈 털어 물레 한쪽에 끼어 있던 쪽지를 바닥에 떨어트리는 로아데아구아.

-뭔데.

“주인님 아버님의 전언인듯합니다.”

-뭐야?

화들짝 놀라며 쪽지를 들어 올려 펼치는 녜블라.

[카오스믹서는 사용하지 말거라. 네가 위험할 수 있다.]

-켁, 인제 와서 신경 쓰는 척은. 근데 내가 이런 걸 챙겼었나?

녜블라가 서몬&케이브 행사를 참가하기 전, 그는 부모와 크게 싸웠고 홧김에 별장의 지하창고를 털었었다.

-이건가?

녜블라의 구슬이 움찔움찔하더니 돌연 허공에서 항아리가 튀어나왔고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남만혁이 잡아챘다.

“어이쿠, 귀한 물건 같은데 함부로 다루면 쓰나.”

-귀하기는, 겨우 그런 골동품 가지고.

허세를 부려보는 녜블라.

“그래? 그럼 이거랑 바꿀래?”

항아리에서 느껴지는 마나가 범상치 않음을 감지한 남만혁이 악마의 수염 두 개를 내밀었다.

-진짜 악마의 수염이야? 바꿀래!

부잣집 아들의 금으로 이루어진 장난감과 평소 부모가 가까이도 못 가게 한 불량식품 사탕을 바꾸는 격이었다.

“수염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 이렇게. 오, 어른 같은데?”

남만혁이 안개 덩어리 속에 수염을 띄우자 붉은 구슬들이 방방 뛴다.

-후후. 나는 원래 어른이었어.

그런 광경을 뒤에서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던 그레이스 멜론은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누가 개빌 아니랄까봐….”

1학년 초, 개소리 빌런으로 유명했던 남만혁의 별명을 중얼거리며 훈련을 이어가는 그레이스였다.

녜블라가 로아데아구아에게 어른의 증거인 수염을 자랑하는 동안 남만혁은 항아리를 붙잡고 앉아 고민에 빠졌다.

“스승님이 이런 아티팩트는 보통 대박 아니면 쪽박이랬는데.”

항아리에는 물건 본연의 힘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종류의 마나가 얼기설기 꼬여 있었다.

다른 세상에서 흘러들어온 아티팩트를 여럿 감정한 경험이 있는 매저드 교수의 조언을 곱씹던 남만혁은 잠시 고민한 후에 결정을 내렸다.

“에라, 못 먹어도 고! …근데 어떻게 쓰는 거지?”

다행히 사용법은 항아리 바닥에 쓰여 있었다.

[카오스믹서]

[합성할 아이템 두 개를 넣고 기다릴 것.]

[성공 시 상위 아이템으로 변환]

[실패 시 파괴]

“합성?”

* * *

“솜브리오 팀장님. 이거 문제 될 거 같습니다.”

허슬리가 채팅 몇 개를 긁어 솜브리오 팀장의 단말기로 넘겼다.

[익명34891-59 : 저 인간 여자 대단하네.]

[익명849310-291 : 하위 종의 희망!]

[익명76093-19 : 서몬&케이브가 아니라 퀸의 케이지로 바꿔라!]

솜브리오는 ‘이게 뭐.’라는 눈으로 쳐다봤고 허슬리는 넥타이를 고쳐매며 답했다.

“한두 명이 아니라 다섯 공동의 영상을 본 이들 중, 하위 종 대부분이 행사 이름을 정식 명칭 대신 퀸의 케이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상관있나?”

“저희 팀이 아무리 똥…통이라고 해도 명예가 있잖습니까, 하위종이 조금 뛰어나다고 행사 이름을 바꿔 부르는 걸 좌시해선 안 됩니다. 지금은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저런 게 쌓여서 트러블이 될 겁니다!”

할 말이 많은 솜브리오 팀장이었으나 가장 설득력이 강한 주제를 입에 담았다.

“현재 시청률.”

“0.34%입니다.”

“전 회차 최고 시청률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0.09%.”

“답이 됐나?”

방송국은 시청률이 신이다.

“그래도!”

“허슬리.”

회의실 입구에서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지켜보던 데모니오가 검지의 손톱을 길게 뽑고는 나오라고 까닥인다.

허슬리가 눈치를 보자 솜브리오가 가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셨습니까.”

“내가 처음에 뭐랬지?”

“…팀장님께 예의를 지켜라.”

“그래, 명심해. 농담 아니야.”

데모니오가 허슬리를 데리고 나가는 모습을 보던 솜브리오가 미세하게 웃음을 머금고는 업무지시를 전송했다.

[업무지시, 허슬리]

[로맨의 동행자 ‘퀸’을 중심으로 특별편을 편성할 것.]

“아니, 이걸 왜.”

벌떡 일어서는 허슬리.

“쓰읍, 불만 있으면 나한테 말해.”

피와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데모니오의 검붉은 손톱을 본 허슬리는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 * *

다섯 공동에 자진해서 고립된 지 약 보름이 지났다.

다른 지형에 다시 적응하느니 그냥 텐트 깔고 방 하나만 지키자는 생각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다.

와아아아아!

“예, 지금 퀸 선수가 락쿤 선수의 정강이를 박살 냈거든요? 두 종의 격차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리드무브 씨는 경험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저 디스하는 겁니까? 그러는 쉐타 씨도 퀸에게 무기 뺏겨서 코볼트 맞듯 맞은 거로 기억합니다만?”

“그 이야기가 지금 왜 나옵니까. 해설이나 하세요!”

“지가 먼저 시비 걸어놓고. 큼, 이야기 받아서 말씀드리자면, 한 마디로 퀸의 방어가 철벽이라는 겁니다.”

“겨우 철벽? 뚫을 수 없다는 뜻이죠?”

“예. 번역이 좀 이상하게 되나 보네요. 아주 견고한 방어라는 뜻입니다. 지금껏 누구도 그녀에게 정타를 적중시킨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상위 종도… 아, 마침 신호가 왔군요.”

경기를 중계하는 사회자들이 관중석 한 곳을 가리키자 사람들의 이목이 모였다.

거기엔 퀸에게 도전하고 패배해 나가떨어진 돌고래 머리의 수인이 떨리는 손으로 검은 상자를 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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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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