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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32화 (132/201)

<132화>

카오스믹서 (3)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요. 어떤 느낌인지 기억했으니까요.”

퀸은 지친 기색으로 그리 말하곤 삼식이가 건네는 엘릭서를 받아든 채 개인 텐트로 들어갔다.

오늘 녀석의 처절한 전투를 떠올리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속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튈까.”

지금까지 그래왔듯, 발파록은 내일 또 누군가의 몸에 빙의해 싸움을 걸어올 테지.

놈은 매일 강해지고 있다. 전투 도중 흘린 말을 종합해보면 이쪽 기준으로 특성에 해당하는 권능을 빙의할 때마다 하나씩 추가로 가져오는 듯했다.

발파록의 언행을 보면, 그린 중에서도 꽤 상위 서열의 전사임이 분명하다.

“그럼 가져올 권능도 아직 한참 남아 있겠지?”

이는 앞으로의 전투가 급격하게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직접 상대한 퀸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거고.

‘소용없나.’

튄다는 가정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으나 놈에게는 삼식이를 추적하는 방법이 있는 이상 완전한 도주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우오오!

“보셨습니까? 퀸 선수의 승리입니다!”

“오늘 발파록 선수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나는 퀸의 승리에 흥분한 사회자와 관중들이 날뛰는 광경을 보며 발파록을 상대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씁, 이대로는 답이 없나.”

현재 강구할 수 있는 모든 전술은 오늘 본 놈의 압도적인 힘 앞에선 하등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여기서 변수를 만들어내려면, 단기간에 급격히 성장하는 방법밖에 없다.

‘마침 나는 그 방법을 하나 알고 있고.’

나름의 각오를 다진 뒤, 소재 보관 및 합성을 위해 만든 텐트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응?”

-쿠아가 기분이 좋대요! 얼른 소재 합성해 봐요.

천막을 열자마자 카오스믹서를 띄워 내게 들이미는 녜블라.

‘이 녀석도 수상쩍단 말이지.’

어차피 당장 다른 수가 없었기에 나는 즉시 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뿔과 마나스톤을 꺼냈다.

【기원을 삼키는 악마, 그레블로스의 뿔 레플리카(S)】

【마나를 흡수하는, 쥬라토의 마나스톤(S)】

묘하게 비슷한 칭호를 가진 두 소재를 잠시간 바라보다 간절함을 담아 카오스믹서에 천천히 넣었다.

달각, 달각.

두 소재를 바닥에 놓고 손을 빼기가 무섭게 항아리가 제자리에서 흔들리더니, 가느다란 빛기둥이 흐물대며 흘러나왔다.

색이 다르긴 해도 실패 효과와 비슷한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실패인가.’

맥이 탁 빠지는 그 순간.

【알림!】

【축하드립니다. 특수 아이템, 카오스 믹서에 ‘변이:제물’이 깃듭니다.】

【변이:제물 효과에 의해 카오스믹서가 파괴됩니다.】

【변이:제물 효과에 의해 카오스믹서에 축적된 저주가 합성 중인 소재에 흡수됩니다.】

화악!

검정에 가까운 주황빛이 항아리에서 폭사 된 직후.

빠각.

카오스믹서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 잔해의 중심엔 짙은 주황색이 은은히 점멸하는 뿔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보자마자 느낌이 온다. 저건 저주 소재다.

잠깐 망설이는 사이 내 뒤에서 기웃대던 녜블라가 슬그머니 다가온다.

“윽!”

접근하려는 녜블라를 막기 위해 팔을 뻗으려는 찰나, 옆에서 물레방아가 나를 들이받는다.

옆으로 밀려나기가 무섭게 녜블라가 흑청색 뿔을 염력으로 낚아챈다.

-이히히, 이 순간을 기다렸지!

“이 멍청한 놈.”

-흥, 담담한 척해도 소용없어. 감히 이 몸을 부려 먹어? 눈앞에서 보물을 놓친 기분이 어떠냐! 히히히!

녜블라의 약점은 첫날 파악해뒀기에 녀석에게 다가가는 대신 물레방아를 인질로 잡으려는 때에.

-헉? 안, 안돼!

대뜸 뿔에서 수많은 마나의 실들이 튀어나와 녜블라를 휘감았고, 눈 깜짝할 사이 놈을 이루던 안개가 무언가에 흡수된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데굴.

빛을 잃은 구슬 두 개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이내 바스러진다.

녜블라가 음흉한 놈이라는 건 진즉에 알아봤다. 뒤통수를 칠 것도 어느 정도 예상했고.

준비되지 않은 나는 무력하다는 걸 이 며칠간의 관찰로 파악했겠지.

마침 퀸도 지쳐서 쉬는 중인데다 곧 자정이다. 딱 들고 튀기 좋은 상황.

“너무 억울해하지는 마라. 네 업보다.”

붉은 보석이었던 가루를 후 불어 날려 보낸 뒤, 텐트 바닥을 구르는 주황색 뿔을 노려보다 움켜쥐었다.

녜블라를 덮쳤던 그 마나의 실들이 나를 휘감았으나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알림】

【대상은 저주받은 소재입니다. 주의하세요.】

뽑기를 할 때마다 보는 알림이다. 상자에서 나온 아이템 중 1할은 저주받은 소재였으니까.

【알림】

【당신의 체질은 저주를 반전합니다.】

보다시피 나는 저주의 효과를 반전하는 체질을 타고났다. 네크로 마탑에서도 이것 때문에 저주 마법을 제대로 익힐 수 없었지.

그래서 단순히 놀라는 것만 제외하면 저주로부터 피해를 입는 일은 없을뿐더러 나에게 가해진 저주를 그대로 돌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저주 반전.’

저주를 반전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다지자 내 몸을 둘러싼 실들이 일순 튕겨 나갔다.

허공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마나의 실들.

“이제 내 차례지?”

나는 음차원 마나로 가득 채운 영역을 전개해 뿔과 저 실들을 속박하려 했으나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뿔의 실들이 이번에는 내 몸 대신 영역 전체로 뻗어나간다.

‘먹고 있다?’

저 마나의 실 하나하나가 입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영역을 이루는 마나를 허겁지겁 빨아들이고 있었다.

‘단순히 저주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라는 건가.’

지금까지 저주 반전을 먹이면 소재에 깃든 저주가 사라졌었다. 그런데 이렇게 건재하다는 건, 다른 힘이 저주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거겠지.

“어쩔 수 없지.”

시간이 많지 않다.

해서, 마나의 끈 하나를 슬쩍 뒤로 빼돌려 미리 텐트 바닥에 그려둔 마법진에 마나를 공급하며 시동어를 외웠다.

“악마의 뿔 소환.”

악마학파의 대장로가 본인의 인생을 갈아 만든 마법. 육체에 강제로 악마의 뿔을 이식하는 주문을 발동했다.

그러자 뿔에서 좀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실들이 뿜어내 텐트 전체를 에워싼다.

‘내게 맞춰주고 있던 거였나.’

썩을.

“위즈!”

꾸물럭!

지금처럼 마법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대기시켜둔 위즈를 불러내 융합했다.

즉시 물리력으로 마나의 실로 이루어진 벽을 돌파하기 위해 전력으로 부딪쳤으나 조금의 흠집도 나지 않았다.

저 뿔도 내가 마나의 벽에 어깨빵을 할 줄은 몰랐는지 마나를 흡수하는 행위를 멈췄다.

갑자기 찾아온 잠깐의 정적.

“조졌네.”

놀란 것에 분노하듯 빠른 속도로 좁아지는 공간. 마나의 벽에 닿은 소재들이 녜블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광경을 쳐다보며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퀸.”

과거와 현재의 퀸에게 사과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 * *

펄럭.

일주일 전에 남만혁에게 요구해 받은 개인 텐트에서 나온 그레이스 멜론은 참가자들이 한 곳에 물려있는 걸 발견하고 다가갔다.

“아, 퀸. 일어나셨습니까.”

사회자 중 한 명이 퀸을 아는 체하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흩어진다.

“무슨 일인가요?”

“그게, 직접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거구인 사회자가 옆으로 비켜서자 검은색과 주황색이 뒤섞인 거대한 고치가 그레이스의 눈에 들어왔다.

“로맨은요?”

“모르겠습니다. 녜블라와 로맨 소환사님 모두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목격한 게 저입니다만, 두 분은 텐트로 들어가서 나온 적이 없습니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종인 데다 로맨의 행동을 늘 주의 깊게 관찰하는 사회자임을 잘 알고 있던 퀸은 주먹을 꽉 쥐며 다시 물었다.

“저 안에서 안 나왔다는 말이죠?”

“예. 헛, 안 됩니다!”

그레이스가 고치를 힘으로 뜯어내려 하자 사회자가 급히 말린다.

“왜죠?”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목도한 사회자가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고치화는 진화의 상징입니다.”

“진화요?”

“예에, 제가 알기로 하위 차원의 지성체 중에 고치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바가 없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 고치는 진화의 과정입니다. 중간에 방해받으면 어정쩡한 상태로 진화가 끝나거나 죽을 수도 있고요.”

고치화에 대해 설명했음에도 노려보는 그레이스 멜론의 모습에 사회자는 재차 입을 놀려야 했다.

“이만한 마나 밀도면 대단한 진화일 겁니다. 본체에 비해 고치가 몇 배나 큰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구요.”

후—

숨을 길게 내쉰 그레이스가 몸을 돌리자 그제야 안도한 사회자가 여섯 개의 주먹 중 하나를 남몰래 허공에 휘두르며 기쁨을 표시했다.

‘됐다!’

사실 그는 전날 발파록이 죽은 직후 개인 메시지를 받았다.

[발파록 : 로맨이라는 놈이 명예로운 결투에 개입할 수 없게 수를 쓰도록. 그리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사회자에게 있어 이건 더없이 큰 기회였다.

‘퀸은 오늘 진다.’

어제 퀸과 발파록의 경기를 본 모두가 동의하는 의견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발파록, 성장하고는 있으나 발파록 만큼은 아닌 퀸.

오늘의 승패는 명확했다.

그렇기에 관중 대부분은 자정이 될 때 다른 지역으로 넘어갔고 이곳에 남은 건 채 열 명이 되지 않는다.

‘시청자를 끌어올 기회!’

그것도 안전을 보장받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갑자기 진행된 고치화는 위험하다는 상식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고 남은 관중들에게도 포인트를 뿌려 입단속을 시켰다.

‘시청자들은 보고 있겠지만, 퀸 선수는 참가자가 아니지.’

하위 차원 특전인 동행자는 채팅창을 볼 수 없다.

사회자는 웃음을 숨기며 자신의 지정석이라 할 수 있는 펜타곤 인근의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잡았다.

“곧 정오입니다. 발파록 선수가 올 때가 됐거든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회자의 앞에 생성되는 검은 상자.

“…어? 읍!”

상자는 저절로 열렸고 안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를 발견한 사회자가 급히 입을 다물었으나 벌레는 비웃기라도 하듯 소닉붐을 터트리며 그의 코로 쏘아져 들어갔다.

“컥! 약속과 크윽, 다르지 않습니까!”

발악하듯 소리치는 사회자였으나 그의 저항은 1분을 넘기지 못했다.

“목숨을 살려준댔지, 언제 네 자아를 보장한다더냐.”

그리 말하고는 사회자의 자리에서 일어난 발파록이 주변을 둘러보다 주먹을 내질렀다.

팡! 파스스….

그 일권에 반쯤 녹아내린 펜타곤이 먼지로 화해 사라졌고 이를 본 관중은 사색이 된다.

저 주먹이 조금만 방향을 틀었어도 자신들이 저렇게 되었으리란 걸 알아차린 것이다.

“너저분한 것들은 전부 치웠다.”

허공에 대고 외치며 양팔을 활짝 펼치는 발파록.

“누구도 우리의 명예로운 결투를 방해할 수 없노라.”

공동의 중심에서 숭고한 결투를 선언하던 그의 시선은 막 텐트에서 나오는 퀸에게 향했다.

“호오, 처음 보는 도구구나. 무엇인고?”

그레이스 멜론은 소마의 주먹을 끈으로 연결해 허리춤에 매달았다.

‘…남만혁.’

그레이스는 고치를 힐끗 바라봤다.

어느 날 그답지 않은 불퉁한 표정으로 오다 주웠다며 건넸던 아이템. 지금까지는 징그러워서 텐트 구석에 넣어뒀지만.

‘이유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녀는 이 주먹이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흐음, 오! 와일드! 내 숙적이여!”

그때 고치 뒤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퀸의 옆에 서는 작은 해골.

돌곡!

삼식은 새벽에 남만혁의 마나가 급격히 소실되는 것을 감지하고 급히 달려갔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삼식은 지금까지 고치에서 느껴지는 계약자의 마나와 낯선 마나의 분리를 시도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다.

돌고곡!

-너 때문에!

삼식의 강력한 사념의 방출이 공동에 넓게 퍼지자 발파록을 비롯한 관중들이 어깨를 흠칫 떤다.

이제까지 삼식에게서 느껴지던 마나와는 무언가 다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

“좋구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유이한 대적자들이여! 오라! 오늘에야말로 이 몸의 명예로움을 혼에 새겨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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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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