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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37화 (137/201)

<137화>

서몬&케이브 감독판

“이 사람도 지구행이야. 내 일행.”

“아, 그러셨습니까. 실례했습니다.”

드로틀 가문의 하수인인 차장은 번헤드의 신경을 건드리지 말라는 집사의 주의를 들었기에 군말 없이 두 사람을 열차에 들여보냈다.

빠아앙—

-지구행 차원 열차, 출발합니다. 고객님들께서는 착석해주십시오.

열차가 차원의 벽을 가르는 백색소음만이 귓가를 울릴 때쯤 솜브리오는 작은 목소리로 번헤드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군.”

“고맙긴. 빚이야, 갚아.”

익살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그녀의 모습에 솜브리오도 입꼬리를 흔들었다.

“기억하지.”

“참, 열차에 타니까 생각났는데. 재작년이었나, 내가 쉐리드 행성에 간 적이—”

덜컹!

번헤드가 한참 자신의 여행록을 입으로 옮기던 중, 대뜸 열차의 뒷문이 열리고 베르데종이 거칠게 숨을 고르며 굴러 들어왔다.

“으흐, 거 빡세네.”

난입한 인물은 지구행 열차가 긴급 편성된 것을 군대의 인맥을 통해 알아내 지금까지 열차 바닥에 붙어 있었던 베르데 연합군 91사단 에이스, 발라르카였다.

솜브리오와 번헤드가 경계 어린 눈으로 쳐다보자 그녀는 두꺼운 팔을 양 좌석 머리받이에 올리며 해맑게 웃었다.

“같이 좀 갑시다. 그 빚인지 뭔지. 내게도 달아둬도 좋으니까.”

* * *

약 30년 전. 홀로그램 아이돌이라는 것이 있었다.

어느 각성자의 독특한 발상으로 탄생한 이 콘텐츠는 앱만 깔면 누구나 자기가 설정한 캐릭터를 온라인에 업로드해 아이돌화시킬 수 있기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어떤 사이트와 영상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성향과 재능이 달라지고 나중에는 엔터에 오디션을 보내 정식 아이돌이 되기도 했었다.

인간과 홀로그램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일종의 특이점이 발생하려던 시기에 이 홀로그램 아이돌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이 콘텐츠의 핵심이었던 각성자가 사망한 것.

살인범의 발언은 이러했다.

“내 딸이 또 사창가에서 뒹구는 세상을 창조하게 둘 순 없었다.”

살인범은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또한, 홀로그램 아이돌을 이용해 몹쓸 짓을 하는 이들이 대거 검거되었다.

세상에 큰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이것이 현재 과학기술만으로 홀로그램 아이돌을 구현할 수준이 되었음에도 출시되지 못한 이유이다.

그러나. 어딘가에는 세상의 질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개인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아이돌, 리가입니다! 오늘은 파송송치즈라면을 만들어 볼 거예요. 잘 따라 해주세요!”

처음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신형 입간판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길거리.

아이돌 ‘리가’는 주방 도구와 재료를 꺼내더니 저 멘트와 함께 음식을 하기 시작했고 후각 데이터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와, 냄새 예술이네.”

“야, 라면 먹고 가자.”

“그럴까?”

오후 6시. 퇴근 시간에 맞춘 퍼포먼스였기에 회사원들을 비롯한 학생들은 인근 라면집을 방문하거나 집에서 끓여 먹을 라면을 구매했고 이는 아주 미약하지만 경제 순환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

이후, 리가가 서울의 주요 버스 정류장이나 역 앞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자 홀로그램 아이돌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졌다.

“박 과장. 아이돌 리가라고, 알아?”

“네, 오늘 아침에도 봤습니다.”

“걔 무조건 뜨니까 지금 얼른 광고하나 찍어놔.”

“예? 홀로그램 아이돌이잖습니까, 곧 나라에서 제재할 텐데요?”

“지금은 아니잖아. 그리고 원래 있다 없으면 더 이슈되는 거 몰라?”

예술가의 유작이 더 가치가 높은 것처럼. 이라고 덧붙인 사장이 재촉하자 과장은 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이러한 풍경이 여러 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리가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홀로그램이라는 장점을 이용해 고액 광고를 모조리 수락하고 단시간에 촬영까지 마쳤다.

다음날, 정거장에선 온갖 기업의 물건과 음식을 홍보하는 리가를 볼 수 있었다.

최초의 버스 정류장에서의 등장으로부터 고작 한 달. 그 짧은 시간 만에 리가는 세계적인 PPL돌이 되었고 상업적인 활동뿐인데도 팬덤이 상당했다.

이유인즉.

“아직도 안 잡혔어?”

“못 잡는다더라.”

“왜?”

“제작자를 찾을 방법이 없단다.”

“…하긴, 저런 진짜 같은 홀로그램을 만들 정도면 보통은 아니겠지.”

“그런 것도 있고, 그때랑은 다르게 민간에 오픈한 것도 아닌 데다 방범용으로 도움이 된다네.”

“방범?”

“리가가 빌런을 잡았다는 소문 들어 봤지?”

“그거 극성팬이 뿌린 루머라며.”

“진짜다. 지금쯤 영상 돌고 있을걸?”

대통령 비서실에서 일하는 친구의 말대로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에는 칼을 들고 어린아이에게 달려드는 성인 남성 앞에 나타나 놀라게 해 멈춰 세우는 리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리가가 빛의 밝기를 조절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간을 버는 사이 도착한 경찰들이 고강도 테이저건으로 빌런을 제압한다.

“오, 프로그램 잘 짰나 보네.”

“…그래.”

비서실 서기인 김중석은 청와대 내부에선 리가를 실제 사고하고 판단하는 인격체로 본다는 사실까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세계적인 기업들이 압박을 해와 제재를 가할 수도 없게 되었다는 사실도.

그렇게 국가의 암묵적인 수용하에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가 자리를 튼 리가는 갑자기 모든 계약 내용을 열흘 뒤로 미룬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하나의 영상을 틀었다.

[서몬&케이브]

[최강의 상위종 vs 최약의 하위종, 그 승자는?]

[전 우주 시청률 0.1%대 돌파한 하이퍼 리얼 서바이벌!]

[로카 방송국 제작]

영상은 퀸이라는 여자 주인공과 발파록의 전투 씬을 다루고 있었다.

첫날은 그들이 다섯공동에서 보낸 10일간의 기록이 60분으로 압축되어 송출되었고 이를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한 사람들은 경악했다.

“어디에도 없는 영상이다.”

“제작했다는 건가?”

“나 CG일 하는데, 저건 툴로 작업한 게 아니다.”

“전부 실제 상황이라고?”

“높은 확률로.”

각종 전문가가 영상을 분석한 결과, 저 전투 자체는 어떤 인위적인 개입도 없었다고 확언했다.

물론, 잔인한 장면은 모자이크나 블러 처리가 되긴 했으나 그건 누가 봐도 기존의 영상에 덮은 것에 불과했기에 별개로 쳤다.

9일째에 고치를 찢고 나온 남자 주인공, 로맨이 퀸을 구하고 발파록을 물리치는 장면에선 모두가 욕과 환호를 동시에 내뱉었다.

“진작 좀 나오지!”

“우리 퀸이 죽을 뻔했잖아!”

“그래도 늦지 않게 왔네.”

“지가 히어로야 뭐야!”

발파록이 신성의 격에 의해 무너지고 퀸을 로맨이 안아 들자 가족과 함께 보던 이들은 아이의 눈을 가리거나 헛기침을 했다.

“커흐흠!”

“딸아 너는 좀 더 나이를 먹은 뒤에 보자.”

“볼래! 나도 다 알아!”

“…알아? 뭘? 응?”

그러나 이어지는 씬은 그들이 예상한 키스가 아닌 회복제로 예상되는 물약 경구 투여와 알 수 없는 수조에 퀸을 던져 넣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제작, 로카 방송국 행사기획팀]

[유통, 밀키마이닝]

….

“크하하하!”

“꺄학학!”

과정은 고단하였으나 주인공들이 만나며 유쾌하게 마무리되었기에 사람들은 흡족해했고 다음 시즌이 기대된다는 평을 각종 커뮤니티에 남겼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 올라온 밀키마이닝이라는 곳이 실재하는 회사라는 것에 일부 계층에선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했으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리쳇이 고용한 중간 관리자들뿐이었다.

다음 날.

감독판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영상이 리가를 통해 재생되었다.

[최후의 결전!]

[감독판 최초 공개! 하위종 출신 신성! 압도적인 힘으로 참가자들을 찍어누르다.]

9일간의 영상이 퀸의 성장 과정을 담는 것에 집중했다면, 마지막 감독판은 남자 주인공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시작은 최후의 생존자 16인에 대한 소개였고 그들의 과거와 활약상을 짧게 보여줬다.

-벌써 마지막 선수로군요. 하위종에서 신성까지! 고치화 한 번에 몇 단계의 격을 건너뛴 인간이자 베르데종 전사를 손가락으로 무릎 꿇린 남자! 로오오오오맨!

둥두두 둥둥!

어디서 구했는지 지구식 스피커로 오래된 힙합 음악을 틀며 등장한 로맨은 능숙하게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곤 다른 선수들이 서 있는 경기장 중앙을 향해 걸었다.

로맨이 도착하자 옆자리에 떠 있던 나무뿌리로 이루어진 구체가 부르르 떨더니 휘릭, 사방으로 뻗어 나온 줄기 중 하나를 휘둘렀다.

로맨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날카로운 줄기는 그의 코끝을 스치고 지났다.

-이런, 미안. 내 소환수는 제멋대로라. 네가 이해해.

“저 나쁜 자식!”

“하여간 꼭 저런 놈 있다니까.”

“딱 기억했다 뾰족귀 자식!”

나무뿌리 다발을 자신의 품으로 당기는 소환사, 프엘루드.

그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으나 속으론 크게 당황한 상태였다.

‘하위종이 신성의 격을 얻었다는 얘기는 프로그램을 이슈화시키기 위해 부풀린 건 줄 알았는데.’

방금의 기습을 여유롭게 피하는 모습이나 표정이 여느 신성들처럼 차분하기 그지없는 로맨의 모습에 프엘루드는 파랗게 변한 안색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제1경기, 진행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허공에 소리만 울렸으나 선수들은 그의 본체를 감지하고 경기장 외곽에 배치된 중계석으로 시선을 모았다.

-지금부터 원하는 상대를 지목해주십시오. 그분이 수락하면 대결이 시작됩니다.

투명한 사회자가 있었던 곳으로 몰렸던 15명의 선수가 이번에는 로맨에게 꽂힌다.

-어이, 사내끼리 붙자!

-안 아프게 죽여드릴게요.

-죽어도 내 권능으로 부활시켜주마.

로맨은 침착한 눈으로 선수들을 살피다 좀 전, 자신의 코에 상처를 낸 뾰족귀남을 지목했다.

-너, 나와.

-후회하지 마라.

뾰족귀남의 대련 신청을 로맨이 수락하자 둘을 제외한 선수들의 발밑에 마법진이 생기더니 전원 객석으로 이동되었다.

-지금까지와의 규칙과는 다르게 항복은 없습니다. 적의 죽음만이 당신의 승리입니다!

퉁!

사회자는 준비된 멘트를 빠르게 읊고는 귀에 거슬리지 않는 신호음을 허공에 터트려 경기 시작을 알렸다.

직후, 끝이 말려 있던 로맨의 뿔이 사선으로 길게 펴짐과 동시에 막대한 양의 마나가 폭사 되었다.

-드래그나, 저놈에게 침식수액을 뿌, 헉?

쏴아아….

눈꺼풀이 닫혔다 열리는 그 잠깐 동안, 경기장의 풍경이 완벽하게 테라포밍이 끝난 행성의 바닷가로 변해 있었다.

뾰족귀남은 당황했으나 그의 소환수, 드래그나는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닿기만 해도 마인드컨트롤에 걸고 혼을 오염시키는 침식수액을 다수의 줄기를 이용해 로맨에게 분사한 드래그나.

그러나 그 액체들이 로맨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쭈웅—

경기장 천장을 뚫고 쏘아져 들어온 백색 광선에 의해 소환수와 소환사 인근의 모든 물질이 모두 증발했기 때문.

치이이익.

뜨겁게 달궈진 열기가 로맨이 구현한 바닷물로 인해 원래의 온도로 돌아간다.

우와아아아!

화려한 광경에 환호하는 관객과는 달리 선수들은 저들끼리 웅성거리더니 외부의 협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겠습니다. …예, 아! 행사장 바깥에 나타난 우주 전함, 넥서스가 이곳을 정확하게 타격했다고 합니다. 로맨의 무기 중 하나죠! 다섯공동이 무너진 이유가 바로 저 에너지포 때문이었습니다.

상위 차원 중에서는 떨어진다고는 하나 그래도 상위종인 뾰족귀남이 허무하게 죽자 몇몇 선수들은 크게 당황했다.

-사회자.

그때 사회자를 부르는 로맨.

-예?

-다음 나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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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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