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요정의 장난
“그럴 수는 없습니다. 로맨 참가자님의 투지와 무력은 지금 경기로 충분히 증명되었으니 휴식 후에 2라운드에서 다시 실력을 뽐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회자의 완곡하지만 단호한 거절.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급속도로 소모되는 마나를 느끼며 관객석으로 눈을 돌렸다.
“자신 있는 놈, 나와.”
“경기 규칙 상….”
“너희도 쫄보냐?”
가가가각!
그런 나의 도발에 삼각뿔 여섯 개가 맞물려 움직이는 기묘한 생명체가 객석에서 튀어 오르더니 내 앞에 내려섰다.
“하등한 놈이 알량한 힘 좀 얻었다고 우주 넓은 줄 모르고 설치는구나.”
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삼각뿔 사이에 숨겨져 있던 작은 구슬에서 전격이 튀어나왔다.
‘위즈.’
꾸물럭!
“꺄하하하하!”
사고 이외의 모든 권리를 위즈에게 넘겼다.
‘역시.’
이 악마의 뿔은 상대를 격으로 찍어누르는 힘 외에도 내 특성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효능이 있다.
미르토스 해안의 구현 속도나 넥서스의 위치 설정 범위가 이전에 비해 배는 는 게 그 증거다.
그런 효과가 뾰로롱★마법 소녀, 블랙 위치의 딸이라 할 수 있는 정령. 위즈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전격의 궤적이 보인다.’
평소의 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위즈에게 다수의 권한을 넘긴 지금의 내 몸은 재각성한 강화계 히어로에 필적한다.
다가오는 전격은 초고속 카메라로 쏘아진 화살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감탄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다만 한 가지 슬픈 점이 있었는데.
“겨우 이런 공격으로 나, 칠흑의 마법 소녀 위즈를 어떻게 해볼 생각인가요!”
‘멘트, 미친.’
대체 저런 대사는 어디서 들어오는 건지 모르겠다.
‘블랙 위치가 가르치는 건가?’
그때 체내의 음차원 마나 바닥 저 깊은 곳에서 부정의 사념이 올라왔다.
블랙 위치가 자기는 절대 아니란다.
아무튼 단순한 주먹질만으로 삼각뿔 괴인을 박살 내버린 위즈가 만족했는지 재차 신랄한 웃음을 흘리곤 내게 육체의 권한을 돌려준다.
‘윽.’
내 몸을 보호하던 위즈의 슈트가 해제되자 전신에 엄청난 피로가 느껴졌다.
아마 육체의 한계 이상으로 움직인 부작용이겠지.
마나로 어느 정도 보완한다고 했는데도 이 정도면, 전투 유지력이 형편없는 셈이다.
‘넥서스가 낫네.’
주포가 재충전 중만 아니었으면, 이놈도 그냥 날려버리는 건데.
“다음.”
어찌어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몸이 흔들리는 건 숨길 수 없었다.
“기력이 다했나?”
“저만한 격을 얻고도 저런 한심한 꼴이라니.”
“태생이 하위종이라 어쩔 수 없는듯함.”
“이번엔 내가 나가지.”
그들 사이에 서 있던 근육질 몸의 보랏빛 피부 인간이 더듬이를 흔들며 말하자 다른 참가자들이 크게 반발한다.
“손만 대면 죽을 놈을 양보할 정도로 착한 지성체는 여기 없다!”
“그러면 어쩌자는 거지?”
“흥, 이곳의 규칙을 잊었나?”
“좋군. 나와라, 내 상대로 너를 지목하지.”
“받아들인다!”
나는 이 신성 폼 유지 시간이 길지 않아서 경기의 규칙을 어기더라도 네 명을 빠르게 처리하고 비장의 수로 리타이어하는 게 목표였다.
‘지들끼리 이렇게 싸워주면 나야 땡큐지.’
바로 신성 폼을 해제하고 마나를 일부 회복했다.
콰앙!
“별것도 아닌 놈이!”
승자는 의외로 소머리 수인이었고 놈은 눈을 붉히며 나를 쏘아봤다.
“다음은 네 차례다, 하위종!”
“안 됩니다.”
그때 방관하던 사회자가 대뜸 본체를 드러내며 경기장에 나타났는데.
“…링 일족?”
사회자의 정체는 거대한 금붕어였다.
내 눈에는 만만하게 생긴 외관이건만 어째서인지 이곳의 모든 이가 동시에 숨을 죽였다.
“로맨 참가자님은 하위종인데다 격리 차원 출신이기에 예외를 허용해드렸습니다만, 지금부턴 안 됩니다.”
고요한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사회자의 경고.
“또, 제가 모습을 드러낼 때는 전부 영원한 어둠을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링 일족이라는 사회자가 모습을 감췄음에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 눈치만 보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섰다.
“경기를 하지 않은 놈들끼리 싸우지?”
“그, 그래. 너, 나랑 붙자.”
“…좋다. 덤벼라.”
무게를 잡던 상위종들이 긴장한 기색으로 내려와 경기를 치렀다.
나로 인해 부전승이 한 명 생겼는데, 그는 사회자의 ‘예외는 없습니다, 전투를 치르세요. 로맨 참가자를 제외한 참가자를 지목하세요.’라는 말에 어쩐지 헥헥대는 소머리 수인을 골랐고.
“이노옴! 비겁하게 지친 연기를 하다니!”
“전장에선 적의 수를 간파 못 하는 놈이 머저리인 거다!”
소머리 수인의 거대한 도끼에 목이 베였다.
그렇게 남은 참가자는 나를 포함해 총 8명.
“2라운드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아쉽게도 휴식은 없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본래 서몬&케이브는 소환수 간의 승패가 소환사의 목숨을 결정짓는 행사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소환사의 무력이 우선시되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한 박자 쉰 사회자가 재차 말을 이었다.
“해서, 이번 라운드는 초심을 찾자는 의미를 담아 오직 소환수만으로 경기를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소머리 수인을 필두로 개인의 무력이 뛰어난 참가자들은 움찔대며 반발할 기세였으나 결국, 누구도 불만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링 일족이 그렇게 강한가.’
살짝 귀엽던데.
“상대는 제가 임의로 정해두었으니 즉시 소환수를 정비해주시길 바랍니다.”
직후, 발아래에 마법진이 생겼고 잠시 뒤 8개의 경기장이 있는 장소로 이동되었다.
내 앞에는 은색의 광석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서 있었고 그 앞엔 주먹 크기의 파리가 웽웽대며 날아다녔다.
그륵, 그그극.
돌이 부딪쳐 갈리는 소리를 내는 광석 덩어리.
아, 설마 저거 웃는 건가?
“운이 좋군. 8강은 그냥 돌파하겠어.”
놈이 뭐라고 하든 나는 간절함을 담아 삼식이를 불렀다.
시간상 하루가 지나 소환 쿨타임이 채워지긴 했으나, 역 소환될 때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는 소리를 다섯공동의 사회자, 나라돌에게서 전해 들었기 때문.
‘좋아!’
일단 바닥에 검은 구멍이 열리긴 했다. 언데드 클럽 애들을 소환할 때면 항상 이런 구멍이 생긴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삼식이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상대도 뭔가 이상을 알아차렸는지, 사회자를 불렀다.
“사회자! 상대가 소환수를 못 불러내는군.”
“로맨 참가자님, 30초 이내로 소환수 소환에 실패하면 실격입니다.”
여기서 실격은 죽는다는 소리다. 저들이 링 일족을 왜 무서워하는지 알게 되겠지.
“삼식아! 야, 남삼식!”
그러나 30초가 다 되어 갈 동안 아무리 불러도 삼식이는 나오지 않았다.
드그극, 드그그극.
상대의 웃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귀를 자극할 무렵.
…돌곡.
구멍 아래에서 삼식의 턱관절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로맨 참가자, 아쉽겠지만—”
나는 사회자의 부름을 무시하고 구멍을 향해 슬라이딩한 뒤 팔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손을 뭔가가 텁, 하고 문다. 재빨리 꺼내 올리자.
돌곡!
“삼식아! 너 이 자식!”
녀석은 두개골만 남아 있었으나 안광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흘러들어오는 사념을 읽어보니, 몸을 재구성할 시간에 두개골을 먼저 수복했다고.
“잘했다, 잘했어. …근데 너 어째 좀 커진 느낌이다?”
돌곡?
모르겠다는 녀석의 사념에 두개골을 내 머리 앞에 가져와 예전의 크기를 떠올리며 비교하니, 확실하다.
이건 뭐, 머리에 써도 될 정도로 커졌다.
“전원 소환수 확인됐습니다. 준비해주십시오.”
“칫.”
아쉬워하는 광석 덩어리.
나는 바닥에 삼식이의 두개골을 내려두며 마나를 불어 넣었고 녀석의 안광이 점점 검게 변하더니 아예 사라진다.
“브하임! 저 해골바가지를 먹어 치워라!”
브웨에엥!
주먹 크기의 파리가 주둥이를 열자 수백의 촉수가 튀어나와 삼식이를 향해 쏘아졌다.
돌곡.
-매직 애로우.
삼식이의 사념이 일대의 공간을 울린다.
처음 계약했을 때, 뭘 할 줄 아냐는 내 질문에 자신 있게 선보였던 작은 미사일이 극독을 흘리는 촉수들 앞에 외로이 떠오른다.
외형도, 담긴 마나도, 속성도. 모두 하잘것없다.
-임프 조크.
그러나 삼식이가 추가 주문을 붙이자 화살 형태를 취하던 매직 미사일은 말 그대로 지구 문명의 ‘미사일’로 화했고.
촉수와 탄두가 접촉하는 순간.
찰칵.
미사일 내에서 무언가가 작동되는 소리와 함께 방사형으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었다.
폭연이 걷히자 경기장 너머 수많은 벽을 관통해 저 끝, 색색의 별들이 박힌 우주가 눈에 들어왔다.
‘이야.’
광석 덩어리와 촉수 파리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으며 주변에서 전투 중이던 참가자들이 모두 경악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본다.
나는 침착하게 삼식이 내게서 끌어간 마나를 가늠하다 헛웃음을 흘렸다.
“삼식아.”
돌곡?
다시 주홍 안광을 피워 올리며 천진난만하게 반문하는 삼식이.
“네가 최고다.”
돌곡!
넥서스 구현 및 주포 사용의 절반 수준이다.
위력 대비 마나 소모 효율 최상.
어쩌면 우승도 노려볼만하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삼식이를 들어 올리는데.
“응? 너 그 뿔 어디서 났냐.”
돌곡?
안광을 위로 올려 자기 머리를 확인하려는 삼식이.
녀석의 머리엔 나와 똑 닮은 작은 뿔이 자라 있었다.
그걸 손가락 끝으로 건드리자 빛의 알갱이로 변해 내 뿔에 흡수된다. 마치 일부였다는 것처럼.
아하.
“이거 빌려줄 수도 있나 보네.”
아무래도 블랙 위치가 신성 폼에 의해 강화되면서 생긴 효과인 듯하다.
돌곡, 돌고곡.
손이 없어 답답하다며 내게 뿔이 어떻게 됐는지 묻는 삼식이.
“너 원래 손 있어도 머리에 안 닿았잖아.”
돌고옥!
아니라며 부정하는 녀석에게 방금 같은 힘을 쓸 때 내 뿔을 빌려 가는 거 같다고 하자, 크게 기뻐했다.
돌곡~
언데드 사이에선 뿔의 유무가 강함의 척도로 통한다. 그래서 언데드 클럽에선 두식이가 최강자 대우를 받는 거고.
“경기 속행해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의 발언 이후에야 멈췄던 결투가 진행되었고, 나는 대기하는 동안 신성 폼을 끄고 다시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런데 아까 그 미사일.’
아무리 생각해도 리쳇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웨더 아이’ 2부에 나오는 인류 최종무기와 닮았다.
-로맨 참가자님. 3라운드가 곧 시작됩니다.
머릿속에 직접 들려오는 음성에 놀라 눈을 뜨자 나를 제외한 전원이 하얀 띠가 둘린 경기장 위에 모여 있었다.
‘가볼까.’
천천히 몸을 일으켜 삼식이의 두개골을 옆구리에 끼고 그곳으로 향하니 소머리 수인이 무어라 핀잔을 준다.
명상 상태를 유지하느라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 오셨으니 마지막 3라운드 규칙을 공지하겠습니다. 경기장 중앙을 봐 주십시오.”
사회자의 목소리를 따라 중앙을 살피자 거기엔 익숙한 검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달칵.
이내 상자의 뚜껑이 열렸고 돌연, 하얀 배경에 검은 점이 박힌 정육면체가 안에서 튀어나왔다.
빙글빙글 돌던 그것은 바닥에 몇 번 튕기며 우리 쪽으로 굴러왔고, 내 발치 앞에 멈췄다.
“이건?”
“여러분의 운과 운명을 결정지을, 로카 행사기획팀이 어렵게 준비한 회심의 아이템. 트리니티 데스티니 다이스입니다.”
주사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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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